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으로 시작했지만 맥주로 끝이 났다. 맥주의 종류부터 맥주 효모의 효능까지 인터뷰와는 상관없는 주제로도 10분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부터 수다를 시작한 세 친구 덕분에 급하게 녹음기를 켜야 했다. 작품 안에서는 잘 어울릴 수 없었던 친구들이지만, 인터뷰 자리에 앉은 세 남자는 떠들썩한 '현실 친구'였다.
영화 '치즈인더트랩(김제영 감독)'으로 뭉친 박해진·오종혁·문지윤이다. 유정선배 박해진, 짜증유발 오영곤 오종혁, 복학생 김상철 문지윤까지 이들은 자신들에게 꼭 어울리는 캐릭터를 맡아 찰떡같이 연기했다. '치즈인더석박사 아니냐'는 일부 대중들의 반응도 시원스레 넘기며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고 대꾸하는 너스레다.
세 친구의 특별한 인연은 단순히 영화 한 편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16년 방송된 동명의 드라마에서 같은 역할로 출연한 바 있는 박해진과 문지윤은 같은 원작의 작품, 같은 역할로 2번째 호흡을 맞췄다. 박해진과 오종혁의 경우 박해진의 데뷔 전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 게다가 오종혁은 박해진의 현 매니저가 발굴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렇듯 우연과 필연을 계기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박해진은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 마치 기자처럼 대화의 흐름에 맞춰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이 겪은 비슷한 사례를 이야기한다거나 적절한 상황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의 센스까지 발휘했다. 박해진의 평소 리더십을 잘 알 수 있는 대목. 다정하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은 영화 속 다정한 유정 선배였다.
2000년대 초반 클릭비의 오종혁을 기억하는 이들은 실제 오종혁과 마주한 후 놀랄 수밖에 없다. 허당기 넘치고 평균 이상으로 소탈한데다 유쾌했다. 너무 솔직한 이야기들에 "정말 이거 다 인터뷰에 나가도 돼요?"라고 묻자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떠 보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사실 가장 큰 반전의 주인공은 문지윤이었다. 과자봉지 하나 들고 돌아다닐 것만 같더니 실제 문지윤은 진중하고 중후한 캐릭터. 배운 적도 없지만 벌써 몇 차례 전시회를 열었던 화가이고, 연기에 대해 깊게 사유하는 배우기도 했다.
-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박해진(이하 박)= "술을 잘 못 마시는데 정신 바짝 차리고 마시면 끝까지 마셔요. 평소에는 안 마셔서 평균 주량은 없고요. 다만 술을 마셔야 하는 자리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제일 잘 마시는 분과 똑같이 마셔요. 내일은 없어지는 거죠. 하하. 주사는 자야 돼요. 깨워도 못 일어나요."
오종혁(이하 오)= "소주 한 병!" 박= "나랑 있을 땐 왜 항상 취해 있었던 것 같지?(웃음) 종혁이는 술이 취하면 취할수록 각을 잡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흐트러지잖아요? 근데 종혁이는 취했는데 더 긴장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오= "그러지 않으면 사고를 쳐가지고… 하하. 술을 못해서 남들보다 빨리 취해 있는데, 그 때마다 '이런 저런' 사고를 쳐서 최대한 주량을 지키려고 하는 편이에요. 물론 운전은 절대 안 하고요.(웃음) 그래서 취해 잘 때는 그냥 내버려 둬야 돼요. 자는 걸 깨웠을 때 문제가 생기거든요."
문지윤(이하 문)= "전 소주를 잘 못 마시고 독주에 강하기는 해요. 마실 땐 아침까지 쭉쭉 마시죠. 근데 그렇게 마시는 건 1년에 한 두 번 정도 밖에 안 돼요. 술 자리 자체를 즐기는 편은 아니거든요. 오늘처럼 꼭 참석해야 하거나 누군가 불러내는 것이 아니면 제가 먼저 자리를 마련하지는 않죠."
- 세 분이 '83년생 동갑'으로 알고 있어요. 박= "사실 저희가 완벽한 83년생은 아니에요. 종혁이가 빠른 83. 제가 그냥 83. 지윤이가 빠른 84라서 따지고 보면 '동갑'이라고 할 수는 없죠. 사실 종혁이랑 전 굉장히 오래 된 인연이에요. 제가 데뷔하기 전부터 알았으니까요. 아는 지인 형을 통해 소개 받았죠."
- 그 때부터 친구로 지낸 건가요. 박= "음…. 제가 5년간 형 소리를 들었죠? 하하. 들을 때마다 저는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전 데뷔 전이었지만 종혁이는 가수 활동을 할 때였으니까요. 포털 사이트에 치면 생일이 나오잖아요. 근데 자주 만나면 모를까 드문드문 보게 되고 멀찌감치 앉아 있는데 가서 '사실 그게 아니라'라고 정정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친구로 합의를 봤죠." 문= "형이 다 당한 기분인데요?(웃음) 형 웬만하면 쿨하게 넘어가는 편이죠." 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하하. 근데 그 때는 형이 아니라는 것이 더 커서 빠른 생이 어쩌고 하는걸 신경 못 썼어요. '어? 친구야? 그래, 그럼 친구야!' 한 거죠. 시간이 흘러서 보니까 제 동생들과 친구더라고요. 해진이가 '나한테 5년동안 형이라고 부른 게 억울하면 내가 5년동안 형이라고 부를게!'라고 하기도 했어요. 뭐 호칭이 그렇게 중요한건 아니잖아요. 친구면 됐죠."
- 영화 '치즈인더트랩'이 드디어 개봉을 했어요. 어떤가요. 박= "제가 영화 무대인사를 처음 해 봤어요. 각자 돌아가며 인사를 하고 난 후에 다시 마이크가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질문 한, 두개는 듣고 내려갈 줄 알았거든요. 진짜 딱 '박해진입니다' 인사만 했는데 끝이라는 거예요. '아, 무대인사는 이런 거구나'라는 걸 처음 알았네요. 수 많은 관객들을 바로 앞에서 직접 뵈니까 신기하기도 했고요."
- 드라마 때부터 '치즈인더석박사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죠. 생각보다 예쁘게 나왔더라고요. 박= "어휴. 하도 문지르다 보니까 까딱 잘못 하다가는 눈·코·입이 없어지겠던데요?(웃음) 포토샵의 힘이 커요. 영화는 큰 스크린이라 드라마보다 조금 더 많이 걱정했는데 걱정했던 것 보다는 괜찮아 다행이에요."
- 굉장히 캐릭터적인 캐릭터를 연기했어요. '비슷한 부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문= "저는 유쾌한 복학생을 연기했으니까 어느 정도는 있다고 봐요. 물론 극중 캐릭터처럼 주변사람, 남들 일에는 관심 없어요. 하루 살기 바빠서.(웃음)" 오= "맞아요. 촬영장에서도 그랬어요. 분장 차량에 타면 형식적으로라도 인사를 하잖아요? 근데 눈인사 정도?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아요. 눈이 안 마주쳐도 되니까 굳이 말을 안 해도 되는 이상하지만 편안한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럼 저도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되는데 뜨면 귀신같이 사라져 있는 거예요." 문= "이번에는 시나리오 자체에 분량이 많지 않았어요. 촬영장에 갈 일이 많이 없었고 마주치는 신도 별로 없어서 솔직히 막 친해지지는 못한 것 같아요. 저도 그게 좀 아쉽고요. 까불까불하고 장난스러운 모습도 많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