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중일 야구 대표팀 감독이 옆에 있던 고영표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대만전 선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비밀을 고수했던 류 감독이었다. 하지만 "대만전 선발로 나오면 어떻게 준비할 생각인지"라는 고영표를 향한 취재진의 질문에 감독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영표는 "내가 나서게 될지 모르겠지만, 잘 준비하겠다"라고 말했다.
야구 대표팀은 13일 대만과 프리미어 12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 일본에서 열리는 슈퍼라운드에 진출하려면 첫 경기 대만은 물론, 같은 조에 속해 있는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 일본, 호주를 상대로 호성적을 거둔 뒤, 2위에 올라야 한다. 첫 경기 분위기가 중요한 만큼 대만전 승리가 더더욱 중요하다.
대표팀 선발 원투펀치인 고영표와 곽빈 두 선수 중 한 명이 대만전 선발로 낙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사이드암 스로 투수가 던지는 체인지업에 대만 선수들이 약점이 있다는 점에서 고영표의 선발 등판이 유력해지는 상황이다.
고영표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고영표는 "과거에 대만 타자들이 사이드암 체인지업에 약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주무기가 체인지업인) 제 장점을 잘 살려서 잘 준비하겠다"라며 "중간 투수들의 공이 좋아서 내가 짧은 이닝을 소화하더라도 최소 실점으로 막아낼 생각으로 공을 던지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고영표는 지난 6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상무 야구단과 국내 마지막 평가전을 치렀다. 1회 연속 안타 3개와 적시타로 2실점했지만, 2회와 3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안정을 찾았다. 3이닝 동안 50개의 공을 던져 5피안타 무사사구 2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고영표는 "1회 안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선발로 경기에 나간 게 오랜만이다. 던지면서 좋아진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고영표는 지난 정규시즌 막판부터 포스트시즌까지 KT 위즈에서 중간 계투 필승조로 등판한 일이 잦았다. 쿠바와의 평가전에서도 계투로 출전했다. 선발로 나선 게 오랜만이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이후 약 2년 만에 출전하는 국제대회, 고영표에게도 호재가 있다. 바로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가 없다는 점이다. 올 시즌 고영표가 다소 고전한 이유도 주 무기 체인지업이 ABS에서 볼로 판정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이번 프리미어12에선 ABS 없이, 심판의 눈으로 존을 판정한다.
이제 막 ABS에 적응했는데 다시 이전 시대로 회귀해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쉽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고영표는 "결국 해왔던 대로 해야 할 것 같다"며 "국제 심판들이라 나라마다, 심판마다 존이 다를 것이다. (경기 중에) 빨리 변화를 캐치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대표팀 선수들은 7일 고척돔에서 짧은 훈련을 치른 뒤 8일 오전 결전지 대만으로 출국한다. 대만에서 평가전을 한 차례 진행한 뒤, 13일 대만전을 시작으로 대회 여정에 나선다. 고영표는 "국내에서 치른 마지막 평가전이 컨디션을 체크하는 데 도움이 됐다. 경기 전까지 준비 잘해서 몸을 더 끌어 올리겠다"라고 선전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