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의 실력을 갖춘 이들이 무대를 즐기기까지 한다. 남녀 단체전 석권으로 부담까지 덜었으니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태극궁사들의 2024 파리 올림픽 남은 여정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최우선 목표들을 당당히 이뤘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막 전부터 양궁 남녀 대표팀은 하나같이 단체전 금메달을 목표로 외쳤다. 다행히 여자 대표팀에 이어 남자 대표팀도 파리 올림픽 시상대 제일 위에 섰다. 오랫동안 짊어졌던 단체전 금메달에 대한 부담도 완전히 덜었다.
이제 남은 건 혼성 단체전과 남녀 개인전이다. 혼성전은 남녀 랭킹 라운드 1위에 오른 김우진(청주시청)과 임시현(한국체대)이 호흡을 맞춘다. 단체전인 데다 디펜딩 챔피언인 만큼 금메달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다만 개인전에 임하는 선수들의 각오는 단체전과는 사뭇 다르다. 그 누구도 좀처럼 금메달 등 뚜렷한 목표를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즐기겠다’는 게 선수들의 공통된 마음가짐이다.
지난달 31일(한국시간) 나란히 남녀 개인전 16강에 오른 이우석(코오롱)과 남수현(순천시청)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날 64강과 32강을 연거푸 승리하며 이변 없이 16강 진출권을 따냈다. 혼성 단체전에 출전하지 못하는 데다 이미 단체전 금메달로 부담을 던만큼 개인전을 통한 ‘다관왕’에 욕심을 낼 법도 하다. 그런데 누구도 욕심을 내비치지 않는다.
이우석은 아예 “솔직히 개인적인 욕심은 따로 없다”며 “올라가다가 (김)우진이 형과 한번 재미있게 게임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했다. 이우석과 김우진이 개인전에서 계속 승리하면 대진표상 결승 진출을 놓고 다퉈야 한다. 김우진을 꺾고 결승에 올라 금메달을 차지하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재미있게 붙어보고 싶다는 게 이우석의 마음가짐이다.
그는 “김우진 선수와 함께 대표 생활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서로에 대해서 잘 알다 보니, 이 과정에서 나오는 수 싸움이 재미있다. 하이기록도 많이 나온다”면서 “시합하는 입장에서 엄청 긴장은 되겠지만 지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니 기분이 좋고, 이기면 더 기분이 좋다. 그러면서 즐겁게 게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대표팀 막내 남수현도 마찬가지다. 그는 “개인전에서는 ‘어디까지 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보다 상황에 말리지 않고 끝까지 나한테만 집중하면서 즐길 수 있는 개인전이 됐으면 좋겠다”며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자세에 힘이 들어가서 더 안 되는 느낌이다. 재밌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몸도 같이 즐거워지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단체전에서 최고의 실력을 증명한 선수들이 개인전을 즐기기 시작하니, 정상으로 향하는 여정도 거침이 없다. 이우석은 이날 32강전에서 9발의 화살 중 무려 7개를 10점 과녁에 적중시켰다. 남수현 역시 생애 처음 나서는 올림픽 개인전 첫 엔드를 이른바 ‘텐·텐·텐’으로 장식했다.
자연스레 양궁 대표팀의 목표였던 금메달 3개를 넘어 ‘전 종목 석권’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만큼 양궁 대표팀의 기세도, 마음가짐도 워낙 좋다는 뜻이다. 양궁은 오는 2일 혼성 단체전이 열리고, 3일과 4일에는 각각 여자 개인전과 남자 개인전 결승이 차례로 열린다. 만약 전 종목 석권을 이루면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8년 만이다. 당시엔 혼성전이 없어 금메달 4개를 수확했다. 파리에서는 5개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