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발견한 최고의 진주를 꼽으라면 류준열(30)은 다섯손가락 안에 분명히 든다.
지난 겨울 대한민국을 울리고 웃긴 tvN '응답하라 1988' 김정환으로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 거 아니다. 드라마에서 누가 누구와 부부가 되는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열광했을까 싶을 정도지만 당시는 엄청났다. 데뷔 후 첫 드라마에 주연, 그것도 엄청난 화제의 주인공. 연이어 잘 된 작품의 세 번째 시즌. 이 모든 부담감을 떠안은 류준열은 유연하게 작품을 끝냈고 그 결과는 제52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신인상으로 이어졌다. "다들 수상을 예상했냐는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전혀요. 첫 드라마였는데 무슨 상을 받겠어요. 원래 상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요. 학창시절부터 상은 저와 먼 곳에 있는 것이라고 여겨와 더더욱 그랬죠. 기대하고 상을 받았더라면 감격했겠지만 그럴 정신도 없었는걸요 뭐." 담담하게 말하는 듯 했지만 목소리에서 떨림이 전해졌다.
올해 가장 바쁜 배우도 류준열이다. '응답하라 1988'이 끝나기 무섭게 조인성·정우성과 영화 '더 킹' 촬영을 마쳤다. 쉴 틈 없이 지상파 데뷔작인 MBC '운빨로맨스' 주인공으로 나섰고 영화 '택시운전사'로 곧바로 이어졌다. 이쯤되면 '철인'이라 불릴만큼 바쁘다. 두 달여 남은 올해지만 최민식·박신혜와 함께 하는 영화 '침묵'도 최근 크랭크인했다.
"아직은 체력적으로 전혀 힘든 점 없어요. '운빨로맨스' 촬영할 땐 한 달 내내 밤샘이었어요." 당시 극한의 스케줄에도 류준열이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은 건 많은 스태프들이 입이 닳을 정도로 칭찬했다. "저만 힘든가요. 저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은데 짜증을 왜 내요. 오히려 미안해야죠."
지난 21일(현지시간)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서 열린 2016/17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전을 관람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관중석 맨 앞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열광하는 모습이었다. FIFA U-20 월드컵코리아 홍보대사를 맡을 만큼 소문난 축구광(狂)이다. 타들어가는 뙤약볕에도 공을 차야만 할 정도로 열혈이다. "요즘은 하는 것만큼 축구 용품에 관심이 많아요. 축구화·유니폼을 모으는데 맛들렸어요. 예전에 없는 살림에 하나 둘 모았다가 돈이 없어서 팔았는데 조금만 버틸걸 그랬나봐요. 하하하."
술깨나 마셔보이지만 그의 주량은 맥주 한 잔. "못 마시기도 하지만 즐기지도 않아요. 술 안 마셔도 취한 사람처럼 놀 수 있는데요 뭐." 취중토크와 마주한 날은 느낌이 왔나보다. 정확히 한 잔 반을 비웠다. "이제 웹서핑으로 봐 둔 유니폼 좀 사러가려고요."
-취중토크 공식질문이에요.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원래 술을 잘 못 마셔요. 알코올을 좋아하는 체질은 아니라 즐기지도 않죠. 굳이 주량을 따지자면 맥주 한 잔 정도요. 얼굴이 빨개지진 않는데 절제해요."
-그럼 특별한 주사도 없겠네요.
"예. 주사는 따로 없어요. 철없던 스무살 취할 때까지 마셔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특별한 주사가 있진 않더라고요. 아 그렇다고 술자리를 싫어하는건 아니에요. 술 마시나 안 마시나 맨정신이 아니라 괜찮아요.(웃음)"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요.
"(인터뷰 당시)영화 '택시운전사' 촬영 중이에요. 촬영에만 매진하고 있죠."
-외형적으로 달라진게 없는데 영화에서 변화가 없나요.
"비밀이에요.(웃음) 달라진 모습이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영화로 봤을 때 더 극적이지 않을까요."
-송강호 씨와 첫 호흡은 어땠나요.
"자괴감이 들었어요. 선배님 연기하는걸 보고 있으면 멍하니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 '저 사람을 따라해야겠다'가 아니에요. 연기하는 걸 보고만 있어도 마냥 좋은데 왜 좋은지 모르겠어요. 감히 흉내를 낼 수 없을 정도로요. 사람이라면 기복이 있어야하는데 늘 잘 하니깐요. 열심히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경이롭다고 들리네요.
"어마어마해요. 옆에서 바라볼 수 있고 같은 앵글에 나올 수 있다는게 행복할 정도로요."
-이제 많이 편해졌나요.
"처음에는 서로 호흡을 맞춰야하니 얘기도 많이 못 나눴는데 지금은 좋아요.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요. 칭찬 한 마디 들으면 그날 밤에 잠을 못 자요. '내가 뭘 잘했길래 선배님이 칭찬했을까' 계속 생각하게 돼요."
-'더 킹'에서는 정우성·조인성 씨와 호흡했어요.
"정우성 선배님이 많이 예뻐해줬어요. 현장에서 가장 막내니 이해도 많이 해주고 얘기도 많이 들어줬죠. 조인성 선배님은 굉장히 프로페셔널해요. 매사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요. 어쩔때는 '나도 저렇게 안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감동 받았어요."
-배우 일지를 쓴다던데요.
"학교 다닐 때부터 쭉 써왔어요.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냥 일기 쓰듯 그날 있었던 일을 적는건데 늘 있는 곳이 촬영장이잖아요. 드라마를 하면서는 잠 잘 시간도 없어 못 썼는데 영화 촬영장에서는 여유가 있으니깐요."
-분량이 꽤 되겠어요. 예전에 쓴 것도 종종 보나요.
"과거에 쓴 것 찾아보면 동기부여가 될 때도 많아요. 그리고 패턴도 읽혀요. 제가 늘 갖고 있는 고민이 여러번 적혀 있으니깐요."
-원래 꿈이 배우였나요.
"사범대학교를 가려고 준비했었어요. 재수할 때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데 너무 졸리더라고요. 그렇게 졸다가 정신을 차렸는데 2시간이 훌쩍 지났어요. '과연 이게 내 적성에 맞는 건가' 고민했고 영화 보는 걸 좋아했는데 문득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렇게 진로를 급히 변경했죠. 밤낮으로 독서실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평범한 학생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