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부산고 하현승. 목동=김영서 기자 zerostop@edaily.co.kr
제18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일본전 7이닝 8탈삼진 무실점 완벽투. 모두가 하현승(부산고)의 역투에 놀라고 환호한 가운데, 하현승의 사설 트레이닝 센터 좋아짐의 제광성 대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현승이도 사람이구나." 다른 사람과는 분명 다른 반응이었다. 제광성 트레이너는 "국제대회에서 짧은 기간에 많이 던져서 지친 게 눈에 보였다. 구속도 떨어졌더라"며 "현승이가 귀국하자마자 트레이닝 센터를 찾았는데, 진정한 프로 선수가 되려면 트레이닝부터 컨디셔닝 관리까지 철저히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라"고 기특해 했다.
U-18 야구대표팀 하현승 귀국 인터뷰. 연합뉴스
"고등학생 아니냐" 놀랐던 첫 만남, 중학교부터 짠 '팔 아끼기' 플랜
2010년대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 등 프로 무대에서 선수들의 몸을 책임졌던 제광성 트레이너와 하현승의 인연은 약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겨울, 초등학교 6학년 시즌을 마치고 중학교 진학을 앞둔 하현승이 박의진(현 강릉고)과 함께 센터 문을 두드렸을 때부터다. 당시 또래에 비해 압도적인 체격을 지녔던 둘을 보며 제 트레이너는 "너희 6학년 맞냐, 고등학생 아니냐"며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고.
하지만 하현승이 남달랐던 진짜 이유는 하드웨어가 아닌 '성숙한 마인드'였다. 하현승은 중학교 1학년부터 몸 관리에 큰 관심을 보였다. 제 트레이너가 "관절은 소모품이라 어깨를 아껴야 한다"고 조언하자, 이후 하현승은 감독이 마운드에 올리지 않는 한 불필요한 투구나 사설 피칭 레슨을 일절 피했다. 부모님과도 뜻을 모아 철저히 팔을 아꼈다.
하현승은 몸에 미세한 통증이나 이상 징후만 느껴져도 곧바로 제 트레이너를 찾아 "지금 상태로 공을 계속 던져도 되냐"고 확인받았다. 제 트레이너는 "선수들에게 항상 빨간불이 켜지기 전, 노란불일 때 미리 이야기하라고 강조하는데 중학생 시절부터 이를 철저히 지킨 선수는 현승이가 유일했다"고 회상했다. 피지컬이 워낙 압도적이라 가볍게 완급 조절만 해도 상대 타자들이 공을 건드리지 못했기에, 오히려 페이스를 늦추고 미래를 길게 볼 수 있는 여유와 확신도 있었다.
부산고 하현승이 서울고 김지우 상대로 공을 던지는 모습. 목동=김영서 기자 zerostop@edaily.co.kr
철저한 아낌과 관리는 고교 진학 후 폭발적인 잠재력으로 돌아왔다. 정식 피칭 레슨을 받기 전인 고1 때 이미 140㎞/h 후반의 공을 던진 하현승은 본격적으로 공을 던진 고2 때는 150㎞/h를 가볍게 넘나들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트들이 줄을 섰고, 프로 구단들이 트랙맨을 들고 찾아와 투구를 측정할 정도로 특급 유망주 반열에 올랐다.
김원중급 유연성도 지쳤던 국제대회, '이도류' 대신 '투수 전념' 현실적 고민
고교 무대에서 투타 겸업으로 맹활약하며 '한국판 오타니'로 기대를 모은 하현승은 최근 열린 국제대회를 치르며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현실적인 벽과 체력적 한계를 직접 경험한 하현승은 투타 겸업 대신 투수 집중에 조금 더 무게를 싣고 있다. 그는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후 귀국 인터뷰에서 "투수의 (성공)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투수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치열한 프로 무대에선 하나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산고 하현승, 이제 프로 간다…"160㎞ 직구에 싱커까지 장착하고파" [IS 인터뷰]
제광성 트레이너는 "현승이는 김원중(롯데 자이언츠) 못지않은 엄청난 관절 가동성과 유연성을 갖춘 선수"라면서도 "하지만 국제대회 연투를 치르면서 견갑골이 뜨고 팔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며 대만과 일본 현지에서 밤마다 걱정 섞인 전화를 걸어왔다"고 털어놨다. 평소 100점이던 팔 상태가 90점 이하로 떨어지는 피로도를 체감한 하현승은 조금씩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제 트레이너는 "프로에서 선발 투수로 한 시즌 30경기를 소화하려면 4일 휴식 로테이션 동안 회복과 보강에 온 힘을 쏟아도 모자라다. 현승이 본인도 투타를 병행하면 몸 관리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는 걸 절감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 역시 구단의 특급 대우와 철저한 관리 속에서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현승이가 보면서, 2~3년 반짝 활약하는 것이 아닌 40세까지 롱런하는 대투수가 되기 위해선 투수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투타 겸업을 했던 오타니는 7월 4일(한국시간)을 마지막으로 마운드를 떠난 상태다.
부산고 하현승이 제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타격하고 있다. 목동=김영서 기자
"친구 은퇴를 말려주세요" 리더십과 끈끈한 동료애
제 트레이너가 전한 하현승은 체격뿐 아니라 멘털도 단단한 선수였다. 특히 끈끈한 동료애가 남달랐다는 후문이다.
고2 무렵, 동기 중 한 명이 야구를 포기하려 하자, 하현승은 제 트레이너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내서 이 친구가 서울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포기하지 않게 잡아달라"며 제 트레이너와 함께 '삼자대면'을 자청한 것이다. 하현승의 진심 어린 설득에 마음을 다잡은 동기는 끝까지 남아 맹활약했고, 현재 서울권 대학 입학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제 트레이너는 "자신이 잘났다고 목에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이 한번 이겨보자'며 동료를 끝까지 끌고 가는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다. 정말 팀에 꼭 필요한 에이스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8년 만에 정상을 탈환한 우리나라 18세 이하(U-18) 야구대표팀의 하현승 등 선수들이 14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체 1순위 유력한 하현승, "10월부터 다시 몸 만든다"
21일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이 유력한 하현승은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보강 운동에 돌입한다. 어색한 프로 생활 적응을 위해 주변에서 유일하게 프로팀을 경험한 제 트레이너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본다고.
국제대회 일정을 모두 마친 하현승은 잠시 투구 훈련을 멈추고, 10월부터 센터에서 본격적인 비시즌 보강 운동에 돌입해 내년 프로 데뷔를 준비할 예정이다.
제 트레이너는 하현승에게 건네는 마지막 메시지로 초심을 강조했다.
"일본전을 치르고 와서 지친 현승이에게 '너 진짜 못하더라, 별거 아니네'라고 장난쳤어요. 프로에서 20년 넘게 뛰려면 몸 관리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줬습니다(웃음). 현승이가 지금껏 지켜온 성실함과 진중한 마인드만 잃지 않는다면, 프로에 가서도 본인이 꿈꾸는 멋진 야구를 꾸준히 잘 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