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의료대란으로 사그라든 의학 드라마 기세에 글로벌 OTT가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에 이어 디즈니플러스도 자체 한국 첫 의학 드라마 ‘하이퍼나이프’를 공개한다. 다만 두 드라마는 소재도, 관계성도 전혀 다른 결을 예고한다.
오는 19일 공개되는 새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퍼나이프’는 과거 촉망받는 천재 의사였던 세옥(박은빈)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덕희(설경구)와 재회하며 펼치는 치열한 대립을 그린 이야기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디즈니 콘텐츠 쇼케이스에서 2025 공개 한국 시리즈 기대작 중 하나로 예고됐다.
지난해 초부터 의료계와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대란이 지속되던 때였기에, 디즈니플러스의 이 같은 자신만만한 예고에 반신반의한 반응이 모였다. 전공의 파업으로 응급실 가기도 어려워진 현실로 인해 의학 드라마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탓이다. 실제로 tvN에서 공개될 예정이었던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은 1년간 편성이 표류하고 있다.
‘중증외상센터’ 스틸 (사진=넷플릭스 제공) ◇‘빛’ 넷플릭스와 ‘어둠’ 디즈니플러스, 양극단 선 의료 판타지
먼저 정면 돌파에 나선 건 넷플릭스다. 지난 설 연휴에 맞춰 공개된 ‘중증외상센터’는 침체된 의학 드라마 분위기를 환기했다. 공개 2주 차 넷플릭스 글로벌 TV쇼(비영어) 1위에 등극했으며, 등장인물들이 동분서주하며 오직 사명감으로 환자를 구하는 활극이라는 점이 시청자에게 호평받았다. 현실에 필요한 참된 의사를 그린 ‘희망편’이라는 반응도 따랐다. 출연 배우도 화제성을 압도하며 의학 드라마 부흥에 대한 콘텐츠 업계의 기대감을 높였다.
배턴을 이어받는 디즈니플러스 ‘하이퍼나이프’는 메디컬 스릴러를 표방한다. ‘중증외상센터’의 휴머니즘과는 대척점에 선 셈이다. ‘천재’ 주인공을 내세워 의료 현장에 있을 법한 사연을 픽션으로 풀어낸다는 의학 드라마 스타일은 유지하되 ‘하이퍼나이프’는 공감 유발보단 어두운 색채로 스릴러 장르적 오락성에 무게를 둔다.
주인공인 신경외과 의사 세옥은 의사면허를 박탈당한 후 ‘섀도우 닥터’로 살고 있는 인물이다. 밤마다 불법 수술 현장을 다니는 점과 예고편에도 담겼듯 예사롭지 않은 살기로 누군가를 해치며 미소 짓는 세옥의 모습에선 최근 수년간 의료 현실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던 극단적 사례들도 연상시킨다.
‘하이퍼나이프’ 스틸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주지훈-추영우 잇는 사제 케미? 설경구vs박은빈, 애증 대결
‘하이퍼나이프’ 또한 ‘중증외상센터’처럼 사제 지간 관계성이 돋보인다. ‘중증외상센터’에서 외과 의사 주지훈(백강혁 역)과 펠로우 추영우(양재원 역)가 투닥거리는 케미로 성장 서사를 빚었다면 ‘하이퍼나이프’의 스승 설경구와 제자 박은빈은 동족혐오 같은 애증이 중심에 있다.
극중 뇌와 사랑에 빠져 학계의 정점을 추구하는 세옥은 국내 신경외과계 최고 권위자 덕희를 유일한 스승으로 존경하고 따른다. 덕희는 세옥의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충동성을 경계하면서도 실력을 인정하고 천재들끼리만의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세옥을 내친다. 그로부터 6년 후 자신의 뇌수술을 부탁하기 위해 덕희가 다시 세옥을 찾아가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인 만큼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에게 반응하며 나아갈 지가 관건이다.
앞서 열린 디즈니 쇼케이스에서 김정현 감독은 “인물 간 갈등, 대립에서 어떤 메시지보단 낯설고 새로운 모습 그 자체를 봐주길 바랐다”고 밝혔다. 설경구 또한 “기존 메디컬 드라마와 확연히 다른, 묘한 사제지간의 이야기”라고 귀띔했다. 여기에 세옥이 과거 목숨을 구해 동행 중인 영주(윤찬영)나 불법 수술팀 마취과 전문의 한현호(박병은)와 만들 어둠의 팀워크도 볼거리다.
‘하이퍼나이프’ 스틸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의료대란 사정권 벗어나 완성도로 평가
‘하이퍼나이프’가 OTT 의학 드라마 호성적 릴레이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제 의료대란 여파로 인해 의학 드라마 몰입이 어려워지는 상황은 시기적으로 조금 벗어난 것 같다”며 “최근 의학 드라마들은 활극이나 스릴러처럼 장르적인 면들을 강조하고 있어 작품 외적 문제보단 완성도에 따라 온전히 평가받을 것”이라고 짚었다.
여전히 현실에 기반한 설득력은 중요하다는 시선도 있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스릴러 요소로 몰입을 높이려면 핍진성이 중요하다. 즉 현실성 있는 상황 세팅이 필요한데 불법 수술은 우리나라에서도 문제였기에 초반 호기심을 끌 만한 소재”라면서도 “‘하이퍼나이프’는 선한 의사들이 고생한다는 서사가 아니라는 점이 차별화가 될 만하고, 한국 의료 시스템이나 문화적 코드를 몰라도 인물들의 대결 구도가 중심이라 글로벌 시청자도 따라가기 쉬울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