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글로벌 거점인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두고 한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양국 정상이 원만한 사태 해결을 약속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경전이 일단락된 것 같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일본이 불투명한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우리 정부도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법적 근거를 앞세워 네이버를 향한 라인야후 지분 압박 수위를 높일 우려까지 제기된다.
메시지 없이 듣기 좋은 말만27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국내 기업인 네이버에 지분을 매각하라는 요구는 아닌 것으로 이해하며, 한일 외교 관계와 별개의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기시다 총리는 "어디까지나 보안 거버넌스를 재검토해 보라는 요구사항"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라인야후를 겨냥한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가 네이버의 영향력을 희석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을 부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네이버는 양국 정상의 라인야후 언급과 관련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을 최우선에 두고 중요한 결정들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일본 총무성은 라인야후가 운영하는 현지 최대 메신저 라인에서 지난해 11월 발생한 약 51만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두고 올해 이례적으로 두 차례의 행정지도에 나섰다.
그러면서 라인야후 모회사 A홀딩스 지분을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절반씩 보유한 현재의 거버넌스(자본 구조)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국가 핵심 인프라는 자국 기업이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총무성이 라인야후에 제시한 개선안 제출 기한인 오는 7월 1일을 앞두고 대통령실이 "지분 매각 내용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사태가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인야후가 동남아 사업을 전개하는 '알짜' 한국 법인 라인플러스와 관련해 "앞으로도 라인야후 산하 기업으로서 대만이나 태국 등 해외 사업을 총괄할 것"이라고 미디어에 말해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앞서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CEO(최고경영자)는 "모회사 자본 변경을 강하게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의 관심이 쏠린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뚜렷한 해결책 없이 끝났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국내 최대 포털의 명운이 달린 일에 우리 정부가 외교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어버려 기업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평가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브리핑에서 "외교와 별개 사안이면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 외교 사안인가"라며 "일본의 라인 강탈에 엄중 항의하지 못하는 '굴욕 외교의 끝판왕'이 아닐 수 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우리 기업의 경영권과 기술력을 빼앗길 상황에 '오해'라며 일본을 편드는 모습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일본, 경제안보법으로 네이버 압박할까여기에 일본이 법을 내세워 간접적으로 네이버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유사한 사례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계 서비스 틱톡의 개인정보 탈취와 여론 조작 등을 우려해 자국 사업권을 박탈하는 '틱톡 강제매각법'에 지난달 서명했다.
일본은 지난 2022년 5월 제정한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이하 경제안보법)을 네이버를 옥죄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경제안보법은 주요 물자 공급망 강화와 첨단 기술 개발 지원, 기간 인프라 안정성 확보, 특허 출원 비공개가 4대 핵심 항목이다.
당초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부품의 의존도를 낮추고 핵심 기술을 보호하는 등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였다.
총무성은 지난해 11월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KDDI, 소프트뱅크, NTT 도코모를 비롯해 라인야후를 경제안보법의 '특정 사회 기반 사업자'로 지정했다.
대상 사업자들은 인프라 설비 도입과 투자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일본 정부의 사전 심사를 거쳐 권고 또는 명령을 받을 수도 있다.
지분 매각처럼 경영과 직결된 규제는 없지만 승인이 미뤄져 투자에 차질이 생기는 등 언제든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제안보를 밑바탕에 깔고 만든 법은 우리나라에도 없는데, 그 개념이 막연하고 광범위하다 보니 라인야후에게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한국도 일본에 맞서는 경제안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기존 개별법 조항들이 무용지물이 되거나 해외 투자가 위축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