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ma2024 ×
검색결과2건
경제

[단독] '가짜사나이' 이근 "열심히 살아도 적은 생겨난다"

최근 몇달 사이 이근(36)씨에게 일어난 일들이다. 해군 특수전전단(네이비실) 훈련을 콘셉으로 만든 유튜브 ‘가짜사나이’가 처음 나온 게 올 7월 9일이다. 이후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그는 단숨에 유명인이 됐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그를 둘러싼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이씨는 “적극적으로 해명하다 도중에 관뒀다”고 한다. “하나를 설명하면, 다른 것을 문제 삼는 행태에 질렸기 때문”이란다. 그러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늘 자랑스러워하는 군 경력에 대해 딴지를 거는 얘기가 나오면서다. 이씨는 다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싶어했다. 중앙일보가 그를 3일 만났다. 갑자기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나. 전에는 그랬다(웃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갑자기 유명해지니 책임감이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겨나서다. 그런 면에서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대중이 왜 ‘가짜사나이’와 당신을 좋아했다고 생각하나. 한 번도 나 같은 캐릭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웃기고 진지한 모습도 있지만, ‘가짜사나이’에서 나를 통해 대중이 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배웠지 않았을까 싶다. 갑자기 이슈가 불거지면서 인기가 꺼졌다. 당황스러웠나. 대중이 원망스럽진 않았나. 당황하진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열심히 살아도 적은 생겨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백인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에서 인종 차별을 많이 당했다. 늘 당해봤으니 내가 유명해지면 나를 공격할 사람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을 넘을 정도로 지나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나? 유명인? 유튜버? 예비역 해군 대위? ‘가짜사나이’ 전까지는 군사 컨설턴트였다. 지금은 인플루언서(influencer)다. 연예인은 결코 아니다. 나는 대중을 웃기려고 ‘가짜사나이’에 나오진 않았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내 사명이다. 다른 사람이 발전하도록 영향을 주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이씨는 부모를 따라 3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뒤 한국으로 돌아와 해군에 입대한 경우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은 사실을 커서 알게 됐다고 들었다. 영어를 한국어보다 먼저 배웠다.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미국 사람인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지원서를 냈을 때 내가 한국 국적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왜 한국 국적을 유지했나. 처음엔 국적 문제 때문에 부모님과 많이 싸웠다. 부모님은 내가 미국에서 교육을 마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셨다. 그런 계획을 내게 말하지 않으셨다. 이제 당신에 대한 논란 얘기를 좀 하자. 현역 시절 부사관에게서 200만원을 빌렸다 안 갚았다는 폭로가 있었다. 다 끝난 문제다. 채권자와 합의했다. 미 국무부에서 일했고, 유엔에서 근무한다는 경력에 대해서도 의심받고 있다. 유엔에서 일하면 보안상 세부적인 내용을 말할 수 없다. 유엔 여권만큼 확실한 재직증명서가 있을까. 지난달 유엔에서 퇴사했다. 나중에 다시 유엔으로 돌아갈 생각도 있다. 기자는 2017년 11월 7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이씨를 처음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처음 찾은 날이었다. 이씨는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 소속 안보수사관으로 경호 업무를 맡고 있었다. 성추행 범죄로 벌금 200만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처음엔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공격이 계속되면서 나도 입장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변호사와 함께 당시 클럽 CCTV 영상을 봤다. 피해자 주장과 다른 모습이 그대로 나왔다. CCTV를 보면 나와 피해자 사이에 피해자 남자친구가 있었다. 성추행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 경찰이 출동했고, 나는 모든 사실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재심을 청구할 건가. 변호사와 계속 상의해보겠다. 솔직히 CCTV 영상을 다 공개하고 싶다.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을 국민에게 맡기고 싶다. 이씨는 현역 시절인 2011~2013년 미국 해군 특수전전단(네이비실)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다. 고급반(SQT) 과정도 마쳤다. 그런데 해군은 그에게 미국 연수 비용을 내라고 소송을 걸었다. 연수비 환수 소송은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1000원 한장도 안 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나는 원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냈다. 연수비 원금은 8000만원이 넘는다. 2018년 9200만원 정도를 갚았다. 그런데 올해 8월 추가로 이자 8000만원 이상을 더 내라는 통보가 해군에서 왔다. 연간 이율이 20%라고 했다. 다만 추가 이자 비용에 대해선 현재 해군과 조율하고 있다. 2013년 전역을 신청했다. 처음엔 해군에서 별말 없이 승인했다. 그러다 전역을 한 달 앞두고 갑자기 8000만원을 내야 한다고 알려줬다. 위탁 교육을 다녀오면 그 기간의 2배를 더 복무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8000만원은 너무 큰돈이었다. 그래서 전역을 포기하겠다고 했는데, 해군은 ‘한 번 내려진 인사명령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미국 연수를 신청했는데, ‘미국에서 온 사람이 다시 미국으로 가냐’는 핀잔만 들었다. 간신히 기회를 얻었다. 초급반(BUDS) 과정과 장교과정(JOTC)을 수료하자, 미 해군 네이비실이 내게 고급반 과정을 권유했다. 초급반 과정은 체력단련과 같다. 그러나 고급반 과정은 군사기밀이 많이 들어있다. 아무나 뽑진 않는다. 내가 동맹국 장교로선 처음이라는 얘길 들었다. 그런데 해군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미국에서 왔고, 해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미 해군 네이비실에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예산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미 해군 네이비실이 해군을 설득해 겨우 갈 수 있었다.” 논란 속에서도 핼러윈 분장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는 등 태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논란이 있다고 내가 하는 일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위기를 만나면 그걸 에너지로 만들려고 한다. 더 열심히 살려고 해도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할 것이다. 참고로 좀비로 꾸민 핼로윈 사진은 지난해 촬영한 것이다. 왜 네이비실이 되고 싶었나. 수영을 오랫동안 했다. 그래서 바다가 좋았다. 특수부대에 가려고 육ㆍ해ㆍ공군을 다 알아봤는데 네이비실이 최고였다. 바다뿐만 아니라 땅과 하늘에서도 작전하는 전천후 특수부대잖나. 미국에서 네이비실이 될 수 없으니, 한국에서 네이비실이 된 것이다. 네이비실에서 ‘실’은 바다(SEa), 하늘(Air), 땅(Land)의 영문 대문자를 모아서 만든 ‘SEAL’을 뜻한다. 귀국한 뒤 해군에 입대해 네이비실에 지원했는데, 함장이 말렸다고 들었다. 어떻게 설득했나. 모든 군인은 다 중요하다. 이발병, 운전병, 취사병도 다 중요한 전력이다. 그런데 나는 특수부대가 내 적성에 맞는다. 함장이 승조원이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내가 압도적으로 1등을 했다. 그랬더니 함장이 사인을 해줬다. 아직도 한국어가 서투르다. 매우 어렵다. 그래서 주변 도움을 많이 받는다. 요새는 공인이기 때문에 말을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한국과 미국의 네이비실 가운데 누가 더 세나. 미국은 전쟁을 많이 했기 때문에 미국 네이비실은 노하우가 풍부하다. 하지만 한국 네이비실이 잘하는 게 있다. 한국 사람이 머리가 더 좋다. 또 체력이 더 좋다. 한국 네이비실이 경험만 갖추면 톱클래스라고 생각한다. 해군과 네이비실을 사랑한다면서 왜 전역했나. 평생 군인을 하려고 했다. 미국 연수를 갔다 온 뒤 네이비실의 장비를 개선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지금은 장비가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당시 상부에선 ‘젓가락 들고 싸우라면 싸우는 게 군인’이라며 나를 찍어 눌렀다. 내가 자꾸 의견을 개진하자 행정 부서로 보내버렸다.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네이비실 중대장이냐’는 소리도 들었다. 군대에선 어려우니 군대를 나와 민간 컨설턴트로 군대를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군 생활에 대한 후회는. 없다. 후회는 안 한다. 지나간 것에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 군과 경찰을 훈련하고, 교리를 다듬는 군사 컨설팅 일은 계속 하고 싶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어 본 적 없다. 한국인으로 자랑스럽다. 군을 떠났지만 평생 해군을 사랑한다. 군과 해군을 위한 일을 하겠다. 이철재ㆍ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 2020.11.04 08:27
스포츠일반

'한국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 김국영이 런던에 뜬다

올여름 영국 런던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의 은퇴로 떠들썩하다.볼트가 은퇴 무대로 선언한 2017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4일(한국시간)부터 13일까지 바로 런던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나서기 전부터 볼트는 이번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자신의 은퇴 무대로 점찍었다. 그리고 대회가 다가오자 전 세계의 이목이 런던에 집중되고 있다.남자 육상 단거리 세계기록을 모두 갈아 치운 '인간 번개', 패배를 모르는 실력과 화려한 세리머니를 갖춘 '육상 최고의 스타' 볼트의 마지막 레이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모두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에게 집중하는 가운데 묵묵히 이번 대회에 전의를 불태우는 선수가 있다. 바로 '한국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 김국영(26·광주시청)이다. ◇ '한국기록 제조기' 런던에 가다김국영은 자타공인 한국 육상 남자 단거리의 간판스타다. '한국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라는 이름답게, 김국영은 지금까지 총 5번이나 한국기록을 경신했다. 육상을 시작한 건 남들보다 늦은 중학교 2학년 때였지만 금세 한국 남자 단거리 육상의 희망으로 떠올랐다.고 서말구 전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1979년 세운 100m 한국기록(10초34)이 30년 넘게 이어져 왔는데 이 기록을 깬 선수가 바로 김국영이다. 또 2010년 6월 전국육상선수권 예선에서 10초31을 뛰어 한국기록을 새로 쓰더니 준결승에서 10초23으로 자신이 세운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30년 넘게 깨지지 않던 기록을 단숨에 0.11초나 앞당긴 것이다. 2015년 7월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선 10초16을 기록하며 자신의 기록을 새로 썼다. 김국영이 '기록 제조기'로 불리는 까닭이다. 그의 질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국영은 지난 6월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2017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 남자 100m 결승전에서 10초07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자신이 이틀 전 같은 장소에서 세운 한국기록(10초13)을 0.05초 앞당긴 또 한 번의 신기록이었다. 그러나 김국영이 이날 자신의 기록을 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을 가늠하는 기준 기록(10초12)을 통과했기 때문이다.김국영은 일찍부터 올 시즌 목표를 두 가지로 잡았다. 그중 하나가 이번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준 기록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육상 약소국인 한국에서는 기준 기록을 통과해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무대에 발을 내디딜 수 있다. 밥 먹듯이 한국기록을 갈아 치워 온 김국영이지만, 지난 시즌까지 그가 갖고 있던 한국기록은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준 기록에 미치지 못하는 10초16이었다.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을 목표로 잡은 김국영은 기준 기록 통과를 위해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당연히 피땀 어린 노력이 수반됐다. 기록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세 교정에 주법까지 바꿨던 김국영은 이번에도 철저한 맞춤 훈련으로 목표를 정조준했다. 훈련량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맥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게 식단을 관리했다.그 결과, 지난 6월 열린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 첫날 10초13으로 한국기록을 끌어올렸고, 이틀 뒤에 10초07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했다. 런던에 갈 자격을 본인 스스로 얻어 낸 셈이다.◇ 10초 벽 넘어 9초의 세계로 간다김국영이 세운 또 하나의 목표는 '꿈의 9초대 진입'이다.9초는 단거리에서 여러모로 상징적인 기록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던 '마의 10초 벽'을 1968년 짐 하인즈(미국)가 무너뜨린 이후 9초대 기록은 세계 정상급 스프린터와 그렇지 않은 스프린터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볼트를 비롯해 그의 라이벌 저스틴 게이틀린(35·미국), '신성' 안드레 드 그라세(23·캐나다), 크리스티안 콜먼(21·미국) 등 각종 국제 대회 우승권에 근접한 선수들은 모두 9초대를 뛴다. 그중에서 가장 빠른 볼트가 보유한 100m 세계기록은 9초58이다. 그러나 아시아 선수들에게는 이 9초로 가는 길이 턱없이 험난하다. 신체 조건과 타고난 탄력이 큰 영향을 미치는 단거리의 특성상 9초대를 달리는 선수들은 대부분 '육상 강국'의 흑인 스프린터들이 대부분이다. 아시아에서 10초의 벽을 넘어 9초대에 진입한 선수는 중국의 쑤빙톈(28) 단 한 명밖에 없을 정도다.쑤빙톈은 2015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열린 IAAF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99를 기록해 3위에 올랐다. 쑤빙톈은 지난해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도 9초99의 기록으로 아시아 선수 최초의 세계선수권 결승 진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하지만 김국영은 자신만만하다. 언제나 "내 100m 목표는 9초대를 뛰는 것"이라고 강조해 온 김국영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 발짝 더 '9초대 진입'의 꿈에 다가설 계획이다. 철저한 준비와 훈련 그리고 관리로 불과 2년 만에 0.09초를 줄인 폭발적인 상승세라면 9초대 진입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동안 해 온 노력이 있기에 김국영 본인도 "운동 한 걸 생각하면 억울해서라도 무조건 9초대에 뛰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게 됐다.9초대 진입을 위한 첫 도전이 바로 이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다. 준결승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는 김국영은 5일 오전 100m 예선을 치른다.김희선 기자 2017.08.04 06:00
브랜드미디어
모아보기
이코노미스트
이데일리
마켓in
팜이데일리
행사&비즈니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