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윤정빈은 지난 26일 서울 잠실구장에 도착하자마자 모 선배의 손에 이끌려 LG 라커룸 앞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만난 선수는 다름 아닌 케이시 켈리였다.
켈리는 지난 2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해 9이닝 단 1피안타 무실점 완봉승(4-0)을 기록했다. 8회까지 안타와 볼넷 없이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다 9회 대기록 도전이 중단됐다.
켈리의 퍼펙트 투구에 제동을 건 이가 바로 윤정빈이었다.
그는 켈리의 이날 96번째 체인지업을 공략해 중전 안타를 만들었다. 출범 43년째를 맞는 KBO리그 1군에서 노히트 노런은 14차례 기록됐지만, 투수가 단 한 명의 타자도 누상에 내보내지 않는 퍼펙트게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켈리는 다음날인 26일 윤정빈을 만나 "미안해하지 마라"고 말했다. 이에 윤정빈은 "공이 정말 좋았다. 그런 상황에서 안타를 쳐 정말 영광이다"라고 화답했다.
윤정빈도 당연히 켈리의 대기록 도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타를 쳤을 때 정말 좋았다"고 했다. 팀이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으로 미안한 마음도 컸다. 윤정빈은 "켈리 선수도 그 상황을 만들기까지 힘들었을 거다. 안타를 쳤을 때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운이 남았다. 그래서 감정이 묘하더라"고 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나, 같은 선수 입장에서 상실감 등을 짐작해서다.
켈리는 퍼펙트가 무산되자 아쉬운 마음에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잠시 후 켈리는 1루를 향해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켈리는 "팬분들이 (퍼펙트를) 엄청나게 기대하지 않았나. 열렬히 응원해 준 팬들을 향한 인사였다"라며 "윤정빈을 향한 인사의 뜻도 있었다"라며 웃었다.
윤정빈은 켈리의 행동에 대해 "고마웠다. (상대에게) 경의를 표현하는 모습이 대인배처럼 느껴졌다. 멋있더라"고 했다.
2018년 2차 5라운드 42순위로 삼성에 입단한 윤정빈은 올 시즌 1군에서 빛을 보고 있다. 2022년 1군에 데뷔해 지난해까지 타율 0.114(44타수 5안타)에 그쳤던 그는 올 시즌 13경기에서 타율 0.410(39타수 16안타) 3홈런 7타점 7득점을 기록했다. 지난 20일 열린 SSG 랜더스와 홈 경기에선 8회 홈런포로 KBO리그 역대 최초 팀 5만 안타의 주인공이 됐다.
박진만 감독은 "예전에는 부침을 겪기도 했는데 올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칭찬했다.
윤정빈은 "특별히 잘한다기보다 운이 따라주고 있다"며 "정확하게 타격하려고 신경 쓰다 보니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고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