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존재감'이라는 단어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딱 정만식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씨익 웃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리는 배우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당시 곽도원 뒤에 앉아 부채질만 했던 그의 손짓은 여러 번 언급되는 것을 넘어 궁금증까지 자아냈다.
영화 '아수라'(김성수 감독)는 전작 '대호'(박훈정 감독)에 이어 정만식의 아픈 손가락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늘이 점지해 준다는 흥행을 예측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연히 잘 되겠지'라는 생각보다 눈물날 만큼 행복했던 촬영 현장에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팀워크를 자랑했기에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결과는 아쉽지만 자랑스러움은 여전하다.
황정민의 '고맙다, 잘했다' 한 마디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여린 감성의 소유자다. "우성이 형"이라는 호칭은 여전히 듣기 어색하지만 본인은 너무 자연스럽다며 "우성이 형이", "우성이 형은"이라며 끊임없이 정우성을 외쳤다. 정우성의 절친 이정재도 당황했을 정도라니 정만식 만의 강렬한 포스는 명불허전이다.
※인터뷰 ①에서 이어집니다.
- 시사회 전날에도 배우들과 모여 사나이픽처스 사무실에서 술을 마셨다고.
"밤에 갑자기 만나게 됐다. 대표님이 '난 오늘 여기서 자아할 것 같다'고 하니까 그럼 잠깐 보자면서 하나 둘 모여 한 잔 했다. 다들 이상할 정도로 엄청 떨려하긴 했다. 시사회 당일에도 대기실에 모여 있는데 우성이 형은 아예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계속 서서 왔다갔다 거렸다. '아 왜 이렇게 떨리지? 긴장되지?' 하길래 '형이?'라고 물었더니 '장난 아니야. 미쳐버리겠다'고 했다. 결국엔 '관객들이 때리면 맞고 너무 때리면 우리도 때리자!'로 결론 내렸다."
- 개봉 후 무대인사를 돌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우성이 형을 비롯해서 다들 '500만 명 넘으면 울거야. 관객들 한 명씩 다 잡고 울거야'라고 했다. 누군가는 '난 무릎 꿇을게'라고도 했다. 또 '지훈이 얘는 우리 옷 다 벗길껄?'이라는 말도 나왔다. 쫑파티 때 기분이 너무 좋아서 다들 옷 벗고 춤추면서 놀았다. 그걸 또 시키지 않을까 한 것이다."
- 뭔가 자포자기한 느낌도 든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모두가 예상했다. 편집본에 완결본을 보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호불호는 당연히 갈릴 줄 알았다. 다만 어느 쪽으로 맞아 떨어지느냐가 중요했다. 우리끼리는 너무 좋아했으니까."
- 배우가 많아 편집된 장면도 상당할 것 같다.
"난 대부분 다 살았다. 할 수 없이 통으로 끄집어 낸 장면은 있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감독님께서 '미안하다'고 하시길래 그런 말씀 하지 말라고 했다. 이번 작품은 공동체 작업이라는 생각이 커서 그런지 후회도 없고 아쉬움도 없다. 재발견은 아니고 나도 지훈이처럼 발견이 아닐까 싶다."
- 극중 도창학만 한도경에게 여성을 지칭하는 듯한 욕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잖아도 거기에 대해 어떤 네티즌이 '도창학은 남자를 좋아하는 캐릭터냐'는 댓글을 달았더라. 미치는 줄 알았다. 내가 거기에 답글을 달 뻔 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인데 많은 생각을 들게 하더라.(웃음)
욕에 '놈'도 붙고 '새끼'도 붙을 수 있는데 이 둘보다 어감을 따져 봤을 때 어떤 욕이 더 저속하게 느껴지나. 딱 들어도 영화에서 쓰인 욕 아닌가. 그 만큼 도창학은 한도경을 하찮고 저급하게 생각한 것이다. 욕의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왠지 하기에도 듣기에도 상스럽고 거북하게 느껴진다. 영화니까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쓴거지 입에 잘 안 붙더라. 하하."
- 거짓말치고 바락바락 대드려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겠다.
"수사관도 수준이 있어야 착출될 수 있다. 친구 중에 광수대까지 가면서 엄청 잘나간 애가 있는데 라인도 잘 타서 지금 중앙지검에 있다. 그 친구도 그렇고 주변 형사 친구들을 보면 어느 정도 이상의 능력이 있어야 하더라. 도창학이 그 수준의 능력자다. 그런 사람 앞에서 입만 열면 거짓말을 치니까 얼마나 같잖게 보이겠나. 하찮게 보면서 굳이 말을 섞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 하지만 '개연성 없다, 맥락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도 그 댓글을 봤다. 하나 하나 친절하게 설명하면 장르 영화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마지막에 친절하게 한 마디 해주지 않나.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사실 이 말도 넣을까 말까 거수로 투표까지 진행해 결정했다. 머리 맞대고 고민하다가 넣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아수라'는 초반부터 쭉쭉쭉 강하게 치고 나간다.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하기 때문에 폭력의 시작을 알 필요가 없다. 안다고 해서 바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싸움을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지'가 전부다. 그렇게 친절할거였으면 15세로 만들지 않았을까."
- 댓글은 자주 보는 편인가.
"난 가끔 본다. 우리 배우들 중에서는 우성이 형이 제일 많이 본다. 무대인사를 도는 내내 아침부터 다 챙겨보더라.(웃음) 작은 누나가 남겨준 댓글이 있는데 '4~50대로서 먹먹하다'는 내용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 '내 남편, 내 동생이 사는 세상이, 혹은 내 아버지가 살았던 세상이 정말 저렇단 말이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가격했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짓밟히지 않았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우리는 사실을 조금 더 극화시킨 것 뿐이다."
- 부모님도 '아수라'를 보셨나.
"수원에서 보셨다. 수원 무대인사를 도는데 그 자리에 계셨다. 감독님께서 '세계적인 배우 정만식 씨 어머님께서 여기 계신다. 훌륭한 배우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해주셨다. 무대인사가 끝나고 감독님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감독님은 '아니야. 왜 감사해요. 진심이야. 어머니께서 작은 체구로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 하시더라. 내 감동이야 굳이 말 할 필요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