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서른 살이 넘어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돼 이른바 ‘늦게 핀 꽃’으로 주목받았던 주민규(34)와 이명재(31·이상 울산 HD)의 국가대표팀 내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울산을 이끌었던 홍명보 감독 체제 이후 이명재가 주전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한 가운데, 주민규가 설자리는 점점 줄어드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앞서 주민규와 이명재는 지난 3월 나란히 황선홍 임시 감독의 부름을 받고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주민규의 발탁은 역대 최고령(33세 333일) 대표팀 첫 발탁, 이명재 역시 역대 6위(30세 128일)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울산 서포터스는 당시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며 주민규와 이명재의 동반 대표팀 승선을 축하하는 걸개를 내걸어 화제가 됐고, 이는 이후에도 둘을 상징하는 문구가 됐다.
반짝 발탁을 넘어 이들은 6월 김도훈 임시 감독, 그리고 9월과 10월 홍명보 감독 체제에서도 꾸준히 부름을 받았다. 먼저 꾸준하게 기회를 받은 건 주민규였다. 3월과 6월, 9월, 10월 모두 각각 2연전의 첫 경기는 꼭 선발 기회를 받았다. 특히 지난 6월 싱가포르전에선 데뷔골 포함 1골·3도움의 맹활약을 펼쳤고, 지난달 오만 원정에선 교체로 투입돼 쐐기골도 넣었다.
다만 10월 요르단·이라크와 2연전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홍명보 감독은 요르단전 원톱 카드로 주민규를 내세웠지만, 51분만 소화한 뒤 후반 6분 교체됐다. 이어진 이라크전에서는 아예 벤치만을 지키다 경기를 끝냈다. 하필이면 2001년생 오현규(23·헹크)는 2경기 연속 조커로 투입돼 골을 터뜨렸다. 1m93㎝ 장신 공격수 오세훈(25·마치다 젤비아)은 주민규 대신 이라크전 선발 기회를 받아 역시 A매치 데뷔골을 쏘아 올렸다.
이번 소집엔 이례적으로 최전방 공격수 자원만 3명이 소집됐는데, 이 가운데 하필이면 주민규만 유일하게 침묵했다. 울산에서 골을 넣은 게 지난 7월이 마지막일 정도로 소속팀에서도 부진도 장기화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 그리고 각자의 스타일이 뚜렷한 두 젊은 공격수의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점에서 주민규가 대표팀에서 설자리 역시 점점 줄어드는 분위기다.
반면 이명재는 홍명보 감독 부임 이후 주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황선홍·김도훈 임시 감독 체제에선 김진수(전북 현대)에 밀려 단 1경기도 선발 기회를 받지 못했으나, 홍 감독이 부임한 뒤부터 붙박이 풀백 자원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팔레스타인전만 설영우(츠르베나 즈베즈다)가 선발 출전했을 뿐, 지난달 오만전부터 3경기 연속 레프트백으로 선발 출전 중이다.
특히 이라크전에서는 이재성(마인츠05)의 다이빙 헤더 결승골을 돕는 어시스트까지 더하면서 공격 포인트까지 쌓았다. 이번 10월 A매치 기간 깜짝 발탁됐던 박민규(콘사도레 삿포로)가 2경기 연속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사이, 홍 감독은 이명재를 주전으로 기용하면서 힘을 실어주기 시작한 모양새다. 대표팀에서 멀어진 김진수나 왼쪽도 소화가 가능한 설영우 정도를 제외하면 현시점엔 뚜렷한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 터라, 이명재의 주전 입지는 더욱 단단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