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날 솔비를 한강에서 만났다. 한강하면 떠오르는 정식 코스, 치킨과 라면, 캔맥주 조합을 생각했지만 솔비는 화이트 와인과 족발을 들고 나타났다. '예능 대세'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다. 한강에서 버스킹을 하겠다며 기타를 꺼냈는데, 통기타가 아닌 일렉기타였다. 솔비의 '상식 파괴'는 웃음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솔비는 지난해 10월 MBC '무한도전-어벤저스 특집(이하 '무도')'에서 예능감을 뽐낸 뒤, 8월 '라디오스타(이하 '라스')'에서 '로마공주'라는 별명을 얻으며 'SNS 스타'로 거듭났다. 연예인이 팔로우를 요청하는 소탈함은 대중들의 호감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이 기세를 몰아 지난달 '진짜사나이-해군 특집(이하 '진사')'에 출연해 '입덧 러너'라는 또 하나의 수식어를 얻었다. 지난 5일엔 tvN 'SNL 코리아' 호스트로 출연, 솔비만의 매력을 발산했다. 또 대세만 한다는 통신사 광고까지 찍었다.
솔비는 지난 3년간 슬럼프를 겪었다. 각종 루머와 우울증, 대인기피증과 사투를 벌였다. 어둡고 힘들었던 시간을 미술로 치유했다. 미술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표현했다.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깊어지고, 해가 뉘엿뉘엿 한강 뒤로 저물수록 솔비가 아닌 권지안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권지안은 누구보다 진지했고, 힘든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솔비가 겪어온 풍파들이 솔비가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된 것.
"힘든 사람 곁에 아무도 없다면 누가 그 사람을 지켜주나요"
솔비는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와인 한 병을 금새 비웠다. 좋아하는 주종인 소주가 아니라 아쉬웠던지 "2차 가아죠" 외치며 예능인 솔비로 다시 돌아왔다.
인터뷰가 끝나고 돗자리를 걷고 있는데 대뜸 솔비가 한 말에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저를 '로마공주'라고 말해준 점쟁이가 연말에 상을 받는다고 예언했는데, 그 말이 맞으면 점쟁이 번호를 드릴게요."
- '로마공주'가 '진사'에서 이슈였죠. "'라디오스타'에서 먼저 이야기 했던건데, 캐릭터가 이어졌어요. 같은 MBC라서 그런가.(웃음)"
- '로마공주'라는 별명은 마음에 드나요. "'로마공주'라는 캐릭터를 잘못보면 비호감으로 비춰질 수 있는데 시청자들이 호감으로 받아주시더라고요. '라스'에서 잘 살려준 것 같아요.
- '라스'에서 많은 걸 얻었죠. "솔직히 음반 홍보하러 나갔는데 음반 홍보보다 더 큰 걸 얻었죠. 팔로우가 늘었잖아요. 사람들이 숨어있던 저의 매력을 알아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웃음)"
- 팔로우가 얼마나 늘었나요. "지금 81만명을 돌파했어요. '라스' 재방송이 나올 때마다 100명씩 늘어요.(웃음)"
- 팔로우 해달라고 직접 말해서 화제가 됐죠. "연예인이라 관심이 필요해요. 팔로우가 필요한 상황인데 아니라고 얘기하는 게 이해가 안 가요. 남들 눈에 허세로 보일 수 있지만, 진심이에요. 쓸데없이 시크하고 싶지 않아요. 필요할 땐 필요하다고 얘기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해요."
- 방송에서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무도'에 출연했어요. "녹화 하루 전에 갑자기 연락이왔어요. 연락 오기 전 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지인들끼리 생일 선물로 '무도'를 받았다고 얘기를 할 정도였죠. 예능을 아예 안 하고 있을 때니까 '아무것도 안하고 '무도'만 하면 괜찮아'라고 장난으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대표님도 '무도' 전화를 받고 '장난 전화 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했죠."
- '바보 어벤저스'인 걸 알고 있었나요. "비비스라는 밴드로 활동 했을 때라 가요제나 음악에 관련된 걸로 섭외가 들어온 줄 알았어요. 근데 저만의 착각이었죠. 대표님이 처음에 '무도'에서 문제를 내고 맞추는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바보'라는 말을 차마 하기 힘들었나봐요.(웃음) 많은 방송을 거절하면서 참았는데, 다시 예전의 솔비로 비춰질까봐 많이 망설였어요. 하지만 '무도'가 저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줬죠."
- 그때부터 반응이 좋아졌어요. "마지막 문제인 한자어가 아닌 문제를 찍어서 맞춰서 이슈가 됐어요. '수박'이 한자어가 아니란걸 어떻게 알아요. 구라 오빠는 '포도'라고 답했잖아요. 예상 질문지도 없었거든요. 얼떨떨했어요. 운을 타고났나봐요.(웃음)"
- 그동안 운이 좋았나요. "노력한 거에 비해 꿈꾸던 걸 쉽게 이뤘고, 하고자 하는 게 매끄럽게 진행이 됐어요. 루머와 안 좋은 일들이 겹치면서 한 3년동안 시련을 겪었어요. 그때 운으로 받은 건 '내 것이 아니다'라는 걸 느꼈어요. 쉽게 받은 것에 대한 댓가가 분명히 있고,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내가 떳떳하려면 운과 관계 없이 많은 노력을 해야해요."
- 최근에 실종 아동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에요. "미술하고 나서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어느 순간 '실종아동 찾기 현수막'이 보였어요. '도대체 누가 이런 현수막을 걸까' '사람들은 저 현수막에 대해 인식을 갖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궁금해졌어요. 실종 아동을 제 작품과 연결하고 싶었어요. 지금 시대는 현수막보다 SNS가 빠르잖아요. 그냥 '실종 아동을 찾습니다' 보다 아트를 이용해서 SNS에 공유를 하면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었죠."
- 힘든 사람들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힘든 사람이랑 어울리지마. 너도 힘들어져'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근데 한동안 힘들어보니까 힘든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면 그 사람 곁에는 아무도 없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힘든 사람 옆에 있어보자고 결심했죠. 누가 잘 나고 못 나서 불공평한 게 아니잖아요.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 나눈게 맞다고 생각해요."
- 근데 음원 성적이 좋지 못했어요. "아쉽긴 하지만 취지를 많이 알리는데 중점을 둬서 의미가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상업적인 것보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어요. 이번 '파인드(FIND)'앨범 만큼 뿌듯한 앨범은 없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