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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힛트쏭' 김민아, 이상민 궁핍한 합숙 일화에 충격

'이십세기 힛트쏭'에서 1990년대 12월 가요계 최후의 1인을 소환한다. 오늘(3일) 오후 8시에 방송될 KBS Joy '이십세기 힛트쏭'(이하 '힛트쏭')은 '1990년대 가요톱10 마지막 1위 힛트쏭'을 주제로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KBS 대표 음악 프로그램 '가요톱10'에서 12월 마지막 주 1위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가요계 대세들이 공개된다. '트로트계 힙스터' 태진아부터 '독보적 창법의 소유자' 김정민과 이소라까지 장르 불문하고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가수들의 히트곡들이 소개된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가요톱10' 1위를 차지한 현진영의 이색 소감도 만나볼 수 있다. 콘서트 현장에서 이원 생중계로 1위 소감을 전한 것. MC 김희철과 김민아는 현진영이 유행을 일으킨 힙합 패션 일명 '똥 싼 바지'에 반가움을 드러낸다. 1집 활동부터 대박을 터트린 룰라의 험난했던 데뷔 과정도 전파를 탄다. 김민아는 허름한 민박집에서 합숙 훈련을 한 룰라에 "극한 직업이다"라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김희철은 "먹을 게 너무 없었다더라"라며 이상민의 증언을 전한다. 1997년 당대 최고의 인기그룹이었던 젝스키스, H.O.T., 터보의 대결에서는 반전 결과로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번외차트에서 단 1표 차이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1위 쟁탈전이 그려진다. DJ DOC와 박미경, 김경호와 임창정이 승부를 점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벌인 것. 1990년대 '가요톱10' 마지막 1위 히트송은 '힛트쏭'에서 확인 가능하다. KBS Joy는 Skylife 1번, SK Btv 80번, LG U+tv 1번, KT olleh tv 41번 그리고 KBS 모바일 앱 'my K'에서 시청할 수 있으며, 지역별 케이블 채널 번호는 KBS N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힛트쏭'의 더 많은 영상은 주요 온라인 채널(유튜브, 페이스북) 및 포털 사이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oongang.co.kr 2021.12.0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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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K' DJ DOC "세 명 모두 나이트클럽 DJ 출신"

SBS ‘전설의 무대-아카이브K(이하 아카이브K)’에서 DJ DOC의 ‘요절복통’ 결성기가 전격 공개된다. 17일 방송될 ‘아카이브K’에서는 90년대 대중음악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90’s 나이트DJ와 댄스음악‘을 기록하기 위해 레전드급 가수인 박미경, DJ DOC, 터보, 김현정, 코요태가 출연해 화려한 무대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선사한다. 무대 위의 영원한 악동으로 불리는 ‘DJ DOC’가 오랜만에 완전체로 출연해 과거 DJ DOC 제작자인 신철과 첫 만남 에피소드를 밝혀 관심이 집중된다. 당시 신철은 DJ출신 가수를 제작하기 위해 여러 클럽을 다녔는데 “어떤 친구가 웃통을 벗고 랩을 하는데 디제잉을 잘 하더라. 그게 이하늘이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자 이하늘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진땀을 흘렸다. 덧붙여 신철은 “김창열은 빨간 고무장갑을 머리에 쓰고 터트리는 쇼를 보여줬다”며 폭탄 발언을 이어가자 멤버들은 나서서 당시 왜 그렇게 했는지 속시원한 전말을 밝혔다는 후문이다. ‘90년대 나이트 클럽 DJ’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댄스 음악의 역사를 되짚어줄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는 17일 일요일 밤 11시 5분에 방송된다. 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 2021.01.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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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재훈 취중토크②] "신정환, 도와주려해도 속마음 잘 모르겠어요"

이만한 롤러코스터 인생이 있을까.자숙 기간을 거쳐 복귀한 탁재훈(48)은 '재기'급행 열차에 탑승했다. 28살의 늦은 나이에 연예계에 입문해 히트곡도 냈고 배우, 예능인으로서 굵직하게 이름을 새긴 그다. 2007년엔 KBS '연예대상' 대상도 거머쥐며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서기도 했다.그러나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와 탁재훈을 집어 삼켰다. 불법 도박으로 자숙하던 중 이혼까지 했다. 10여년간 차근차근 쌓았던 명성은 논란의 꼬리표와 함께 무너져내리는 듯 했다.그런 그가 3년만에 복귀했다. 탁재훈의 복귀 선언에 예능계는 들썩였다. 탁재훈의 '악마의 재능'은 최근 대세 예능프로그램 필수 요소인데다 이와 같은 캐릭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자들이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대중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때문에 탁재훈은 복귀작 '음악의 신2'부터 '라디오스타', 'SNL코리아7' 등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마다 '대박'을 기록했다.탁재훈은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하반기 고정 MC로 긍정적 논의를 하고 있는 예능프로그램도 여러개. 탁재훈은 "다시 예전의 전성기를 누리겠다는 마음은 없다. 더이상 잃을 것도 없고 모든 걸 해탈한 느낌이다. 이제는 즐겁게 일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지난 달 청담동의 한 이자카야에서 탁재훈을 만났다. 소속사 없이 일하고 있는 탁재훈은 일찌감치 약속 장소에 나와있었다. "지각 안했다"는 말에 "이제 안한다"며 껄껄 웃었다. 그는 자숙 이전보다 오히려 여유있는 모습으로 그간의 이야기를 꺼내놨다. 물론 감출 수 없는 입담도 취중토크를 웃음으로 물들였다. 그렇게 3시간 넘도록 커다란 사케 두 병을 깨끗이 비웠다.[탁재훈 취중토크①]에서 이어집니다.-음악은 다시 안하나요."음악 하려고요. 올해 초겨울 쯤 앨범 낼 계획이 있어요. 뮤지가 프로듀서고요. 이제 차차 준비 중이예요. 앨범은 미니 앨범 형태로 준비할 생각이에요. 장르는 논의 중이에요. 뮤지가 알아서 해줄거예요(웃음). 뮤지가 짊어져야죠.하하"-뮤지씨랑은 예능 프로그램도 자주 출연하던데, 어떻게 친한가요."뮤지가 저한테 접근을 했어요. 프로그램할 때 만났죠. 그렇게 알고 지낸지는 5~6년 됐고, 자숙 시간 동안 자주 본 친구 중 한 명이죠." -탁재훈씨는 마당발로도 유명하죠."연예인들이랑은 대부분 친해요. 내일(인터뷰 다음 날)은 황정민, 나, 주진모, 이종혁 넷이서 골프치러 나가요. 모임이 있어요. '싱글벙글'이라고(웃음). 안성기형 김영철 형 등 배우들 모임이에요."-성격이 한결 같아요."안 될때도 잘 될때도 비슷했어요. 잘 돼도 투덜, 못 돼도 투덜, 투덜이죠. 변한게 별로 없어요. 표현의 방식이 일반 사람들이랑 다른 거죠. 되게 직설적이에요. '라디오스타'에서 말했던 치즈버거 사건도 같이 촬영하는 동생들이 밥을 못 먹고 계속 대기하고 있으니까 동생들 위해서 나서서 '밥은 먹고 합시다'한 거죠. 아닌 건 아닌 스타일이예요. 그래서 동생들이 절 많이 따르나봐요.하하하"-탁재훈씨의 데뷔 시절 이야기를 해볼게요. 컨츄리꼬꼬 전에 솔로를 했잖아요."'내가 섰던 길'로 1년 활동하고, 또 1년 있다가 아무도 모르는 앨범내서 95년에 활동했어요. 그후 3년 정도 공백이 있다가 98년에 컨추리꼬꼬를 한 거죠."-데뷔를 늦게 한 편이네요."군대 23살에 갔다가 26살에 제대했죠. 89년 10월 17일에 군대를 가서 92년 4월 16일에 제대했어요. 정확히 30개월을 강원도 홍천 9연대에 있었는데, 군대에 있는 동안 겨울을 4번 겪었어요. 이래저래 쉬고 했더니 27살. 준비하니까 28살. 이렇게 된거예요. 그땐 데뷔 나이에 대한 특별이 기준이 없었어요. 지금 아이돌은 어렸을 때부터 연습생 신분으로 준비를 하잖아요. 예전엔 주먹구구식였죠. '누구 춤 잘춘다면 너 그룹하자. 노래 잘하면 그룹하자' 그랬어요. 그리고 그땐 R.ef 철이 형이 있었어요. 그 형이 나이가 되게 많았어요."-원래 가수가 꿈이었나요."원래 가수하려던건 아니었는데, 아는 누나가 오디션 보자고 해서 갔다가 소속사와 계약했어요. 그때 '날개 잃은 천사' 제작했던 최준영과 만났어요. 그렇게 95년도 스물 여덟에 스타트했죠. 그런데 그때 워낙 센 가수가 많아서 한참 헤맸어요. 룰라, DJ DOC, 박미경, 김건모, 서태지, 솔리드, R.ef… 난다 긴다하는 사람들 다 나왔죠. 거기에 제가 어떻게 끼어요. 그래서 옵션로도 나가고 그랬어요."-컨츄리꼬꼬는 바로 이름을 알렸나요."아뇨. 앨범 내고 8개월을 헤맸어요. 데뷔곡이 'Oh, 해피'였는데 바로 방송은 못했어요. 게다가 IMF가 터져서 한숨만 나왔죠. 그렇게 5~6개월 쑥 지나갔죠. 그러던 중 당시 남희석·박수홍이 MC인 '좋은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운 좋게 '좋은 친구들' 게스트로 나갔어요. 거기서 신정환과 '우리 막하자'라고 했죠. 녹화 들어가서 진짜 마음대로 했어요. 놀러다니면 있었던 일, 싸웠던 일들을 막 쏟아냈죠. 그랬더니 현장에서 빵빵터진 거예요. 그 다음 날 PD가 '정말 재밌다고 다음 주에 더 나와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 때부터 방송을 시작했죠. 다른 방송도 줄을 이었고요. 그땐 우리 같은 가수들이 없었어요. 소속사에서 가수들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우리처럼 못 하게 했거든요. 완전 틈새시장을 잘 뚫고 들어간거죠. 'Gimme Gimme' '애련' 같은 노래 나오고, 99년이 전성기였어요. 재밌는 가수 느낌으로 많이 했죠. 나가면 시청률도 올랐고, CF도 진짜 많이 찍었어요. 99년부터 2001년까지 피크였죠."-그때 돈도 많이 벌었겠어요."그때는 생각보다 못 벌었어요. 활동할 때는 회사가 돈을 많이 벌었고요. 2000년, 2001년 쯤이 돼서야 돈을 만져봤어요."-신정환 씨와는 처음에 어떻게 만난건가요."제가 룰라와 같은 소속사에 있어서 룰라 멤버들과 친했어요. 게다가 같은 동네에 살았고.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룰라 멤버에 정환이가 없었어요. 정환이가 군대에서 제대하고, 고영욱이 저에게 정환이를 소개시켜줬죠. 그래서 저랑 영욱이랑 정환이 셋이서 같이 어울려 다녔죠. 이상민은 그때 어린 나이에 사업하러 다녔고요. 그때 제 나이가 32살이었어요. 데뷔는 28살에 했죠."-신정환 복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높아요."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겠어요. 정환이와 친한 사이지만, 이제는 좀 지쳤다고 할까.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는데, 본인이 움츠러드는 것 같아요. 해외에서 잘 사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건지 속마음을 모르겠어요. 안타깝죠."-마지막으로 낸 노래가 '콩가'예요."2002년 때 월드컵 응원하려고 '콩가'로 광화문 무대에 섰던게 아직도 기억나요. 그런데 '콩가'를 끝으로 침체기가 왔어요. 월드컵 이후로 신정환은 예능의 길을 가고, 저는 2001년에 결혼하면서 일을 좀 쉬었죠. 월드컵 지나고 2003년 때 예능을 다시 시작했죠. 2004년에 S.papa 솔로 앨범도 냈고요. 2005년에 본격적으로 '상상플러스' MC를 했고요. 2005, 2006, 2007년 3년을 '상상플러스'가 엄청 났죠. 시청률 30% 넘은적도 있어요. 예능에서 전무후무하죠. 그렇게 2007년에 연예 대상을 탔죠. 2008년도 부터 하락 곡선을…"-배우로도 활약했죠."영화 많이 찍었어요. '가문의 위기' 시리즈를 했고, '내 생에 최악의 남자들'을 염정아와 연기했죠. 여기서 마동석을 단역으로 데뷔 시켰어요. 동석이가 트레이너 할 때 나와보라고 했었거든요. 지금도 왔다갔다 하면서 소주한 잔 하고 그래요."[탁재훈 취중토크③]으로 이어집니다.황미현·이미현 기자사진=양광삼 기자장소협찬=호루몬☞ 관련기사 바로가기[탁재훈 취중토크①] "악마의 입담 악플? 다 생각하다간 '머리아포~'"[탁재훈 취중토크②] "신정환, 도와주려해도 속마음 잘 모르겠어요"[탁재훈 취중토크③] "쓰나미 같은 악재 원샷..이제 다시 시작이죠" 2016.06.0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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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th 골든★열전④] 최초의 3회 연속 대상 기록..김건모 편

시상식의 꽃은 대상이다. 최고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골든디스크 시상식의 대상이라면 더 그렇다.30년 역사의 골든디스크에서 처음으로 3회 연속 대상을 수상한 가수는 김건모다. 김건모가 대상을 수상하던 1994년부터 1996년까지는 앨범과 디지털음원으로 대상을 두 팀에게 수여하던 현재와는 달랐다. 본상을 10팀에게만 줬고, 대상은 단 한 팀에게만 수여했다. 그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김건모는 가요계 르네상스라고 불리던 90년대 가요계에서 그 만큼 최고 가수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 골든디스크 30회 동안 가장 빛났던 스타 10명(팀)을 선정했다. 조용필·변진섭·故 김현식에 이은 4번째 스타는 '까만콩' 김건모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수 없는 '핑계' '잘못된 만남' '스피드'를 부르며 시대를 풍미한 댄스 가수다.골든디스크 시상식은 K팝이 현재의 거대한 문화로 자리잡기까지, 그 흐름과 현장을 목격했고 한국 가요 성장의 궤를 함께 했다.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30회 시상식은 오는 20일~21일 열린다. ▶골든디스크 최초 3회 연속 대상 수상자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김건모의 이름은 앞으로도 '최초'라는 타이틀로 회자될 전망이다. 판매량이 최고 가수를 가르는 주된 척도인 만큼 김건모의 '최초 3년 연속 대상'의 의미는 값지다. 김건모는 기록의 사나이다. 아직도 단일 앨범 최고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전설적인 가수다. 김건모에게 골든디스크 2번째 대상을 안겨준 3집 '잘못된 만남'은 28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최단 시간 최대 판매량으로 한국 기네스에 등재됐다.1992년 10월 29일 1집을 발표하며 데뷔한 김건모는 '첫인상'으로 1993년 골든디스크에서 곧바로 본상을 수상했다. 신인 김건모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김건모는 이듬해 1994년 곡 '핑계'로 무려 대상을 차지했다. 1집 본상, 2집 대상의 '미친' 행보였다.이 기록은 3년간 유지됐다. 3집 '잘못된 만남'과 4집 '스피드'가 연이어 대상을 차지한 것. 90년대 중반 가요계에서 김건모의 노래는 '필수'였던 셈이다. 변진섭·신승훈·고 김현식에 이은 김건모의 대상 수상은 가요계의 흐름이 발라드에서 댄스 음악으로 넘어갔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다.김건모의 이 기록은 불멸로 남게 됐다. 가수 조성모와 그룹 슈퍼주니어도 3회 음반 대상 수상자지만 연속은 아니었다. 음반 시장에서 음원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골든디스크는 지난 2006년부터 디지털 음원 대상을 신설했다. 이후 3회 연속 대상 수상 가수들이 늘었다. SG워너비는 2005년 '죄와 벌'로 음반 대상으로, 2006년 '내 사람'으로 음원 대상을, 2007년 '아리랑'으로 다시 음반 대상을 받았다. 소녀시대는 2009년 곡 'Gee'로 음원 대상, 2010년 'Oh!'로 음반 대상, 2011년 'The Boys'로 음원 대상을 수상했다. ▶김건모가 이끈 대중가요 르네상스90년대 가요계는 젖과 꿀이 흘렀다. 수많은 스타가 탄생했고, 가요 기획사들도 어마어마한 음반 판매량 덕분에 풍요로울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있던 가수가 김건모였다. 2001년 통산 판매량 1000만장을 넘어섰다. 앨범에서 음원으로 흐름이 넘어간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록. 이른바 '길보드'라고 불리던 길거리 매대 판매량까지 더하면 실제 판매량은 이 기록의 두배가 될거라는게 정설이다.김건모는 ‘금수저’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다재다능함으로 정상의 위치에 올라선 가수였다. 그의 재능은 프로듀서 김창환이 알아봤다. 이후 신승훈·노이즈·클론·박미경과 라인음향에 소속돼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김건모 성공 비결은 첫 째도 가창력, 둘 째도 가창력이었다. 그만큼 탁월했다. 발라드·댄스·레게 등 모든 장르의 표현이 가능했다. 혼자 부르면 숨이 넘어간다는 '잘못된 만남'을 격한 안무와 함께 표현할 수 있었다. 흑인 감성이 짖어, R&B 음악에도 최적화된 가수였다. 댄스 음악이 한 곡 빅히트를 기록하면 '아름다운 이별''미안해요''혼자만의 사랑' 같은 발라드로 1위에 오르곤 했다. 그야말로 팬들을 지루할 틈 없게 했다. 김건모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끈 댄스 음악의 붐은 지금의 아이돌 시대까지 이어졌다. 90년대 중반 김건모를 시작으로 듀스·R.ef·솔리드·DJ DOC·쿨·터보·유승준 같은 댄스 스타들이 탄생했다. 앨범만 발표하면 100만장씩 팔아치우던 댄스 음악의 최절정기였다. 이 흐름은 H.O.T·젝스키스 등의 아이돌에게 넘어갔고, 20년에 걸친 댄스 음악 장기 집권기가 탄생했다. 황미현 기자 2016.01.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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