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존재감'이라는 단어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딱 정만식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씨익 웃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리는 배우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당시 곽도원 뒤에 앉아 부채질만 했던 그의 손짓은 여러 번 언급되는 것을 넘어 궁금증까지 자아냈다.
영화 '아수라'(김성수 감독)는 전작 '대호'(박훈정 감독)에 이어 정만식의 아픈 손가락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늘이 점지해 준다는 흥행을 예측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연히 잘 되겠지'라는 생각보다 눈물날 만큼 행복했던 촬영 현장에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팀워크를 자랑했기에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결과는 아쉽지만 자랑스러움은 여전하다.
황정민의 '고맙다, 잘했다' 한 마디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여린 감성의 소유자다. "우성이 형"이라는 호칭은 여전히 듣기 어색하지만 본인은 너무 자연스럽다며 "우성이 형이", "우성이 형은"이라며 끊임없이 정우성을 외쳤다. 정우성의 절친 이정재도 당황했을 정도라니 정만식 만의 강렬한 포스는 명불허전이다.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 '아수라'에서는 무려 막내라인이었다.
"내가 (주)지훈이과 케미가 은근 좋다. 톰과 제리 같다고 해야 할까? 지훈이가 나를 갖고 논다. 근데 난 놀려도 특별한 멘트나 리액션 없이 '하…'이러고 만다. 형들 눈에는 그게 재미있어 보이는 것 같다.
야외 포차신을 찍은 후에 그 자리에서 맥주를 한 잔씩 또 마셨다. 그 때도 분위기가 비슷했다. 한재덕 대표님이 지훈이에게 '지훈아. 재미는 있는데 너 한 번 맞을 것 같다. 만식이가 성격이 착해서 그러는거지 조만간 맞겠어'라고 하시더라.(웃음)"
- 주지훈은 선을 지킨다고 자신하던데.
"솔직히 마냥 귀엽다. 그리고 착하다. 애정에서 비롯된 장난이라는 것을 아니까 다들 예뻐한다. 계산없이 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출한다. 말도 잘하고 생각도 깊다. 대표님이 저런 말을 해도 '에이. 형이 저 때리면 죽어요. 살 수가 없죠. 근데 형은 저 못 때려요. 형이니까'라면서 신나한다."
- 깐족대마왕 같다.
"촬영 끝날때 쯤 내가 '우리 무대인사 해요? 부산도 가겠네요?'라고 물었다. 마지막 무대인사가 부산이라고 하길래 '그럼 부산에 지훈이 파묻어도 돼요?'라고 했다. 다들 엄청 웃더라. 우성이 형은 '만식아 땅을 파. 땅을 파서 못 움직이게 묻어. 내가 파줄게'라고 했다.(웃음)
나쁘게 말하면 깐족인데 지훈이 만의 존재감이 있다. 지훈이가 없으면 다들 지훈이부터 찾는다. 지훈이가 있으면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는데 없으면 '지훈이는? 지훈이 안와?'라고 꼭 묻는다. 술도 잘 안 넘어간다. '에이, 지훈이 없으니까 술 맛도 안 난다'고 한다. 지훈이가 요즘 '신과함께' 촬영 때문에 엄청 바쁜데 피곤해도 술자리에 꼭 참석하려고 한다. 기특한 친구다."
- '우성이 형'이라는 호칭은 여전히 어색하다.
"지금은 친해져서 편하게 대하지만 따지고 보면 90년대 원로배우 아니냐. 경력도 20 몇 년이나 된다. 그렇게 오래 영화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까마득한 선배다. 그런 분과 함께 작업을 했으니 감동이지."
- 처음 '형'이라 불렀을 때 반응은 어땠나.
"제작사 사무실에서 만났는데 엄청 반가워 했다. 그리고 이미 내 나이를 듣고 검색을 해 봤다고 하더라. '74년생이라고 들었어요. 혹시 몰라 찾아 봤는데 진짜 사실인가요?'라고 한 번 되묻긴 했다. 그래서 '네. 형이세요'라고 답했다.
정재 형도 인사를 시켜줬는데 '정재 씨, 얘가 우리보다 한 살 아래야'라면서 즐거워 했다. 정재 형은 '알긴 아는데 너무 함부로 하는거 아니야?'라면서 신경을 쓰시더라. 그 땐 이미 우성이 형과 한창 친해졌을 때라 '아니야. 우리 만식이가 원해. 그렇게 해달래'라고 예쁜 동생 챙기듯 대해줬다. 난 진짜 좋았다."
- 현장에서 본 정우성은 어떤 배우던가.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양반이라 어른은 어른이다. 나이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삶의 노하우가 있다. 처세술이 남다르다. 그리고 배우질 한다는 것에 있어 어떻게 해야 하고 또 하면 안되는지 정민이 형을 보면서도 많이 느꼈는데 우성이 형을 보면서도 느꼈다. 본 받을 것이 많았다."
- 어떤 면에서?
"고급스럽다고 해야 할까? 배우가 왜 품위가 있어야 하는지, 품위있는 배우는 무엇인지 우성이 형을 보면서 느꼈다. 딱 봐도 기품이 있어 보인다. 분위기 자체가 그렇다. 욕도 품위있게 한다. 그래서 안 어울린다는 말도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봤을 땐 나보다 더 잘하는데."
- 여우같은 스타일도 아니지 않나.
"전혀. 호기롭고 굉장히 남자답다. 일처리도 시원시원하다. 갈건 가고 아닌건 딱 아니라고 말한다. 이번 촬영장에서 안 가는 것은 없었다. 꽂히면 무조건 직진이다. 술을 마실 때도 감독님이 음주를 자제하라고 한 적이 있는데 '에이 몰라, 마시자!'하고 마셨다가 엄청 혼났다."
- 꼭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 같았을 것 같다.
"형이 제일 많이 욕 먹었다. 감독님이 '술 드셨어요?'라고 물어보면 난 고개를 푹 숙이고 '예…' 하면서 눈치를 봤다. 그럼 우성이 형은 이미 혼이 나 괜히 딴데만 쳐다 보고 있더라.(웃음) 그리고는 뒤로 와서 '아오 엄청 혼났어. 배불러'라면서 상황을 유연하게 넘긴다."
- 연기 호흡도 잘 맞아 떨어진 느낌이다.
"개개인 컷도 좋았지만 함께 등장하는 신도 개인적으로는 다 좋았다. 장례식장에서 난장판으로 싸울 때 '아 피곤해'라고 한 마디를 하지 않냐. 그 한 마디가 다섯 명의 마음을 함축해서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결론을 내는 말이랄까?
그리고 우성이 형에게 '왜, 잘생겼냐?'라고 묻는 신은 원래는 그렇게만 말하고 지나가야 했는데 형이 받아치더라. 그런 것이 딱딱 맞아 떨어지니까 신났다. 그리고 그 장면은 토론토 관객들도 엄청 웃었다. 형이랑 나란히 앉아 있는데 앞에 백인 아저씨가 빵빵 터지더라. 끝나고 나서 난 내심 짜증나는 마음에 '아니 뭘 안다고 웃어'라고 했는데 우성이 형이 '세계는 하나야 만식아. 보는 눈은 다 같아'라고 했다.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