한국프로농구연맹(KBL)이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특별귀화선수 라건아의 신분과 관련해 2024~25시즌부터 외국 선수 규정에 따라 계약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라건아는 미국 국적의 리카르도 라틀리프라는 이름으로 2012년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KBL에 입성했다. 이후 그는 2018년 법무부 특별귀화 심사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었고, 대한민국 농구대표팀에서 뛰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라건아는 KBL 내에서 독특한 지위를 얻었다. 신분은 외국 선수로 분류되지만, 특별귀화선수 지위를 획득했기에 그를 보유한 팀은 라건아를 제외한 외국인 선수 2명 보유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라건아 보유 팀은 샐러리캡 문제가 복잡해졌다. 외국인 선수 샐러리캡이 타 구단보다 올라가긴 하지만, 라건아의 연봉이 여기에 포함된다. 라건아에게 큰 금액을 지불하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 영입 방정식이 꽤 복잡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처음 실시된 특별귀화선수 드래프트에서는 울산 현대모비스가 추첨을 통해 부산 KCC(당시 전주 KCC)와 서울 SK를 제치고 라건아를 품었다. 드래프트를 통해 특별귀화선수를 선발하면 3년간 계약이 가능하고, 이후 다시 실시한 2021년 드래프트에선 KCC가 단독 입찰했다.
이번에 KCC와 라건아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KBL은 라건아의 신분에 대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그리고 결론은 ‘외국인 선수’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이제 드래프트가 아니라 전 구단이 자유롭게 그의 영입을 타진할 수 있으며 라건아 영입 팀은 외국인 선수를 추가 한 명만 데려올 수 있다. 라건아가 받는 연봉은 종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선수 입장에서만 본다면 상식을 크게 벗어난 결정이라고 느낄 법하다. 라건아를 응원하는 농구팬들은 이번 결정이 전형적인 한국 농구의 토사구팽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라건아는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대표팀에서도 태극마크를 달고 6년간 헌신해왔다. 그런데 리그에선 다시 외국인 선수가 됐다. 일본 리그의 경우 귀화 선수는 자국 선수와 같은 자격을 갖춘다.
그동안 KBL 국내 선수 자격의 기준은 국적보다 혈통이 더 우선이었다. 이번 '라건아 딜레마'는 누적된 논란이 폭발한 측면도 있다.
2000년대 말 하프코리안 드래프트를 통해 KBL에 입성한 전태풍, 이승준, 문태영 등은 하프코리안 드래프트를 거쳤다는 이유로 3년이 지나면 무조건 팀을 떠나야 했다. 국내 선수들과 같은 ‘자유계약선수(FA) 대박’은 꿈꿀 수 없었고, 팀에 남고 싶다는 뜻도 존중되지 않았다. 이들 중 대부분이 귀화해서 대표팀에서 뛰었는데도 리그에서의 신분은 바뀌지 않았다.
반면 KBL의 해외동포 규정에 따르면 부모가 모두 한국 출신일 경우, 외국 국적이라도 국내 선수로 본다.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이런 규정이 유지되는 이유는 결국 리그의 최고 가치가 KBL 구단들의 전력 형평성이기 때문이다.
라건아가 2018년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으로 취득했을 때, 그가 35세가 되는 2024년에는 한국 선수 자격을 주기로 대한민국농구협회와 라건아의 대리인, KBL이 구두 합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5세가 되면 기량이 정점을 지나 내리막이 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라건아는 2023~24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2점 12.3리바운드의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결국은 이런 기량이 그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는 것을 막은 것일 수 있다. 다만 과거 구두 합의는 문화된 게 아니기에 이번 KBL의 결정에는 규정상 어긋난 부분이 전혀 없다.
이번 KBL 이사회에서 라건아의 신분을 논의할 때 이견 없이 빠르게 외국인 선수 자격을 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배경에는 그를 향한 리그와 구단의 시선이 여전히 그를 '용병 대표'로 보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라건아는 특별귀화 당시 농구협회, KBL, 소속팀과 4자 협상을 거쳤다. 그는 한국 대표로 뛸 때마다 특별 보너스 형식으로 돈을 받았는데, 이 돈이 사실상 소속팀에서 나오는 형식이었다.
결국 농구협회의 기획력과 재정 능력이 아닌 KBL 구단의 돈으로 라건아의 대표 자격이 유지된 현실 속에서 라건아의 리그 신분도 KBL 구단의 뜻대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라건아는 다음 시즌 KBL을 떠나 일본이나 동남아 등 해외 리그로 떠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