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이강철 KT 위즈 감독님이 ‘가을야구’ 판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타이 브레이커(5위 결정전)부터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에 이르기까지 예측불허의 묘수를 꺼냅니다. ‘감’이 좋다는 말이 나옵니다.
지난 1일 열린 SSG 랜더스와의 타이 브레이커 스코어 1-3으로 뒤진 8회 말 대타를 쓰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SSG 간판 김광현 선수가 구원 투수로 나오자 이 감독은 오재일 선수를 타석에 세웁니다. 왼손 투수에 일반적으로 왼손 타자가 약하다는 통념을 깬 기용입니다. 이번 시즌 두 선수 상대 기록(4타수 1안타 3볼넷 1삼진)을 보면 대타 오재일 선수가 기존 라인업의 김민혁 선수(김광현 상대 5타수 1안타 1삼진)에 비해 크게 잘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오재일 선수의 안타로 만든 무사 1·3루에서 후속 타자 로하스 선수의 역전 3점 홈런이 터지고 경기는 KT의 4-3 승리로 끝납니다. 다음날이 없는 단판 승부, 8회까지 2안타로 눌린 상황,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작은 불씨 같은 찬스에서 그런 수를 쓴 것이 놀랍습니다.
다음날 이 감독의 말입니다. "김광현은 슬라이더가 있고 (대타 교체된 김민혁의) 상대 전적이 안 좋아서 오재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오재일은 제가 3년간 갖고 있는 데이터가 있다. 데이터와 감, 컨디션 그리고 장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감독이 말한 데이터는 무엇이었을까요. 투·타 상대 전적은 앞에서 살폈듯 큰 차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남은 건 ‘감’인데요. 성공했으니 마법처럼 칭송받지만, 요즘 널리 쓰이는 확률과 통계의 시대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측정 가능하고 분석적인 방법론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선택이라면 선호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식이라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감은 직관의 영역이기에 비과학적이고 단순히 구식 취급하는 데에 따른 반론도 있습니다. 심리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2002년)을 수상한 대니엘 카너먼은 『생각에 대한 생각』이란 책에서 "의사나 간호사, 운동선수, 소방관이 마주하는 상황이 복잡하지만 기본적으로 질서정연하다. 포커 챔피언처럼 다년간 숙련된 전문가의 경우 여러 경우의 수를 빠르게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야구 감독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감독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래된 지난 경기를 복기할 때 세밀한 장면과 상황까지 기억해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선택과 판단을 하는데 무엇이 영향을 줬는지 하나씩 꺼낼 때 보면 어떤 세밀한 장면이 영향을 줬고, 이것이 쌓여 감독의 머릿속에 데이터로 저장된 것이었습니다.
오재일 선수의 대타 기용을 이렇게 예를 들어 보면 어떨까요. 분석팀에서 준비한 기존 타자와 구원 투수의 상대 기록도 훑었지만 뭔가 아쉽습니다. 오히려 시즌 중 오 선수가 구원 투수 상대로 얻은 세 차례의 볼넷 상황을 떠올립니다. 시즌 때 안타는 하나지만 상대 투수가 매우 까다롭게 여기고 어렵게 대결하는 순간과 여러 장면이 순식간에 떠오르고, 이들 장면의 의미를 지금의 상황에 대입하면서 결정의 버튼을 누른 겁니다. 그러나 이를 우리가 제대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감’으로 불리고 ‘운’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직감이 제한된 경험이나 환경, 감각 등의 편향에 의해 왜곡돼 불완전하다고 봤지만, 그렇다고 카너먼 교수가 이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직관 판단을 깎아내린 것은 아니다. 직관은 적은 정보로도 빠르게 판단하게 해주고, 비교적 정확하기 때문에 적응적”이라고 말합니다. 오랜 시간 규칙적 환경에서 훈련된 직관은 능력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야구 감독의 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설명을 이후에라도 좀 더 자세하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넷플릭스의 인기 예능 ‘흑백요리사’에서 백종원 심사위원이 “이건 중국 어디서 맛본 무슨 요리인데…, 제 머릿속에 데이터로 들어 있어요”라고 하는 것처럼 야구 감독님들도 더 설명해 주시면 야구가 한층 재미있을 텐데요. 그래서 검증해 볼 수도 있고요.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 감독님들의 직관적 데이터를 넣는다면 야구의 깊이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올드 스쿨 감독님들을 위한 변호이면서 바람입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 지메일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