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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슈퍼 쌍둥이' 뒤로 숨은 건 누구인가

어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했다. 몰랐다. 죄송하다. 여자 프로배구 간판 스타였던 '슈퍼 쌍둥이' 이재영·이다영(25·흥국생명)이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학폭)'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있고 난 뒤였다. 다수의 피해자가 21가지로 상술한 학폭 내용은 참혹했다. 10여년 전, 그러니까 이재영·이다영이 미성년 시절의 일이다. 그때도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들이 가한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거나 이해받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쌍둥이의 폭력은 둘만의 힘으로 가해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 주위에는 부모가 있었고, 교사가 있었다. 지도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프로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침묵했다. 폭력을 조장했거나 최소한 방관했다. 그런데도 학폭이 있었다는 걸 하나같이 몰랐다고 했고, 그걸 사과했다. 가까이에서 벌어진 폭력을 인지하지 못한 걸 자책(하는 척)했다. 쌍둥이의 중학교 시절 배구부 감독은 17일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운동 끝나고 나선, 기숙사가 2층이니까. 거기서 일어난 건 저는 잘 모르죠. 여자 아이들이다 보니까 제가 거길 올라갈 수도 없고…"라고 말했다. 기시감이 든다. 쌍둥이의 아버지 이주형 익산시청 육상팀 감독은 하루 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전혀 몰랐던 일이 갑자기 터지니 '멘붕'이 왔다. 쌍둥이가 중학교 때 선생님(코치)이 배구부의 숙소를 총괄했다. 그 선생님이 워낙 강인한 분이라 그걸(학교 폭력) 감췄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고 말했다. 이주형 감독은 "선수 생활을 해본 내가 (학폭을 알았다면 쌍둥이를) 가만 안 놔뒀을 것이다. 운동 잘한다고 까불면 안 된다.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사과했다. 지난 10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폭로 글이 올라온 뒤 이재영·이다영은 즉각 사과문을 올렸다. 배구 팬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느끼는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무작위로 올라오는 '추가 폭로' 탓만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일을 많이 겪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최숙현이 지도자와 동료들의 폭언·폭행·가혹행위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지난해 6월이었다. 가해 시점은 쌍둥이의 학폭이 먼저이지만, 사건 후 벌어지는 일들은 거의 똑같다. 고(故) 최숙현과 학폭 피해자들은 가까운 어른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가해자를 두려워했다.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들어준 건 여론이었다. 다시 말하면, 여론이 들끓지 않으면 폭력 피해자가 하소연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최숙현은 죽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알렸다. 그가 숨진 뒤 가해자들은 한동안 억울하다고 맞섰다. 전 국민이 주목하고 사실관계가 밝혀진 뒤에야 끔찍한 가해 사실이 드러났다. 학폭의 피해는 가해자가 '슈퍼 쌍둥이'였기에 주목받을 수 있었다. 이재영·이다영은 육상선수 출신 아버지와 배구선수 출신 어머니(김경희씨)로부터 운동 능력을 물려받았다. 특히 김경희 씨는 1988 서울올림픽 배구 세터 출신으로 배구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뛰어난 재능'과 '든든한 배경'을 가진 자매가 또래에게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우린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력이 권력이 되고, 권력이 실력을 더 강화했으며, 결국 폭력으로 번졌다. '슈퍼 쌍둥이' 학폭은 이 시대의 폭력성을 잔인하게 드러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공정·인권 감수성을 건드렸다. 보통의 경우, 평범한 상대라면 피해 사실을 폭로하기도 어렵다. 어른들의 무심과 방관 때문이다. 지금도 여럿이 이런 일을 겪고 있을 것이다. 2010년 11월 흥국생명에 입단했던 김유리(현 GS칼텍스)는 선배의 심한 괴롭힘에 스무 살에 은퇴했다. 이후 4년 뒤 다른 팀에 입단해 지금까지 뛰고 있다. 학교가 아닌 프로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학폭 폭로 후 흥국생명은 "두 선수의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라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과도한 관심 때문에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재영·이다영 외에) 남은 선수들이 더는 다른 요인으로 방해받지 않았으면 한다"고 읍소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경기력과 우승이 중요했다. 소속팀 선수로 인해 세상이 뒤집어졌는데, 어른들은 코트만 바라보고 있다. 죄송하지만, 몰랐단다. 어른을 믿기 어렵다. 결국 시스템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19일) 시행되는 일명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2차 개정안)'은 ▶체육인에게 인권침해·비리 즉시 신고 의무 부과, 신고자·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직권조사 권한 명시, 조사 방해·거부 시 징계 요구 등 스포츠윤리센터 조사권 강화 ▶가해자에 대한 제재 및 체육계 복귀 제한 강화 ▶상시적 인권침해 감시 확대 및 체육지도자 등에 대한 인권교육 강화 ▶체육계 표준계약서 도입 및 실업팀 근로감독·운영관리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체육계 폭력은 관련법이 없어 벌어진 게 아니다. 지금도 스포츠윤리센터라는 신고기관이 있지만, 피해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호소했다. 과거에도 다른 이름의 기관과 법이 있었다. 다만 어른들의 의지가 부족했던 거다. 문재인 대통령은 "학교부터 국가대표 과정 전반까지 폭력이 근절되도록 각별하게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취임 첫 행보로 17일 스포츠윤리센터를 찾아 이진숙 이사장 등을 격려했다. 황희 장관은 "스포츠윤리센터가 (폭력 예방에) 선제적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법과 제도 등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권력자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통령도 여러 번 당부한 일이 관련 법을 강화하고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시민이 준 힘을 제대로, 제때 사용하지 못한다면 권력자들도 쌍둥이 뒤에 숨는 어른과 다를 게 없다. 김식 스포츠팀장 2021.02.19 06:00
스포츠일반

'고 최숙현 가해자' 김규봉 감독 징역 7년 선고

지도자와 동료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과 관련해 가해자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대구지법 형사12부(이진관 부장판사)는 27일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42) 감독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선수단 내에서 최숙현의 가혹행위를 주도한 주장 장윤정(32)과 김도환(26)에겐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 감독과 장윤정에게는 40시간의 아동학대치료프로그램 수강과 5년 간 아동 관련 취업제한 조치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팀 내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장기간 폭언과 폭행, 가혹행위를 했다. 가장 큰 피해자인 최숙현 선수는 고통에 시달리다 22살의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서 “피고인들이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지만, 최 선수는 그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범행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인격적 모멸감을 느끼게 했고, 비인간적 대우로 인해 피해선수들이 운동을 계속해야 할지 회의감마저 느끼게 했다. 다만, 수사 초기 단계 범행을 부인하던 피고인들이 재판 과정에서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별다른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점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과 선수 두 명은 최숙현을 포함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상습특수상해)하고, 선수들끼리 폭행하도록 지시하고 강요(상습특수상해교사ㆍ아동복지법위반)한 사실이 드러나 재판을 받아왔다. 김 감독은 이와 별도로 해외 전지훈련에 앞서 선수들에게 항공료를 별도로 받아 챙긴 혐의(사기)와 선수단 보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최숙현 부친은 ”형을 가장 무겁게 받아야 할 김 감독에게 검찰 구형(징역9년)보다 2년이 줄어든 형량이 선고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선수단 내에서 ‘팀 닥터’로 불리며 선수들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일부 여성 선수들을 유사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운동처방사 안주현 씨는 대구지법 형사11부(김상윤 부장판사)로부터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안 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2021.01.29 11:49
스포츠일반

고 최숙현 가혹행위 가해자에 중형 선고

지도자와 동료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과 관련해 가해자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대구지법 형사12부(이진관 부장판사)는 27일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42) 감독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선수단 내에서 최숙현의 가혹행위를 주도한 주장 장윤정(32)과 김도환(26)에겐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 감독과 장윤정에게는 40시간의 아동학대치료프로그램 수강과 5년 간 아동 관련 취업제한 조치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팀 내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장기간 폭언과 폭행, 가혹행위를 했다. 가장 큰 피해자인 최숙현 선수는 고통에 시달리다 22살의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서 “피고인들이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지만, 최 선수는 그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범행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인격적 모멸감을 느끼게 했고, 비인간적 대우로 인해 피해선수들이 운동을 계속해야 할지 회의감마저 느끼게 했다. 다만, 수사 초기 단계 범행을 부인하던 피고인들이 재판 과정에서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별다른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점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과 선수 두 명은 최숙현을 포함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상습특수상해)하고, 선수들끼리 폭행하도록 지시하고 강요(상습특수상해교사ㆍ아동복지법위반)한 사실이 드러나 재판을 받아왔다. 김 감독은 이와 별도로 해외 전지훈련에 앞서 선수들에게 항공료를 별도로 받아 챙긴 혐의(사기)와 선수단 보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최숙현 부친은 ”형을 가장 무겁게 받아야 할 김 감독에게 검찰 구형(징역9년)보다 2년이 줄어든 형량이 선고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선수단 내에서 ‘팀 닥터’로 불리며 선수들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일부 여성 선수들을 유사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운동처방사 안주현 씨는 대구지법 형사11부(김상윤 부장판사)로부터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안 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2021.01.29 11:48
경제

故최숙현 폭행 의혹 팀닥터, 영장심사 출석…"모든 혐의 인정"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소속 고(故) 최숙현 선수 등 전·현직 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팀닥터(운동처방사)’ 안모(45)씨의 구속 여부가 이르면 13일 중 결정된다. 안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이날 오후 2시 30분 대구지방법원에 출석했다.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는 이르면 이날 중 결정될 전망이다. 안씨는 지난 10일 대구에서 경찰에 체포된 후 그간 경북 경주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아왔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전·현직 선수를 폭행하고 의료인이 아니면서 의료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날 오후 1시 40분쯤 대구지법에 나타난 안씨는 모자에 마스크를 착용한 데다 운동복에 달린 모자를 써 얼굴을 대부분 가린 상태였다.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안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안씨는 “폭행 등 모든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고 답했고,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전·현직 선수들을) 성추행한 것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혐의는 다 인정한다”고 했고, “왜 자신을 의사라고 속였느냐”는 물음에는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안씨는 최 선수를 비롯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소속 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선수가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녹음한 녹취록에는 안씨가 최 선수를 수 차례 폭행하는 정황이 담겨 있다. 안씨는 폭행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서를 대한체육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안씨는 최 선수의 사망 사흘 전인 지난달 23일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조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자필 진술서를 이메일로 제출했다. 진술서에는 ‘뉴질랜드 전지훈련 중 음주 상태로 최 선수의 뺨을 때렸지만 폭행 사유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별개로 경주시체육회는 지난 8일 안씨를 성추행·폭행 혐의로 검찰에 추가 고발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2020.07.13 15:33
스포츠일반

스물 셋 선수가 목숨으로 던진 질문…반복할 것인가, 끊어낼 것인가

"이번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고 최숙현 선수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7시간에 걸친 기나긴 회의 끝에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안영주 위원장이 회의실을 나선 시각은 자정이 가까운 6일 밤 11시 경이었다. 안 위원장은 결과를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가해자들의 징계 소식을 전한 뒤, 무거운 목소리로 "이것이 고인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라는 말과 함께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을 맺었다. 성적 지상주의와 체육계 서열 문화 등 악습이 빚어낸 지옥과 같은 현실로 인해 고 최숙현 선수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지 꼭 열흘 째 되는 날이었다. 안 위원장을 포함해 법조인과 대학교수 등 6명으로 구성된 대한철인3종협회 공정위원들은 이날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20년 제4차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고(故) 최숙현 선수 사망과 관련해 전 소속팀인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내 가혹 행위를 조사하고 징계를 논의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규봉 경주시청 감독과 주장 장윤정, 그리고 남자 선배 한 명이 공정위에 참석해 소명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이들의 기나긴 소명에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김 감독과 장윤정 영구 제명, 남자 선배 자격 정지 10년이다. 이들은 오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의 트라이애슬론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 분야 인권 침해 관련 긴급 현안 질의에도 증인으로 나서 자신들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국회에서 고인에 대한 미안함은 찾아볼 수 없는 기색으로 "그런 적 없다", "폭행한 일이 없으니 사과할 일도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던 이들은 공정위 조사에서도 일관된 자세를 취했다. 당초 관계자들도 오후 8시 경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공정위가 밤 11시에나 끝난 이유도, 이들이 공정위가 확보한 증거와 상반된 진술로 '버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안 위원장은 "회의가 길어진 이유는 공정위가 확보한 진술, 녹음파일, 녹음영상 등 증거와 징계 혐의자들의 진술이 상반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이들이 자신의 혐의를 계속 부인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발뺌으로 버티기엔 증거가 너무나 명확했다. 안 위원장은 "고 최숙현 선수의 진술 뿐 아니라 그와 일치하는 다른 진술, 여러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이들의 혐의가 매우 중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의 진술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으며 의도적으로 피해 사실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근거다. 반대로 가해자들의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졌다는 판단이다. 안 위원장은 "세 명의 진술 내용과 패턴이 같아 조력을 충분히 받은 상태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해온 것으로 보였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가 협회 공정위가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위 징계인 영구 제명, 그리고 사실상 선수 생활 끝을 의미하는 자격 정지 10년이 내려졌다. 하지만 공정위의 징계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자신들의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한 가해자들이 징계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이들은 이번 공정위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대한체육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아직 사법기관의 수사도 남아있다. 대구지검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이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지원팀을 별도로 만들어 유족 심리치료와 범죄피해 구조금, 생계비 등을 지원하고 법률 지원도 할 방침이다. 공정위에서 징계를 내릴 수 없었던 소위 '팀 닥터'라 불리는 안 모씨에 대한 수사와 그에 따른 징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체육계의 적극적인 변화 의지다. 안 위원장의 말대로 고인이 자신의 목숨으로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알면서도 쉬쉬하고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다급하게 봉합한 뒤 묻어두고 잊어버리는 일을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끊어내기 위해 뿌리부터 뽑아낼 것인지. 물론 그러기 위해선 불과 1년 반 전 조재범 사건에서 한 치도 개선되지 않은 지금 상황부터 돌이켜 봐야 한다. 경주시나 경찰,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물론 협회와 스포츠인권센터, 대한체육회 등 체육계조차 고인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점을 생각하면 가해자들에 대한 체육계의 수위 높은 징계는 너무 늦은 첫 걸음에 불과하다. 가해자들의 법적 처분은 사법부에서 진행하겠지만, 이번 사건의 책임을 개인의 처벌로 마무리 짓고 끝내버린다면 또다시 제자리를 맴도는 셈이 된다. 제도적 장치와 시스템 변화 등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되겠지만, 실효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현장을 바꿔나가는 건 결국 체육계의 몫이다. 이대로 같은 비극을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악습의 고리를 끊어낼 것인지. 물론 답은 이미 나와있다. 정답을 향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풀어나갈 지 그 과정만 남았을 뿐이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7.08 06:00
경제

최숙현 숙소도 '지옥'···팀닥터 작년까지 근처서 살았다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경기)팀 고(故) 최숙현 선수는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도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없었다. 최 선수 유족이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는 팀닥터(운동처방사)가 최 선수의 숙소 바로 인근에 살고 있었던 탓이다. 6일 최 선수 유족과 체육계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팀닥터는 최 선수가 부산시청으로 소속팀을 옮기기 직전인 지난해까지 경북 경산시에 있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숙소 바로 인근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주시체육회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팀닥터가 최 선수 숙소 근처 원룸에서 작년 말까지 살았던 것으로 전해들었다. 팀 숙소에 드나들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 선수 부친과 친구들도 같은 증언을 했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경주에 50m 길이의 수영장이 없어 경산시 경북체육고등학교 수영장 등에서 훈련을 했다. 이 때문에 숙소도 근처 원룸을 구해 사용했다. 경주시에서 매년 지원한 9억원 정도의 보조금에서 월세를 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시 실업팀에서까지 팀닥터가 최 선수 주변에 있었던 셈이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폭행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확대되자 ‘제2, 제3의 최숙현’도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최 선수처럼 자신도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렸다는 이들의 추가 폭로가 나오면서다. 경북지방경찰청은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에 폭행 추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2개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수사 중이다. 최 선수 외에도 팀 내에 15명이 피해 사실을 경찰에 증언했다고 한다. 경찰은 경주시체육회로부터 최 선수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 감독이 활동했을 당시에 있었던 전·현직 선수 명단을 확보했다. 김 감독이 근무한 2013년부터 최근까지 활동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전·현직 선수는 27명이다. 이 중 10명의 선수는 경기에 나갈 때만 김 감독과 함께 임시로 훈련했기 때문에 별다른 접촉이 없어 수사 대상에서 빠졌다. 경찰은 명단을 토대로 팀 선수들의 피해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 현재까지 15명 정도가 김 감독이나 팀닥터 등으로부터 폭행당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는 한 선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도 많이 맞았다. 이유 없이 때리진 않았지만 이유가 있더라도 때리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철인계 중에선 우리 팀이 유일하게 맞는 팀이었다”고 말했다. 최 선수의 부친도 “폭행 정황이 담긴 녹취 자료가 다른 휴대전화에 더 있다. 필요하면 복구할 것”이라고 했다. 최문태 경북경찰청 강력계장은 “최 선수 사건 외에 팀 내에서 폭행 등 추가 피해가 있는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며 “최 선수가 생전에 고소장을 낸 곳이 검찰이어서 초기엔 검찰로부터 전해받은 고소장을 토대로 수사를 했다면, 이번엔 범위를 한정짓지 않고 동료 선수들이 당한 폭행 피해까지 함께 수사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구지검은 기존 수사팀을 확대 개편했다. 양선순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을 팀장으로 하고 아동학대 전담 검사 4명, 수사과 전문 수사관 5명 등 총 14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을 편성했다. 특별수사팀에 피해자지원팀을 마련해 유족 심리치료와 범죄피해구조금·생계비·장례비 지원, 각종 법률 지원도 병행할 방침이다. 경상북도도 나섰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6일 “‘죄를 밝혀 달라’는 메시지를 남길 만큼 어린 선수가 겪어야 했을 고통과 괴로움을 생각하면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이 앞선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와 협조해 비위 관계자에 대해 민·형사상 엄중한 책임을 물어 고인의 억울함을 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행정부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스포츠인권 침해 조사단’을 꾸렸다. 도내 419명의 모든 실업팀 선수를 대상으로 폭행·폭언 등 인권침해 긴급 실태조사를 벌인다. ‘스포츠인권 콜센터’도 별도로 만들 방침이다. 관련기사 [단독]"故최숙현, 중3때부터 그놈 손아귀에…매일 온몸에 멍"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과 선수들은 폭행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경주시청팀 감독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날 긴급 소집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원회 현안질의에 나와 “폭행과 폭언 사실이 없느냐”는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 물음에 “감독으로서 관리감독, 선수폭행이 일어난 부분을 몰랐던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드리겠다”고 말했다. 팀 감독은 “관리감독만 인정하는 것인가. 폭행과 폭언에 대해선 무관하다는 것인가”라는 질의에 “네”라고 답했다. 팀 주장과 최 선수의 선배 선수도 “(폭행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앞서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부산시청 트라이애슬론 직장운동부 숙소에서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의 죄를 밝혀달라’는 문자메시지를 가족에게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북체육중학교와 경북체육고등학교를 졸업한 최 선수는 2017년과 2019년 경주시청 직장운동부에서 활동하다 올 초 부산시청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산·안동=김정석·백경서·김윤호 기자kim.jungseok@joongang.co.kr 2020.07.07 08:13
스포츠일반

철인3종 가혹행위 의혹 팀닥터, 선수 사비로 임시고용한 인물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여자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고 최숙현 선수가 전 소속팀의 감독과 팀 닥터 또 선배한테서 상습적인 폭행과 가혹 행위를 당해 왔다고 토로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경북 경주시체육회가 2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감독을 직무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 2명도 청문 대상이다. 의아한 건 폭행에 연루된 것으로 전해진 팀닥터는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수단 소속이 아니어서다. 대한철인3종협회에 따르면 해당 팀닥터는 선수단이 전지훈련 등을 할 때 임시 고용한 물리치료사다. 선수들이 사비를 내고 고용한 인물이다. 팀닥터는 경주시청 소속은 아니지만, 군인올림픽에 참가하는 국군대표팀 트라이애슬론팀의 팀닥터를 맡는 등 경상도 일대 팀에는 영향력을 가진 인사로 알려졌다. 한 트라이애슬론 관계자는 "감독이 팀닥터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감독보다 나이도 많고, 영향력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선수단에 정식으로 속한 스태프가 아니면서도 가혹행위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팀닥터와 관련 금전적 문제도 제기됐다. 최 선수는 생전에 "팀닥터는 2015년과 2016년 뉴질랜드 합숙 훈련을 갈 당시, 정확한 용도를 밝히지 않고 돈을 요구했다. 2019년 약 2개월간의 뉴질랜드 전지훈련 기간에는 심리치료비 등 명목으로 고소인에게 130만원을 요구하여 받아 간 사실도 있다"며 "(영향력이 있는) 팀닥터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고, 정확한 용도가 무엇인지를 더는 물을 수 없었다. 팀닥터가 요청하는 금액만큼의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고인과 고인 가족 명의 통장에서 팀닥터에게 이체한 총액은 1500여만원이다.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오전 부산시청 직장운동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초 팀을 옮기고 대한체육회에 진정하고 경찰에 고소하는 등 수 차례 도움을 청했지만, 달라진 게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는 1일 스포츠인권센터가 지난 4월8일 고 최숙현 선수와 관련된 폭력 신고를 접수, 피해자의 연령과 성별을 감안, 여성 조사관을 배정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현재 해당 사건은 대구지검으로 이첩돼 조사중이며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할 계획이다. 경찰은 지난 5월 29일 감독에게 아동복지법 위반, 강요, 사기, 폭행 혐의를, 팀닥터와 선배 선수 2명에게 폭행 혐의를 각각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대한철인3종협회는 6일 스포츠 공정위원회를 열고 징계 절차를 밟는다.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20.07.0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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