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IS 피플] 복싱 부활 꿈꾸는 '작은 들소' 유명우
"글러브를 끼면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아요." 최근 구로구의 한 체육관에서 일간스포츠와 만난 유명우(58) 버팔로 프로모션 대표가 카메라 앞에 서자 어색한 듯 말했다. 그는 글러브를 내려놓고 난 뒤에야 환한 미소를 보였다. 유명우는 “복싱 경기를 하던 습관이 남아 있다. 이젠 글러브를 끼고도 웃어야 하는데 아직 잘 안 된다. 오랜만에 글러브에 밴 땀 냄새를 맡으니 아주 좋더라.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냄새”라며 웃었다. 유명우는 주먹으로 세계를 평정했다. 그는 1985년 WBA(세계권투협회) 주니어플라이급 타이틀을 획득한 뒤 17차 방어전에 성공했다. 일본에서 치른 18차 방어전에서 이오카 히로키(일본)에게 져 챔피언 벨트를 내줬지만, 1년 뒤 히로키와 리턴 매치에서 벨트를 탈환한다. 한 차례 방어전을 더 치른 뒤 1993년 글러브를 벗으면서 챔피언 벨트도 반납했다. 유명우의 프로 통산전적은 39전 38승(14KO) 1패다. 그가 세운 36연승과 17회 타이틀 방어 기록은 아직 국내에서 깨지지 않고 있다. 2003년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사각의 링은 전쟁터였다. ‘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절절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챔피언에 오른 뒤에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명우가 복싱을 시작하게 된 시기는 한강중 1학년이었던 1977년이다. 당시 홍수환이 엑토르 카라스키야(파나마)를 상대로 ‘4전5기’ 신화를 쓰는 장면을 보고 복싱의 매력에 빠졌다. 유명우는 “홍수환 선배는 복싱을 예술로 만들었다. 남자라면 꼭 한 번은 해봐야 하는 운동이라고 느꼈다”고 돌아봤다. 그는 서울 봉천동 대원체육관에서 김진길 관장의 지도 아래 글러브를 꼈다. 복싱 세계챔피언을 3명(유명우, 지인진, 김철호)이나 배출해낸 김진길 관장은 엄격했다. 유명우는 스텝 밟기, 원투 펀치 등 기초부터 착실히 배웠다. 유명우는 “1977년 복싱을 시작할 때부터 1993년 그만둘 때까지 김진길 관장님과 의기투합했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내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주신 첫 스승님”이라고 추억했다. 선수 시절 체격(1m63㎝)이 작았던 유명우는 인파이팅으로 상대를 압박했다. 두려움 없이 저돌적으로 치고받는 모습에 ‘작은 들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면 강타보다는 옆구리를 향해 쉴 새 없이 펀치를 날렸는데, 일본 언론에서는 유명우의 경기를 보고 “소나기가 내리듯이 펀치를 쏟아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펀치력은 약하지만 14번이나 KO승을 거둔 비결이었다. 유명우뿐만 아니라 WBC(세계권투평의회)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가 활약한 1980년대는 한국 복싱의 황금기였다. 유명우는 “변칙적인 경기 스타일을 가진 장정구 선배는 천부적인 싸움꾼이었다. 사실 장 선배의 스파링 파트너를 많이 했었는데, 내가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통합 타이틀전을 했으면) 내가 초반에 많이 맞고, 후반에 뒷심으로 조금 버티다가 결국 패배하는 그림이 그려진다”며 웃었다. 불세출의 복서들이 활약했던 시기와 달리 현재 한국 복싱은 침체기다.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 유명우는 “선수 때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현재 후배들을 보니 복싱이 소외된 느낌인 건 사실이다. 후배들한테 안 좋은 여건을 물려줘 선배로서 정말 미안하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 복싱계에 일조하고 싶은 생각이 크다”며 고개를 숙였다. 젊은 팬을 확보하지 못해 한국 복싱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게 유명우의 진단이다. 그는 “나는 복싱이 과격한 스포츠니까 (젊은이들에게) 잘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더라. 종합격투기 UFC 같은 스포츠는 복싱보다 더 과격하지 않나. 화려한 볼거리 등으로 젊은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준비를 우리 복싱인들이 전혀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한국 복싱에는 스타 선수가 없다. 일반인 대상의 대회에는 수백 명이 참가하는 등 생활체육으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나, 엘리트 선수를 하려는 사람은 적다. 아직 ‘복싱은 헝그리 정신의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유명우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요즘 세계 복싱은 미국, 유럽, 일본 등 경제 선진국끼리 정상을 다툰다”고 말했다. 젊은 팬들을 사로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유명우는 “요즘 트렌드가 빨리 변하지 않나. 나부터 노력해야 한다. 지금 젊은 세대와 함께 일하고 있다. 무대 연출 등 재미있는 분위기를 형성해 잠재적인 팬들한테 어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명우는 오는 4일 경기도 시흥의 한국공학대학교 체육관에서 복싱 대회를 개최한다. WBC 인터내셔널 슈퍼 페더급 챔피언 신보미레와 동양챔피언 강종선 등이 링에 선다. 현재 입장권 예매가 진행 중이고, 경기는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한다. 유명우는 “신나게 한 번 놀아봐야 하지 않나. 젊은 팬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대할 만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서 기자 zerostop@edaily.co.kr
2022.09.0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