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 복이 없던 두산 베어스가 제러드 영(29)이라는 확실한 복덩이 덕에 마지막까지 순위 싸움을 유지 중이다.
두산은 지난 2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KBO리그 정규시즌 SSG 랜더스와 홈 경기를 8-4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SSG 추격을 따돌린 두산은 5위와 승차를 2경기로 벌리며 4위 지키기에 들어갔다.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기가 쉽지는 않았다. 두산은 이날 선발 라인업에서 양의지와 허경민을 제외했다. 모두 팀의 핵심 전력이지만 양의지는 주말 시리즈 도중 쇄골 염증이 생겨서, 허경민은 머리에 사구를 맞아 휴식 차원에서 출장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타선 기복으로 마운드 부담이 커졌던 두산엔 작지 않은 공백이다.
하지만 23일 경기에서 타선 공백이나 기복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4번 타자 김재환은 역전 투런포를, 5번 양석환은 승리를 결정짓는 대형 쐐기포를 쏘아올린 덕분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5회 무사 만루에서 역전 결승타를 친 3번 타자 제러드의 활약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5회 무사 만루 때 타석에 들어선 제러드는 지난해 SSG 수호신이었던 서진용의 결정구 포크볼을 공략, 1-2루 간을 가르는 적시타로 2타점을 수확했다. 이어 6회 말에도 1타점 적시타를 추가해 승기를 굳히는 일등공신이 됐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제러드는 "항상 말하지만, 모든 경기를 똑같이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루틴도 유지된다. 물론 오늘은 당연히 중요한 경기"라고 돌아봤다. 제러드는 결승타 상황에 대해서는 "2스트라이크 전까진 직구를 노렸다. 그러다 포크볼에 헛스윙했는데, 그렇기에 투수가 다시 포크볼을 무조건 던질 거로 생각해 포크볼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상대 노림수를 역이용한 셈이다.
제러드는 "중요한 때 나설 수 있기에 항상 경기 전 라커룸에서 '오늘은 너의 날이다, 오늘은 네가 중요한 타점을 올릴 것이다'라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제러드는 이날 활약으로 시즌 성적이 35경기 타율 0.343 9홈런 37타점 26득점까지 올랐다. 출루율(0.437)과 장타율(0.679)을 합친 OPS는 1.116에 달한다. 제러드는 "한국 투수들은 제구가 정말 좋고, 자신의 강점을 잘 살린다. 프로 의식도 강한 것 같다. 나도 내가 잘하는 부분을 살리려고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제러드의 활약은 외국인 투수 부상과 부진에 시달린 두산이기에 더 값지다. 두산은 지난해 10승 듀오로 활약한 라울 알칸타라, 브랜든 와델을 모두 재계약하고 올 시즌에 돌입했다. 그러나 두 투수 모두 시즌 초부터 부상에 시달렸고, 장기간 결장 뒤 알칸타라가 돌아왔으나 부진을 극복 못하고 결국 퇴출됐다. 브랜든은 돌아온 후 다시 부상을 입었다.
두산은 급하게 시라카와 케이쇼를 수급했으나 역시 부상으로 계약을 채우지 못했고 브랜든은 시즌 내 복귀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23일 경기 전 "브랜든은 오늘 15m 캐치볼을 소화했다. 복귀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만 답했다. 알칸타라 대신 영입한 조던 발라조빅은 22일 LG 트윈스전에서 7실점하고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헨리 라모스 대신 한국을 찾은 브랜든이 한 사람 이상 몫을 해주니 두산으로선 든든할 법 하다.
결정적인 승리로 가을야구, 4위 수성이 유력해진 두산이다. 남은 건 포스트시즌인데, 두산이 오래 가을야구를 즐기려면 제러드의 활약이 필수다. 한국에 온지 두 달이 된 제러드는 "계속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고 싶고, 오늘처럼 많은 경기를 승리하고 싶다. 두 달 동안 야구를 더 하고 싶다"고 웃었다. 물론 야구는 두 달이 되기 전에 끝난다. 하지만 제러드가 야구를 오래 하려면, 그가 가을야구에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