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출신 최고의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가 20년간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지난 17일 앙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공식 은퇴 소식을 전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던 그의 선수 시절을 되돌아 봤다.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마르코 반 바스텐을 존경하던 이 작은 아이. 이 소년은 10년 후 향후 20년 간 세계 축구의 큰 족적을 남긴 ‘킹’ 티에리 앙리로 거듭난다.
그간 '킹' 앙리가 걸어온 발자취를 클럽 커리어와 함께 되돌아봤다.
앙리는 프랑스 파리 인근의 가난한 동네 ‘르 울리스’ 에서 태어났다. 르 울리스, US팔레조, 비티-샤티용, 클레르퐁텐 축구학교 등 여러 소규모 유스 클럽을 거치며, 탁월한 골 감각을 뽐냈다.
‘될성부른 떡잎’ 앙리의 모나코 시절 (1992년~1999년)
이 작은 소년을 눈여겨본 프랑스 명문 AS모나코는 1992년 앙리를 유소년팀으로 데려온다. 2년여간 유소년 팀에서 몸을 담던 앙리는 94/95시즌 정식 프로계약을 통해 AS모나코에서 첫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윙어였던 앙리는 모나코B팀에서 17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이를 눈여겨본 ‘아르센 벵거’ 1군 감독은 앙리를 1군으로 불러들였다. 벵거와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군팀에 합류한 앙리는 빠른 발과 탁월한 골 감각을 바탕으로 윙어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짝’ 트레제게와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프랑스 리그를 초토화 시켰고 AS모나코의 96/97 리그앙과 프랑스 슈퍼컵 우승을 안겼다. 물론 ‘올해의 영플레이어 상’ 역시 앙리 몫이였다.
이후 앙리는 모나코에서 5년간 141경기에 출전해 28골 37도움을 기록했다.
이쯤 되면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앙리 자리 하나 정도는 있어 마땅했고, 에메 자케 당시 프랑스 국가대표팀 감독이 1996년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했다. 앙리는 국가대표 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98년 자국에서 열리는 ‘제20회 프랑스 월드컵’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3골 1도움을 기록해 프랑스의 우승을 이끌며 슈퍼스타로 거듭났다. (#대표팀 커리어 따로 언급)
“내가 ‘윙 포워드’라고?” 녹록치만은 않던 앙리의 이탈리아 생활 (1999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가장 ‘핫’한 선수로 탄생한 앙리. 여러 유럽의 명문 클럽들은 앙리의 영입을 원했고, 당시 암흑기였던 세리에A의 명문구단 유벤투스가 15m의 이적료로 앙리와 계약하는데 성공했다.
1999년 당시 유벤투스의 감독이였던 안첼로티 감독(현 레알 마드리드)는 앙리를 윙어가 아닌 윙포워드로 활용했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한 앙리는 팀에 녹아들지 못하며 20경기에 출전해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생각만큼 활약을 보이지 못하자 극성맞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팬들은 앙리를 향해 ‘먹튀’라며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고, 앙리 역시 이탈리아 생활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안첼로티 감독이 훗날 회상하길 “당시 앙리를 윙포워드로 기용했던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