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점 만점에 58점. 화살 9발 중 무려 7발이 10점 과녁에 꽂혔다. 특히 스스로 실수라고 인정한 화살마저도 10점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이우석(27·코오롱)의 파리 올림픽 기세가 그만큼 무섭다는 의미다.
이우석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 32강에서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파올리를 6-0(30-28, 28-26, 30-28)로 완파하고 16강에 진출했다. 앞서 64강에서도 피터 부크발러스를 6-0(29-26, 28-26, 29-28)으로 꺾은 데 이은 개인전 토너먼트 2경기 연속 퍼펙트 승리다.
특히 파올리와의 32강은 이른바 텐·텐·텐으로 시작해 텐·텐·텐으로 끝냈다. 첫 엔드에 쏜 화살 세 발이 모두 10점 과녁에 꽂혔고, 마지막 3엔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2엔드에선 첫 발과 세 번째 발이 10점 과녁을 벗어났지만 그마저도 9점이었다.
이우석은 “컨디션이 좋았다기보다는 첫 발이랑 두 번째 발에 실수가 있었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실수를 해줬는데도 불구하고 10점에 들어가줬다. 그래서 더 오히려 자신감 넘치게 쐈던 거 아닌가, 그래서 하이기록이 나온 거 아닌가 싶다”고 했다.
실제 이우석은 첫 번째 엔드에서 화살을 쏜 뒤 팔을 많이 흔드는 모습이었다. 그는 “원하는 느낌이 있는데, 그거랑 좀 다르게 이상하게 쐈다고 스스로 인지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0점에 들어가줬다. 운도 많이 작용한 거 같고, 그걸로 인해서 자신감이 더 생겼다”고 말했다.
이우석은 특히 지난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6번의 기회를 모두 10점 과녁에 꽂아넣으며 단체전 3연패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 기세를 개인전에서도 이어가고 있으니 자연스레 개인전 금메달까지 2관왕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우석은 그러나 “솔직히 개인전 욕심은 따로 크게는 없다”면서도 “그저 (김)우진이 형과 (4강에서) 한번 재미있게 게임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있다. 우진이 형과 4강에서 붙으면 누군가 한 명은 결승에 올라가지 않나. 보시는 분도 편할 거고, 저 입장에서도 큰 무대에서 우진이 형과 즐겁게 게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고 했다.
결승에서 김제덕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전적이 별로 안 좋다”며 농담한 뒤 “기회만 된다면 결승에서 만나는 것도 가장 베스트한 일이다. 그전에 우진이 형과 4강에서 맞붙는 것 역시 베스트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석은 “김우진 선수와 대표 생활을 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안다. 나도 김우진 선수를, 김우준 선수도 나를 잘 안다. ‘이 타이밍에 실수를 하면 상대가 치고 올라온다, 이 타이밍에 내가 잘 쏴줘야 한다’는 타이밍도 서로가 너무 잘 안다. 오히려 그런 수싸움들이 저한테는 재미있었던 거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면 보시는 분들도 재미있을 거고, 시합하는 입장에서도 엄청 긴장은 되지만 지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니 기분이 좋을 거고, 이기면 기분이 더 좋을 거다. 그러면서 더 즐겁게 게임할 수 있을 거 같다”고 기대했다.
지난 단체전에서 보여준 맹활약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안난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래서 영상을 다시 봤는데, 그때그때 느낌은 기억이 나지만 제가 어떻게 쏘고 했는지는 기억이 끊겨 있는 느낌”이라며 “우진이 형과 길을 가면서 이야기했는데 ‘아마 엄청난 각성 상태여서 표적지만 보고 다른 거는 아무 것도 기억못할 수도 있다. 우진이 형도 2016 리우 올림픽 처음 나갔을 때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고 설명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우석은 “인스타그램 팔로워수는 3000명 정도에서 지금은 1만 2000명 정도로 늘었다”며 “어머니와는 아직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메달을 목에 걸어드리겠다고만 했다. 한국에서 가서 보자는 식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웃어 보였다.
16강에 오른 이우석은 오는 4일 오후 4시 43분 중국의 왕얀과 8강 진출을 놓고 다툰다. 대진표상 4강에서는 김우진과 만나고, 결승에서는 김제덕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