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방영 중인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주연배우 추영우가 연기하는 남자 주인공 캐릭터가 성소수자로 설정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종영한 tvN 토일 드라마 ‘정년이’에서도 여성 캐릭터 간의 묘한 관계성이 그려졌다. 퀴어 소재가 현대물뿐 아니라 사극, 시대극 등 더 다양한 장르에서 시도되고 있어 주목된다.
‘옥씨부인전’은 이름도, 신분도, 남편도 모든 것이 가짜였던 외지부(조선시대의 변호사) 옥태영(임지연)과 그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예인 천승휘(추영우)의 치열한 생존을 그린 사극이다. 추영우는 극 중 옥태영과 러브라인을 그리는 천승휘 역과, 그와 외모가 똑같은 현감 성규진(성동일)의 맏아들 성윤겸 역까지 1인 2역을 소화 중이다.
화제가 된 건 성윤겸 캐릭터로, 지난 15일 방송한 4회에서 그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 성윤겸은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 성향 때문에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무예를 가르치는 ‘애심단’을 이끄는 인물이다. 성윤겸은 노비였던 사실을 숨기고 양반의 삶을 살고 있는 옥태영과 서로의 비밀을 다른 사람들에게 감추기 위해 혼인한다. 4회에서는 성윤겸이 “나는 여인을 품을 수 없습니다”라고 자신의 비밀을 옥태영에게 고백하고 두 사람이 혼인하는 모습, 그러나 결국 성소수자란 사실을 아버지에게 들켜 집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미디어에서 퀴어를 다루는 것이 더 이상 생소한 일은 아니지만 현대극도 아닌 사극의 남자 주인공이 성소수자 설정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퀴어 소재는 그동안 TV 드라마보다는 영화나 OTT 플랫폼에서 공개되는 작품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사극 또는 시대극같이 폭넓은 시청층이 즐기는 장르에서 다뤄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극 드라마의 경우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슈룹’에서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계성대군 캐릭터가 나오기는 하지만 서사를 이끈 주역은 아니었다.
‘옥씨부인전’은 특히 성윤겸이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 아이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등 퀴어 소재가 단순히 극적 재미를 위한 장치로 쓰인 것이 아닌 점도 눈길을 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현시대의 화두가 사극을 통해 수용되고 있는 양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성소수자는 이제 음지가 아닌 양지로 꺼내져 이야기될 정도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달라진 관점이 투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짚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 역시 퀴어적 요소가 들어간 작품이다. ‘정년이’는 1950년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소리 천재 정년이(김태리)의 성장을 담은 드라마로,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드라마 ‘정년이’는 각색 과정에서 원작에서 퀴어 서사를 담당했던 주요 캐릭터가 삭제돼 원작팬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으나 퀴어 요소는 드라마 속에도 그대로 녹여졌다. 주인공 정년이와 홍주란(우다비), 문옥경(정은채)과 서혜랑(김윤혜)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우정인지 사랑인지 헷갈리는 묘한 관계성을 형성하며 이들의 관계가 드라마의 핵심 서사로 자리잡았다.
과거에 퀴어는 마이너한 소재로 여겨졌지만 갈수록 대중적인 소재가 되고 있는 흐름이다. 실제 이들 작품들의 성적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정년이’는 최고 시청률 16.5%를 기록했고, ‘옥씨부인전’은 4회 만에 8.5%를 기록하며 상승세다.
다만 ‘옥씨부인전’의 퀴어 소재는 극의 흐름상 다소 뜬금없이 등장한다는 반응도 있어, 향후 서사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평론가는 “사극에 퀴어 코드가 나오는 것이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향후 서사에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켜 성과를 내는냐에 따라 앞으로 하나의 소재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엿보인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