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단독] 든든 권고에도 ‘침묵’ 부산국제영화제, 이러다 부산동네콘텐츠행사된다 [전형화의 직필]
부산국제영화제의 민낯이 드러났다. 영화제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으로부터 최근 불거진 허문영 전 집행위원장 성폭력 의혹과 관련한 내용을 권고받았지만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8일 영화계에 따르면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지난 5일 허 전 집행위원장 성폭력 의혹과 관련한 든든의 권고를 받고 사무국 직원 게시판에 관련 내용을 게시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는 “2차 가해에 대한 주의와 함께 앞서 영화제 측에서 이 문제를 허 집행위원장 개인의 문제라고 공표한 것과 이후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사표를 수리했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는 내용 등이 게시됐다”고 밝혔다.문제는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이 같은 권고를 받고도 영화제 차원에서 어떤 입장도 아직까지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든든의 권고를 받은 이날은 부산국제영화제 혁신위원회 준비위원회 첫 회의가 열린 날이기도 했다. 영화제가 새롭게 거듭나겠다며 혁신위원회를 꾸리는 모임이 열렸는데도 그저 영화단체와 영화계 관계자, 시민 등 모든 의견을 수렴하는 간담회를 12일 열기로 했다는 정도를 공표했을 뿐이다. 있었던 일은 모르쇠하고 책임은 떠넘기는 무책임한 부산국제영화제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난 모양새다. 앞서 지난달 31일 부산영화제 측은 허 집행위원장 개인 문제가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는 복귀를 기다리기로 하고 사표 수리는 그때까지 보류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영화제에서 오랜 기간 일했던 직원이 허 집행위원장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신고가 성평등센터에 접수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개인적인 문제로 선을 그은 것이다.이후 지난 2일 열린 영화제 이사회에선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사표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수리한다”고 알렸다. 두 입장문에선 허 집행원장의 성폭력 의혹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영화제 차원에서 진위 여부를 진상 조사하겠다거나, 아니면 제3의 기관에 진상 조사를 위탁하겠다거나 유감이라든가, 그 어떤 입장 표명도 없었다. 그러면서 의혹의 당사자는 사표 수리로 마무리했다.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진상조사가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진상조사든, 소명이든, 명예회복이든, 이제 의혹의 당사자가 외부인이 된 탓이다. 당초 부산국제영화제는 허 집행위원장 개인 문제가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는 복귀를 기다리기로 하고 사표 수리는 그때까지 보류한다고 했지만, 이틀 뒤 이사회에선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사표를 수리한다고 입장을 뒤집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허 집행위원장은 이사회에 앞서 이사들에게 사표를 수리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원 남성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게 허 집행위원장은 전 집행위원장이 됐다. 영화제 내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사실여부에 대한 확인도 없이, 의혹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해 사표를 수리한다는 건, 부산국제영화제가 지금 얼마나 얼빠진 조직이라는 걸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사회는 그간 누구누구가 물러나야 한다는 것 외에는, 대책도 없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 이후 허 집행위원장 사의 표명으로 불거진 일련의 부산국제영화제 사태가 결국 포스트 이용관 이사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밥그릇 싸움이란 소리가 괜히 나오고 있는 게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은 최근 몇 년간 갈수록 위축돼 왔다. 비단 코로나19 때문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들 투성이였다. 제대로 혁신이 안되면,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한다던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동네콘텐츠행사로 전락할 수 있다. 부디 부산국제영화제가 제대로 혁신하길, 새롭게 거듭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한 첫 발은 제대로 된 진상 조사부터다. 이용관 이사장 체제의 문제점이든, 허 전 집행위원장 성폭력 의혹이든. 전형화 기자 brofire@edaily.co.kr
2023.06.08 0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