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영국 런던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의 은퇴로 떠들썩하다.
볼트가 은퇴 무대로 선언한 2017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4일(한국시간)부터 13일까지 바로 런던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나서기 전부터 볼트는 이번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자신의 은퇴 무대로 점찍었다. 그리고 대회가 다가오자 전 세계의 이목이 런던에 집중되고 있다.
남자 육상 단거리 세계기록을 모두 갈아 치운 '인간 번개', 패배를 모르는 실력과 화려한 세리머니를 갖춘 '육상 최고의 스타' 볼트의 마지막 레이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모두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에게 집중하는 가운데 묵묵히 이번 대회에 전의를 불태우는 선수가 있다. 바로 '한국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 김국영(26·광주시청)이다.
◇ '한국기록 제조기' 런던에 가다
김국영은 자타공인 한국 육상 남자 단거리의 간판스타다. '한국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라는 이름답게, 김국영은 지금까지 총 5번이나 한국기록을 경신했다. 육상을 시작한 건 남들보다 늦은 중학교 2학년 때였지만 금세 한국 남자 단거리 육상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고 서말구 전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1979년 세운 100m 한국기록(10초34)이 30년 넘게 이어져 왔는데 이 기록을 깬 선수가 바로 김국영이다. 또 2010년 6월 전국육상선수권 예선에서 10초31을 뛰어 한국기록을 새로 쓰더니 준결승에서 10초23으로 자신이 세운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30년 넘게 깨지지 않던 기록을 단숨에 0.11초나 앞당긴 것이다. 2015년 7월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선 10초16을 기록하며 자신의 기록을 새로 썼다. 김국영이 '기록 제조기'로 불리는 까닭이다.
그의 질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국영은 지난 6월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2017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 남자 100m 결승전에서 10초07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자신이 이틀 전 같은 장소에서 세운 한국기록(10초13)을 0.05초 앞당긴 또 한 번의 신기록이었다. 그러나 김국영이 이날 자신의 기록을 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을 가늠하는 기준 기록(10초12)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김국영은 일찍부터 올 시즌 목표를 두 가지로 잡았다. 그중 하나가 이번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준 기록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육상 약소국인 한국에서는 기준 기록을 통과해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무대에 발을 내디딜 수 있다. 밥 먹듯이 한국기록을 갈아 치워 온 김국영이지만, 지난 시즌까지 그가 갖고 있던 한국기록은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준 기록에 미치지 못하는 10초16이었다.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을 목표로 잡은 김국영은 기준 기록 통과를 위해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당연히 피땀 어린 노력이 수반됐다. 기록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세 교정에 주법까지 바꿨던 김국영은 이번에도 철저한 맞춤 훈련으로 목표를 정조준했다. 훈련량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맥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게 식단을 관리했다.
그 결과, 지난 6월 열린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 첫날 10초13으로 한국기록을 끌어올렸고, 이틀 뒤에 10초07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했다. 런던에 갈 자격을 본인 스스로 얻어 낸 셈이다.
◇ 10초 벽 넘어 9초의 세계로 간다
김국영이 세운 또 하나의 목표는 '꿈의 9초대 진입'이다.
9초는 단거리에서 여러모로 상징적인 기록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던 '마의 10초 벽'을 1968년 짐 하인즈(미국)가 무너뜨린 이후 9초대 기록은 세계 정상급 스프린터와 그렇지 않은 스프린터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볼트를 비롯해 그의 라이벌 저스틴 게이틀린(35·미국), '신성' 안드레 드 그라세(23·캐나다), 크리스티안 콜먼(21·미국) 등 각종 국제 대회 우승권에 근접한 선수들은 모두 9초대를 뛴다. 그중에서 가장 빠른 볼트가 보유한 100m 세계기록은 9초58이다. 그러나 아시아 선수들에게는 이 9초로 가는 길이 턱없이 험난하다. 신체 조건과 타고난 탄력이 큰 영향을 미치는 단거리의 특성상 9초대를 달리는 선수들은 대부분 '육상 강국'의 흑인 스프린터들이 대부분이다. 아시아에서 10초의 벽을 넘어 9초대에 진입한 선수는 중국의 쑤빙톈(28) 단 한 명밖에 없을 정도다.
쑤빙톈은 2015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열린 IAAF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99를 기록해 3위에 올랐다. 쑤빙톈은 지난해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도 9초99의 기록으로 아시아 선수 최초의 세계선수권 결승 진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김국영은 자신만만하다. 언제나 "내 100m 목표는 9초대를 뛰는 것"이라고 강조해 온 김국영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 발짝 더 '9초대 진입'의 꿈에 다가설 계획이다. 철저한 준비와 훈련 그리고 관리로 불과 2년 만에 0.09초를 줄인 폭발적인 상승세라면 9초대 진입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동안 해 온 노력이 있기에 김국영 본인도 "운동 한 걸 생각하면 억울해서라도 무조건 9초대에 뛰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게 됐다.
9초대 진입을 위한 첫 도전이 바로 이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다. 준결승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는 김국영은 5일 오전 100m 예선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