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현장에서] "위 아 홍콩!" 부산에 울려 퍼진 홍콩의 외침, 그들만의 축구 전쟁
"위 아 홍콩!" 관중석 북측 두 구역에 걸쳐 자리를 잡은 홍콩 응원단이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머플러를 꺼내 들었다. '홍콩을 위해 싸우자(FIGHT FOR HONG KONG)'는 머플러를 양 손으로 들어올려 활짝 펼친 홍콩 응원단 사이로 커다란 현수막이 펴졌다.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HONG KONG IS NOT CHINA)', '광복홍콩, 시대혁명' 등 정치적 문구를 담은 플래카드가 곳곳에 펼쳐졌고 홍콩의 국기인 양자형기 옆에 홍콩 반환 이전에 사용하던 영국령 홍콩 기가 나란히 펄럭였다. '경기장 내 정치적 문구 및 플래카드 반입이 불가능하다'는 공지에 따라 주최측인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고 경호원들도 분주하게 해당 플래카드를 압수했다.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마지막 날인 18일, 한일전에 앞서 열린 홍콩과 중국의 경기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이날 경기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에 처해있는 대회 4개 참가국이 서로 맞붙는 대진표가 짜여져 축구팬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큰 관심을 모았다. 특히 첫 번째 경기는 최근 민주화 시위로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홍콩과 그 상대 중국이 치르는 경기라 양국 축구팬들은 물론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1997년 영국이 홍콩 주권을 반환한 이후 벌써 20년 넘게,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도 두 나라는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 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송환법 문제가 도화선이 되며 홍콩에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어 중국과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 반 년 넘게 민주화 시위를 벌이고 있는 홍콩은 이번 대회에서도 정치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발산했다. 대표적인 행동이 바로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이 나올 때 등 돌리고 선 채 야유하는 것이다. 이날도 홍콩 응원단은 관중석에 입장한 뒤 시위대가 즐겨 부르는 '홍콩에 영광을'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위 아 홍콩"을 외치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의용군 행진곡'이 나오자 약속이나 한 듯 야유를 퍼부으며 등을 돌렸다. 간혹 등을 돌리는 대신 손을 높이 들어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욕을 하는 팬들도 있었다. 국제대회 때마다 자주 벌어지는 풍경으로, 이 때문에 홍콩축구협회가 계속 벌금을 내고 있지만 홍콩 국민들의 반중 정서가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그라운드 안은 선수들이 펼치는 경쟁의 장이지만, 그라운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혹시 모를 충돌을 막기 위해 대한축구협회는 이날 경기 경찰기동대의 숫자를 세 배 증원해 240명까지 늘리고, 사설 경호원의 숫자도 늘려 640명을 배치했다. 관중석도 분리했고, 중국어와 광둥어에 능통한 자원봉사자들을 검색대에 배치해 철저하게 반입 물품을 검사했다. 중국 응원단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 경기장에 입장했다. 그러나 홍콩과 달리 반대쪽 남측 관중석에 자리한 중국 응원단의 숫자는 스무 명 남짓으로 적었다. 홍콩 응원단이 쉴 새 없이 북을 치며 "위 아 홍콩"을 외치고 야유를 퍼붓는 동안 중국 응원단은 특유의 '짜요' 응원조차 없이 조용히 경기를 관망했다. 간간히 중국의 공격이 홍콩 골대를 위협하면 소리 높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날 응원전에선 '인해전술'을 앞세워 어디서나 위협적이던 중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려와는 달리 홍콩-중국전은 철저한 조치 속에 큰 충돌 없이 끝났고 경기는 중국의 2-0 승리로 마무리됐지만, 간절한 메시지를 담은 응원전에선 홍콩의 완승이었다. 부산=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19.12.19 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