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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Epi-Life] 무정치의 세상에 살 수밖에 없는 그들

저는 맛칼럼니스트입니다. 음식과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직업입니다. 어쩌다가 방송사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장기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저를 연예인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연예인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냥 글쟁이입니다.) 그 덕분에 많은 연예인과 친해졌고 그들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저는 SNS에서 정치적 입장을 숨긴 적이 없습니다. 제가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가기 전부터 정치적이었고,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나가면서도 정치적이었습니다. 지금도 정치적이고, 죽을 때까지 정치적일 것입니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정치를 하는 국가입니다. 여러분이 정치적 의견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하며 살아가듯이 저 역시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여러분과 똑같이 그러고 사는 겁니다.연예인은, 그런데,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격 살인에 직업 박탈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예인이 정치적 의견을 내면 정치적으로 반대편이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방송에서 하차시키기 위해 인터넷에 악플을 다는 것은 기본이고 떼를 지어 여기저기에 항의 전화를 합니다. 연예인에게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데, 이미지에 심대한 손상을 입혀서 아예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녀사냥입니다. 이런 일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언론은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 오히려 마녀사냥을 부추깁니다.그래서 연예인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숨김없이 대중 앞에서 말하는 연예인도 존재합니다. 그분들은 정말이지 큰 용기를 내고 있는 겁니다.연예인은 공인이니까 정치적 견해를 밝히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공인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게 공적인 일이냐 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으면서 하는 일’이라고 해석하면 적절할 것입니다. 연예인은 세금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명하다고 공인인 것은 아닙니다.연예인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제게 한 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우리라고 왜 정치적 입장이 없겠어요. 아시다시피, 모든 인간은 정치적이잖아요. 우리는 말을 못 할 뿐이에요. 아니지요. 우리 사회가 말을 못 하게 해요. 한마디라도 하면 난리가 나잖아요. 난리가 나면 우리는 일을 못 해요. 우리 사회가 ‘너희는 조용히 해라’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무정치의 세상에 삽니다.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은 없어요.” 외국은 사정이 어떤지 굳이 알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정만 살피면 됩니다.모든 국민에게 당연하게 주어져야 하는 표현의 자유가 일부 직업인에게는 억압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을 해야 합니다.“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 가수 임영웅의 이 말을 정치적 논리로 따지는 것 말고 또 하나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정치적 발언을 하면 밥그릇을 잃을 수도 있는 한국 연예계의 독특한 현상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윤리인 양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임영웅은 “저는 노래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말로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의 곤란한 입장을 저는 이해합니다. 연예인은 무정치의 세상에 살아야 직업을 유지하는 데에 유리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저도 압니다. 그러나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고, 연기를 하는 사람이 라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배달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치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민주공화국은 그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간에 모든 국민이 정치를 하는 국가입니다.무정치의 세상에 살겠다는 그들도 민주공화국에서 억압과 차별 없이 함께 살아야 하는 국민이 라는 점을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무정치의 세상을 유지하려면 “제가 정치인인가요?” 같은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 자체가 매우 정치적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무정치의 세상에 살겠다는 그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묻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격 살인과 생계 박탈의 마녀사냥을 당하기보다는 정치적 진공 상태에서 사는 것이 더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외부 칼럼은 일간스포츠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01.02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익숙한 것들과의 작별

저는 고양이 집사입니다. 주인님 이름은 심바입니다. ‘라이온 킹’의 어린 왕자처럼 용맹하라고 붙인 이름인데, 집사인 저한테만 용맹하지 세상에 이런 겁보가 또 없습니다. 거실에 밀림의 왕자처럼 거만하게 퍼질러져 있다가 초인종 소리가 나면 우다다닥 쏜살같이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침대 밑으로 꼭꼭 숨습니다. 집안에 새 물건이 들어오면 혹시 자신을 위협하는 것은 아닌지 샅샅이 살핍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서 자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인간도 고양이처럼 영역 동물의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양아치만 나와바리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한 영역 다툼으로 인생의 거의 전부를 보냅니다. 한번 차지한 영역은 죽을 때까지 자기 영역이기를 바라고, 그래서 자기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싫어합니다.변하지 않는 것에 특별한 가치를 두려는 인간의 마음은 영역 동물의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별이 아름다운 것은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변함없이 밤하늘에서 반짝이기 때문입니다.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늘 그 자리에 산과 바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별과 산과 바다처럼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한결같기를 바랍니다.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와 거기에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 반지를 끼워준 사람이 금이나 다이아몬드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우리의 희망 사항이지, 별도 산도 바다도 변하고, 다이몬드와 금도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변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 자연법칙입니다. 이 자연법칙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니까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을 하고 거기에 의미를 붙일 뿐입니다.변화에 대한 적응은 대체로 ‘나이순’입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변화에 대한 적응이 쉽습니다. 어릴 때에는 조금의 변화에도, 심바처럼, 기겁을 합니다. 엄마 얼굴이 잠시 안 보일 뿐인데도 엄마가 영원히 사라진 줄 알고 자지러집니다. 유년기의 이사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익숙해진 것과 이별하는 것은 어린 나이에는 참 어렵습니다.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나이 육십을 넘기면 세상의 변화 따위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만도 한데, 아직까지 작은 일에도 심바처럼 놀라고 겁을 먹고 또 숨습니다. 지킬만한 것도 별로 없는 작은 직업적 영역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우주적 고민을 합니다.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것은, 영역 동물 인간의 본능입니다.‘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제가 진정한 글쟁이이면 이런 문장을 툭툭 적어내어야 합니다.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잘 살아지지가 않으니 그런 문장을 짓지 못합니다. 저는, 세상에 또 없는 겁보 심바처럼, 영역 동물 인간의 본능에 어쩌지를 못합니다.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버렸다고 투덜거리는 소시민의 위대한 전통 안에서 저는 그렇게 살아갑니다.‘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이 ‘반드시 그렇게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하여도 우리는 익숙한 것들과 수시로 작별을 하며 살아갑니다. 예전에 익숙했던 것들을 하나씩 나열을 하면 우리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작별의 삶을 살았는지 놀라게 될 것입니다.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았던 사람이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도 그럴 것입니다.익숙한 것들은 현재적 가치를 기준으로 분류됩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과 수시로 작별을 하였고 그때의 익숙한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안 할 뿐입니다. 혁명이 안 되었는지는 기억을 못 하지만 심바는 귀엽습니다. 2024.08.22 06:55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개념부터 잡고 다시 합시다

“자자, 이러지 말고, 개념부터 다시 잡아봅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개념을 분명히 하고 토론을 하자고요.”토론을 하는데 서로 결이 맞지 않는 말이 떠돌면 토론 대상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달라 그럴 수가 있다고 의심을 해야 합니다. 이때의 처방은 개념부터 확인하는 것입니다. 가령, 자유에 대한 토론이라고 한다면, 토론자들에게 “자유란 무엇이지요?” 하고 질문을 하여 각자가 신념화하고 있는 자유에 대한 개념부터 확인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자유라는 한 단어를 토론자들이 각각 다른 개념으로 쓰고 있다면 토론을 벌인다기보다는 웅변 대회를 열고 있다고 하는 게 적절할 것입니다.토론이 가장 활발한 영역이 정치판이기는 합니다만, 일상에서도 우리는 수시로 토론을 합니다. 책 읽고 토론하고, 영화 보고 토론하고, 음악 듣고 토론하고, 심지어 화장실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토론을 합니다. 일상의 토론은 각자의 취향이 보태어져 있는 토론이고 또 토론의 결과 자체가, 정치 토론과는 달리, 공공의 성격을 띄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볍게 각자의 의견을 내고 확인하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음식 토론도 취향 토론이라서, 그러니까 각자의 입맛을 존중하는 선에서 끝을 내어야 하는 토론이라서, 상대의 의견에 정색을 하며 논박을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맛칼럼니스트입니다. 음식 전문 글쟁이입니다.음식에 대한 저의 품평은 취향 품평이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취향 품평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리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쇠고기 마블링 등급제’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1.5kg 육계로 튀기는 치킨’처럼 음식에 대해 정색을 하며 논쟁을 벌여야 합니다. 이건 저의 직업적 의무입니다.“요리에 대한 개념부터 잡자.” 1992년 음식 전문 글쟁이가 되겠다는 뜻을 굳히면서 제일 먼저 한 생각입니다. 요리사들을 만나면 이 질문부터 하였습니다. “요리란 무엇인가요?” 실로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가장 인상에 남은 요리 개념은 이제는 저 세상에 있는 임지호의 것입니다. “요리란 자연을 전달하는 행위이다.” 임지호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이 둘을 소통하게 하려고 노력한 요리사입니다.요리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레시피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보편적 원리를 찾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 문장이 제 머리에서 만들어졌습니다.“요리란 식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극소화하는 행위이다.”식재료를 다듬어서 자르고 누르고 깨뜨리고, 다지고 묵히고, 삶고 데치고, 굽고 볶고 지지고 양념하는 등등 일체의 행위에서 제가 발견한 보편적 관념, 즉 요리에 대한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어디까지나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요리 개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요리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사상의 자유가 있습니다. “요리란 식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극소화하는 행위이다”는 개념을 적용하여 요리를 품평하려면 식재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식재료를 알려면 식재료 산지에 가야 합니다. 농수축산물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전국을 두루 돌면서 취재하였습니다.저에게도 취향이 있습니다. 어릴 때에 먹었던 음식에 대한 강력한 취향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맛칼럼니스트로서 말을 할 때에 제 취향은 제 머리에서 의도적으로 지웁니다. 식재료의 선택과 그에 맞는 조리법을 적절하게 이용했는지만 봅니다. 제 취향에 안 맞아도 맛있다고 평가를 하고, 제 취향에 맞아도 맛없다고 평가를 합니다.선거는 정치 토론이 크게 열리는 장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 주권을 자신에게 위임해달라고 정치 토론을 벌입니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인 취향 토론과 다릅니다. 적어도 민주공화국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개념조차 없는 정치인은 토론을 통해 걸러져야 합니다. 동서로 확연하게 갈라진 총선 결과를 보며 아직도 정치판이 취향 토론의 장인가 싶어 입맛이 씁니다. 2024.04.25 06:59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글쟁이에서 크리에이터로 변신하는 일에 대해서

이 연재물의 제목 ‘황교익 Epi-Life’는 제 유튜브 채널 이름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쓰는 칼럼과 제 유튜브의 콘텐츠가 지향하는 바의 결이 같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황교익 Epi-Life’라는 명칭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제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에 책상에는 PC가 없었습니다. 취재 수첩과 볼펜, 그리고 원고지가 전부였습니다. 어느 해에 총무부에서 PC를 책상에 놓아주며 학원에 가서 도스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한두 해 만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될 지식을 학원까지 가서 배웠습니다.네이버 블로그를 보며 저는 환호했습니다. 자본이 필요 없는 언론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장 생활과는 별도로 ‘블로그질’을 열심히 하여 파워블로거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그러나 블로그에 올려진 내 글과 사진이 네이버의 사업에 도움을 줄 뿐이라는 현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페이스북이 등장하였습니다. 열심히 페이스북에서 놀았습니다. 이젠 유튜브….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합니다.유튜브는 이전의 SNS와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글과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휴대폰이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고 해서 누구나 유튜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촬영과 편집에 대한 기본기를 갖추어야 유튜브 세상에서 생존할 수가 있습니다.저처럼 얼굴이 좀 알려진 사람은 유튜브 세상에서의 생존이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방송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유튜브에 출연만 하면 됩니다. 저도 처음에 그렇게 유튜브에 진입을 했습니다. 채널 이름이 ‘황교익TV’였습니다. 콘텐츠 기획은 제가 주도했지만 촬영과 편집, 그리고 채널 운영은 전문 인력이 하였습니다.유튜브 채널 운영자를 크리에이터라고 합니다. 창작자라는 뜻입니다. 동영상 콘텐츠를 기획·촬영·편집하는 사람이 크리에이터입니다. 황교익TV에서 저는 유튜브 출연자이지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건 아닌데….황교익TV를 개점휴업한 상태에서 1년을 고민했습니다. 크리에이터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 제가 고등학생일 때에 글쟁이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 정도의 깊은 고민이었습니다. 제 성격에 적당히 하다 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동영상 촬영은 제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기자 시절에 사진 공부를 한 덕입니다. 제 저작물에 실린 사진은 모두 제가 찍은 것입니다. 동영상은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됩니다. 문제는 편집입니다.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야 하는데, 이건 제게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아주 단순한 편집 프로그램이 있기는 합니다. 그만큼, 결과물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프로는 무엇을 쓰나 살펴보았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편집도 그것으로 한다고 소문이 난 프로그램을 선택했습니다. 유료 결제를 하고 다운을 받아서 프로그램을 열어보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편집 용어 자체가 난생 처음 접하는 것이었습니다.식구가 여행 간다고 며칠 동안 집을 비웠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노트북도 켰습니다. 컴퓨터 화면에는 편집 프로그램 강좌를 털어놓고 노트북으로 이를 따라했습니다. 아침 먹고 공부하고 점심 먹고 공부하고 저녁 먹고 또 공부하고. 사흘째 밤에는 코피가 터졌고, 그렇게 코피가 터지고 나니까, 편집 프로그램의 논리를 깨닫게 되고, 그 다음은 술술 풀려나갔습니다.황교익 Epi-Life 콘텐츠에는 맨 뒤에 ‘촬영·편집 황교익’이라는 자막을 붙입니다. 글과 사진으로 먹고살 때에 ‘글·사진 황교익’이라고 적었던 것과 같은 일입니다. 유튜브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지난주에 구독자가 10만 명이 되었습니다. 글쟁이에서 크리에이터로 직업을 바꾸는 데에 성공을 한 것이라고 여깁니다.유튜브 세상도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AI가 뭔 사고를 칠 것입니다. 그때에는 또 밤을 새워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나에게 맞추어진 세상은 없습니다. 나를 끊임없이 세상에 맞추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2024.03.28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메밀국수와 그 사촌들의 계통도

국수에 대한 책을 썼다며 저를 찾아온 음식 전문 기자가 있었습니다. 목차를 보니까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하나로 묶고 막국수는 따로 떼어놓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평양냉면은 면 재료가 뭐지요?”“메밀이오.”“함흥냉면은 면 재료가 뭐지요?”“감자 아니면 고구마 전분입니다.”“막국수는 면 재료가 뭐지요?”“메밀이오.”“평양냉면과 막국수는 메밀국수이고, 함흥냉면은 감자 또는 고구마 전분 국수이지요. 음식은 음식 명칭이 아니라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서 분류를 해야 바른 계통도를 그릴 수가 있습니다. 평양냉면과 막국수는 하나로 묶여야 하고, 함흥냉면은 따로 떼어놓는 게 맞습니다.”선배한테 칭찬을 들으려고 왔을 것인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지적질’밖에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한 묶음으로 말하고 막국수는 평양냉면과 무관한 듯이 따로 분류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오랜 습관입니다. 일반인이 그리 말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것인데, 음식 전문 기자의 책이니까 따져야 합니다. 음식 전문 글쟁이이면 적어도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음식의 계통도를 그려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막국수가 평양냉면과 한 묶음이고 이 묶음에서 함흥냉면을 빼내는 게 뭔 대단한 일인가 싶겠지만, 음식을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분류를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인문학적 상상력’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메밀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재배가 됩니다. 거친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무엇보다도 재배 기간이 짧습니다. 봄에 심은 벼가 장마와 태풍으로 다 죽었을 때에 그 논에다 다시 메밀을 심어서 거둘 수가 있습니다. 통일벼로 쌀 자급률 100%를 이루기 이전에 메밀은 우리 민족의 주된 ‘구황작물’이었습니다.메밀은 글루텐이 없어 반죽을 양쪽에서 잡아 늘리는 방식의 국수는 어렵지만, 반죽을 넓게 펴서 말아 칼로 썰거나, 반죽을 국수틀에 넣어 누르는 국수는 가능합니다. 메밀국수는 따뜻한 물에 넣으면 금방 풀어집니다. 그래서 메밀국수는 차게 먹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메밀국수에 냉면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메밀은 전국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메밀국수로 내는 냉면도 전국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냉면에 평양이라는 지명이 붙게 된 것은, 전국의 여러 냉면 중에 평양 식당에서 파는 냉면이 맛있었기 때문입니다. 1994년 북한이 발행한 ‘조선의 민속전통’에는 “냉면은 평양과 진주가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고 쓰여 있습니다. 막국수라는 이름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전국의 여러 냉면 중에 강원도의 냉면에 유독 막국수라는 별칭을 붙여 부르게 된 시기는 1960년대일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 1980년대 향토음식 붐과 강원도 여행 붐이 겹치면서 강원도 막국수가 번창하였으며 그 무렵에 냉면과 막국수는 서로 계통이 다른 음식인 양 자리를 잡게 됩니다.함흥냉면은 원래 농마국수였습니다. 농마는 녹말, 즉 전분입니다. 일제강점기 개마고원에서 재배된 감자가 전분으로 가공되어 함흥 지역으로 집산이 되었고, 누군가 국수틀에 감자 전분 반죽을 넣어 누르면서 농마국수가 탄생했습니다.농마국수가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서의 일입니다. 전쟁 이후 사람들이 평양에 갈 수 없게 되자 서울의 냉면옥들이 평양 마케팅을 하게 됩니다. 너도나도 ‘평양냉면’이라고 간판을 내건 것이지요. 평양냉면 간판으로 장사가 잘되는 것을 본 농마국수 식당들은 함흥냉면이라는 간판을 걸게 됩니다. 이어서 부산 밀면 이야기도 나와야 하겠는데, 지면 관계상 다음에.메밀국수와 그 사촌들의 계통을 그려나가는 일은 한민족이 겪었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 과정의 고통을 그려나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음식 이름만 쫓아가다 보면 음식의 본질과 우리의 삶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2024.01.04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죽을힘을 다한 후의 희열...몰두의 맛

몰두는 ‘어떤 일에 온 정신을 다 기울여 열중함’이란 뜻의 단어입니다. 오래전에 성석제가 몰두에 대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개의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가 있다. 진드기는 머리를 개의 연한 살에 박고 피를 빨아먹고 산다. 핀셋으로 살살 집어내지 않으면 몸이 끊어져버린다. 한번 박은 진드기의 머리는 돌아 나올 줄 모른다. 죽어도 안으로 파고들어 가 죽는다. 나는 그 광경을 ‘몰두’라고 부르려 한다.”'沒頭'. 빠질 몰, 머리 두.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만큼 집중하는 것이 아니면 감히 “몰두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개의 연한 살에 박힌 진드기처럼 그때에 제 머리에 박혔습니다. 더 오래전에 읽은 글입니다. 책 제목도, 저자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작가끼리 노닥거리고 있었습니다. 한 작가가 마감할 원고가 있으니 잠시 일을 하겠다고 다른 자리로 갔습니다. 두어 시간 만에 10여 장의 원고지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 같은 게 없었습니다. 육필 원고입니다. 원고지에는 수정을 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손볼 것이 없는 훌륭한 글이었습니다. 작가가 일을 한 자리에는 파지가 한 장도 없었습니다. 원고지 10여 장의 글을 단숨에 내달린 것이지요.이 일화를 책에서 읽으며 제가 도달할 직업 글쟁이로서의 한 경지를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초집중의 자세로 내달리는 것입니다. 그 마음가짐으로 오랫동안 참 많은 글을 썼습니다. 제가 책에서 본 그분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원고는 단숨에 끝냅니다. 물론 글쓰기 전까지 자료를 찾고 구성을 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글의 처음과 끝이 분명해지면 자리에 앉아서 내달립니다. 한 호흡으로 내달립니다. 몰두하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그러니까 몰두하여 글을 쓰고 나면, 희열이 따릅니다. 저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개의 몸에 머리를 박은 진드기가 몸을 당겨도 악착같이 버티는 이유는, 머리를 박아서 얻어내는 생명 유지의 희열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진드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몰두의 희열을 압니다. 죽을힘을 다하면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것은 인류 보편의 경험칙입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쓰는 사람으로는 운동 선수가 대표적입니다. 운동이 선수에게 고통만 준다면 그 운동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연아의 부어오른 발, 박지성의 멍든 발, 강수진의 비틀린 발은 고통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희열의 흔적이기도 합니다.인간 뇌는 고통의 시간을 겪고 나면 반드시 보상의 도파민을 터뜨립니다. 인간이 모험적인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쉬운 일만 하면 보상은 없거나 적습니다. 희열을 맛보려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일에 자신을 밀어넣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실패하면 희열도 없을 것이라는 걱정은 괜한 것입니다. 도전 그 자체만으로 희열은 큽니다.저는 몸이 작고 체력이 약했습니다. 중학교 체력장 시험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오래달리기는 운동장을 다섯 바퀴 돌아야 합니다. 대여섯 명을 한 팀으로 해서 뛰는데, 키 순서대로 팀을 짭니다. 그날 저는 제일 앞줄에 섰습니다. 선생님이 웃으며 봐주었습니다. 저와 같이 뛰는 친구들은 키가 머리 하나는 더 있었습니다.출발 신호와 함께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습니다. 100m 달리기 하듯 뛰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키 큰 친구들을 앞섰습니다. “우와~” 하는 함성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체력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장을 한 바퀴도 못 돌고 뒤로 밀렸습니다. 세 바퀴가 넘어가자 저는 꼴찌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가슴은 터질 것 같았고 목구멍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골인을 하고 저는 쓰러졌다. 한참 후에 몸을 세워서 수돗가로 갔습니다. 몸을 숙여 머리에 물을 적시면서 토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희열이 몸을 때렸습니다.세상 같은 것은 져도 됩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2023.12.07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밥 짓는 솜씨를 자랑할 절호의 기회

“눈으로 보았을 때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고 촉촉한 물기가 배어 있어야 한다. 냄새를 맡으면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나야 한다. 입안에 넣었을 때 밥알이 낱낱이 살아 있음이 느껴지고, 혀로 밥알을 감았을 때 침이 고이면서 단맛이 더해지며,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게 이빨 사이에서 기분 좋은 마찰을 일으켜야 한다.”맛있는 밥에 대한 저의 기준입니다. 이 글은 졸저 ‘미각의 제국’(2010년, 따비)에 실려 있습니다. 음식물을 입에 넣었을 때에 제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관찰하고 이를 글로 옮겨놓은 책입니다. 이 책을 쓰고 난 다음에는 책 속의 문장들이 제 감각을 구속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밥상에 앉으면 저 문장이 저절로 떠올라서 제 앞에 놓인 밥을 자동으로 품평하게 됩니다.밥은 밥상의 중심입니다. 반찬과 국은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기 위해 존재합니다. 밥이 맛없으면 밥상의 기타 음식은 맛있고 맛없음의 품평에서 멀어집니다. 밥집에서 밥이 맛없으면 다른 것이 아무리 맛있어도 빵점입니다.‘미각의 제국’을 썼던 2010년에 비해 밥의 사정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쌀의 품종과 도정 날짜를 따지는 소비자를 자주 만납니다. 갓 지은 밥을 내려는 식당 주인의 노력도 봅니다. ‘미각의 제국’에 썼던 저 문장은 머지않아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일본에 유명한 밥 명인이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밥 명인은 부엌에서 밥만 합니다. 그는 좋은 쌀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쌀을 고르는 일은 싸전에 맡깁니다. 좋은 쌀을 고르는 것과 맛있는 밥을 짓는 것이 서로 다른 전문적인 영역의 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이를 일본인 특유의 오다쿠적 정신 세계로까지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일입니다.서울의 유명 냉면집은 수십 년 동안 한 정육점에서 쇠고기를 받고 있습니다. 서울의 유명 곰탕집도 수십 년 동안 그 정육점에서 쇠고기를 받고 있습니다. 곰탕집의 가족이 분가하여 식당을 차렸는데, 분가를 한 곰탕집도 그 정육점의 고기를 받는다는 사실을 제게 강조하였습니다. 냉면 조리장과 곰탕 조리장의 일이 다르고, 정육점 주인의 일이 다르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저는 글쟁이입니다. 꽤 많은 책을 썼으며 지금도 집필 중인 책이 있습니다. 글쟁이도 다양합니다. 시인도 있고 소설가도 있고 수필가도 있고 영화평론가도 있고… 그 수많은 글쟁이 중에 저는 음식 전문 글쟁이입니다.음식에 대한 글을 전문적으로 쓰니까 저를 요리사나 외식경영인과 같은 직업군에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게 요리법을 묻거나 식당 경영 노하우를 묻는 분들이 그런 분들인데, 영화평론가에게 카메라 세팅 방법을 묻거나 제작비 펀딩 노하우를 묻는 것과 유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선생님은 요리도 하시나요?” 강연 중에 이런 질문을 받을 때에는 제가 이런 말을 해드립니다. “여러분도 요리를 하지요? 저도 그 정도의 요리는 합니다. 다만 저는 요리사처럼 요리를 하지 않습니다. 요리사는 요리로 돈을 버는 숙련노동자입니다. 저는 글로 돈을 버는 숙련노동자이구요. 여러분은 요리사에게 ‘글도 쓰세요?’ 하고 질문하지 않지요? 마찬가지로 글쟁이에게 ‘요리도 하세요?’ 하고 질문하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맛있는 밥에 대해 글을 쓰려다가 방향이 약간 틀어진 듯합니다. 그렇다고 맥락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므로 그냥 내달립니다.밥 명인은 여름에 접어들면서부터 햅쌀이 나오기까지 2개월 가량 문을 닫는답니다. 그 기간에는 아무리 믿음이 가는 싸전이라 하여도 밥을 맛있게 짓기에 적당한 쌀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햅쌀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햅쌀은 대충 밥을 지어도 맛있습니다. 재료가 극단적으로 좋으면 명인이 요리를 하나 일반인이 요리를 하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이 밥 짓는 솜씨를 자랑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2023.10.09 08:02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호떡에 대한 쓸데없는 미식적 분석

1월 1일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제가 영상을 찍고 편집을 합니다. 채널 이름이 ‘황교익 Epi-Life’입니다. Epi는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루스(Epicurus)에서 따온 것입니다. 미식가를 뜻하는 영어 에피큐어(Epicure)가 Epicurus에서 비롯했습니다.Epicurus의 철학을 쾌락주의라 번역하는데, 이 쾌락이라는 단어로 인해 그의 철학이 오해되기도 합니다. Epicurus가 이르고자 한 궁극의 경지인 아타락시아는 불교의 열반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Epicurus는 인간의 감각과 감정 그 너머의 무엇을 위해 금욕적 삶은 살았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쾌락과는 정반대에 있는 쾌락을 추구했습니다.미식의 시대라고 합니다. 미식은 저의 오랜 화두이기도 합니다. 배움이 짧은 글쟁이가 미식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미식은 이것이다” 하고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저의 “미식적 삶”을 보여주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 그래서 ‘황교익 Epi-Life’라고 이름을 붙인 채널을 만들었습니다.일간스포츠가 제게 연재 지면을 주었습니다. 편집진은 “한국 음식에 관한 것이면 어떤 글이든 다 좋다”고 하였는데, 그래도 집필 방향이 있어야 독자 여러분이 이 지면의 글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 유튜브 채널 이름 ‘황교익 Epi-Life’를 여기에도 쓰기로 했습니다. 제가 일상에서 겪는 미식 경험을 솔직하고 재미나게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충남 서산 해미읍성에 갔습니다. 해미읍성 주차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호떡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마가린으로 튀기듯 굽는 호떡이었습니다. 해미읍성 정문 앞에는 2층짜리 건물의 호떡 카페가 있고, 해미읍성 안에는 (사)해미읍성역사보존회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호떡집이 있습니다. 호떡이 해미읍성 향토음식인가 싶었습니다.호떡은 구한말에 화교와 함께 이 땅에 들어온 음식입니다. 1924년 경성부 재무국 조사에 의하면 서울에 설렁탕집보다 호떡집이 많았습니다. 이때의 호떡은 지금의 호떡과 다른 음식입니다. 노동자가 끼니로 먹는 커다란 ‘빵떡’이었고, 그래서 호떡집을 설렁탕집과 비교하였던 것입니다.한반도 격동기에 화교들이 이 땅을 떠났습니다. 호떡이 한국화합니다. (자장면의 역사와 비슷하지요.) 화교의 호떡은 대체로 화덕에 구웠습니다. 우리에게는 ‘전통의 번철’이 있습니다. 가마솥 뚜껑 뒤집어놓은 것이 번철입니다. 부침개 방식이 우리 호떡 조리법으로 안착합니다.기름이 귀했던 시절엔 호떡이 번철에 구워졌습니다. 밀이 타면서 내는 구수함이 호떡에 묻어 있었습니다. 1966년 동방유량 개업 이래 식용유가 값싸게 주어지면서 호떡은 기름에 지져졌습니다. 1970년대 마가린의 등장과 맞물려 호떡의 시대가 활짝 열렸습니다. (호떡의 주요 고객인 청소년에게 용돈이 넉넉하게 주어지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마가린은 고체여서 번철에 바르기 쉬운 것은 물론, 인공 크림향과 소금이 호떡의 맛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1980년대에 마가린이 건강에 안 좋다는 말이 돌면서 식용유에 밀려납니다.호떡은 기름의 종류와 조리 방식에 따른 맛 차이가 큽니다. 그날 해미읍성 일대를 돌며 마가린에 튀긴 호떡, 콩기름에 지진 호떡, 기름 없이 솥뚜껑에 구운 호떡을 연속해서 먹었습니다. 세 호떡 모두 맛있습니다. 맛에 차이가 난다는 말은 어느 호떡이 더 맛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호떡집 앞에서 뜨거운 호떡을 손에 들고 설탕물에 혀를 데여가며 먹는 호떡이 맛없었던 적이 있었는지요.이 세상의 모든 호떡은 보편적으로 맛있습니다. 자신에게 특별나게 맛있는 호떡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대체로 추억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코흘리개 때에 처음 또는 자주 먹었던 호떡에 특별난 애착을 가집니다. 여러분의 추억 속 호떡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요. 구수한 곡물 향인가요, 고소한 콩기름 향인가요, 크리미한 마가린 향인가요.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황교익은 농민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안주하는 삶이 싫어서' 사직서를 냈다. 이후 프리랜스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2015년 tvN '수요미식회', 2017년 '알쓸신잡'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었다.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학문인 '음식 인문학'을 대중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맛 칼럼니스트로서 성과가 뚜렷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자주 받은 탓에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맛을 탐구하는 그가 지향하는 삶은 물 같은 삶이라고 한다. 아무 맛도 나지 않지만, 반드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3.02.23 07:07
경제

도쿄대 석사, 유력신문 기자였던 일본여성은 왜 AV를 찍었을까

'몸을 팔면 작별이야'이달 초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제목이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로 일하던 한 여성이 과거 AV(성인비디오) 배우로 활동했던 전력이 주간지 보도로 밝혀지면서, 그의 과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주인공의 파란만장한 나날들이 AV 현역 여배우, AV 감독, AV업계 스카우터 등의 인터뷰 영상과 함께 그려진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한 여성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스즈키 스즈미(鈴木涼美·33). 영화는 그의 체험을 담은 에세이 『몸을 팔면 작별이야, 밤 언니의 사랑과 행복론』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스즈키씨의 이력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 도쿄 시부야에 살다시피 했던 '노는' 여고생의 전형이었던 그는 3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수험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후 '여고생'이란 가치를 잃게 되면 과연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스스로 했고, 그 답을 '여대생'이 되는 것에서 찾자고 결심한 것.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고, 우직하게 문제집을 풀면서 중간 정도였던 그의 성적은 놀랄만큼 향상됐고, '고독'한 노력의 결과 명문 게이오대에 합격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날라리 여학생의 명문대 합격기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스즈키씨의 삶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 더욱 극적으로 전개된다. "밤의 세계에 매료된" 듯 그는 호스트 남자친구의 영향으로 유흥업소 호스티스가 됐고 호스트바에 드나들게 됐다. 그러다 AV업계에 스카우트돼 AV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그의 이같은 '이중생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얘는 원래 이런 애야'라는 틀에 갇히고 규정되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날라리 여고생이지만 근면한 수험생이었고, 그 후에는 엘리트 여대생이면서 동시에 호스티스 겸 AV배우가 되는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70편 이상의 AV에 출연했던 그는 또 다른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일본 최고의 명문 도쿄대 대학원에 진학한 것. 그리곤 AV배우 생활을 하면서 체험한 일들로 석사논문을 썼다. 여성에 대한 성적(性的) 소비행위가 일상에 침투한 현상을 생생하게 기술한 그의 논문은 『AV여배우의 사회학』이란 책으로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로써 스즈키씨는 작가라는 또 하나의 '얼굴'을 갖게 됐다.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사귀던 방송국 직원의 권유로 일본의 유력경제지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편집기자로 입사, '밤 언니'가 아닌 '낮 언니'로 변신했다. 그러던 중 2014년 AV 배우였던 사실이 한 주간지에 의해 '폭로'되면서 신문사를 계속 다니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마침 그는 그저 그런 일상에서 탈피해 전업작가가 되려고 생각하던 때여서 5년6개월 만에 신문기자직을 그만뒀다. 지금은 유명 전업작가가 된 스즈키씨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한 가지 틀에 (내 정체성이) 갇혀버리는 게 싫어서, 낮과 밤의 세계를 왔다갔다 한 삶. 대학 합격 후에는 굴곡진 삶이었지만 수험공부를 시작했던 날부터 전업작가가 된 지금까지 글쟁이가 되기 위한 길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스즈키씨가 『몸을 팔면 작별이야~』를 썼던 건 니혼게이자이 신문사에서 근무하던 때. 그는 이번 영화에 작은 역할로 출연했다. 그리고 "옷을 입고서 카메라 앞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고마운 경험이었다"며 출연소감을 밝혔다. 그림책 연구자였던 그의 어머니는 지난해 별세했다. 어머니는 "하필이면 딸을 AV 배우로 키워내고 말았다"며 자주 푸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어릴 때보다 지금 딸의 모습이 훨씬 귀엽다"며 칭찬하기도 했다고. 스즈키씨는 어머니와의 추억과 함께 모녀 관계의 복잡미묘함을 그린 에세이 『사랑과 자궁에 꽃다발을』을 지난달 출간했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7.07.20 11:04
연예

'말하는대로' 허지웅, 청소 집착 이유 "유일하게 되돌릴 수 있어"

작가 겸 방송인 허지웅이 청소 결벽증에 대한 과거를 공개한다.내달 1일 방송될 JTBC 예능 프로그램 '말하는대로' 23번째 말 공연에는 베테랑 이야기꾼 김제동, 섹시한 글쟁이 허지웅, 천재 로봇공학자 데니스홍이 참여한다.MC 하하는 평소 결벽남으로 소문난 허지웅을 향해 "방송에서 천장까지 청소하는 거 봤다"며 남다른 청소 습관에 놀라움을 표한다. 허지웅은 "'왜 청소를 열심히 할까?' 생각해봤는데 뭔가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처음 상태로 돌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유일하게 되돌릴 수 있는 게 청소한 방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다.허지웅은 자신의 청소 강박에 대해 "엄마, 아빠, 동생이랑 같이 살 때는 그런 게 없었는데 열아홉 살 이후로 계속 혼자 살며 청소를 열심히 하게 됐다. 고시원에 살 때는 청소가 너무 자연스러웠고, 청소를 하지 않으면 어차피 몸으로 먼지를 닦게 되어 있기 때문에 청소를 열심히 했다. 청소는 한 번도 누구한테 시켜본 적 없다. 내가 제일 잘한다"고 말하며 청소 장인다운 면모를 보인다. 한편 말 공연에서 허지웅은 "나는 운이 없어서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며 '롤모델'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이어 아버지에게 품었던 미움부터 단칸방 고시원에서 보낸 인생의 암흑기를 방송에서 처음으로 털어놓는다.허지웅의 말로 하는 버스킹은 3월 1일 오후 9시 30분에 방송될 '말하는대로'에서 확인할 수 있다.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oins.com 2017.02.2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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