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엔 한국영화를 나누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이경영이 출연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 그의 출연작을 열거하다보면 숨이 가쁘다. 지난해 부터 약 1년 간 출연한 영화만 '소수의견'·'협녀, 칼의 기억'·'암살'·'뷰티 인사이드'·'치외법권'·'서부전선'·'내부자들'·조선마술사'·'대배우' 등 9편. 앞으로 개봉할 영화는 '리얼'·'·재심'·'더 프리즌'·'메이드 인 코리아'·'태권소녀 뽀미'·'군함도' 등 6편이다. 몇 년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한 이경영(56)은 달콤한 결실도 맺었다. 두 달 전, 영화 '소수의견'으로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조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시상자로 나선 유해진은 "여러분들이 배우를 배우라고 불러주시는 이유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배우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기대에 걸맞는 분께 상이 돌아간 것 같습니다"며 수상자로 이경영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경영은 이날 건강 상의 이유로 불참해 유해진이 주는 상을 직접 받진 못 했다. 건강을 회복한 뒤 뒤늦게 트로피를 건네받은 이경영은 취중토크 인터뷰를 통해 수상 소감을 전하며, 축하주를 마셨다.
수상 후기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난 곳은 '이경영 단골집'으로 유명한 경기도 일산의 한 족발집이었다. 족발집 벽엔 그와 함께 작품에 출연했던 조진웅·이정재 등 수많은 스타들의 방문 흔적으로 가득했다. 이경영이 많은 선후배들과 함께 술 한잔을 기울이며 연기에 대한 고민을 주고 받는 장소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후배들에게 다작을 권한다고 들었어요. "배우는 작품과 계속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하정우가 죽기 전까지 영화 100편 채우는 게 목표라고 하던데 전 그 꿈을 응원하고 싶어요.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요. 정우는 데뷔와 동시에 처음부터 유명해진 친구가 아니잖아요. 꾸준히 영화를 좋아하고, 또 그 환경에서 즐기면서 열심히 일하다보니 지금의 정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 속에서 정우의 연기를 보고 싶어요. (강)동원이 한테도 작품을 많이 하라고 했어요. 연기를 잘 하는 친구들이 작품을 오랫동안 하지 않고 쉬면 아쉽더라고요. 후배들도 작품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1987년 영화 '연산일기'로 데뷔했어요. 30년 간 배우로 산다는 건 어떤가요. "감사하고, 축복이죠. 하지만 그 축복을 온전히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해요. 긴 시간, 배우로 살 수 있어서 행복해요. 할 줄 아는 것도 또 하고 싶은 것도 연기 밖에 없어요. 연기는 제 인생의 전부거든요. 그런데 그런 걸 계속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에요. 제가 30년을 잘 버틴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버틸 수 있게 옆에서 도와준 분들이 많았어요. 늘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지인들에게 고마워요. 훌륭한 선배님들도 감사해요. 안성기 선배님이나 문성근 선배님 등은 존재만으로 제게 큰 힘이 돼요. 제가 비빌 수 있는 언덕이죠.(웃음)"
-가장 아끼는 작품은 뭔가요. "흔한 표현이지만 정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있겠어요. 예전엔 영화 '하얀전쟁(1992)'을 얘기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작품이 저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었어요. 좋은 평가를 받았든 안 받았든 모든 작품이 다 의미있고 소중해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재학 시절 영화 학도들과 카메라 한 대 세워두고 찍은 작품도 다 소중해요.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테니깐요."
-한 때 멜로 드라마의 아이콘이었죠. 이경영 표 멜로, 다시 기대해도 될까요. "'푸른 안개(2001)'를 함께 했던 이금림 작가 선생님이 저랑 중년 멜로 드라마를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한 번 같이 작품을 한다면 영광이죠. 기회가 된다면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김수현과 함께한 '리얼' 촬영을 끝내고 지금은 류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 촬영 중이죠. "안 그래도 '군함도' 때문에 진짜 힘들어요. 하하하. 그 작품 때문에 다이어트도 해야해서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처음에 류승완 감독이 출연 제의를 하면서 '전 형님이 이 작품에서 살 빠진 모습으로 나오는 걸로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이 영화로 상을 받게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근데 이게 이렇게 힘든 역할일 줄 몰랐어요. 캐릭터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말을 아껴야할 것 같아요."
-배우로서 목표는 뭔가요. "뭘 이루고 싶다는 건 없어요. 다만 죽을 때 '난 성장하는 배우였어'라는 걸 스스로 느끼고 싶어요."
-묘비명에 남기고 싶은 문구가 있나요. "아임 스틸 어라이브.(I'm still alive)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