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중화직업봉구연맹(CPBL)의 첫 시즌이 1990년이니, 5년 만에 선수협회가 설립된 셈이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프로야구 출범 18년 만인 2000년 1월 설립됐으니 한국보다는 빠른 셈이다.
하지만 최초의 선수협회는 1년 만에 공중분해됐다. 승부조작이 이유였다. 선수협회 설립에 참여한 임원 절반이 1996년 발생한 승부조작 사건인 '검은 호랑이' 스캔들에 연루됐다. 회원인 선수들로부터 믿음을 잃었다. 선수협회는 연맹과 함께 승부조작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후 CPBL에서 승부조작이 기승을 부린 이유 중 하나가 선수조직의 부재였다고 볼 수 있다.
선수협회는 2008년 다시 결성됐다. 구단과 선수 간 '일방적 관계'에 대한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대만 프로야구는 선수협회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힘이 없는 선수는 구단의 불합리한 처사에 대응할 수 없었다. 선수를 변호하고, 구단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이 필요했다. 선수협회는 2009년 운영에 탄력을 받았다. 그해 발생한 '검은 코끼리' 승부 조작 사건에는 선수협회 임원이 한 명도 연루되지 않았다. '깨끗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이후 선수협회는 승부조작 방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특별취재팀은 지난 8월 대만 타이페이에 위치한 선수협회 사무실을 찾았다. 쉬런지에 선수협회 부주임은 "KBO리그에서 승부 조작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2012년 발생한 첫 번째 승부 조작에 비해 규모가 커진 것으로 안다"며 "선수들이 느끼는 책임감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선수들의 책임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KBO리그는 선수에 대한 처우가 대만보다 낫다. 그러나 사각지대는 반드시 있다. 선수협회가 사각지대의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수협회는 2008년 재설립되면서 '승부조작 방지 신탁금'이라는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EDA 소속 선수 예쥔장(현 EDA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선수는 급여의 10%를 선수협에 신탁한다. 은퇴할 때까지 승부 조작에 연루되지 않는다면, 이자가 더해진 금액으로 돌려받는다. 그러나 승부 조작에 연루될 경우 신탁금은 선수협회에 귀속된다. 2009년 승부 조작에 연루된 시에쟈셴이 처음으로 신탁금을 몰수당했다.
의무조항은 아니었다. 2008년에 급여 신탁을 거부하며 가입하지 않는 선수들도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승부조작과 관련된 문제가 있었다. 2009년 승부조작 사건 이후 신탁금에 가입하는 선수의 숫자가 증가했다. 쟈오즈웨이 선수협회 대변인은 "올해 CPBL에서 뛰는 현역 선수 213명 전원이 신탁금에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승부 조작에 연루되지 않았고, 강력한 방지 대책을 선수협은 선수들의 믿음을 얻게 됐다.
선수협회는 신탁금과 함께 '암행 감찰' 제도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스폰서'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다. 쉬 부주임은 "구단마다 3~4명이 암행 감찰 활동을 하고 있다"며 "선수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선수협회에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활동에 대한 비밀은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르는 사람이 접근할 경우 선수협회에 신분 의뢰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2010~2011년엔 특히 관련 보고가 많았다. 효과가 나타를 보면서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대만 선수협회는 구단의 인식 변화도 승부조작 방지에서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쉬 부주임은 "구단은 선수에게 문제가 발생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구단 차원에서 선수 관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소통이 없다"고 말했다. CPBL은 과거 선수 급여 수준이 형편없었다. 열악한 처우는 승부조작 가담으로 이어지는 동기가 됐다.
쉬 부주임은 "선수가 좋은 대우를 받는다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 선수의 활약은 기업 이미지를 좋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단과 선수의 일방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과 일본의 선수 수익 모델을 롤모델 삼고 있다. 대만 프로야구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이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도 교류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