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서지영의 랜드IS] 펜싱·심리상담·로봇·홈오피스…럭셔리의 끝, 대형 건설사 프리미엄 경쟁
대형 건설사들이 아파트 입주민을 대상으로 앞다퉈 프리미엄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차별화한 서비스로 자체 브랜드 경쟁력과 인지도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건설사들은 과거 아파트 놀이터나 커뮤니티 시설을 특화해 꾸미거나 단지 내 식당을 만드는 식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주거 트렌드가 바뀌면서 프리미엄 서비스의 수준과 결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펜싱 레슨·심리상담 해드립니다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근에는 독특한 예체능 학원들이 성업 중이다. 주요 아파트 단지 앞에 자리 잡은 발레나 각종 악기 레슨 학원은 흔한 풍경이 됐다. 최근 유럽 귀족 전유물로 여겨졌던 승마나 사격, 펜싱 학원이 큰 인기다. 특히 펜싱은 최근 수년 사이 강남 엄마들 사이에 선호하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흔하지 않을뿐더러 고급 스포츠라는 이미지 덕이다. 일부는 미국 아이비리그에 입학할 때 튀어 보이려고 펜싱을 가르치기도 한다. 1회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강습을 받는 데 수 십만원을 줘야 하지만, 펜싱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학원 업계 관계자는 "워낙 드문 운동이다 보니 '도대체 어떤 집 자녀이길래 저런 스포츠를 배우나'라는 궁금증도 일으킬 수 있고, 미국 대입에 유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고 귀띔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대형 건설사가 이런 분위기를 놓칠 리 없다. 현대건설은 최근 스포츠 플랫폼 GV클라스터와 손잡고 '디에이치' 입주민 대상으로 피트니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흔히 생각하는 단지 내 헬스장의 퍼스널트레이닝이 아니다. 펜싱·발레·스피닝·필라테스까지 요즘 핫하다는 스포츠를 배울 수 있다. 수준이 높다. 요즘 강남권에서 인기있는 스포츠 스튜디오가 총출동했다. GV클러스터는 모던 필라테스, 파프짐, 핏템스, 마이크로스튜디오, 신아람 펜싱클럽, 최효정 발레스튜디오 등 국내 유명 스포츠 스튜디오 브랜드를 유치했다. 현대건설은 디에이치 입주민에게 GV클러스터가 보유한 12개 피트니스 브랜드 체험권과 이용권을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건설은 최근 특이한 프리미엄 서비스도 내놓고 있다. 심리상담이 대표적이다. 현대건설은 심리상담 프랜차이즈 기업인 '허그인허그인'과 협업해 다양한 검사를 비교적 싸게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대치동에서 자녀의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유행하고 있는 자녀기질검사, 부모양육태도검사, 부모양육스트레스 검사 등을 제공한다. 각종 대면 심리상담과 비대면 상담, 온라인 상담 등도 제휴가격 또는 무료로 제공한다. 물론 현대건설이 지은 모든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주는 혜택과 서비스는 아니다. 현대건설의 최상위 브랜드이자 강남 요지와 한남동 등지에만 몰린 디에이치 거주민에게만 제공되는 서비스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이런 고급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각종 운영비가 드는데, 이는 아파트 관리비에서 빠져나간다. 그만큼 돈이 든다는 뜻"이라며 "입주민들의 반대를 최소화하고 고급 스포츠를 배우는 이들이 많을 만한 곳을 찾다 보니 디에이치만 프리미엄 서비스를 우선 적용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코로나19로 '집콕'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고민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정착되고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더 발전해야 한다. 디에이치 브랜드 가치 수준에 맞는 주거 서비스를 입주민들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면이 기본…로봇 배달·AI 홈 오피스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관련 서비스를 마련하는 건설사도 늘고 있다. 한화건설은 지난달 한화 포레나 영등포에서 국내 아파트 최초로 '실내 로봇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배달 앱으로 주문한 음식이 아파트 1층 공동현관에 도착하면, 단지에 상주 중인 배달 로봇이 해당 세대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배달 로봇은 무선통신으로 공동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호출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또 층수를 입력해 원하는 층으로 이동도 가능하다. 음식이 도착하면 주문고객의 휴대폰으로 도착 메시지를 보내 안내한다. 코로나19로 배달음식을 시키면서도 배달 라이더들을 걱정했던 입주민을 위한 서비스다. 한화건설은 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손잡고 1년가량 연구해 왔다. 한화건설은 앞으로 로봇을 활용한 서비스 확대 검토와 함께 신규 단지별 적용 환경을 고려해 서비스 제공 범위를 넓혀 나간다는 방침이다. 윤용상 한화건설 건축사업본부장은 "언택트 시대에 배달 로봇 서비스를 통해 입주민들에게 새로운 주거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택 활동이 늘어나면서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으로 무장한 홈 오피스와 홈 스터디룸, 단지 내 영화관을 설치하는 건설사도 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2월 '래미안 RAI 라이프관'을 공개했다. RAI 라이프관은 AI 및 로봇·드론 등 미래 기술을 활용한 식음·배송 등 생활 편의 서비스와 홈 오피스, 홈 트레이닝 등 특화 공간을 갖추고 있다. 세대 내부에는 AI 자동화 솔루션을 통해 입주민 생활 패턴에 따라 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RAI 라이프관은 집중도를 높일 수 있도록 숨겨진 공간 형태로 만들었다는 것이 삼성물산 측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집 안에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홈 피트니스와 영화 관람을 위한 멀티룸 등도 선보였다. GS건설은 지난해 말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 통합서비스 브랜드 '자이안 비'를 선보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차별화한 생활 문화 콘텐트를 제공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GS건설은 CJ CGV와 업무협약을 맺고 단지 내 영화관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6월 입주를 시작한 '서초 그랑자이'에는 총 28석 규모의 커뮤니티 시네마가 설치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배달, 재택근무, 비대면 교육, 화상회의 등이 '뉴노멀'이 됐다. 과거에도 단지 내 특화 시설과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시설 확충은 있었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각 건설사 간 특화 서비스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빨라진 느낌이다"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
2021.08.30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