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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헬스]출산보다 심한 고통 '군발두통'은 '자살두통'…치료법도 제한적
직장인 A(42)씨는 7년 전 봄 환절기에 뒷목이 굳어지면서 안구가 빠질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냥 일반적인 두통이거니 생각했지만 증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형외과·안과·내과 등에서 각종 검사를 받았지만 이상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찾은 신경과에서 '군발두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증상이 생긴 지 4년이나 지나서였다.39세 B씨는 머리 양쪽 통증과 비주기적인 두통 발작 증세의 군발두통을 25년간 겪고 있다. 극심한 통증은 짧으면 한 달, 길게는 석달간 매일 이어지기도 한다. 두통이 사라져도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까지 겪었다. 그는 그동안 안 가 본 병원이 없고 한의원도 수없이 찾아다녔으며, 심지어 민간 신앙에 의지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늘 군발두통이 언제 찾아올지 긴장하며 살고 있다.군발두통은 눈물이나 결막 충혈·콧물·코 막힘·땀 등 자율 신경 증상과 함께 한쪽 머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증상이 집중적이고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특성 때문에 '군발(群發)두통'이라고 불린다. 출산의 고통보다 심해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고 해서 '자살두통'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계절이 변하는 환절기에 주로 발생하는데, 진단이 쉽지 않고, 원인이나 치료법도 명확히 입증된 것이 없어 환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군발두통 환자 수 증가세…증세, 편두통 등과 확연히 차이 군발두통은 10만 명 중 100명 이하가 겪을 정도로 매우 드물지만 환자 수는 증가세에 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군발두통 환자는 2005년 5000여 명에 불과하다가 2016년 1만1125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질환이 생소한 탓에 병원을 찾지 않는 이들을 감안하면 실제 환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다른 원발두통과 달리, 군발두통은 남성에게서 여성 대비 약 4배 정도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평균적으로 20대 후반 무렵부터 증상이 시작되며, 이후 40~60대까지 두통 발작이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군발두통은 원발두통으로 함께 분류되는 편두통이나 긴장형 두통과 증상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편두통·긴장형 두통은 수시간에서 심하면 수일까지 이어지는 반면 군발두통은 10분 이내에 통증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평균적으로 1~2시간 이내 통증이 잦아든다.또, 한 번 발생하면 1~3개월에 걸쳐 거의 매일 두통이 발생하다 수개월에서 수년간은 증상이 전혀 없는 안정기를 갖곤 한다.통증은 새벽과 같은 특정 시간과 봄·가을로 접어드는 환절기 등 연중 특정 계절에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군발두통은 머리 한쪽, 특히 눈과 관자놀이 부위에서 발생하는데, 편두통과 긴장형 두통은 머리 양측에서 통증이 주로 나타난다.군발두통은 두통의 강도가 심할수록 자율 신경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환자의 약 90%는 눈물이 흐르는 증상, 60%는 결막 충혈·코 막힘 등이 동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산보다 심한 고통…우울·불안 장애·자살 충동도 군발두통은 '자살두통'이라는 별칭이 있다. 모든 유형의 두통 중 통증 강도가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실제 군발두통 환자들이 겪는 통증은 통증평가척도(VAS·0~10점 기준)에서 9.3점을 기록, 출산의 고통(7.5점)보다 높아 통증이 매우 극심한 것으로 확인됐다.이에 환자들은 '송곳으로 머리를 찌르는 것 같다' '눈을 도려내는 것 같다' '머릿속이 불타는 것 같다'고 호소한다.조수진 대한두통학회 부회장(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신경과 교수)은 "군발두통 환자들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겪기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언제 다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 우울 장애·불안 장애 등 정서적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조 부회장은 "실제 군발두통 환자들은 긴장형 두통이나 편두통 환자보다 불안감·우울증·스트레스 지수가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해외 연구에서도 군발두통 환자의 우울증 발생 위험이 일반인의 약 3배로 확인돼 환자들이 두통은 물론 정서적인 어려움까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최윤주 대한두통학회 이사(전주예수병원 신경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국내 군발두통 환자의 약 85%는 질환으로 인해 결근이나 업무 능률 저하, 더 나아가 퇴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발두통은 사회생활 등 환자의 삶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다른 질환과 착각…정확한 치료까지 8년 걸려 군발두통은 다른 질환으로 착각해 정확한 진단까지 상당 기간 걸리는 경향이 뚜렷하다.2017년 대한두통학회가 11개 병원에서 국내 군발두통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군발두통이 처음 나타난 연령은 평균 30.7세였지만 이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한 시기는 평균 38.1세였다. 환자가 정확한 치료를 받기까지 약 8년의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김병건 대한두통학회 회장(을지대 노원을지병원 신경과 교수)은 "군발두통은 통증이 매우 심하지만 일반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두통과 달리 지속 시간이 짧고, 눈물·콧물·코 막힘 등의 증상도 동반되다 보니 환자들이 다른 질환으로 착각해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김 회장은 "군발두통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 진통제로 단순히 해결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군발두통이 의심된다면 반드시 신경과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고 했다. 당국 허가 약제 없어…가장 효과적인 산소 흡입 치료도 접근 어려워군발두통은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현재 국내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KFDA)에서 허가받은 약제는 거의 없다.조 부회장은 "미국에서는 미주 신경 자극기나 트립탄 주사·비강 흡입제 등이 미국식품의약국(FDA)을 통해 치료법으로 허가돼 활용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약물 허가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현재 치료는 두통이 시작되었을 때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급성기 치료'와 군발두통이 지속되는 기간(군발기) 동안 두통의 빈도와 강도를 조절해 주는 '예방 치료'로 이루어진다.군발두통은 약 15~180분의 짧고 심한 통증이 특징이어서 빠른 효과를 나타내는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급성기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산소 흡입 치료'다.이 치료는 100%의 산소를 분당 12L로 비재호흡식 마스크를 통해 통증 시작부터 15분간 흡입하는 방식으로, 산소 치료를 받은 78%의 환자가 15분 내 통증 개선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됐다.고농도 산소를 흡입하는 중에 경련 등 산소 독성이 나타날 수 있으나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환자가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산소 치료 중 발생할 수 있는 화재다. 치료 전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주변 물품을 정리하고 치료 중 흡연은 절대 금해야 한다.산소 흡입 치료가 가장 효과적인 급성기 치료법이지만 환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조 부회장은 "현재 신경과 전문의에게 산소 치료에 대한 처방 권한이 없고, 환자의 산소 치료를 위해 정리된 처방전 양식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그는 또 "환자들은 산소 치료에 필요한 장비를 개별적으로 구입해 사용하는데, 국가적인 지원 체계가 미비해 치료비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산소 흡입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산소마스크·코 흡입 호스·조정기·산소가 충전된 산소통 등 여러 장비가 필요하다. 일부 유럽 국가나 일본은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건강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유럽 연구에 의하면 6개월간 1명당 군발두통의 직접 또는 간접 비용은 5963유로(약 770만원) 산소 치료는 334유로(약 43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산소 치료가 어려울 경우 졸미트립탄과 같은 경구용 약제를 사용하는데, 먹는 약은 효과가 늦게 나타나고 완화 효과가 적다는 단점이 있다. 다만, 주사제는 허가되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는 산소 치료의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예방 치료에는 베라파밀 제제나 스테로이드 주사·경구용 스테로이드가 사용된다. 군발두통의 발생 빈도가 감소하거나 중단되면 2주간 치료를 유지한 뒤 점진적으로 감량한다. 흡연·음주 연관…충분한 수면 취해야 군발두통을 유발하는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여러 연구를 통해 흡연과 음주·수면 무호흡증·스트레스 등이 군발두통 발생과 연관있는 것으로 확인됐다.특히 군발기에는 소량의 술도 두통을 유발할 수 있어 알코올 섭취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군발두통 환자의 90%에서 비타민D 부족이 보고되고 있어 주간에 햇볕을 충분히 쬐며 운동하는 것이 도움될 수 있다.조 부회장은 "간혹 환자들 가운데 군발기에는 수면 중 두통이 나타날까 두려워하는데, 군발두통 환자는 수면에 관여하는 송과체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낮다는 보고가 있어 멜라토닌 고용량 요법이 군발두통 환자에게 도움이 되곤 한다"며 "환자들은 평소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오용 기자 kwon.ohyong@jtbc.co.kr
2019.05.07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