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 만이다. 영화 '밀정(김지운 감독)'에서 송강호에게 뺨맞는 신 한 컷으로 주목받은 허성태가 단 1년 만에 충무로를 휘젓는 신스틸러로 급부상,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고 있다. 추석시장을 장악한 '남한산성(황동혁 감독)' 용골대, 여전히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 700만 돌파를 향해 달리고 있는 '범죄도시(강윤성 감독)' 독사로 캐릭터의 맛을 톡톡히 살려낸 허성태는 가뿐하게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부라더(장유정 감독)'에, 시청률 1위에 빛나는 KBS 2TV 드라마 '마녀의 법정'까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하반기 흥행작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22일 개봉을 앞둔 '꾼(장창원 감독)'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감을 뽐내는 만큼 '늦깎이 대세' 반열에 오를 날도 머지 않았다.
물 들어올 때 제대로 노 젓는 영리함이다. 나름의 다작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캐릭터도, 비주얼도, 연기 방식도, 심지어 목소리까지 모두 다르다. "같은 배우 맞아?"라는 반응에 희열을 느낀다는 허성태는 "주 6일 근무를 해도 행복하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잡은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을 생각이지만 조급함 보다는 최선을 다해 해내는 것에 집중할 계획이다. 자기관리 역시 연장선상. 인터뷰에 앞서 생애 처음으로 내시경을 받았다는 허성태는 "엄청 걱정했는데 결과가 깨끗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내시경 홍보대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모두들 꼭 받으셨으면 좋겠다"며 여러 번 내시경을 찬양해 웃음을 자아냈다.
1년 전,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을 털어놓으며 인터뷰 자체를 어색해 하던 허성태는 1년 후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조금 더 배우의 삶에 적응해 있는 모습이었다. 관리한 티 팍팍나는 비주얼에 새로운 경험담을 털어놓는 입담에도 센스가 장착됐다. 물론 겸손함과 손사레는 여전하다. 엔딩크레딧 앞부분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감동했고, 어머니에게 작품으로 효도하는 것이 인생 최대 빅픽처다. "딱 지금처럼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알차게 일궈나가고 있는 허성태의 2018년 행보에도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참고할 캐릭터나 작품이 있었나. "완벽한 용골대는 아니지만 '최종병기 활' 류승룡 선배님과 같은 캐릭터는 여럿 있었다. 가짜라 하더라도 최대한 진짜처럼 보이고 싶어 고민도 많이 했다. 이병헌 선배님의 도움이 컸다."
- 친절하던가. "엄청. 가뜩이나 떨리는데 선배님 앞에서 실수하면 안된다 생각하니 너무 긴장을 많이 했다. 그 때마다 풀어주셨고 농담도 자주 해주셨다. 무엇보다 병헌 선배님이 나에게 신기하다면서 '밀정' 때와 '남한산성' 용골대, 그리고 실제 내 목소리가 다 다르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 어떤 의미의 칭찬이었나. "사실 개인적으로 내심 신경쓰인 부분이었다. 근데 '일부러 변조시키면 가짜 같은데 넌 아니다. 진짜 같다'는 선배님의 칭찬 한 마디에 모든 고민이 사라졌다. 왜 일상 생활을 할 때도 때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지 않나. '상황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는 것이 가짜가 아니구나. 내가 낼 수 있는 옥타브들 중에서 골라 쓰면 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뭔가 허락이라고 해야할까? 결제 받는 느낌이었다.(웃음)"
- 매 순간 행복하면서도 긴장됐을 것 같다. "병헌 선배님과 작업이 더 두근거렸던 이유가 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면 왕의 처남을 취조하는 신이 있다. '이 자를 풀어주어라. 이 자는 죄가 없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때 고문하는 사람이 나였다. 대사 한 마디 없이 1초 정도 스쳐 지나가듯 나온 것이 끝이었다. 나만 기억하는 추억인 것이다. 그 이야기를 병헌 선배님께 하면서 '4년이 지나 활을 겨눈다고 생각하니 영광입니다'라고 했다. 선배님이 깜짝 놀라면서 더 반가워해 주시더라. '실수하지 말아야지. 정말 멋있게 해내야지'라는 마음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 그래서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나. "그럴리가.(웃음) 이병헌 선배님과 송영창 선배님이 함께 나를 찾아와 내 앞에 나란히 앉아있는 신에서 계속 발음이 꼬여 엄청 NG를 냈다. 희한하게 한 번 틀리면 같은 부분에서 계속 틀리게 된다. 진땀나 혼나는 줄 알았다." - '범죄도시'는 이렇게 잘 될 것이라 예상했나. "정말 재미있게 촬영했고 그것 만으로도 후회없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영화에 잘 담긴 것 같다. 그러니 관객 분들도 즐겁게 즐겨주시는 것 아닐까.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연기, 나왔으면 했던 장면은 빠짐없이 나와 만족도가 컸다."
- 독사는 섹시미를 장착한 캐릭터였다. 짧은 헤어스타일에 무표정인 인상 깊었다. "독사는 장첸(윤계상)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냥 깡패가 아니라 머리도 쓸 줄 아는. 바둑두는 신도 그래서 들어간 것이다. 원래는 골프공을 벽에 치는 콘셉트였는데 감독님께서 '바둑이 더 괜찮지 않겠냐'고 제안하셨다. 나이도 어느정도 있고 깡패들 사이에서 급이 다른? 독사가 그런 모습이어야 장첸이 얼만큼 무서운 인물인지 관객들에게 쉽게 와닿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 초반 치고 빠지지만 그만큼 임팩트가 강하다. "감독님의 마음과 귀가 열려 있었고 배우들의 이야기를 너무 너무 잘 들어 주셨다. 현장에서 바뀐 신도 많다. 장첸과 마주보고 서 기싸움을 하는 신에서 침을 뱉는건 원래 합의를 안 했다. 어떻게 하면 장첸이 독사를 갑자기 찌를 수 있을까 고민했고, 침 뱉고 뺨 때리면 관객들도 '그래, 나 같아도 찌르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 때리는 것도 어설프게 때리면 티날 것 같아서 아프지는 않지만 턱은 돌아가게 쳤다. 눈이 돌아간 장첸의 리액션이 바로 튀어 나오더라."
- 윤계상과도 합의를 안 한 것인가. "전체적인 동선과 행동이야 사전에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정도의 강도로 갈지는 말하지 않았다. 알고 가면 모르고 갈 때보다 긴장감이 덜할 것 같았다. '끝나면 무조건 사과한다'는 마음을 품고 연기에 임했다. 그 결과 NG 없이 한 번에 끝냈다. 계상 씨가 '진짜 좋았다. 너무 좋았다'면서 오히려 좋아해 주시더라. 작품과 연기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고 캐릭터에 대해 정말 고민을 많이 하는 친구인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