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KBO리그는 새 역사를 쓰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처음으로 정규시즌 1000만 관중을 돌파한 것이다. 경기장에 가지 않더라도 TV와 모바일로 야구를 즐기는 팬들은 그 몇 배다.
프로야구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올해는 스포츠를 뛰어넘어 한국 최고의 콘텐츠로 도약하고 있다.
1000만 명은 단지 관객이 아니다. 야구장에서 응원가를 만들어 부르는 가수이며, 함께 춤추는 댄서다. 그리고 기발한 응원 문구를 쉴 새 없이 생산하는 카피라이터다. 불같은 열정을 내뿜으면서도 매너는 쿨하다. 야구 종주국 미국과 야구가 국기(國技)로 여기는 일본에서도 깜짝 놀라는 응원 문화다. 일간스포츠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팬으로 불러도 좋을 이들을 만나 'K-볼'의 매력에 대해 들었다. <편집자 주>
최근엔 스케치북 응원이 인기 폭발이다. 경기장을 찾는 팬들은 스케치북에 개성 있는 응원 문구를 쓰며 선수와 팀을 응원한다. 경기 중 선수들이 보긴 어렵지만, 중계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된다.
지난해엔 고척 스카이돔 외야에서 '이정후, 여기로 (홈런) 공 날려줘'라는 스케치북 문구를 썼다가 진짜로 홈런공을 갖게 된 여성 팬이 있었다. 올해엔 '포기하지 마, 우리도 포기 안 했잖아'라고 쓴 한화 이글스 팬의 문구가 선수들의 투지를 불태운 일도 있었다.
스케치북 응원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집나간 거포도 돌아오게 하는 가을 전(병)우'라는 문구로 응원하던 커플 앞에서 삼성 전병우가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센스 있는 전병우 문구와 선수 이름을 활용한 삼행시 등 다양한 스케치북 문구를 준비해 온 권정현(36) 박지은(27) 부부는 "중계 카메라에 재치 있는 스케치북 문구가 잡히는 거 보고 우리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처음인데 (카메라에) 잡혔으면 좋겠고, 선수들에게도 좋은 기운이 전달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25년 넘게 삼성을 응원하고 있다는 권 씨는 "예전에는 없었던 응원 문화가 많아지면서 다채로워진 것 같다. 김상헌 응원단장님이 응원가나 응원 문화도 잘 만들어주신 거 같고, 스케치북 문화도 생기면서 응원은 물론, 선수들에게 메시지도 건네는 훈훈한 문화가 생기면서 더 재밌어졌다"라며 웃었다.
더 나아가 박 씨는 "이 응원문구를 선수들이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올 시즌 선수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다. 가을야구까지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포스트시즌에 임했으면 좋겠다"라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라팍 다른 한 켠에선 '오늘 생일인데 박병호 선수 400호 홈런 부탁해요'라는 문구를 적은 어린 팬도 있었다. 생일의 주인공인 박지후(12) 군은 부모님, 동생 박채은(9) 양과 함께 라팍을 찾아 삼성의 승리를 응원했다. 평소 구자욱을 좋아한다는 박 군은 박병호의 기록적인 홈런으로 팀이 승리하길 바랐다. 기운이 전달된 걸까, 박병호는 그의 눈앞에서 399호 홈런을 때려냈고, 삼성도 5-1로 롯데 자이언츠에 승리를 거뒀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해당 자리에는 생일을 맞이한 다른 어린이 팬이 있었는데, 그 역시 박병호의 400홈런을 바라는 응원 문구를 적어 놓고 응원했다. 그의 앞에서도 박병호가 홈런을 때려내며 뜻깊은 선물을 했다.
중계 화면에 잡히는 걸 추억으로 삼으려는 팬도 많아졌다. 사촌 누나 김수빈(18) 씨 및 가족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은 친구 사이 이동현(10) 유은준(10) 군은 각각 두산과 삼성팬이다.
이들은 '인생의 절반을 같이한 절친 두린이 vs 삼린이'라는 문구로 카메라에 잡히길 기대했다. 어린이집을 함께 다녔다는 이들은 "친구와 야구장에 와서 너무 좋다"라며 웃었다.
동현 군은 두산 김강률, 은준 군은 삼성 이재현 팬이란다. 김수빈 씨는 "동생들이 좋은 추억을 쌓고 돌아갔으면 한다"라며 흐뭇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