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하정우(40) 천하'다. 1년6개월의 공백은 역시 단순한 공백이 아니었다. 열일한 결과를 흥행으로 보답받는 짜릿함. 몇 번을 경험했을 하정우에게도 동시기 개봉한 두 작품이 역대급 성과를 일궈내고 있는 이 과정은 분명 색다른 경험일 것이다.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김용화 감독)'이 개봉 9일만에 누적관객수 600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한 주 늦게 등판한 '1987(장준환 감독)' 역시 만만치 않은 스코어를 자랑하고 있다. 12월 개봉한 세 작품 중 두 작품에 출연한 하정우의 영화가 쌍끌이 흥행을 이끌고 있는 상황. 하정우의 진가는 현재 진행형이다.
섣부르긴 하지만 지금까지 분위기로 본다면 '신과함께'는 2018년 첫 1000만 영화 등극이 사실상 확정이다. 하정우로서는 '암살(최동훈 감독)' 이후 두 번째 1000만 기록이다. '1987'은 개봉 직후 관객들의 이구동성 호평 속 '역대급 인생 영화'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또' 다 잡은 하정우다.
하정우는 공식적으로 '신과함께' 팀과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분량은 작정이라도 한듯 딱 '절반'으로 나눴다. '신과함께'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가도 "그럼 우리 다시 '1987'로 돌아갈까요?"라며 천연덕스럽게 두 영화를 야무지게 홍보한 것. 무대인사도 어느 한 작품 섭섭함 없이 열심히 소화할 계획이다.
타고난 영리함은 여전하다. 쏟아지는 홍보 일정으로 매일 매일 스케줄이 빼곡하다. 성탄절 연휴는 물론 연말에 새해까지 관객들과 함께 한다. "뇌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한 하정우지만 하정우이기에 할 수 있는 행복한 고민이기도 하다. 힘들어도 잊지 못할 12월이 아닐 수 없다. - 일단 '1987' 이야기부터 해볼까. "'신과함께'와 하루차 시사회를 진행했는데 '신과함께'는 아무래도 CG 등 나도 모르게 신경 쓰면서 보게 되는 것들이 있어 그런지 '신과함께'에 비해 '1987'을 조금 더 온전하게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어떤 한 배우만 튀는 영화가 아니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좀 뭐라 그래야 할까. 그저 감사한 영화다." - 당시 상황을 아주 모를 세대는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잠원동 뽕밭에 살고 있었다. 뽕밭이 개발돼서 아파트가 들어서던 시기였는데 매일 눈이 굉장히 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 가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그게 꽤 오래 지속돼 나중에는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어디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됐다."
-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땐 어땠나. "시나리오를 보고 그때 그 사건들을 찾아 보면서 '어떻게 현실이 더 영화 같을 수 있을까. 어쩜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럴 수 있을까. 이렇게 쓰라 그래도 못 쓰겠다'고 생각했다. '책상을 탁치니, 억!'은 웃기면서도 아이러니했다. 뭐 그런 대사를 칠 수 있나 싶었다."
- 유가족들도 시사회 때 영화를 관람했다고. "시사회 때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는데 너무 당연한 수순같다. 고(故) 박종철 열사, 고 이한열 열사 유가족 분들을 비롯해 합창단원들까지 다 앉아 계셨다. 그 분들 앞에서 감히 내가 '이 이야기 재미있어요'라는 말을 못하겠더라. 물론 그렇게 말을 하더라도 영화적인, 시나리오적인 의미의 재미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사건 자체가 실화이기도 하고 유가족들이 앞에 계시니까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기 보다는 엄숙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홍보차 많은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소화 했는데 이 작품 만큼은 어렵게 느껴졌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없었다."
-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하나 하나의 의미가 담겨진 것 같았고 자랑스러웠다. 그 사건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장준환 감독 역시 많은 눈물을 흘렸다. "후반작업 일정이 너무 타이트 해 시사회 전까지 배우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바로 전날 진행된 스태프 기술 시사회 때 다들 처음 봤다고 하더라. 어쩌면 감독님에게는 처음 만나는 관객이 함께 일한 스태프, 배우들일 것이다. 순차적으로 스태프, 그리고 시사회 날 간담회 전 배우들에게 '잘봤다. 좋았다. 훌륭하다'는 말을 들으니까 단상에 올라가기 전부터 울컥하신 것 아닌가 싶다. 또 너무 오랜만에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니까 긴장도 되고, 회환에 잠기기도 하고, 몇 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실제 감독님이 그러셨는지는 모른다. 어디까지나 감독님을 바라 본 내 이야기다.(웃음)"
- 말마따나 하루차 시사회를 진행했는데. "같은 자리에서 배우만 바뀐 채 맴도는 느낌이었다. 상황에 적응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싶었다. 혼자 겉도는 것 같기도 하고.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 '1987'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한창 '신과함께'를 찍고 있을 때 (김)윤석이 형 전화를 받았다. '이러 이러한 시나리오가 있고 프로젝트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내용이었다. 일단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고 보자마자 감동했다. 바로 형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거죠?'라고 물었더니 그 때까지는 스태핑도 안돼 있는 상태였다. 물론 어떤 배우에게까지 이야기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나에게는 '나는 박처장을 한다. 너는 최검사 어떠냐'고 했다." - 시원하게 출연을 결정지은 것인가. "지난해 가을, 우리나라 상황이 어땠는지 다들 아시지 않냐. 근데 하고 싶었다. 바로 '알겠어요'라고 답했다.(웃음) 그리고 나서 형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영화 이야기를 한창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장준환 감독님이 앉아 있더라.(웃음) 이태원 막걸리집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셋이 완전 신난 상태였다. 얼렁뚱땅 출연을 결정했다. 그러다 (강)동원이 이야기가 나왔고 '그럼 동원이를 부르죠'라고 해 연락을 취했다." - 강동원까지 합류했나. "당일에는 스케줄 때문에 오지 못했는데 얼마 안돼 바로 다시 모였다. 그 때도 분위기가 화기애애 했다.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최상이었다. 넷이 진짜 신나게 떠들었다. 그때 장준환 감독님이 마음 속에 담아뒀던 생각들을 털어놓더라. 사실 감독님은 그 날도 울었다.(웃음) '그래! 파이팅 하자!'로 끝났고 그렇게 밑도 끝도없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 장준환 감독은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겠다. "이후에도 너무나 훌륭한 배우 형들이 한 둘씩 줄줄이 합류했다. 일주일 단위로 윤석이 형이랑 통화를 했는데 '누가 하기로 했어'라고 알려줬다. 신기했다. '신과함께' 현장에서 (오)달수 형을 만나게 됐는데 형이 '나도 뭐 하나 없을까?'라면서 관심을 보이더라. '윤석이 형에게 전화해 보세요'라고 했다.(웃음) 일이 엄청나게 커지게 됐다." - 분량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반응도 많다. "나를 좋아해 주는 관객 분들은 '아쉽다. 더 보고 싶었는데'라고 하시더라. 하지만 영화의 구성이 그러하니 '제 분량 늘려 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었다. 또 회차로 계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애초 알고 들어간 작품이다."
- 최근 김윤석을 최고의 파트너로 꼽았다. "단순히 세 작품을 함께 해서가 아니다. 나이 차는 띠동갑인데 형과 잘 맞는 부분이 많다. 형과는 '추격자' 때 처음 만났다. 그 때 윤석이 형은 이준익 감독님의 밴드 영화 '즐거운 인생'을 통해 메인 주연으로 올라 오시고 그 다음 '타짜'로 싹 정리 하셨다.(웃음) 단독 주연은 아마 '추격자'가 처음일 것이다. 나 역시 저예산 영화를 찍다가 상업 영화 주연은 처음이었다. 작품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논의했다. 그 때 형과 나눴던 이야기들, 함께 했던 연기들, 행동들이 지금까지 배우 생활을 하는데 초석이 되고 있다. '롤러코스터', '허삼관'을 연출할 때도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 감독 하정우로서 김윤석을 캐스팅 할 생각은 없나. "당연히 있다. 어울리는 캐릭터와 좋은 작품이 있다면. 사실 '허삼관'도 말씀 드렸는데 '야, 이건 나랑은 좀 아니다. 이번에는 넘어갈게'라고 하셨다. 그래서 깔끔하게 '알겠어요. 형' 하고 말았다. 그럼 난 조르지도 않는다. 하하."
- 하정우가 등장하는 모든 신이 분위기를 쇄신 시켰지만 김윤석의 말투를 따라하는 신은 그 중에서도 돋보였다. "애드리브다. 유머러스한 장면들은 대부분 애드리브다. 첫 등장할 때 술을 핥아먹는 신도 별의 별 버전이 다 있었다. 감독님께서 '혀가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 '감아 달라' 등 많은 요구를 하셨다.(웃음) 통화 장면도 대사가 하다 더 있었다. 근데 너무 나가면 되려 힘이 빠질 수 있으니까 노멀한 것으로 선택 하셨더라."
- 감독의 신뢰로 보면 될까. "분량을 정리할 때 아예 '정우씨 할 대사는 수정해서 찍기 전에 보여 주세요'라고 하셨다. '의미나 중요한 단어들만 빠뜨리지 않는 선에서 편하게 본인 식대로 표현해 달라'고 해주셔서 미리 수정하고 촬영에 임했다. 그래서 특히 더 이견없이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