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을 보는건 일반인이 대부분이었다. 과거에는 로버트 할리·이다도시같은 일반인이 방송인으로 각광받았다. '외국인인데 한국말도 잘하네'라는 감탄부터 구수한 사투리나 몸에 밴 한국적 생활습관으로 '한국 사람 다됐네'라는 동질감도 갖게도 했다. 지난 몇년간은 그 바람이 더 거셌다. JTBC '비정상회담'으로 알베르토·장위안 같은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스타가 됐다.
최근 얘기를 해보자면 그 반경이 더 넓어졌다. 일반인뿐 아니라, 유명 해외 스타들이 안방 극장을 찾고 있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잭블랙, JTBC '뉴스룸'에 출연한 휴잭맨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임재범의 '고해'를 부른 록밴드 스틸하트의 밀젠코 마티예비치의 출연이었을거다.
해외 스타들의 한국 러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의 문화 시장의 규모가 커졌고, 그만큼 매력적이라는게 첫 번재 이유일 것 같다. 일간스포츠의 대표 인터뷰 코너 취중토크 또한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세계화에 발맞춰 첫 번째 외국인 게스트를 맞았다. 밴드 스틸하트의 보컬리스트 밀젠코 마티예비치가 그 주인공이다. 밀젠코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 록발라드 넘버 '쉬즈곤'(She's Gone)을 불렀고, '아윌 네버 렛 유 고'(I'll Never Let You Go)로는 빌보드 차트 14위까지 오른 이력의 주인공이다.
"술 마시면서 하는 인터뷰라니"라며 놀라워하다가, 마른 멸치 안주에 맥주 칭따X 2병을 금세 비웠다.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하면서는 먹먹해진듯 말도 끊어가고, "로커가 왜 사랑노래만 부르냐"는 호기로운 질문에는 "I'm not a puXXX"(난 계집애가 아냐)라며 열도 받는다.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일반인이나 할리웃 스타나 '술 들어가니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흥미진진했던 2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스틸하트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요. "원래는 적색경보라는 이름이었어요. 근데 뉴욕에 DJ 적색경보란 사람이 저작권을 갖고 있어서 바꿔야했죠. 하루는 LA 레스토랑에서 우리 이름을 짓고 있었어요. 그 순간 저쪽에서는 누군가가 'heart'란 이름을 애기했고 저 쪽에서는 누군가는 'steel'을 얘기하는 거예요. 두개를 합쳤더니 스틸하트가 된 거죠. 완벽한 이름 같아요. 에너지 정신 소울 뮤직 모든 것이 들어맞는 이름이었어요."
-스틸하트는 곧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나요. "하루는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는데 아버지가 잘 지냈냐고 묻더군요. 그 자리에서 아버지께 난데없이 '오늘 이 곳을 떠나 LA에서 슈퍼스타가 되겠어요'(I'm going to Hollywood to become a star)라는 얘길 꺼냈어요. 정확하게 그 말이 기억나네요. LA에 도착해 쓰레기 같은 차를 렌트했어요. 그리곤 한 프로듀서도 소개받았죠. '쉬즈곤''캔트스탑러빙유''쉬 러브즈' 같은 곡들을 들려줬는데, 듣자마자 훌륭하다는 반응이 나왔죠. 그래서 그 프로듀서는 우리를 매니저에게 소개시켜 줬어요. 근데 LA에 더 머물 시간이 없다며 돌아서더라고요. 우린 간절했어요. '들어만 봐 달라, 손해볼 거 없지 않느냐'고 졸랐고 매니저는 데모를 뉴욕의 자기 사무실로 보내라고 하더군요. 전 긴급우편으로 보내 그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사무실 책상에서 우리의 데모를 듣길 원했어요. 일주일이 지나고 전화가 왔어요. 유선상으로 우리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매니저는 첫 마디로 정확하게 '너 괴물이야?'(You fuXXing freak)라고 하더군요. 빨리 뉴욕의 사무실로 오라는 말과요. 그리고는 순식간에 정식 녹음을 하게 됐어요. 아마추어에서 프로페셔널이 된 거죠."
-어려서부터 원하던 꿈을 단숨에 이뤘군요. "사실 그렇진 않았어요. 녹음을 하고 앨범을 냈지만 7개월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기획사에서도 더 이상 뭘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어요.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일본에서 우리 노래가 인기가 있단 얘기가 나왔어요. 아마도 1990년일 거예요. 어느 날 매니저가 일본에 가서 인터뷰나 좀 하고 오자고 하더군요. 근데 인터뷰나 하는 수준이 아니었어요. 일본 공항엔 기자들과 팬들이 가득 차 있었어요. 정말 미친 듯이요. 록스타가 되려고 마음먹은 뒤로 11년간 완전한 무명이었는데 그 기다림과 노력들이 일순간 '쾅' 하고 보상받은 기분이었어요. 매니저는 이미 이 상황을 알고 있었어요. 우릴 놀라게 하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였어요. 차에 타기 전에 쿨한 척 인사했지만 차에 타자마자 놀라서 얼마나 흥분의 욕을 했는지 몰라요. 그리곤 얼마나 많은 인터뷰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3일 동안 인터뷰를 하다 연습이 하고 싶어서 피아노가 있는 방을 물어봤어요. 근데 그 당시 일본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녁을 먹고 오니 한 일본인이 와서 미안하다며 피아노를 방에 들여오려고 정말 노력했지만 너무 커서 가져올 수 없었다고 하는 거예요. 피아노 있는 방을 물어봤을 뿐인데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를 우리 방에 가지고 오려고 했던 거죠. 그 정도로 존중을 받았아요. 첫 공연도 마찬가지였어요. 커튼이 올라가고 객석을 보는데, 심장병이 걸릴 뻔 했죠. 너무 흥분해서 제대로 된 페이스로 공연을 할 수도 없었고요. 무대가 끝난 뒤에는 대기실에 가서 산소 마스크를 쓴채로 3시간을 앉아있었어요. 아마도 우리 커리어의 본격적인 시작이었을 거예요."
-스틸하트의 히트곡 중 사랑노래가 유독 많은 이유는요. "사랑은 위대하기 때문이에요. 제 성격이 여성스러워서 그런건 아니고요. 그거 아나요. 사랑은 아무도 죽이지 않아요. 약물이나 폭력에 관한 음악도 괜찮죠. 하지만 그건 제가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일 힘든 얘기를 꺼내볼게요. 무대 위에서 큰 사고를 당했고 극복하기 굉장히 어려웠다고 들었어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뒤) 끔찍했어요. 콜로라도의 콜로세움에서 공연할 때 일이에요. 그 공연장에는 큰 기둥이 양쪽에 있었어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그냥 서 있었죠. 쓰러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듯 했어요. 하지만 전 로커잖아요. 노래를 하면서 행동도 과격해지고, 점프도 수차례하고요. 결국은 기둥이 넘어진 거예요. 그리고 아주 간발의 차이로 제 뒤통수를 때렸죠. 1초만 더 있었어도 부딪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결국 얼굴부터 바닥에 닿으면서 코가 부러지고 턱이 깨지고 광대뼈가 망가졌어요. 뒤통수는 찢어졌고 등은 뒤틀리고 무릎도 나간거 같았죠. 사람들이 절 일으켜 세웠지만 그 순간 너무 화가 났어요. 그 때 제 모든 경력이 끝날 것을 알았거든요. 더 높은 레벨로 가고 싶었는데 절망뿐이었어요. 눈은 감았지만 주변이 피바다가 된 것은 알았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어요. 누군가는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고 누군가는 상처만 나서 괜찮다고도 했죠. 그 때 전 신인지, 내 자신인지, 아니면 제 3의 인물인지 모를 존재와 이야기를 했어요. '음악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래, 아니면 지금까지 보다 더한 일을 겪으면서도 음악을 할래'라는 질문이었고, 전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후자를 택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