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13년 피터 오말리 전 LA 다저스 구단주와 박찬호의 도움으로 미국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전력분석파트 업무를 수행하며 값진 경험을 쌓았다. 그 인연을 이어온 덕분에 올해는 샌디에이고 프런트 오피스의 배려로 MLB 운영과 육성 시스템을 체험할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됐다. 부족하지만 필자의 경험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시카고 컵스와 홈 경기를 보던 중이었다. 처음 보는 샌디에이고 구단 관계자가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이 관계자의 두 딸은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의 일원이라고 했다. BTS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콘서트를 열었는데 바늘구멍을 뚫고 예매에 성공, 그 기쁨을 나에게 표현한 것이다. 그 관계자의 모습을 보며 BTS와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MZ 세대의 특징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간을 포착한 이른바 '짤영상'이 유행하는 것도 사회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종종 아이돌 스타들이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 이상을 연습생으로 보낸 뒤 현재 위치까지 오게 됐다는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어떤 동기부여를 주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게 많은 10대 연습생들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걸까. 스타의 성공 뒤에는 매니지먼트의 중요한 역할이 녹아있을 거다.
예전에 『나이키의 경쟁 상대는 닌테도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용품 업체인 나이키가 게임 업체 닌테도를 경쟁 상대로 지목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나이키는 인터넷 게임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이 증가, 야외 스포츠를 즐기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판단했다. 이는 기업의 존재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동안 KBO리그 구단은 주로 미국 MLB 구단을 벤치마킹했다. MLB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꿈의 리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움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KBO리그와 MLB는 인적 자원은 물론이고 환경에서도 차이가 크다. 육성 쪽만 보더라도 MLB는 각종 트레킹 시스템과 바이오 메카닉, 초고속 카메라 등 최신 장비를 구축한 훈련 환경에서 선수들이 성장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야구 유망주 중에서 적어도 5단계(루키~트리플A)의 마이너리그 승급 경쟁을 이겨낸 선수들이 빅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다.
KBO리그 구단은 최근 전용 구장에 트레킹 시스템을 구축, 과거보다 진일보한 육성 환경을 갖췄다. 그러나 선수 자원을 확보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따른다. 선수가 많지 않으니 1~2단계의 짧은 승급 경쟁을 거치면 1군 무대를 밟을 수 있다. MLB가 비행기로 비료를 살포하는 시스템이라면 KBO리그는 농부가 일일이 비료를 주며 돌보는 환경인 셈이다.
한국 시스템에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선수들을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고, 가족에 버금가는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선수를 경쟁력 있게 키워내기 위해선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프런트의 역량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야구 이외의 곳에서 도움이 되는 포인트가 있다면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이돌 스타를 발굴하고 성장시킨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연습생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고 관리, 성장시키는지 참고하는 것도 육성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SK 와이번스에 몸담고 있을 때 구단은 FA(자유계약선수) 선수들과의 계약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구단 소속의 FA 선수를 모두 잔류시킬 수 없었지만, 대부분 팀을 떠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전력 누수를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선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컸다. 구단에서 헌신한 선수들이 은퇴했을 때 최대한 코치 및 구단 직원으로 제2의 야구인생을 열어주려고 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런 구단의 분위기는 젊은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또한 팀의 결속력이 좋아지는 배경이 될 수 있다.
목표가 있어야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희망이 있어야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목표만 있다고 해서 목표를 향한 지속성이 유지되는 건 아니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길 때 꿈을 실현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KBO리그의 육성관계자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볼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