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구단주님! 수원 FC 유니폼 입고 집무 보시겠다던 약조 꼭 지켜주세요." 2016시즌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초반 무대는 시민구단 수원 FC와 성남 FC의 '장외 배틀(Battle)'이 큰 화제를 낳고 있다.
두 구단이 벌이는 축구 전쟁은 일명 '깃발라시코'다. 이는 서로 대결을 펼쳐 이긴 팀이 진 팀의 홈구장에 구단 깃발을 거는 것을 뜻한다. 두 팀의 모습을 보고 K리그 팬들이 만든 신조어다. 원조격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펼치는 라이벌전 '엘 클라시코'에 빗댄 이름이기도 하다.
먼저 싸움을 시작한 쪽은 이재명(52·성남시장) 성남 FC 구단주였다. 이 구단주가 SNS를 통해 도발("이긴 팀 시청 깃발을 진 팀의 시청에 걸자")하자 절친한 사이인 염태영(56·수원시장) 수원 FC 구단주가 거침없이 맞받아치면서 깃발 전쟁까지 이르게 됐다. 이렇게 '깃발라시코'의 한 중심에는 두 구단주가 있다. 염 구단주는 이 구단주에게 "시청 깃발은 물론이고 홈구장에는 이긴 팀의 구단 깃발과 함께 진 팀의 시장은 이긴 팀의 유니폼을 입고 집무를 보라"고 더 강력하게 응수했다.
지난달 19일 1차 깃발라시코는 두 구단이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일간스포츠는 그 뒤로 보름이 흐른 지난 3일 수원 FC와 광주 FC의 경기가 한창이던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염태영 구단주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염 구단주는 작심한듯 성남 이야기부터 꺼내며 이 구단주를 자극했다.
그는 "성남 FC 황의조가 탐난다"고 공개 발언했다. 성남 간판 공격수이자 국가대표팀 공격수 황의조(24)를 영입하고 싶다는 얘기는 또다른 도발이다. 한 술 더 떠 "언젠가 탄천종합운동장에 수원 FC의 깃발을 꽂고 오겠다"고 수위를 더 높였다. 이번에는 염 구단주가 역으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올해 클래식으로 승격한 수원 FC는 광주 FC를 제물 삼아 리그 첫 승을 거두며 자신감이 치솟고 있다.
염 구단주에게 장외 전쟁의 여러 얘기를 들어봤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렸던 4월의 초입. 수원 FC와 광주 FC의 경기가 한창이던 수원종합운동장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염태영(56) 수원FC 구단주였다. 수원 FC의 상징색인 감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유니폼과 머플러를 두른 염 구단주는 "수원 FC 경기는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편이다. 틈이 날때는 운동장에 나온다"고 말했다.
축구 전문가들은 수원 FC를 유력한 강등 후보로 거론한다. 어렵게 1부 리그에 진입했고,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둔 타 구단과 비교해 전력이 약하다는 평가 때문이다. 염 구단주는 "수원 FC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저력이 있는 팀이라는 걸 반드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염 구단주와의 일문일답.
-성남 FC와의 '깃발라시코'가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깃발라시코는 이재명 성남 구단주와의 두터운 친분을 발판으로 시작됐습니다. 저와는 '호형호제'할 만큼 친분이 깊은 분이세요. 우리 축구단에 대한 관심과 흥행에 도움이 되고, 시민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재미를 끌어올리자는 취지였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많은 시민과 축구팬이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덕분에 두 시민구단 간 경쟁 색이 더 짙어졌어요.
"그런 라이벌 구도를 부각하는 걸 이 구단주가 정말 잘합니다. 성남 FC는 우리 수원 FC가 정말 꼭 꺾고 싶은 팀입니다. 처음 축구로 도발이 시작된 곳이 성남 아닙니까. 이제 양 팀은 앞으로 물러설 수 없는 경기, 그야말로 축구 전쟁을 펼치게 됐어요. 물론 성남은 뛰어난 팀이고 우수한 선수가 많습니다. 이제 막 K리그 클래식(1부)에 올라온 팀에 넘어설 수 없는 산일 수 있어요. 그러나 수원 FC도 결코 만만하지 않고, 저력이 있는 팀이라는 걸 반드시 보여주고 싶어요."
-두 구단주가 내기나 약속이라도 하셨나요.
"지난 깃발라시코 때 제가 이 구단주에게 '우리가 성남 FC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꺾을 경우 수원 FC 유니폼을 입고 시청에서 집무를 보시라'고 했습니다. 이 구단주도 수긍했고요. 성남 FC의 홈구장인 탄천운동장에 우리 팀 깃발을 반드시 꽂고 오는 날이 올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꼭 이길테니 부디 그 약속을 지켜주세요."
-이러다가 축구를 넘어 성남시와 '스포츠시 라이벌'로 묶이진 않을까요.
"성남시와는 스포츠로 비교 자체가 안됩니다. 성남시는 축구단 하나 아닙니까. 우리는 야구(kt), 축구(수원FC·수원·FMC), 배구(한국전력·현대건설) 까지 6개팀을 갖고 있어요. 물론 성남 FC가 전통과 실력이 있는 팀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수원이 있어요. 이 구단주가 들으면 발끈 하겠군요(웃음)"
-수원 FC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수원 FC는 '믿는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긴 팀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1부 리그로 승격됐던 과정을 보세요. 수원은 한국 프로축구 역사에서 어떤 팀도 하지 못했던 일을 이뤄낸 팀입니다. 실업팀으로 시작해 내셔널리그(3부)에서 빼어난 성적을 냈고, 과감하게 프로로 전환하면서 챌린지(2부)로 들어갔습니다. 3부에서 시작한 팀이 프로 무대로 들어가면 웬만해서는 버티기 힘듭니다. 그러나 수원 FC는 프로 전환 3년차인 지난해 1부리그 승격이라는 감동의 드라마를 엮었어요."
-허구연 프로야구 해설위원의 '스포츠는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길 수 있는 분야'라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정말 적절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팀의 투자 규모와 선수 전력을 보시면 이건 기적에 가까운 결과입니다. 수원 FC는 타 구단과 비교 하면 여러 면에서 수준차이가 큽니다. 연봉도 반 이하로 차이가 날거에요. 실업 시절에는 전용 운동장도 없었어요. 하지만 투자와 성적이 비례하지 않다는 걸 입증했죠."
-구단주로서 선수단 운영에 얼마나 관여하나요.
"감독에게 모든 일임권을 줍니다. 외부 선수 영입도 마찬가지에요. 지원은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하지만 경기와 선수단 운영은 전적으로 조덕제 감독님께 맡기고 있어요. '저 외국인 선수를 어떤 이유로 뽑으셨는가'라고 여쭈면, 상세한 답이 돌아옵니다. 수원 FC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역민에 사랑받는 밀착형 팀으로 성장해주길 바랍니다."
-다른 팀에서 영입하고 싶은 선수를 꼽는다면.
"원래 '수원의 3성(화성·삼성·박지성)'이라는 박지성을 데려오고 싶었는데 은퇴를 해서 이루지 못하게 됐네요. 만약 타 팀에서 데려올 수 있다면, 기왕이면 성남 FC의 황의조를 영입하고 싶습니다.(웃음) 공격수로서 앞날이 창창하고 실력이 있어요. 수원 FC는 공격 부분을 강화할 필요도 있고요. 제가 황의조를 원한다고 하면 이 구단주의 감정선을 건들수 있겠군요. 시민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겠어요." 성남FC 소속 황의조 선수
성남FC 소속 황의조 선수
-스포츠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난 6년 간 시정을 해오면서 스포츠만큼 시민을 하나로 묶는 것이 또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페어플레이 정신에 따라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하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또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기량을 갈고 닦죠. 선진국은 스포츠로 지역성을 드러내고, 부가가치를 창출하죠. 동시에 지친 삶에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그나저나 운동은 좀 하시나요.
"젊은 시절에는 저도 '날쌘돌이'로 불렸습니다. 100m를 12초 07대에 달렸어요. 정말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체력장을 했는데 25점 만점을 받았습니다. 원래 승부욕이 강해요. 대학 시절에는 농구를 즐겨 했는데 제 포지션이 가드 센터 였습니다. 골을 넣는 걸 주로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