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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②] 장준환 감독 "병아리감별사·인형눈박기 직업도 생각했죠"

"백상 트로피를 드디어 받아 보네요. 우리 집에 처음 들어오는 트로피라 남달라요."영화 '1987' 장준환 감독이 작품으로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내심 감독상을 기대했지만 호명되지 않은 탓에 마음을 비우고 앉아있던 찰나, 마지막 순간 들려온 작품명이다. 장준환 감독은 생각했던 소감도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무대에 올라 얼떨떨한 마음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2003년과 2004년 상업영화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로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 단골 손님으로 불렸던 장준환 감독은 유일하게 백상에서만 트로피를 품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14년만에 풀었다.장준환 감독에게 '1987'는 눈물 버튼이나 다름없다. "평소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다"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1987'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눈물을 보이는 장준환 감독을 포착할 수 있었다. "고민했던 만큼 마음의 짐도 컸던 것 같아요. 영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이야기가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죠." 개봉 후 반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1987'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찾은 장준환 감독이다. 고(故)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추모식에 참석하는 것도 매 해 챙겨야 할 일정이 됐다.장준환 감독은 수상 후 "아내 문소리를 언급하지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장준환 감독과 문소리는 감독과 배우로 만나 지난 2006년 결혼, 2011년 딸 연두를 낳았다. "딸에게는 잘 놀아주는 아빠이면서 미안한 아빠"라고 토로한 장준환 감독은 "배우 활동을 하는 아내에게는 많은 혜택과 긍정의 에너지를 받는다"며 고마워 했다.'지구를 지켜라(2003)',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1987(2017)'까지 작품을 선보이는 텀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타 감독들에 비해서는 꽤 오랜 준비 기간을 필요로 한다. 차기작은 역시 미정, "'1987'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장준환 감독이다. 은근슬쩍 55회 백상 심사위원 자리를 요청하자 장준환 감독은 "'촬영 들어간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시원한 맥주를 쭉 들이켰다. 더할나위없이 반가울 소식. 장준환 감독의 행보를 아낌없이 응원한다.※취중토크①에서 이어집니다.- 백상 GV 당시 '기회가 되면 우디네극동영화제 반응을 전해주겠다'고 했어요."아, 그것도 소감으로 말하려고 했는데 잊었네요. 어떻게 보면 '1987'은 우리의, 우리나라의 이야기잖아요. 인물도 너무 많고요. 가끔 외국영화를 볼 때 '쟤 아까 죽었는데 왜 또 나와?' 싶을 때가 있거든요. 얼굴 구분이 잘 안 되서요. 그 분들도 그럴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갈 땐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뜨거워 놀랐어요. 영화에 집중하는 눈빛이 걱정될 정도로 진중하시더라고요. 우디네영화제는 관객상이 대상이에요. 그걸 '1987'이 받았죠. 물론 평소 아시아 영화를 많이 보는 분들이 자리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뜻깊었어요. 박수도 길게 쳐 주셔서 나중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상영은 끝났지만 '1987' 관련 행사들이 많아요."'1987'은 특히 더 노심초사하면서 걱정한 부분들이 많은 작품이에요. 유가족 분들의 마음이 혹시라도 상한다면 우리가 영화를 만든 뜻과는 달라지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을까' 끝까지 긴장할 수 밖에 없었죠. 또 '이 이야기를 관객들이 잘 즐길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뒤따랐고요. 아주 기본적이지만 그 기본을 해내는게 쉽지는 않았어요. 번 아웃이라고 하죠? 지금은 그런 것들이 싹 다 타버린 것 같아서 관련 행사들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어요." - '1987'이 낳은 긍정적 영향력이라 봐도 될까요."학교, 시민단체, 행정단체 등 많은 곳에서 관심을 주셨어요. 영화 '1987'은 1987년의 어떤 아름다운 부분을 보려고 노력했고, 그걸 이야기로 만들어서 나눈건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좀 더 확장시켜 1987년을 들여다 봤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었죠. '30년 전 저렇게 순수하고 치열하고 아름다운 발걸음을 걸었는데, 왜 30년만에 다시 광장에 나가야 했는지, 당시 희생되신 열사 분들을 비롯해 목청 높여 소리치며 뛰어다닌 분들의 피땀이 지금까지 제대로 흐르고 있는지, '그 날이 오면'이라고 외친 열사들의 꿈처럼 그 날은 왔는지, 그 날을 향해 가고는 있는지' 그런 의미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위해 제 스스로, 자발적으로 많이 참여하고 있어요." - 고(故)이한열 열사 추모 행사에도 참석했죠."매년 참석할 생각이에요. 앞으로도 쭉이요. 1년에 두 번 있어요. 1월에 고 박종철 열사 기일이 있고, 이한열 열사는 7월에 돌아가셨지만 추모제는 6월9일 전 후에 진행하죠.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지만 '1987'을 연출한 만큼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1987'은 이한열 열사를 연기한 강동원 씨의 영향력이 확실히 컸어요. "동원 씨가 촬영 때문에 미국에서 있잖아요? 참석은 못했지만 추모식이 있다는 걸 알고 그 먼 곳에서도 꽃을 챙겨 보냈더라고요. 특별한 선물이 됐어요. 고맙고 고맙죠. 언제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런 배우예요." - 현재 관심사는 무엇인가요."우리가 어떻게 이야기를, 대화를 잘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뭘 하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요즘에는 SNS나 메시지를 이용하는데 긴 문장들도 쓰긴 하지만 대부분 짧은 문장으로 해결하고 '여기서 뭐 더 있어?'라는 식으로 끝나는 것 같아요. 빨리 빨리 소통하죠. 장점도 있지만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사람의 영혼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때로는 표정도 눈빛도 보면서 또 다른 무언가가 생기는 부분이 있는데 단절된 느낌이라서요." - 그 과정에서 오해도 생기죠. "흔히 '민주주의, 민주주의' 말은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를 언제부터 제대로 할 수 있는거지?' 싶어요. 민주주의는 서로 의견을 나누고 결정하는 거잖아요?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일이 날 때마다 이리 슥 갔다가 저리 슥 가면서 어떤 깊이있는 이야기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쪽에 우르르 몰렸다가 '저기도 있대!' 하면 그쪽으로 또 우르르 몰려가는.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그런 현상에 관심이 생겼어요." - 작품 활동 혹은 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도 하나요."제가 작품을 좀 띄엄띄엄하는 편이라.(웃음) '그만 해야지' 이 생각을 할 때는 아직 아닌 것 같아요. 다만 할 때마다 '이제는 좀 편하겠지'라는 기대가 있는데 막상 시작하면 또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여성은 아니지만 영화를 만들 때마다 아이 낳는 것처럼 하나하나 공들이고 힘들여 만들다 보니까 할 때마다 어렵기도 해요. 빠르고 쉽게 건드리면서 '또 하나 해보자~' 이런 생각이 잘…. 저는 평생 안 들 것 같기도 해요."- '다른 것을 해봐야겠다' 생각해 본 적도 있나요."그럼요. 감독이 너무 어렵고 어지럽고 힘들어서 '인형 눈 박는 일'이 하고 싶었을 때가 있어요. 절대 그 일이 쉽다는건 아니에요. 오로지 행위 하나에만 집중해서 똑같은 일을 무한 반복하는거죠. 그땐 그냥 그런 식으로 '하루가 가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 실제로 시도해 보기도 했나요."다른 업종으로 계획했던 적은 있어요. 영화를 제대로 시작하기 전이긴 하지만 '병아리 감별'을 하려고 진지하게 준비했어요. 병아리 감별이 태어난 병아리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병아리가 되기 전 암수를 구분하는 거예요. 알만 보고요. 그걸 빨리 빨리 최대한 정확하게 해내는 것이 병아리 감별사죠." - 뭔가 전혀 상상 밖의 직업이에요."한 때 유학 준비를 했어요. 돈이 없으니까 가서 병아리 감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려고 했죠. 그땐 되게 그럴싸 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어요. 농장은 오하이오 시골에 있는데 거기서 어떻게 왔다갔다 하며 공부를 하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죠.(웃음)" - 성격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나요."아시다시피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에요. 희순이와 단편 찍을 땐 감독인데도 '몰라요' 하기 바빴으니까요.(웃음) 처음 영화 아카데미에 갔을 때도 영화 공부를 시작하긴 했지만 저 역시 '영화감독'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진짜 영화감독의 모습일거라 생각했어요. 빵모자 쓰고 굉장히 카리스마 있게 지시하고 여기저기 뛰어 다니고. 저와는 정반대죠.(웃음) 내심 걱정하면서 다녔는데 그 때 동기 중에 봉준호도 있었고 지금까지 활동하는 여러 감독들이 있었어요. 막상 다들 그런 스타일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이미지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각자 성향이 있는거니까요." - 하다보면 자연스레 바뀌게 되는 부분들이 있죠."맞아요. 필요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죠. 어쨌든 커뮤니케이션이란걸 하잖아요. '1987' 같은 경우엔 수 많은 보조 출연자들이 광장에 모인 장면을 찍는 날, 그들에게 너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예요. '왜 내가 이 작품을 시작했으며, 그 시작은 무엇이었으며,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이 신 때문이었다. 결국 당신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모두가 주인공이지만 광장에 나온 당신들이 주인공이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고 했죠.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상황이 어떻든,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든 하면 또 하게 되더라고요."③에 계속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사진= 김진경 기자 [취중토크①] 장준환 감독 "강동원 화환·김태리 케이크 특별한 선물"[취중토크②] 장준환 감독 "병아리감별사·인형눈박기 직업도 생각했죠"[취중토크③] 장준환 감독 "여배우 남편? 말없이 눈빛만 봐도 통해요" 2018.07.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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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③] 장준환 감독 "여배우 남편? 말없이 눈빛만 봐도 통해요"

"백상 트로피를 드디어 받아 보네요. 우리 집에 처음 들어오는 트로피라 남달라요."영화 '1987' 장준환 감독이 작품으로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내심 감독상을 기대했지만 호명되지 않은 탓에 마음을 비우고 앉아있던 찰나, 마지막 순간 들려온 작품명이다. 장준환 감독은 생각했던 소감도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무대에 올라 얼떨떨한 마음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2003년과 2004년 상업영화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로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 단골 손님으로 불렸던 장준환 감독은 유일하게 백상에서만 트로피를 품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14년만에 풀었다.장준환 감독에게 '1987'는 눈물 버튼이나 다름없다. "평소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다"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1987'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눈물을 보이는 장준환 감독을 포착할 수 있었다. "고민했던 만큼 마음의 짐도 컸던 것 같아요. 영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이야기가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죠." 개봉 후 반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1987'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찾은 장준환 감독이다. 고(故)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추모식에 참석하는 것도 매 해 챙겨야 할 일정이 됐다.장준환 감독은 수상 후 "아내 문소리를 언급하지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장준환 감독과 문소리는 감독과 배우로 만나 지난 2006년 결혼, 2011년 딸 연두를 낳았다. "딸에게는 잘 놀아주는 아빠이면서 미안한 아빠"라고 토로한 장준환 감독은 "배우 활동을 하는 아내에게는 많은 혜택과 긍정의 에너지를 받는다"며 고마워 했다.'지구를 지켜라(2003)',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1987(2017)'까지 작품을 선보이는 텀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타 감독들에 비해서는 꽤 오랜 준비 기간을 필요로 한다. 차기작은 역시 미정, "'1987'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장준환 감독이다. 은근슬쩍 55회 백상 심사위원 자리를 요청하자 장준환 감독은 "'촬영 들어간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시원한 맥주를 쭉 들이켰다. 더할나위없이 반가울 소식. 장준환 감독의 행보를 아낌없이 응원한다.※취중토크②에서 이어집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최근에는 더욱 작품과 배우·감독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흥망을 결정지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의도한 것도 아닌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문제로 커지기도 하고요. 창작자의 입장에서도 신경쓰이지 않나요. "안 쓰일 수가 없어요. 신경이 쓰여요.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죠.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 '듣지 않으려고 한다'는 건 아니에요. '진짜가 뭘까. 이 소용돌이 속에서 남는 진짜는 뭘까'에 집중하고 그것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걸러내는 작업은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 특히 예술가들이 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이자 숙제라고 생각해요. 생각 나는대로 한다고 해서 그게 다 예술은 아니거든요. 코어, 핵심을 다듬어낼 필요는 분명히 있죠.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를 흔드는건 너무 많으니까요." - 경험에서 우러나온 현실적 발언인 것 같아요."영화 하나를 만들면 수명을 적어도 1.5년 씩은 갉아 먹는 것 같아요. 진짜 내 피와 살을 다 내어주는 느낌이랄까요? 모르겠어요. 다른 감독님들은 어떤지 모르겠고, 나름의 고충들이 있겠지만 저는 그렇더라고요." - 가장 힘든 경우는 어떤 때인가요."음…. 내가 믿고있는 무언가를 자꾸 외부적인 요인이 흔들 때. '이게 아닌가? 그렇게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 이게 아닌건가?' 내 의견과 판단이 100% 맞을 수는 없잖아요.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러면서도 결국 결정은 감독의 몫이에요." - 결정엔 책임이 뒤따르죠."촬영할 때 제일 듣기 싫은 질문이 뭔 줄 아세요? '감독님, 뭐 드실래요?' 이거예요.(웃음) 뭘 물어보는게 너무 싫은거예요. '이제 그만 내가 결정하게 해줘. 안 하면 안돼? 그냥 아무거나 먹여줘' 하죠. 하하. 하루에 결정해야 할 것들이 너무 너무 많으니까 직업병 아닌 직업병이 생기더라고요." - 큰 프로젝트를 마치고 휴식은 좀 취했나요."'1987' 개봉하고 막 스크린에서 막 내리자마자 가족들과 다 같이 동남아시아 휴양지에 다녀왔어요." - 누구보다 딸 연두가 좋아했겠어요."오랜시간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이 컸죠. 연두가 요즘 엄마 아빠를 똑 닮아 낯을 엄청 가리는데 또 가족들끼리 있으니까 많이 신나 하더라고요." - 연두에겐 어떤 아빠인가요."잘 놀아주는 아빠이긴 한 것 같아요. 고전적인 아빠들은 일만 하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사냥해 먹잇감 툭 던져주고 '이제 난 몰라. 알아서 먹어' 하는.(웃음) 저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그런 것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딸과 잘 놀아주려고 해요. 같이 놀면서 내가 아이 땐 어땠는지 돌이켜 보기도 하고요." - 정말 좋은 아빠네요."'1987'에 연두와 함께 나왔던 연두 외사촌 오빠가 있거든요. 두 아이가 날 부르는 캐릭터 이름이 있어요. 아빠라고 안 부르고 '빠빠베리'라고 불러요. 무슨 캐릭터 이름인가 싶어 찾아봤는데 없더라고요. 그냥 둘이 직접 만든거예요. 캐릭터가 돼 같이 놀아도 주는거죠. 그리고 아이들은 반복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10번, 100만 똑같이 해줘도 좋아해요. '이렇게 반복해도 계속 웃을 수 있었던 마음은 뭐였지? 우리는 어떻게 자라왔지?' 그런 것도 생각하고 찾아 보게 되더라고요. 아이들과 놀면 제가 배우는 것도 많아요.물론 미안한 아빠이기도 하죠. 작품하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가까이 모습을 잘 못 보여주니까. 보상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챙기게 되는 것 같아요. 다행히 아이들도 저와 재미있게 잘 놀아주더라고요. 하하." - '여배우의 남편'이라는 자리는요. "'여배우'라서기 보다는 같은 일을 하는, 같은 업종이기 때문에 혜택받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말하지 않아도 눈빛 만으로 '무슨 일을 하고 왔구나' 알아주죠. 보통사람 같으면 '네가 일했어? 술만 마시고 왔으면서 일하고 왔다는거야?' 할 수도 있잖아요.(웃음)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 굳이 말을 안 해도 서로 알아주게 돼요. 저는 굉장히 좋은 영향을 받아요. 이렇게 결혼을 해서 그런지 영화일을 하지 않는, 다른 직업군의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서로에게 민폐였을 것 같기도 해요."- 17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도 맡았죠."거절할 명분이 없더라고요. 하하하. 봐야 할 영화들이 꽤 많았어요. 그리고 요즘 단편은 단편이 아닌게 러닝타임이 생각보다 길어요. 필름시대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짧게 찍었는데 요즘은 디지털시대라 그런지 길더라고요. 재미있는 작품을 만나고 능력있는 영화인을 발굴하는건 저희에게도 즐거운 일이죠."- 영화 팬들은 벌써부터 차기작에 대한 바람을 내비치고 있어요. 작품 텀이 긴 감독님이라 불안한가봐요."'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는 걸까요?(웃음) 아쉽게도 지금은 차기작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어요. 6월까지 '1987'과 관련된 일들에 매진하고 7월 5일에 뉴욕아시아영화제까지 다녀오면 정리가 될 것 같네요. '1987'을 잘 마무리 해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 후에 '뭘 할까' 생각해 보려고요. 그 고민이 길어지지 않기를 저도 바라고 있어요."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사진= 김진경 기자 [취중토크①] 장준환 감독 "강동원 화환·김태리 케이크 특별한 선물"[취중토크②] 장준환 감독 "병아리감별사·인형눈박기 직업도 생각했죠"[취중토크③] 장준환 감독 "여배우 남편? 말없이 눈빛만 봐도 통해요" 2018.07.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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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①] 장준환 감독 "강동원 화환·김태리 케이크 특별한 선물"

"백상 트로피를 드디어 받아 보네요. 우리 집에 처음 들어오는 트로피라 남달라요."영화 '1987' 장준환 감독이 작품으로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내심 감독상을 기대했지만 호명되지 않은 탓에 마음을 비우고 앉아있던 찰나, 마지막 순간 들려온 작품명이다. 장준환 감독은 생각했던 소감도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무대에 올라 얼떨떨한 마음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2003년과 2004년 상업영화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로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 단골 손님으로 불렸던 장준환 감독은 유일하게 백상에서만 트로피를 품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14년만에 풀었다.장준환 감독에게 '1987'는 눈물 버튼이나 다름없다. "평소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다"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1987'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눈물을 보이는 장준환 감독을 포착할 수 있었다. "고민했던 만큼 마음의 짐도 컸던 것 같아요. 영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이야기가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죠." 개봉 후 반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1987'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찾은 장준환 감독이다. 고(故)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추모식에 참석하는 것도 매 해 챙겨야 할 일정이 됐다.장준환 감독은 수상 후 "아내 문소리를 언급하지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장준환 감독과 문소리는 감독과 배우로 만나 지난 2006년 결혼, 2011년 딸 연두를 낳았다. "딸에게는 잘 놀아주는 아빠이면서 미안한 아빠"라고 토로한 장준환 감독은 "배우 활동을 하는 아내에게는 많은 혜택과 긍정의 에너지를 받는다"며 고마워 했다.'지구를 지켜라(2003)',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1987(2017)'까지 작품을 선보이는 텀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타 감독들에 비해서는 꽤 오랜 준비 기간을 필요로 한다. 차기작은 역시 미정, "'1987'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장준환 감독이다. 은근슬쩍 55회 백상 심사위원 자리를 요청하자 장준환 감독은 "'촬영 들어간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시원한 맥주를 쭉 들이켰다. 더할나위없이 반가울 소식. 장준환 감독의 행보를 아낌없이 응원한다.-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은 어떻게 되나요."딱 몇 잔, 몇 병으로 단정짓지는 못할 것 같아요. 와이프와 성격이 좀 다른데, 와이프는 자주는 안 마시지만 한 번 마시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이죠. 저는 조금씩 자주 마시고요." - 얼마나 자주 마시나요."건강검진 받을 때 병원가면 검진표를 작성 하잖아요. '일주일에 음주는 얼마나 하나요'라는 항목이 있으면 '한 이틀은 빼자~' 하죠.(웃음) 나이 들어서 운동도 조금씩 하려고 '마음은' 많이 먹었어요. 하하."- 주종도 있나요."술은 안 가려요. 위스키만 빼면 거의 다 잘 마시는 것 같아요. 이것도 와이프와 좀 다른데 와이프는 독주 스타일이고 저는 와인이나 맥주, 소주까지는 마시는 편이에요." - 문소리 씨는 금주 기간이 있더라고요."지금이에요. 다시 또 시작했어요. 이번에는 '노 알콜'에 '노 카페인'까지 외쳤죠. 100일 동안 안 할거라고 하더라고요. 드라마(JTBC '라이프') 촬영 때문이기도 한데, 다음 날 몸이 별로 안 좋을 때가 많아서 기분도 안 좋아진다고 해요. 스스로와 약속한 라마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근데 100일은 너무 길잖아요. '힘들지 않겠어요? 조금씩은 해요'라고 계속 꼬시고 있는데 안 넘어오네요.(웃음) 그런 계획을 세우는 것도, 지켜내는 것도 정말 대단하고 신기해요."- 주사는 없나요."다행히 없어요. 잘 취하지 않는데 아주 많이 마시면 잠드는 정도죠. 깔끔해요."- 사모임은요."예전에는 꽤 많았는데 요즘에는 작품할 때 함께 작품하는 사람들과 마시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 같이 술잔을 기울인 사람도 김윤석 선배와 박희순 배우예요. 희순이와 인연은 정말 오래 됐죠. 저에게도, 희순이에게도 첫 영화였던 단편을 함께 찍었으니까요. 며칠 전에 만났는데 그렇잖아도 취중토크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전화 갈거야'라고요.(웃음) 진짜 왔길래 '왔구나!' 했어요. 하하." - '1987'이 54회 백상 영화부문 대상 주인공이 됐어요. 예상 했나요."대상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솔직히 수상은 기대를 했어요. 아무래도 전 감독이니까 '감독상 받으면 좋겠다' 싶었죠.(웃음) 사실 '지구를 지켜라' 때 웬만한 영화제에서 상을 다 받았거든요. 백상만 타면 그랜드슬램이었는데 유일하게 못 받았죠. 집에 트로피가 많이 있는데 이 백상 트로피만 없어요. 드디어 생겼네요." - 김윤석·박희순 씨도 10 여 년만에 받은 첫 백상 트로피라고 하더라고요."윤석 선배님도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1987'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많으세요. 연기를 너무 잘하기도 했지만 누가 되지 않게, 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정말 나쁘게 잘 하셨거든요. 모두가 같이 받아 더 기분이 좋아요."- 뒤풀이도 했나요"시상식이 새벽에 끝났잖아요? 문 연 곳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24시간 해장국집 들어갔어요. 전 상 받아서 기분도 좋고 신났지만 그날 현장에 가족들이 와 있었거든요. 딸 연두도 봐야 하고 '어떻게 가시면 된다'고 챙겨 드리다 보니까 좀 정신이 없긴 했어요. 아빠 노릇도 잘 해야죠. 뒤풀이 장소로 넘어가고 나서 한숨 좀 돌렸던 것 같아요.참, 그날 (김)태리 씨가 그 시간에 어디서 케이크를 구해 왔더라고요. 처음에는 기다려도 안 오길래 '태리는 안 온대? 못 온대?' 하고 있었는데 케이크를 짠 들고 나타났죠. 1987 숫자 초까지 챙겨서요. 타고난 센스쟁이에요."- 가족들이 바로 옆에, 또 앞에 있어서 더 남달랐을 것 같아요."아쉬운게 하나 있어요. '혹시 감독상을 받게 되면 이런 이런 소감을 말해야지'라고 나름 생각을 계속 했는데 훅 지나갔잖아요? 그래서 막상 대상이 발표 됐을 땐 모든 말을 다 잊어버린 거예요. 정작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못했어요. 우리 문소리 감독님이요. 그날은 감독님으로 앉아 있었으니까.(웃음) 끝나자마자 바로 '미안하다'고 했죠. 무대 위에서는 모니터 스피커도 없어서 이우정 대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이번 수상이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우리 집에 처음으로 오는 백상 트로피라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트로피 자리도 마련해 뒀어요. 하하. 뭐 상은 받으면 기분 좋은게 사실이잖아요. 칭찬으로 받아 들이고 또 열심히 달려야죠." - '1987' 역시 남다른 작품이죠."그럼요. 많이 고민했고, 걱정했고, 그만큼 매달리고 또 매달렸는데 관객 분들과 특히 유가족 분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 아직도 너무 다행이라 생각해요." - 개봉 후 수상까지 고마운 분들도 더 많이 생겼을 것 같아요."너무 많아요. 그래도 관객 분들이 제일 고맙죠. 무대인사를 다니면 그 분들은 우리에게 '고맙다, 이거 잊혀지면 안 되는데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반응이 너무 고마운 거예요. 같이 울 수 밖에 없어요. 그냥 울기만 하는게 아니라 그 마음이 느껴지니까요. 눈을 마주치면 말이 잘 이어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평소에는 정말 잘 우는 사람이 아닌데….(웃음)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끝난 후에도 계속 울게되는 것 같아요. 눈물 버튼이에요." - 이제는 눈물이 조금 말랐나요."아뇨. 지금 이 말을 하면서도 그때 생각이 나서 또 울컥 하네요."②에 계속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사진= 김진경 기자 [취중토크①] 장준환 감독 "강동원 화환·김태리 케이크 특별한 선물"[취중토크②] 장준환 감독 "병아리감별사·인형눈박기 직업도 생각했죠"[취중토크③] 장준환 감독 "여배우 남편? 말없이 눈빛만 봐도 통해요" 2018.07.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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