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정덕현 요즘 뭐 봐?]‘콩콩팥팥’, 초보농부들의 다큐에 가까운 나영석표 리얼 농사 적응기
농사와 예능은 그리 낯선 조합이 아니다. 이미 MBC ‘무한도전’ 시절부터 농사는 중요한 소재였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출연자들이 농사를 짓는 광경은 그 시행착오를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진다. 무엇보다 노동이 집약된 농사는 그 힘겨움이 만들어내는 ‘생고생’의 실감이 시각을 넘어 촉각적으로까지 전해지고, 동시에 익숙하지 않아 만들어지는 몸개그적 요소들이 더해진다. 그리고 이토록 땀 흘린 노동의 결실이 직관적으로 나타나기도 해,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뿌듯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나영석 사단의 tvN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이하 ‘콩콩팥팥’)는 바로 그 농사를 소재로 가져온 예능 프로그램이다. 나영석 사단과 시골의 조합은 이미 2014년에 첫 방영됐던 ‘삼시세끼’ 정선편에서 시도된 바 있다. ‘삼시세끼’는 제목 그대로 세 끼 챙겨 먹는 밥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지만, 그때도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출연자들이 제작진에게 빚을 지고 그걸 탕감하기 위해 옥수수밭을 수확하는 농사일이 벌칙처럼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콩콩팥팥’은 좀 더 농사일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나영석 PD는 출연진인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 김기방이 함께 모인 사전모임에서 한마디로 정리해 제시한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주는 미션이라면 그 미션 딱 하나예요. 그 밭이 풍성하게 초록으로 가득 차서 우리가 수확을 하고 나면 이 프로그램 시즌1은 끝나는 겁니다.”너무 심플한 목표지만, 나영석 사단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러하듯이 그 과정들은 다채로운 재미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사전 모임에서도 ‘찐친’으로 알려진 네 사람의 티키타카는 평상시 모습 그대로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이들이 함께 밭을 일구며 벌어질 사건들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광수는 예능이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다른 출연자들 사이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매순간 상황을 재밌게 이끌어낸다. 어딘가 불안하고 불신에 가득한 김기방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면서, 농사를 진심 하고 싶었다는 도경수와 예능이 첫 출연인 김우빈이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들어오게 해준다. 늘 유재석과 함께 해와 혼자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힘이 있나 싶었지만, ‘콩콩팥팥’에서 이광수는 유재석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예능 베테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요한 건 예능적인 면을 강조하기보다는 차라리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는 걸 첫회 오프닝에서부터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그간 수많은 농사의 노동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나왔지만, ‘콩콩팥팥’만이 가진 새로운 지점이다. 마치 ‘인간극장’의 오프닝 시그널을 보는 듯한 출연진 소개가 그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콩콩팥팥’은 네 사람 앞에 강원도 인제에 마련된 500평 규모의 텅 빈 농지를 과제처럼 펼쳐 놓는다. 심지어 농막 하나 없이 농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농사에 대한 경험 자체가 일천한 네 사람은 이제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자신들의 발품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씨앗을 종묘상이 아닌 대형마트에서 파는 줄 알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은 무작정 시내로 나가 하나하나 물어가며 씨앗과 농기구를 구입한다. 경비도 제작진이 큰 비용이 나가는 건 카드로 지불해 주지만 그렇지 않은 건 그들이 늘 하던 게임을 통해 자체 조달한다. 제작진마저 나영석 PD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을 정도로 단출해 이건 tvN의 기존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나영석 사단이 유튜브에서 하고 있는 채널 ‘십오야’의 한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상 자체가 유튜브 영상 같은 느낌을 주는데, 왜 ‘다큐’라고 먼저 못을 박아뒀는지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제작비를 최적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이건 또한 이른바 ‘유튜브’ 감성이 주는 리얼 재미의 맛으로 느껴진다. 과연 이 초보농부들은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맨땅에 헤딩해 이 텅 빈 공간을 초록으로 물들게 만들어낼까. 의외로 일머리를 보이는 도경수가 농기계를 활용하는 등 조금씩 적응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이 다큐적인 맛을 여지없이 예능으로 바꿔주는 이광수의 활약이 눈부시다. 짙어져 가는 수확의 계절 가을에 이들이 심은 대로 거두는 그 광경이 선사할 감동적인 ‘자연의 신비’ 또한 기대되는 대목이다. 목가적인 편안함 속에 잔잔한 재미가 깨알 같이 느껴지는 ‘콩콩팥팥’의 맛에 시청자들이 저도 모르게 빠져드는 이유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2023.10.23 0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