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 농사는 '역대급 풍년' 조짐이었다. 허삼영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허삼영 전 감독이 자진 사퇴한 지난 1일 기준 KBO리그 최고의 '외국인 트리오'를 보유한 구단은 삼성이었다. 재계약한 에이스 데이비드 뷰캐넌(33)과 중심 타자 호세 피렐라(33)는 물론이고, 새롭게 영입한 알버트 수아레즈(33)까지 수준급 성적을 자랑했다.
KBO리그에선 "외국인 선수가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얘기를 한다. 외국인 선수 3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1군 엔트리(28명)의 11% 남짓이지만, 팀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삼성의 올 시즌 외국인 선수 구성은 다른 팀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객관적인 성적이 뛰어났다. 피렐라는 1일 기준 시즌 타율이 0.343(361타수 124안타)로 KBO리그 1위였다. 최다안타도 1위, 출루율(0.415)과 장타율(0.562)을 각각 2위일 정도로 공격 지표가 리그 최상위권이었다. 4월과 5월에는 월간 타율 0.390, 0.413을 기록, 폭발력을 보여줬다.
뷰캐넌도 마찬가지다. 2020년부터 2년 연속 15승을 넘긴 뷰캐넌은 리그 3년 차에 접어든 올 시즌에도 변함없이 활약했다. 후반기 첫 등판이던 지난달 23일 손가락 미세 골절 문제로 전열에서 이탈했지만, 부상 전까지 6승 8패 평균자책점 3.37로 쾌투했다. 시즌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가 15회로 윌머 폰트(SSG 랜더스·16회)에 이어 리그 공동 2위였다. 피렐라와 뷰캐넌은 지난 시즌 삼성을 6년 만에 가을야구로 이끈 주역이다. 나란히 재계약에 성공, 성적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상수'였다.
삼성의 숙제는 재계약을 포기한 마이크 몽고메리를 대체할 투수를 찾는 거였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미국 메이저리그(MLB)과 일본 프로야구(NPB)를 두루 거친 수아레즈를 영입했다. 2019년부터 3년 동안 NPB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뛴 수아레즈는 일본의 선수 시장을 주시하던 삼성이 타이밍 좋게 영입한 케이스였다. 당시 A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수아레즈에 대해 "리그에 새롭게 영입된 선수 중 가장 좋은 투수다. 부상 이력이 있지만 삼성이 잘 데려왔다"고 평가했다.
수아레즈는 시즌 첫 19번의 등판에서 4승 5패 평균자책점 2.42를 기록했다. 리그 최저 수준의 득점 지원 탓에 승수 쌓기에 애를 먹고 있지만 세부 기록이 안정적이다. 이닝당 출루허용(WHIP)이 1.18로 뷰캐넌(1.43)보다 더 낮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애플리케이션 데이터에 따르면 피렐라(4.76)와 뷰캐넌(2.62) 수아레즈(2.83)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합은 10.21이다. WAR은 리그 평균 수준의 선수보다 팀에 몇 승을 더 안겼는지 알아볼 수 있는 지표. 올 시즌 외국인 선수의 WAR 합이 10을 넘는 건 삼성이 유일하다.
한동안 삼성은 '외국인 선수 잔혹사'에 시달렸다. 허삼영 전 감독의 전임인 김한수 전 감독 시절에는 앤서니 레나도와 재크 패트릭·팀 아델만·리살베르토 보니야를 비롯해 기량 미달로 팀을 떠난 외국인 선수가 수두룩했다. 올 시즌 9위까지 추락한 팀 성적에 대한 엄정한 잣대를 허삼영 전 감독에게 들이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외국인 선수의 활약이 돋보일수록 팀 성적 부진에 대한 사령탑의 책임은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