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달리려면 엔진에 연료가 차야 하는 법이다. 재정비에 들어갔던 한화 이글스가 일단 팀의 핵심 전력들은 거진 다 채워 넣었다. 선발진의 한 축인 문동주(21)도 그중 하나다.
문동주는 지난 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KBO리그 정규시즌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6피안타 3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올 시즌 무실점 투구는 복귀전(5월 21일 LG 트윈스전 5이닝 무실점) 이후 처음이다. 7이닝 투구는 한 번도 없었다.
투구를 통틀어 긍정적인 내용뿐이었다. 일단 구위가 올 시즌 중 최고 수준이었다. 투구 수가 많아졌을 때 더 빠른 공이 나온 것도 낙관적으로 해설할 수 있다. 문동주는 7회 말 1사 때 올 시즌 삼성 중심 타자로 활약 중인 김영웅을 만나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3구째 던진 몸쪽 직구에 김영웅은 얼어붙어 지켜보다 물러나야 했다. 전광판에 찍힌 이 공의 구속은 159㎞/h. PTS 기준으로는 157㎞/h, 트랙맨 레이더 기준으로는 무려 159.8㎞/h가 찍혔다.
지난해 직구와 커브, 슬라이더를 던지며 신인왕을 탔던 문동주는 체인지업 장착을 시도했던 올해 4월까지 평균자책점이 8.78까지 치솟았다. 구종 탓이라 볼 수는 없었으나 스프링캠프 때부터 흔들렸던 투구 밸런스가 안정을 찾지 못했다.
2군에서 투구 밸런스를 조정하고 돌아온 문동주는 지난해 이상의 안정감을 선보이고 있다. 3경기를 던져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50으로 호투 중이다. 이닝이 5에서 6, 다시 6에서 7로 늘어가고 있는 것도 그의 상승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투구 내용도 완벽에 가깝다. 19이닝 동안 탈삼진을 19개 뽑았는데 볼넷은 단 4개에 불과하다.
구종 배합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부진할 때는 제구도 잡히지 않았고, 그런데도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직구 구사율은 현재 44.9%(5월 21일 이후 기준)다. 50%를 상회하던 이전에 비해 많이 낮아졌다. 체인지업은 11.7%를 기록한 가운데 21%대였던 커브가 32.7%까지 올라와 결정구 노릇을 해내고 있다. 전에 잡히지 않던 커터(6.3%)도 기록되는 중이다. 특히 최고투를 펼친 2일 경기에서는 직구(35.2%) 커브(34.3%) 커터(16.2%) 슬라이더(12.4%)로 네 구종이 고른 분포를 보였다.
그동안 문동주는 호성적은 거뒀어도 빠른 공에 의존한 날이 많았다. 그런데 2일 경기는 데뷔 후 전 경기를 통틀어 직구와 다른 구종의 구사율이 처음으로 비슷한 날이었다. 즉 이날은 그가 가장 이상적으로 '4피치'를 구현한 경기였다.
문동주의 호투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가 다시 지난해처럼, 또는 그 이상으로 팀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상수'로 성장했다는 뜻이다. 최근 3경기 투구 내용을 보면 그는 이제 '기대주'가 아닌 한 경기를 오롯이 책임질 수 있는 에이스에 가까워졌다.
선발진이 '반파'됐던 한화로서는 문동주가 듬직하게 느껴질 법 하다. 한화는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펠릭스 페냐와 리카르도 산체스가 연달아 부상으로 이탈하며 위기에 놓였다. 앞서서는 5선발 김민우마저 팔꿈치 수술을 받고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기대했던 류현진과 문동주는 좀처럼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재정비가 끝나간다. 페냐를 대신해 오는 새 외국인 투수 하이메 바리아는 오는 5일 등판할 예정이다. 류현진 역시 최근 페이스를 찾으며 팀 선발진 중심을 지키는 중이다. 그는 앞서 지난달 31일 갑작스러운 팔꿈치 불편감으로 등판을 취소했지만 이후 캐치볼을 소화하며 정상 복귀를 알렸다. 산체스 역시 이번 주말 복귀가 유력하다. 여기에 문동주까지 남부럽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엔진은 갖춰졌고, 남은 건 운전사다. 한화는 지난 2일 경기 종료 후 김경문 감독과 3년 20억원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불펜을 적극 기용하기로 유명한 김경문 감독이지만, 한화의 선발진만 정상 가동된다면 선 굵은 야구를 대전에서 재현할 가능성이 크다. 순위는 8위지만, 아직 가을야구를 향해 달리기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