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초의 연예인 덕질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한 이상은이었다. 큰 키에 껑충껑충 춤을 추는 이상은에게 반해서 이상은 사진을 코팅해서 책받침으로 썼고 책상 주변을 이상은 브로마이드로 도배를 했다. 하지만 이상은 덕질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 해 겨울 나의 덕질은 이상은에서 뉴키즈 온 더 블록으로 갈아탔다. 보스턴 출신의 5인조 아이돌 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 그들의 2집 앨범 ‘행인 터프’는 사춘기 소년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나의 뉴키즈 사랑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우리 집에 있는 Z가 아이돌 덕질 하는 걸 보면 내 영향도 있는 것 같아 뭐라고 나무랄 수가 없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아이돌에 입문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덕질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나이라는 건 없지만 과연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건지 Z에게 물어봤다.
X재국 : 얼마 전에 있었던 아이브 콘서트가 이슈였다며?
Z연우 : 아이브는 지난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앙코르 콘서트를 열었는데요. 그곳에 온 어린 아이브 팬(다이브)들과 콘서트 스태프들이 이슈가 됐어요. 거의 유치원생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의 팬들이 아이브 콘서트에 가서 자신들이 직접 포장한 아이브 굿즈와 간식 선물을 좌석 주변에 있는 팬들에게 선물했고, 어린 아이들 답지 않게 콘서트 매너를 잘 지키며 콘서트를 즐기는 모습이 이슈가 됐어요. 그리고 콘서트가 끝난 후 “내 인생에서 보낸 최고의 방학이다!”라고 외친 아이들도 있었고,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가 아닌데도 “아이브가 진짜 잘 보여요!”라고 엄마에게 전화한 아이들도 있었다고 해요. 이런 어린 팬들의 순수한 모습을 본 성인 팬들이 어린 아이브 팬들을 “아기 다이브”라고 부르는 재밌는 ‘썰’들이 SNS에 많이 올라왔어요. 그리고 콘서트 스태프들도 아기 다이브들이 부모님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팬 매니저가 아기 다이브들이 더울까봐 얼음주머니를 빌려주는 모습도 훈훈했어요.
X재국 : 아이돌 팬덤이 왜 이렇게 어려진 걸까?
Z연우 : 저출산 문제 때문에 예전에 비해 아이돌을 좋아하는 어린 팬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고 요즘 나오는 아이돌들은 어린 팬들보다는 20~30대들이 더 좋아할 만한 콘셉트로 데뷔하고 있다는 말이 많은데요. 아이브는 어린 아이들도 좋아하고, 성인들도 좋아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아이돌인 것 같아요. 멤버들의 비주얼도 공주 같고, 무대 의상도 화려하고 예쁘고, 노래도 중독성 있고 듣기 좋고, 멤버들도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 때문인데요. 마치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예쁜 공주나 바비 인형을 동경했던 것처럼 어린 팬들도 아이브 멤버들을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포토카드 같은 굿즈 판매나 교환 같은 활동들도 어린 팬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요. 청소년 팬들만 해도 자기 용돈을 다 덕질에 투자할 수 없으니 그런 문화가 점점 사그라들고 있는데, 어린 팬들은 여전히 굿즈를 사거나 덕질 메이트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의 덕질 생활을 존중해주고 같이 즐겨주는 부모님들도 많아졌기 때문에 어린 팬들이 덕질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거고요.
X재국 : 그럼 엔터업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Z연우 :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팬들도 이렇게 격렬하게 좋아하고 덕질도 가능하거든요. 10대 20대 팬들 그리고 30~40대 팬들도 다 팬심을 갖고 있는데 너무 한 나이대 팬들만 겨냥하기보다 그냥 그 아티스트 팬덤의 나이대에 맞춰 배려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브 콘서트에 어린 팬들이 많으니까 콘서트를 함께 관람한 어른들도 많고 그 덕분에 엄마 아빠가 팬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동안 화면으로만 봤던 아이브가 실제로 내 앞에 나타나고, 나와 같은 공간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고, 실제로 보니까 더 화려하고 예쁜 무대 의상과 콘서트장에서 다 함께 들으니까 더 와닿는 노래, 하이라이트에 터지는 폭죽과 알록달록 컨페티들, 어쩌면 어린 팬들에게 처음 느껴보는 벅찬 감동을 선물했을 거예요. 그렇게 가수와 팬들이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는 게 콘서트 아닐까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현장에서 실물을 처음 보고, 다른 팬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따라부를 때 느끼는 그 희열! 어쩌면 그런 감정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어릴 때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디즈니 공주를 보며 환상을 가졌다면 요즘은 K팝 스타를 보며 환상을 갖는다”는 Z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필자소개=이재국 작가는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하고 ‘컬투의 베란다쇼’, ‘SNL코리아 시즌2’, 라디오 ‘김창열의 올드스쿨’ 등 다수의 프로그램과 ‘핑크퐁의 겨울나라’, ‘뽀로로 콘서트’ 등 공연에 참여했다. 2016 SBS 연예대상 방송작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는‘아빠왔다’, ‘못그린 그림’이 있다. 이연우 양은 이재국 작가의 딸로 다양한 재능을 가졌으며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 평범한 청소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