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에서 느낀 파리는 낭만(Romance)의 도시가 맞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서 기자가 느낀 열기와 다른 에너지가 경기장 곳곳을 가득 채웠습니다. 프랑스가 '종주국'을 자부하는 펜싱이 열린 그랑팔레에서는 프랑스 팬들의 함성 그리고 샹숑 '오 샹젤리제'가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프랑스 팀과 경기하며 위축되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뜨거운 열기에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비단 펜싱에 그치지 않더군요. 프랑스의 유도 영웅 테디 리네르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찾아와 수상을 축하했습니다. 리네르의 인기는 가히 마크롱 이상이었습니다. 금메달을 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금메달 세리머니를 패러디한 광고까지 찍었더군요. '원조 스타' 티에리 앙리 감독이 이끈 축구, 미국프로농구(NBA) 신인왕 빅터 웸반야마가 '슈퍼팀' 미국에 맞선 남자 농구 열기도 뜨거웠죠.
취재를 위해 오가다 보면 들떠 있는 프랑스 관중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삼색기 모자와 옷, 국기를 두르고 노래를 부르며 경기장으로 향합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함께하자며 '돌격'해 온 이도 있었습니다.
마냥 좋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파리 올림픽의 경기 운영은 대회 내내 허술했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아마추어'라고 말하는 게 맞겠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업무 숙지가 안 돼 있고, 이들을 관리해야 할 매니저들은 불필요한 통제에만 집중합니다. 검문 기준도 고무줄입니다. 음료수를 사 마실 때 '강매'했던 에코컵 환불도 매장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항저우 AG의 봉사자들은 열정 넘치는 중국 대학생들이었습니다. 이곳엔 '좋은 추억'을 쌓으러 온 고령의 봉사자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들에게 대회 운영은 그저 "그때그때 다른 것(ça dépend)"일 뿐이죠. 자원봉사자들이 길을 잘못 알려주고, 공식 입구를 막아서서 20~30분을 헛걸음하다 돌아온 적만 다섯 번이 넘습니다. 기자는 그랑팔레를 네 번 방문했는데요. 매번 출입구가 바뀌었습니다. 어제 갔던 곳이 오늘은 입구가 아니라고 하니 별 수 있나요? 무급 봉사자 탓을 할 수도 없고요.
한국 자원봉사자들이 그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펜싱 경기장에서 만난 임유빈, 김은수 씨는 직장 및 대학원 재학으로 프랑스에서 지내다 휴가를 내고 올림픽을 찾았습니다. 그랑팔레를 '지배한' 오상욱의 인터뷰 통역도 맡았죠. 유도 경기장에서 만난 이카렌씨는 20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가 도쿄 올림픽 자원봉사를 경험했고, 이번에는 파리까지 왔습니다. 복잡한 샹드마르스 경기장에 한국 기자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안내해 준 '구원자' 중 한 명입니다.
도심에 무장 경찰이 많았던 덕분일까요. 파리에서 악명 높은 소매치기는 당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곳이 안전한 건 아닙니다. 배드민턴 경기장이 위치했고, 본지가 숙소로 잡았던 생드니 지역은 치안 '무법지대'에 가깝습니다. 심야에 마약 거래를 목격한 한국 기자도 있었습니다. 그 많았던 경찰은 도통 보이질 않네요. 축제로 가득 찬 도심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이것 또한 파리이지 싶네요.
아, 마지막으로 하나 더. 비싸고 맛없는 비건 음식은 그만 먹고 싶습니다. 저는 고기가 들어간 5유로짜리 바게트샌드위치를 9유로짜리 비건햄 샌드위치보다 사랑합니다. 그게 '골족(Gauls, 기원전 5세기부터 정착한 원주민)'이 살았던 이곳, 파리의 맛이겠죠. 부디 다음 대회에서는 세계인의 축제다운 '미식'을 경기장에서 볼 수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