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야구가 없으니 이젠 양궁이다. 야구가 이번 2024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고, 축구는 예선 탈락하는 등 인기종목들의 본선 진출이 무산되자 지상파 3사의 중계 경쟁이 ‘메달 효자 종목’인 양궁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동 시간대 펼쳐진 다른 비인기 종목 경기는 지연 중계를 하거나 아예 패스하는 경우가 많아 시청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지상파 3사는 지난달 28일 펼쳐진 배드민턴 여자 안세영 선수의 단식 예선 첫 경기를 생중계하지 않아 빈축을 샀다. 3사는 해당 시간대에 모두 여자 양궁 단체전 4강전 경기를 중계했다. 유일하게 KBS 1TV에서 안세영 선수의 경기를 중계하긴 했으나, 이마저도 탁구 신유빈·임종훈 선수 혼성복식 준준결승전 경기를 중계한 뒤 뒤늦게 지연 중계한 것이었다. 안세영 선수는 여자 배드민턴 단식 세계 랭킹 1위로, 항저우 아시안 게임과 세계선수권 대회를 모두 제패한 금메달 기대주다.
상황이 이렇자 배드민턴 팬들을 성명문을 내고 “안세영 선수는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이번 우승이 개인전 그랜드슬램 달성의 마지막 퍼즐인데 조별 라운드 첫 경기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며 “결국 지상파 3사가 말하는 올림픽 정신은 시청률에 따른 광고 수익이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라고 비판했다.
‘중계 패싱’은 이 뿐 아니다. 지난달 30일 펜싱 세계 랭킹 2위인 여자 에페 단체팀의 준준결승전도 생중계되지 않아 팬들의 원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도 역시 지상파 3사는 모두 신유빈·임종훈 선수의 탁구 혼합복식 동메달 결정전을 중계했으며, 여자 에페 단체팀 경기는 지연 중계했다. 시청자들은 “모두 똑같은 종목만 중계할 거면 채널이 3개나 필요할까”, “세계 랭킹 1, 2위 선수들을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거냐“ 등 비판하고 있다.
지상파 3사의 인기 종목 위주의 중계 방송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시청률 때문이다. 시청률이 높으면 그만큼 광고 수익도 높아지기에 이 같은 편성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대회가 펼쳐질 때마다 방송사들이 스타 캐스터와 해설위원을 확보 하는데 주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는 시청자의 볼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태다.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봐도 똑같은 경기가 나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가 없는 시간대에는 이전에 중계했던 경기를 재방송으로 또 내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청자 입장에선 봤던 경기를 수 십 번 되풀이해 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앞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2024 파리올림픽 중계와 관련해 특정 종목 경기를 과도하게 중복으로 편성하지 말라고 권고한 바 있지만, 권고에 그칠 뿐 제대로된 조치라고 볼 수 없다. 이 같은 지상파 3사의 중계 행태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정부 기관이 나서서 실효성있는 제재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지상파 3사는 방송의 공적 역할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똑같은 중계 편성을 지속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것임은 물론 이날만을 위해 수년간 피땀흘린 선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