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언더핸드스로 고영표(33·KT 위즈)의 부진 탈출 배경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최근 고영표는 '위기의 남자'였다. 개막 2경기 만에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한 그는 지난달 19일 1군에 복귀했다. 하지만 이후 컨디션이 들쭉날쭉했다. 특히 후반기 첫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 모두 두 자릿수 피안타(12개→11개)를 기록했다. 피안타율은 0.442(피안타 23개). 그 결과 시즌 평균자책점이 5.54까지 치솟았다.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표였다. 고영표는 지난 1월 5년, 최대 107억원(보장 95억원, 옵션 12억원)에 비자유계약선수(FA) 다년 계약을 했다. 당초 2024시즌 뒤 FA로 풀릴 예정이었지만 가치를 높게 평가한 KT가 구단 역사상 첫 비FA 다년계약으로 일찌감치 눌러 앉힌 것이다. 그런데 대형 계약 첫 시즌부터 흔들렸다.
슬럼프는 오래가지 않았다. 고영표는 25일 수원 SSG 랜더스전에 선발 등판, 7이닝 6피안타 1실점 쾌투로 시즌 3승(2패)째를 따냈다. 특유의 예리한 제구로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공략했다. 특히 스트라이크존 상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경기 뒤 취재진과 만난 고영표는 "두 경기 동안 부진하면서 생각도 하고 고민도 했다"며 "감독님이 부르셔서 메카닉이나 투구 로케이션, 커맨드 쪽으로 조언해 주셨다. 그런 부분이 잘 연결돼 좋은 경기한 거 같다"고 흡족해했다. '조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자 그는 "어느 투수든 나이가 들고 지치면 무게 중심이 높아지는데 감독님이 낮게 눌러서 던지면 힘이 붙을 거 같다고 하시더라"며 "영상으로 분석해도 (무게 중심이) 높아진 거 같았다. 좋은 지도 아래 좋은 피칭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통산 152승을 거둔 이강철 감독은 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언더핸드스로 중 하나. 워낙 경험이 많으니 고영표의 문제점을 파악, 처방을 내렸다. 이강철 감독은 사람(심판)이 아닌 기계가 스트라이크와 볼을 나누는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에선 스트라이크존 상단, 하이볼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고영표에게 "낮게만 던지는 게 상책은 아니다"라며 "높게 던져 타자 눈을 조금 흐트러트리면 좋은 피칭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사이드암스로 우규민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통산 90세이브, 108홀드를 기록 중인 우규민은 산전수전을 모두 경험한 베테랑. 고영표와 투구 유형이 비슷하니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았는데 "높은 쪽을 공략해야 우리가 살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고영표는 "그래야 체인지업이 주효하고 직구로 카운트 잡기 편할 거라고 하시더라"며 "든든하다. 선배님과 감독님이 도와주셔서 개인적으로 슬럼프이지 않나 생각했는데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고 감사함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