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프로야구 매니저]‘이영민 타격상’ NC 박민우, “저주는 없다”
2할 9푼을 치는 타자와 3할 타자의 차이에 대해 ‘레전드’ 장훈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2할 9푼 타자는 4타수 2안타로 만족하지만, 3할타자는 4타수 3안타 또는 4타수 4안타를 목표로 타석에 들어선다”고. 그 기준대로라면, NC 다이노스 박민우(휘문고)는 틀림없는 3할 타자다. “5할도 칠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제 올해 성적이 65타수 31안타잖아요. 2안타만 더 쳤으면 5할인데, 올해 2-3 풀카운트에서 제 생각엔 볼인데 스트라이크로 판정된 게 네 번인가 있었어요.” 남들은 꿈꾸지도 못할 타율 4할 7푼 7리를 쳐놓고도, 박민우는 5할 달성에 실패한 것을 아쉬워했다. 박민우는 결코 현재에 안주하거나 만족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건 프로의 세계에서 성공을 거둔 스타들의 공통적인 특질이기도 했다. 그리고 기억력. 박민우는 자신이 나선 예순 다섯 번의 타석을 하나하나 다 기억했다. “한 타석 한 타석이 다 생각나요. 아쉬운 순간도 있었지만, 운도 따랐죠. 중견수 앞 안타인데 크게 바운드되면서 중견수 키를 넘겨서 3루타가 된 것도 있고, 깨끗한 안타인줄 알고 1루를 밟고 돌았는데 2루수가 다이빙캐치해서 아웃된 적도 있어요. 안 뛰었으면 내야안타가 될 수 있었는데.” 박민우의 기억력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역대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들로 이어졌다. “작년에는 유재혁 선배, 재작년에는 (하)주석이, 2005년에 김현수 선배, 그 앞에는 최정 선배...” 올해의 수상자는 박민우 본인이다. 지난 7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1 야구 인의 밤’ 행사에서 박민우는 올해 고교야구 최고의 타자에게 주어지는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다. 당초 박민우는 자신이 아닌 팀 동료 강구성(야탑고)이 상을 받는 줄 알았다고 한다. “전혀 예상 못했어요. 선정 기준이 20경기 출전인줄 알았어요. 저는 16경기밖에 출전을 못 했거든요. 구성이가 타율은 2위지만 20경기를 출전했으니까 당연히 받겠거니 생각했어요. 저는 그냥 타율 1위한 걸로 위안을 삼으려고 했죠. 그런데 발표 당일에 버스에서 그 얘길 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로 축하 메시지가 쏟아지는 거에요. 왜들 그러나 싶어서 물어보니까 제가 이영민상을 받게 된다지 뭐에요. 구성이한테 좀 미안했죠.” 하지만 이영민상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일명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역대 수상자들 중에 막상 프로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선수가 거의 없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이에 대해 묻자, 박민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 소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되게 우스운 일 아닐까요?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에 신경쓰기보다는, 제가 어떻게 생각하고 마음을 먹는지가 중요해요.” 그러고 보니 2년전 같은 상을 받은 하주석의 반응도 비슷했다. 당시 신일고 1학년이던 하주석은 “저주라면 최정-김현수 선배가 이미 깬 것 아닌가? 그런 건 이제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민우, 그리고 하주석. 내년도 프로야구에는 이영민상 수상자 출신 신인 두 명이 한꺼번에 데뷔한다. ‘이영민상의 저주’라는 말이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기회다. 그러자면 두 선수가 프로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한화 입단과 함께 펄펄 날아다니는 하주석과 달리, 박민우는 NC 합류 이후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강진 캠프 초기에 야구가 잘 안 되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왼손을 다쳐서 2주 동안 쉬기도 했구요.”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처음엔 프로에서 뛰다 온 선배들 플레이를 보고 자신감을 많이 잃었었죠. 연습 경기 때는 ‘1라운더답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감이 컸구요. 타격에서 밸런스가 무너지니까 수비까지 같이 무너지더라구요. 장기인 빠른 발도 출루를 해야 보여줄 수가 있는데 루에 나가지를 못 하니까. 청백전을 하면 안타는 하나도 못 치고 수비에서는 실책하고, 정말 답답했죠.” 그렇다면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어떻게? “제주 오기 전에 잠깐 서울에 갈 새가 있었는데, 그때 절에 자주 가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마음가짐을 완전히 새롭게 했죠. 마음에 있는 부담감을 싹 밀어버리고 새롭게. 자신감은 갖되 뭔가 보여주겠다고 너무 주위를 신경쓰지 말자, 무식하게 해 보자고 다짐했어요. 다행히 제주도로 온 뒤 경찰청과 연습 경기를 하는데, 그때부터 서서히 잘 풀리더라구요. 이제 프로에서 하는 훈련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아직 다 극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좋아진 것 같아요.” 친구인 임찬규의 조언도 많은 도움이 됐다. 임찬규와 박민우는 동갑내기 절친. 하지만 박민우가 부상으로 1년 유급하면서 프로 무대에서는 꼼짝없이 1년 후배가 됐다. “찬규랑은 꾸준히 통화하죠. 서로 훈련하는 얘기, 내년도 목표 같은 것도 주고받구요. 강진에서 초반에 힘들 때 찬규한테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어요. 그랬더니 찬규가 ‘신인 때는 다 그렇다’면서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니까 힘내라’고 선배 행세를 하더라구요. (웃음)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고마웠어요. 정말 좋은 친구에요.” 프로에서 보낸 두 달 여의 시간 동안, 박민우는 스스로의 기량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할 기회를 얻었다. “체력은 원래 자신있는 편이라 크게 어려움을 못 느끼는데, 기술적인 면에서 프로에 있던 선배들보다 부족한 점이 많아요. 투수의 공을 보는 시선부터 방망이를 칠 때의 미묘한 기술, 하나하나가 저는 아직 밑바닥이죠. 수비에서도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구요.” 그렇다고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빠른 발과 공격적인 주루플레이만 놓고 보면, 박민우는 팀내에서 최상위권이다. 2일 열린 경찰청과의 연습 경기에서도 1회부터 적극적인 홈 대쉬로 선취 득점에 성공했다. “아무래도 주루는 제가 자신 있는 분야고, 최대한 공격적으로 하려고 하고 있어요. 오히려 주루만큼은 제가 잘한다고 생각해요. 김경문 감독님께서 두산 시절부터 기동력을 중시하는 야구를 하셨으니까, 그에 부응할 수 있게 더 열심히 해야죠.” 박민우는 팀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팀에 합류한 뒤에 고교 때 실력의 반도 제대로 발휘를 못한 것 같아요. 일단은 고교 때 했던 만큼이라도 회복하는 게 급선무죠. 그 이상은 나중 문제구요.” 그런 면에서 이영민 타격상 수상은 박민우가 고교에서의 ‘가장 좋았던’ 때를 다시 되살리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마침 옆에 있던 나성범이 아마야구 책자에 나온 박민우의 기록을 보며 감탄사를 뱉었다. “야, 민우 진짜 잘 쳤네. 대단하다, 대단해.” 그 순간, 박민우의 얼굴 가득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그가 가장 기분 좋을 때의 표정. 박민우가 지나온 긴 슬럼프의 터널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지헌 (http://yagoo.tistory.com/) * 위 기사는 프로야구 매니저에서 제공한 것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11.12.08 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