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양궁 대표팀의 ‘맏형’ 김우진(32·청주시청)이 뒤늦게 털어놓은 속내다. 지난 3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다. 그동안 이우석(27·코오롱)과 김제덕(20·예천군청), 두 동생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던 맏형으로서의 부담감을 올림픽 3연패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에야 털어놓은 것이다.
김우진은 “그동안 준비해 온 만큼 경기가 잘 풀려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동생들과 단체전 3연패를 함께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면서 “사실 이번에는 부담이 많았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딴 생애 첫 메달만큼이나, 맏형으로서 되게 부담감이 많았던 이번 메달도 참 값진 메달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도, 경험도 가장 많은 김우진은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는 내내 맏형으로서 대표팀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지난 2020 도쿄 올림픽 때는 자신보다 11살이나 많은 ‘정신적 지주’ 오진혁의 존재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그 역할을 자신이 맡아야 했다.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대표팀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김우진이 택한 건 ‘희생’이었다. 올림픽 무대에서 부담감이 가장 큰 3번 사수 역할을 그가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당초 남자 대표팀의 순번은 김우진과 이우석, 김제덕의 순이었다. 그러나 김제덕이 3번 자리에 대한 부담감을 크게 느끼자 김우진이 대신 그 역할을 자처했다. 김우진은 “부담스러운 자리이긴 하지만 맏형으로서 아무래도 내가 모든 부담을 지고, 대신 다른 선수들을 더 편하게 쏠 수 있게끔 했다”고 했다.
개편된 순번은 결과적으로 최상의 결과를 냈다. 가장 컨디션이 좋았던 이우석이 가장 먼저 첫발을 쐈고, 부담을 크게 던 김제덕이 곧바로 그 기세를 이었다. 주로 1번을 쏘던 김우진도 살려 앞선 동생들이 만든 흐름에 마침표를 잘 찍었다. 덕분에 남자 대표팀은 일본과 중국, 프랑스로 이어진 8강~결승 여정 동안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금메달을 달성했다.
대표팀 분위기가 더욱 좋았던 것 역시 맏형인 그가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지낸 덕분이었다. 김우진은 “스스로 삭이는 것도 많았다”고 웃어 보이면서도 “함께 어울렸다. 모난 돌 없이 다 함께 즐기고 즐겁게 지내면서 유대관계를 쌓았던 게 자연스럽게 경기장에서 나왔던 것 같다”고 했다. 이우석과 김제덕 모두 끈끈한 팀워크를 금메달의 비결로 꼽은 것 역시 그만큼 분위기가 좋았다는 뜻이었다.
파리 올림픽 무대 위에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고스란히 나왔다. 누군가의 실수가 나오더라도 팀 전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다음, 그다음 선수가 꼭 분위기를 바꿨다. 선수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부담 없이 활시위를 당길 수 있었다. 김우진도 “우리끼리도 내가 실수를 하면 내가 만회하겠다는 생각보다 뒷사람, 그 뒷사람이 나눠가지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게 이번 대회에서 참 잘 나왔다”고 했다.
이처럼 맏형으로서의 부담을 짊어진 김우진에게 경기 전날 오진혁으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는 그래서 더 크게 다가왔다. 김우진은 “전날 (오)진혁이 형한테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준비한 만큼 경기를 펼치면 분명 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게 가장 큰 힘이 됐다”며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오진혁 선수의 지난 고충들을 알게 됐다.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