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 고졸 신인 마무리. 그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가을 데뷔전이었다. 하지만 그런 김택연(19·두산 베어스)의 이름 옆에는 승리도, 세이브도, 홀드도 없었다. 끝내 응답하지 않은 타선만 있을 뿐이었다.
김택연은 지난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KBO리그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WC) 결정 2차전 KT 위즈와 홈 경기 7회 초 0-1로 끌려가던 2사 1·2루 상황에 마운드에 등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프로가 아닌 인천고 학생이었던 그가 2만 3750석 잠실구장을 가득 채운 가을 무대에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겨우 19살이다. 혹시 가을 데뷔전에서 흔들리는 일은 없었을까. 정규시즌 데뷔전은 흔들리면서 아쉬움을 남겼던 그다.
그런 일은 없었다. 김택연은 경기가 가을에서조차 완벽한 투구로 자신이 왜 신인왕 1순위로 꼽히는지 증명했다. 그는 등판 때부터 두산의 정규 이닝 마지막 수비까지 2와 3분의 1이닝 38구 2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뒷문을 잠갔다.
마무리였던 김택연이 7회 나온 건 팀이 최고 위기 상황에 처했던 까닭이다. KT는 김강률을 상대로 주자를 모았고, 타자는 최고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였다. 올 시즌 타율 0.329 32홈런 112타점 108득점을 기록한 로하스는 1일 5위 결정전 때 역전 스리런 홈런을 때렸고 2일 WC 결정 1차전 때도 1회 안타로 KT가 이기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두산 불펜진 통틀어 로하스와 힘으로 붙을 수 있는 건 김택연이 유일했다.
초구 147㎞/h 직구로 시원하게 선제 스트라이크를 얻은 김택연은 1볼 1스트라이크 후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이끌었고, 팽팽한 풀카운트 승부 끝에 8구째 윽박지르는 150㎞/h 직구로 헛스윙 삼진을 끌어냈다. 불펜 에이스다운 모습이었다.
로하스를 막은 김택연은 8회도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선두 타자 장성우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 포스트시즌 데뷔를 2타자 연속 삼진으로 장식했다. 이날 결승타 주인공이기도 한 후속 타자 강백호에게만 중전 안타를 맞았을 뿐 오재일과 오윤석을 연속 범타 처리해 0-1 상황을 지켜냈다. 9회 역시 1안타만 맞고 무실점 투구. 2와 3분의 1이닝이나 던지고도 투구 수는 38구에 불과했다.
김택연은 이미 정규시즌 최고 마무리 중 한 명이었다. 프로 1년 차인 올해 잠시 첫 걸음을 버벅였으나 4월 재콜업된 이후 완벽한 투구로 필승조를 차지했고, 5월 곧바로 마무리에 투입됐다. 정규시즌 60경기 3승 2패 19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2.08로 고졸 신인 역대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썼다.
다만 19세 나이에 60경기나 등판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김택연을 따랐다. 그래도 김택연은 WC 결정 1차전을 하루 앞둔 날 "내 체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반기엔 정말 관리도 많이 받았다. 조금 많이 쉬고 던질 수 있어 힘도 충분했다"며 "나이답지 않게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맞더라도 배짱 있게 하겠다"고 했다. 이어 "어차피 첫 가을이고 경험을 쌓을 때라 완벽할 수는 없다. 후회 없이 던지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택연은 기대에 부응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두산은 이날 9회 말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 점도 내지 못하고 패했다. 전날 1차전 0-4 패배에 이은 2경기 연속 18이닝 연속 무득점 패배였다. 전날엔 윌리엄 쿠에바스에게, 이날엔 웨스 벤자민에게 손도 발도 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당했다.
타선은 김택연의 투구가 마무리된 이후인 9회에도 침묵했다. 역시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인 KT 박영현이 5위 결정전과 WC 결정 1차전에 이어 3연투 등판했다. 땅볼, 파울 플라이, 3구 삼진으로 경기를 끝냈다. 역대 최고의 19살 마무리가 보냈던 최고의, 하지만 빛은 날 수 없었던 가을 야구 데뷔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