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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하는 신사들? 원더러스의 낭만 축구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지난 13일 프리미어리그(EPL) 32라운드에서 토트넘 홋스퍼와 울버햄튼 원더러스가 맞붙었다. 토트넘의 손흥민은 주중에 열릴 유로파리그에 집중하기 위해 결장했고, 울버햄튼의 황희찬은 후반 막판에 투입돼 7분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비록 많은 한국 팬이 기대했던 ‘코리안 더비’는 무산됐지만, 필자는 이 기회를 맞아 ‘원더러스(Wanderers)’라는 감성이 가득한 이름을 소개하고자 한다.사실 국내 팬들에게 ‘원더러스’라는 이름은 꽤 친숙하다. 황희찬 이전에 설기현이 울버햄튼에서 뛰었고, 이청용이 한때는 볼턴 원더러스에서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더러스라는 이름을 가진 클럽은 현재 1~4부리그의 92개 클럽 중 단 3개에 불과하다.원더러스는 19세기 중·후반 잉글랜드에서 인기를 얻었던 클럽 이름이다. 그럼에도 ‘시티’, ‘타운’, ‘유나이티드’ 같이 축구 클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이름은 아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자. 동사 ‘wander(돌아다니다, 거닐다)’에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er’이 합쳐진 ‘원더러(wanderer)’는 “목적 없이 여행하는 사람”이란 뜻이다.원더러스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클럽은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을 대표하는 명문 사립학교인 ‘해로우 스쿨(Harrow School)’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1859년 런던 동쪽의 레이톤스톤에 ‘Forest FC’를 설립한다. 하지만 이 클럽은 홈경기장이 없었다. 따라서 런던과 주변 지역의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경기를 치른다는 의미에서 1864년 원더러스로 명칭을 바꿨다. 이러한 이름에는 승리나 보상보다는 즐거움을 위해 축구를 하는 “여행하는 신사 그룹”이라는 낭만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클럽의 명칭에 담긴 낭만적인 정서. 그리고 사립학교 출신의 부유한 이들로 주축이 된 원더러스 FC에서 ‘한량(閑良)’들의 클럽 같은 느낌을 받은 독자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과는 달리, 원더러스는 초창기 잉글랜드 축구의 최강팀이었다. 원더러스는 1872년 제1회 FA컵 대회에서 우승한 데 이어, 1876년부터 1878년까지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들의 주목할 만한 성공은 후에 다른 클럽에도 영감을 주게 된다.원더러스 FC에 이어 또 다른 원더러스가 등장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874년 맨체스터 인근 볼턴에 ‘그리스도 교회 FC(Christ Church FC)’가 설립됐으나, 클럽은 성공회 목사와의 분쟁으로 1877년 ‘볼턴 원더러스’로 이름을 변경한다. 원더러스라는 이름은 클럽이 창단 후 4년 동안 세 개의 경기장을 사용하면서 영구적인 홈경기장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물론 이름 선정 과정에서 볼턴은 당시 잉글랜드 최고의 클럽이었던 원더러스 FC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사료된다.3번째 원더러스도 연이어 나타났다. 1877년 버밍엄 인근의 공업도시 울버햄튼에 있는 교회의 주도로 ‘세인트 루크스(St. Luke's)’라는 축구팀이 설립되었다. 2년 후 세인트 루크스는 근교의 크리켓 겸 축구 클럽이었던 ‘블레이큰홀 원더러스’와 합병하며, 울버햄튼 원더러스가 탄생하게 된다. 보통 두 개의 클럽이 합쳐질 경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을 쓴다. 하지만 울버햄튼 축구 클럽은 영구적인 홈구장이 없던 두 팀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원더러스라고 불리게 된다. 올드 축구팬이라면 1994~95시즌 EPL 우승 팀 ‘블랙번 로버스(Blackburn Rovers)’가 기억날 것이다. 잉글랜드 축구의 1~4부리그에는 블랙번을 포함해 4개의 클럽이 로버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로버(rover)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로버의 사전적 뜻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흥미롭게도 원더러스라는 클럽 이름이 유래한 것처럼, 마땅한 홈구장이 없어 떠돌아다니는 팀에게도 ‘로버스’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참고로 '로버'라는 용어는 거친 지형을 탐험하는 데 사용되는 차량을 지칭할 때도 있는데, 영국의 로버 자동차 회사가 만든 브랜드가 유명한 랜드로버다.블랙번은 1884년부터 1886년까지 FA컵을 3년 연속으로 제패했다. 이렇게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FA컵에서 3년 연속 우승한 팀은 블랙번 로버스와 원더러스 FC가 유이하다. 공교롭게도 홈구장이 마땅치 않아서 떠돌아다녔던 두 팀이 FA컵 대회에서는 괄목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원더러스, 로버스와 같은 의미를 가진 팀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레인저스(Rangers)다. 박지성이 선수 생활 말년을 보낸 QPR(Queens Park Rangers, 퀸즈 파크 레인저스)은 현재 홈구장인 로프터스 로드에 정착하기 전까지 15개의 다른 축구장에서 홈경기를 치렀다.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드 펌’ 더비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위치한 레인저스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텍사스 레인저스도 QPR과 같은 이유로 레인저스로 불리게 되었을까?정답은 아니다. 글래스고 레인저스라는 이름은 잉글랜드의 럭비 클럽인 ‘스윈던 레인저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한 텍사스 레인저스 야구팀의 전신은 ‘워싱턴 세네터스’였으나 1972년 텍사스주 알링턴으로 연고지를 옮긴 후 텍사스 레인저스가 되었다. 레인저스라는 명칭은 주 전역의 법 집행 기관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2025.04.1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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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선 후보 "Again 2002 약속, 축구인-국민의 축구협회로 쇄신하겠다" [IS 현장]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신문선(67)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 초빙교수가 1차 투표를 앞두고 소견 발표를 했다.신 후보는 2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진행한 소견발표에서 “선거 기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여러분들과 한국 축구 미래를 위한 공약을 제시했고, 비전을 공유했다”라면서 "공약을 제시하며, 제54대 정몽규 후보에 대한 평가와 행정, 도덕, 재정적 문제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을 공유하기도 했다. 지난 12년간 협회의 이미지는 무능, 불공정, 특정 대학 카르텔 등 부정적 이미지로 추락했다. 신문선 축구협회는, 축구인과 국민이 주주인 국민의 축구협회로 쇄신하겠다"라고 말했다.신문선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정몽규(63) 대한축구협회장, 허정무(70)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경쟁 중이다. 정 후보의 우세가 점쳐지는 전망이 잇따르지만, 신 후보는 거듭 정 후보 체제 집행부의 무능을 짚으며 쇄신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신 후보는 이날 ▶심판 연맹 창설 ▶재정건정성 기반 축구 투자 유도 ▶엄정한 협회 인사평가 ▶깨끗한 축구협회 등을 약속했다.끝으로 "선거인들에게 보내드린 공약을 최선을 다해 이행하겠다. 숙제 검사는 4년 뒤 평가받겠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제55대 축구협회장 선거는 애초 지난 8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허정무 후보가 협회를 상대로 낸 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인용돼 한 차례 미뤄졌다.이어 1월 23일에 다시 치르려 했으나 허정무 후보, 신문선 후보 측이 선거의 공정성을 강하게 이의, 기존 선거운영위원회가 전원 사퇴하면서 또 선거일이 조정됐다.결국 협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출신 3명, 법조계 3명, 학계 2명, 언론인 3명으로 구성된 새로운 선거운영위를 구성했고,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역임한 박영수 위원을 위원장으로 선임한 뒤 다시 선거 날짜를 잡았다.후보들은 이날 오후 1시부터 1인당 10분씩 정견 발표를 한 뒤, 오후 2시부터 192명의 선거인단이 120분 동안 1차 투표를 진행한다.개표는 오후 4시부터 시작한다. 유효 표 가운데 과반 이상을 얻는 후보가 나오면 그대로 당선이 확정된다. 과반수 득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3위 득표자를 제외한 1·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오후 4시 50분부터 6시까지 70분 동안 결선 투표를 진행한다.다음은 신문선 후보 소견 전문. 선거 기간 저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들과 즐겁게 한국 축구 미래를 위한 공약을 제시했고, 비전을 공유했으며 Again 2002년을 함께 외쳤다. 공약을 제시하며, 직전 집행부인 54대 정몽규 후보에 대한 평가와 행정, 도덕, 재정적 문제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기도 했다.12년간 집행부를 이끌어온 대한축구협회의 이미지는 무능, 불공정, 탑다운 방식의 비상식적인 행정, 특정 대학 카르텔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추락했다. 대한축구협회는 회장을 위한 호위무사들로 인해, 국민과 축구인의 옳은 비판에도 반성이나 쇄신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국민적 심판은, 문화체육부를 통한 특정 감사였다. 27개의 비위 행위에 대한 징계 처분에도, 협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협회 정관에 따라 처벌해야 할 공정위원회는 정 후보의 회장 선발을 위해 나 몰라라 했다. 저는 55대 회장이 되면, 공정하고 투명하게 협회를 이끌 것이다. 축구인이 협회의 주인이며, 국민의 축구협회로 쇄신하겠다.지금부터 협회의 쇄신과, 리뉴얼을 위한 공약을 말씀드리겠다.첫째, 정부와의 긴장 관계를 해소하겠다. 최근 천안축구센터에 투입된 56억원의 국가 보조금 환수와, 이 금액에 대한 5배 범위 안에서 제재 부과금을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전해 들었다. 이 조치는 정 후보의 당락과 상관없이 진행될 것이다. 이에 추가로 정부에서 지원하던 연 300억원이 넘는 정부 보조금과 수익 역시 5년간 중단하겠다는 추가적인 조치도 예고했다. 문체부의 이런 조치는, 협회의 재정 현실을 최악의 재앙이 될 것이다. 정부의 지원금은 11년간 연평균 300억원이 넘었다. 매년 300억원이 넘는 지원금은, 협회의 1000억을 넘나드는 사업 수익에 적게는 30~40%에 달하는 큰 금액이다. 이 금액이 차단될 경우, 협회의 재정 혼란을 불가피할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협회가 역대 경험하지 못한 대혼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 재앙은, 협회의 천안축구센터 시공 사업을 비롯, 축구협회 행정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다. 저는 당선 즉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긴급 협의를 할 것이다. 문체부에서 통보한 27개의 징계 문제에 대해 조속히 처리 후 문체부와 정무적 해결로 이를 풀어갈 것이다. 이에 대한 소통 채널은 이미 확보했다.둘째, 프로축구리그의 재정건정성에 기초한 행정 기조를 변화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 기업 구단이 과거처럼 축구의 사업적 가치,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는 가치에 기반한 과감한 축구 투자를 유도하도록 드라이브하겠다. 협회가 할 수 있는 모든 행정적 조치를 가동해, 구단들의 경영 자유성을 보장하고, 축구 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하겠다. 재정 건전성을 앞세워 도시민을 압박해 연봉 공개, 승리 수당 강제 등을 앞세워 구단 경영에 관여하고, U-22라는 희한한 규정을 만들어 대학축구가 무너지는 계기를 초래했다. 이 제도는 즉시 바로잡겠다. 아울러 강등제로 고통받고 있는 구단의 민원이 쇄도하고 있어, 이에 대한 큰 틀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프로축구연맹과 구단 대표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한시적으로 1부리그 참여 수를 확대하는 행정을 염두한 전략을 이미 구축했다. 셋째, 심판 연맹의 독립이다.축구는 공정해야 한다. 특정 대학 카르텔, 축구협회장에 아부한 세력들이 심판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해 심판연맹을 창설하겠다. 독립된 심판 연맹은 축구 공정하게 이끄는 레프리가 될 것이다. 국민들이 신뢰하는 리스펙트가 이어져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 축구 심판을 꿈꾸는 축구판을 만들겠다. 심판 연맹은, 심판 배정 교육 평가 등에 대해 자체적인 예산과 조직으로 운영되는 혁신적인 행정 조치다.이렇게 되면 축구 권력자들로부터의 구속에서 자유롭게 돼, 부자 팀이든 가난한 팀이든 공정한 룰 속에서 경기하는 큰 변화가 따를 것으로 확신한다. 이 행정은 신임 심판 지원자가 급감해 생긴 심판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기대 효과와 더불어, 독자적인 사업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심판들이 탄생해, 심판에 지원하는 선수와 젊은이가 대폭 늘어나게 될 것이다.넷째, 협회가 무능, 사기업화한 행정과 이어 동조한 사람들의 천국이 아닌, 축구인이 주인인 협회로 확 바꾸겠다. 협회 직원은, 축구인이 있기에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의식으로 바꾸겠다. 구단, 팀, 지도자, 심판 등은 자신의 클라이언트인 축구인에 대한 서비스와 업무 지원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겠다. 아울러 협회 직원들에 대한 엄중한 업적 평가 제도를 도입해 일하지 않고 태만한 직원에겐 엄정한 인사 평가를 단행하겠다. 자신들의 고객인 축구인들을 위한 고객 감동 행정을 생활화시키겠다.다섯째, 축구협회는 축구대표팀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성적에만 목을 매는 문화를 개선하겠다.협회에 가장 시급한 사업은, 돈을 버는 협회가 돼야 한다. 나는 돈을 버는 협회를 위한 리뉴얼 작업이 최우선적인 회장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겠다. 협회 매출을 1000억에서, 5000억 매출에 도전하겠다. 이를 위해 기존 광고주들, 새 광고주를 초대해 축구 협회 비전과 신문선 브랜드를 앞세운 마케팅 사업을 치열하게 전개하겠다. 축구를 팔겠다. 축구의 이미지도 팔겠다. 돈을 벌기 위해, 세계적 기업에 광고 담당자와 만나겠다. 가까운 일본의 스폰서십 연구한 내용에 기초해, 일본축구협회장과 J리그 회장도 만나겠다.돈을 벌기 위한 한일전 카드, 여자축구 일본과 정기전도 추진하겠다. 일본에 지는 것이 두려워, 이익이 발생함에도 한일전을 회피하는 것은 겁쟁이 CEO다.중계권료, 광고료, 입장료로 협회 수익이 생기면 이벤트를 만들고, 지면 이기기 위해 돈을 벌어 투자해서 이기면 된다. 이것이 나의 축구 경영 철학이다. 이기고 지는 것에 매몰된, 축구 비즈니스의 막힌 사고에서 탈피하겠다.축구협회는 축구란 상품을 팔아 재정 안정성을 구축하고, 돈을 벌면 유소년과 여자 축구는 물론, 각급 대표팀에 지원 실탄을 비축해 10년 뒤, 20년 뒤 한국 축구가 월드컵 우승의 꿈을 향해 달리는 비용으로 투자하겠다. 나는 일을 할 것이다. 일하고 업적으로 평가받겠다. 영업 실적으로 평가받겠다.여섯 번째, 돈 없고 백 없어도 대표 선수가 되는 깨끗한 축구협회를 만들겠다.제가, 특정 대학이 카르텔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선발, 감독 선발은 내 임기 동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축구계에 빚은 사실도, 학연에 기대한 적도 없다. 부정한 축구판에서 이뤄지는 거래에도 가담한 사실도 없다.저는 인사 문제를 비롯, 선수, 감독 선발에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신문선 축구협회는 직전 집행부처럼 조직은 있지만, 조직원은 권한이 없는 로봇 집행부로 협회를 이끌지 않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선거인들에게 보내드린 공약에 대해, 저는 최선을 다해 이행하겠다. 오늘 나는 선거인을 모시고, 함께한 소통의 그라운드의 종점에 왔다. 내건 7가지 공약은, 실행 가능성 등을 검토한 뒤 작성한 약속이다. 여러분에게 훗날 평가받을 숙제이기도 하다. 숙제 검사를 4년 뒤 평가받겠다. 나와 여러분들은 55대 회장 선거로 맺어진 축구 친구, 동업자, 고객이다. 이 연설로, 그라운드의 인연은 끝나는 게 아니다. 축구의 미래, Again2002 프로젝트로 만날 것을 약속드린다. 축구회관=김우중 기자 2025.02.2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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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팬들은 왜 영구 결번을 반대할까?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6번, 42번, 99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구 결번이다. 또한 이 번호들은 특정 팀의 영구 결번을 넘어 리그 전 구단의 영구 결번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6번은 미국프로농구(NBA)의 빌 러셀, 42번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재키 로빈슨, 99번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웨인 그레츠키가 선수 시절 사용했던 등번호다.영어로 영구 결번은 ‘리타이어드 넘버(retired number)’다. 말 그대로 은퇴한 번호이기 때문에 다른 선수는 이 번호를 사용할 수 없다. 영구 결번은 보통 팀에 크게 기여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선수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정해진다. 또한 뛰어난 경력을 갖은 선수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부상으로 유망한 커리어를 마감한 경우에도 영구 결번이 주어질 수 있다.프로스포츠에서 최초의 영구결번은 1934년에 나왔다.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와 보스턴 브루인스와의 NHL 경기에서 토론토의 에이스 베일리는 빙판에 머리를 부딪혀 두개골이 골절되었다. 의사들의 회의적인 전망에도 베일리는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다시는 프로아이스하키 선수로 뛰지 못했다. 이에 토론토는 베일리의 등번호 6번을 영구히 은퇴시켰다.이후 선수의 등번호를 은퇴시키는 관행은 미국과 캐나다의 프로스포츠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북미스포츠를 대표하는 아이스하키, 농구, 야구, 미식축구 등에서 많은 영구 결번이 나왔다. 뛰어난 선수를 많이 보유했던 MLB의 뉴욕 양키스의 경우 1번부터 10번까지의 모든 번호가 영구 결번이다.북미 프로스포츠의 영구 결번 문화는 전 세계의 다른 스포츠로도 확산되었다. 축구계도 영향을 받게 되지만, 영구 결번의 역사는 축구에서 그리 길지 않다. 이유가 있다.1930년대부터 축구 선수들은 등번호를 달고 뛰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번호가 없었다. 선발로 나가는 선수들은 1번부터 11번을 부여받았고, 교체 선수들은 12번 이후의 넘버를 달고 뛰었기 때문이다.포지션에 따라 1~11번이 정해졌다. 따라서 예를 들어 A란 선수가 왼쪽 윙어로 뛸 때는 11번을 달지만, 전술적인 이유로 다음 경기에서 포지션이 오른쪽 윙어로 바뀌면 7번을 달고 뛰어야 했다. 물론 A가 교체 선수로 그라운드에 들어올 때 그의 번호는 12번 이후가 된다. 이렇게 유럽의 축구 선수들은 한 클럽에 소속된 기간 동안, 심지어 같은 시즌 동안에도 다양한 등번호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스타 축구 선수들은 (북미 스포츠 선수들처럼) 특정 등번호와 연관되었다. 조지 베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1993년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선발 라인업에 1~11번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정된 셔츠 넘버로 전환했다. 셔츠 번호는 포지션에 따라 부여될 수도 있고, 선수가 선호하는 번호 등으로 정해지게 된다. 이렇게 셔츠 번호가 보편화되면서 일부 클럽은 등번호를 은퇴시켰다.선수들의 번호만 영구 결번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많은 축구 구단은 팬들이 팀의 '12번째 선수'라는 생각에 셔츠 번호 12번을 은퇴시켜 팬들을 기리기도 한다. 또한 본머스와 레스터 시티는 그들의 마스코트인 체리 베어와 필버트 폭스를 위해 각각 99번과 50번을 남겨뒀다.흥미로운 점은 이탈리아 축구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월등히 많은 영구 결번을 배출해 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잉글랜드는 웨스트 햄의 보비 무어(6번), 독일은 바이에른 뮌헨의 프란츠 베켄바워(5번), 네덜란드는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14번) 정도가 세계 축구팬에게 널리 알려진 영구 결번이다. 영구 결번이 축구에 전파된 지 수십 년이 지났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이런 미국의 스포츠 문화가 축구에 스며드는 것에 아직도 예민하게 반응한다.팬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전설적인 선수를 기리기 위해 이들의 셔츠 번호를 은퇴 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전설의 동상을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스탠드와 경기장 일부에 이들의 이름을 붙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의를 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선수들의 번호를 계속 은퇴시키면 축구의 고유한 번호는 다 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팬들은 특히 1번에서 11번 사이의 숫자를 영구 결번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팬들은 또한 (예를 들어) 9번을 은퇴 시킨다는 것은 그 클럽에 다시는 그만한 스트라이커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팬들은 20년 후에 또 다른 해리 케인이나 혹은 더 뛰어난 선수가 나오기를 원한다. 조지 베스트의 예를 드는 팬들도 있다. 맨유가 만약 베스트의 셔츠 번호를 은퇴시켰다면 베컴과 호날두는 7번을 달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말은 즉 맨유의 전설적인 7번이 주는 많은 영감이나 동기를 후배 선수들이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아약스는 요한 크루이프의 14번을 은퇴시켰다. 하지만 당사자인 크루이프의 생각은 좀 달랐다고 한다. 그는 “매 시즌 최고의 선수에게 셔츠 번호 14번을 주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축구의 재미 중 하나가 새로운 스타가 나타나 클럽의 상징적인 번호를 성공적으로 차지하는 것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에도 과연 영구 결번이 필요할까? 독자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하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5.02.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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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MF 이민아, 오타와 래피드 이적 앞둬

여자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이민아(34·현대제철)가 캐나다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여자축구 리그는 오는 2025년 4월에 출범하는 신생 리그다.10일 연합뉴스, 이민아의 매니지먼트사 이결스포츠에이전시에 따르면 이민아는 최근 캐나다 노던슈퍼리그(NSL) 오타와 래피드와 계약 조건을 놓고 합의를 마무리했다. 메디컬테스트 등 절차가 남은 상태다.매니지먼트사에 따르면 이민아는 더 뛰어난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최근 몇 년간 해외 진출을 꾀했다. 그는 지난 시즌까지는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최고 명문 인천 현대제철에서 뛰었다. 독일, 스페인 등 구단과도 연결됐으나, 실제로 이적이 성사되지는 않았다. 이민아는 A매치 83경기서 17골을 넣은 베테랑인데, 30대 중반의 나이를 앞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한국 여자대표팀을 이끌었던 콜린 벨 중국 20세 이하(U-20) 여자 대표팀 감독이 잘 아는 카트리네 페데르센 감독의 오타와를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오타와에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의 측면을 담당해 온 추효주도 있다. 그는 지난해 수원FC위민을 떠나 현대제철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2년 계약을 맺었는데, 해외 진출 옵션을 발동하며 캐나다로 향했다. 이민아의 이적이 최종 성사되면 두 선수가 한솥밥을 먹게 된다.한편 캐나다의 NSL은 세계 5대 여자프로축구리그를 목표로 2025년 4월 공식 출범한다. 원년에는 오타와를 포함한 6개 팀이 우승 트로피를 놓고 경쟁한다.현지 보도에 따르면 NSL은 리그 차원에서 전체 선수들에게 최소 5만 달러(약 7300만원)의 연봉을 보장한다. 각 팀의 샐러리캡(총연봉상한선)은 160만 달러(23억3000만원)로 알려져 있다.김우중 기자 2025.02.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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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들리지만 살벌한 '버블 매치'를 아시나요?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2004년 11월 셰필드 유나이티드는 홈구장인 브라몰 레인에서 울버햄튼 원더러스(울브스)와 맞붙었다. 당시 셰필드 대학교에서 석사 공부 중이었던 필자는 이 경기를 직관했다. 세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인 ‘풋볼 리그(12개 클럽으로 1888년에 창설)’의 원년 멤버 울브스의 경기를 본다는 사실에 필자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필자의 기쁨과는 달리 브라몰 레인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하늘에는 경찰 헬리콥터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떠 있었고, 경기장 주변에는 경찰이 쫙 깔려 있었다.약간의 무서움과 설렘으로 이러한 분위기를 즐기던 필자의 눈에 진기한 장면이 보였다. 기마경찰을 선두로 무서운 인상을 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필자는 그들이 처음에는 범죄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영국 경찰에 둘러 싸인 채 걸어가던 그 집단은 셰필드로 원정 응원 온 울브스 팬들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버블 매치(bubble matches)”의 한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버블 매치는 대형 풍선같이 생긴 ‘버블 슈트(suit)’를 유니폼 삼아 축구를 하는 ‘버블 축구(Bubble football)’와 전혀 상관이 없다. 웨스트햄의 대표 응원곡인 “I'm forever blowing bubbles”와도 연관이 없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말하는 버블 매치는 과연 무엇일까?여러분이 극장 티켓을 예매했다고 가정해 보자. 극장을 가기 위해서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혹은 자가용을 이용할 수도 있다. 걸어가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유로운 이동은 모두 불가능하다. 대신 여러분은 경찰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극장에 가기 위해 경찰이 지정한 버스를 타야 하고, 영화 상영 내내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경찰은 여러분이 귀가할 때도 따라온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냐는 소리라고 여러분은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극장 대신 축구라는 단어로 대체하면 최소한 영국에서는 말이 된다. 버블 매치라는 단어를 얼핏 들으면 멋지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 축구에서 말하는 버블 매치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버블 매치는 보통 심각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2개 클럽의 연고지가 같은 도시나 타운이 아닌 경우에 적용된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선덜랜드의 타인 위어(Tyne-Wear) 더비가 대표적인 예다. 버블 매치는 대규모 팬들이 비슷한 시기에 한 도시로 몰려들 경우 치안이 무너지고 대재앙이 발생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그렇다고 모든 더비 경기가 버블 매치는 아니다. 경찰이 폭력 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경기를 ‘카테고리 C’로 지정할 때 버블 매치가 성립된다. 원정 팬이 버블 매치를 관람하려면 많은 제약이 따른다. 우선 원정 팬들은 경찰이 지정한 특정 장소에서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특별히 준비된 코치(coach, 버스를 의미)를 타야 하는데, 경찰도 동석한다. 코치로 이동 중 경찰은 팬들의 과도한 음주를 막고, 행여라도 일어날 불상사에 대비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팬들은 경찰의 감시(또는 에스코트)를 받으며 축구장으로 이동하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역시 코치를 타고 지정된 장소로 가서 해산한다. 버블 매치는 이렇게 버블 안에 팬들이 들어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일부 버블 매치의 경우 원정 팬들은 경기 티켓을 미리 소지할 수도 없다. 티켓 가격을 지불한 이들에게는 바우처(voucher)가 지급되고, 이러한 바우처는 보통 사람이 없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티켓으로 교환된다. 경찰과 동행하기로 동의한 팬들만 경기장에 입장시키기 위해 이런 안전장치까지 만든 것이다. 개인의 이동 자유를 금지하는 버블 매치로 인해 때로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도시 뉴캐슬에는 뉴캐슬 축구팀 팬만이 살고 있지 않다. 뉴캐슬에 거주하는 선덜랜드 축구팬 A를 예로 들어보자. A는 뉴캐슬의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리는 뉴캐슬과 선덜랜드의 경기를 원정 팬의 자격으로 보기 위해서 선덜랜드에 있는 경찰이 지정한 장소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코치를 타고 뉴캐슬로 이동하고, 경기 후에는 선덜랜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티켓 판매의 조건이다. 따라서 A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뉴캐슬에서 열리는 경기를 보기 위해 뉴캐슬과 선덜랜드를 하루에 2번 왕복해야 하는 것이다.버블 매치로 지정되면 원정 팬들의 고생이 시작된다. 2011년 12월 리즈에서 열린 리즈 유나이티드와 밀월의 경기는 버블 매치로 지정됐다. 킥오프 시간은 오후 12시 30분이었다. 이를 보기 위해 밀월의 원정 팬들은 새벽 5시 30분에 코치를 타고 런던을 떠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집에서 최소한 새벽 4시에는 일어나 준비하고 지정된 장소로 갔다는 말이다. 12월의 영국 새벽 날씨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밀월 팬들은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원정 응원을 간 것이다. 물론 팬들은 버블 매치를 싫어한다. 버블 매치는 심각한 불편함과 함께 축구팬은 통제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클럽 입장에서도 버블 매치는 반갑지 않다. 상당수의 팬들이 이러한 경기의 관람을 거부하기 때문에, 티켓 수입이 최대 90%까지 감소할 때도 있다고 한다. 버블 매치로 인해 원정 팬들이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버블 매치는 이동의 자유를 짓밟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일으키고, 모든 원정 팬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대규모로 벌어졌던 축구 관련 폭력은 과거의 일이 됐다. 하지만 훌리건이즘의 유산인 버블 매치는 지금도 잉글랜드 축구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5.3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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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사커’로 불러도 발끈하지 말자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2022 카타르 월드컵 B조에서 만난 잉글랜드와 미국은 경기를 하기 전부터 으르렁거렸다. 축구의 명칭을 두고 ‘풋볼(football)’과 ‘사커(soccer)’로 대립한 것이다. 이 경기를 전후해 소셜미디어(SNS)에서 풋볼이란 명칭을 지지하는 팬들은 “이 경기는 사커가 아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반면 미국 팬들은 “이것은 사커”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미국의 다음 상대는 네덜란드였다. 경기에 앞서 트위터 영상에 등장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대표팀을 응원하며 ‘풋볼’과 ‘사커’라는 호칭에 관한 해묵은 논란을 재개했다. 영상 속의 대표팀 주장 타일러 아담스는 카타르 축구장에서 7000마일 떨어진 백악관으로 공을 찼다. 백악관에서 축구공을 집어 든 바이든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It’s called soccer, GO USA(이것은 사커라고 불린다. 미국 파이팅)”이라고 말한 것이다.16강전 승자는 미국을 3-1로 이긴 네덜란드였다. 이에 네덜란드 총리 마르크 뤼터는 트위터에 “Sorry Joe, football won(조, 미안하지만 풋볼이 이겼다)”고 적고 윙크 이모티콘을 덧붙였다. 그러자 바이든은 축하를 보내면서 “Strictly speaking, shouldn't it be 'voetbal’(엄밀히 말하면 voetbal 아닌가요?)”라는 농담을 건넸다. Voetbal은 축구를 뜻하는 네덜란드어로 발음은 풋볼과 비슷하다.미국인들은 자국에서 풋볼로 불리는 미식축구와 구분하기 위해 축구를 사커라고 부른다. 이에 사커는 ‘더러운 미국주의(filthy Americanism)’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축구팬들이 많다. 또한 사커를 미국의 스포츠 문화를 대표하는 ‘치어리딩(Cheerleading)’, ‘동물의 이름을 딴 팀 이름’과 동일시하는 경향도 있다. 실제로 잉글랜드 축구팬을 짜증 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풋볼을 사커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풋볼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인식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공을 차고 손으로 잡는 형태의 운동은 고대 그리스, 중국의 송나라, 중앙아시아,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대륙의 원주민이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FIFA(국제축구연맹)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고대에 행해진 어떠한 유사한 경기도 축구와 역사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중세 시대 유럽의 여러 국가와 특히 잉글랜드에서 인기를 얻은 공놀이가 있었다. ‘몹(mob, 군중)’ 풋볼이라고 불렸던 중세 경기는 선수 숫자 제한이 없어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가능했고, 규칙도 거의 없었다. 당시 풋볼은 공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과실치사나 살인으로 이어지지만 않으면, 모든 수단이 용납됐다고 한다. 그러나 몹 풋볼로 인해 인명, 재산에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지속되자 이를 금지하는 법이 잉글랜드에서 여러 번 만들어졌다.19세기 영국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 사립학교를 의미)’은 현대 풋볼의 탄생에 중요한 토대를 쌓았다. 퍼블릭 스쿨은 풋볼을 ‘키킹(kicking, 발차기)’과 ‘캐링(carrying, 손으로 나르기)’이라는 2개의 코드로 명확하게 구분했다.럭비 풋볼은 캐링 코드를 대표한다. 1845년 럭비 풋볼의 규칙이 처음으로 성문화된 곳이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퍼블릭 스쿨인 럭비 스쿨이다. 키킹 코드에 속하는 풋볼은 1863년 ‘Laws of the Game’으로 불리는 규칙을 만들었고, 세계 최초의 축구협회인 ‘The FA(The Football Association)’를 창설했다. 협회의 규칙에 따라 진행된 풋볼에는 ‘어소시에이션 풋볼(Association Football)’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축구다. 사커란 명칭은 어소시에이션 풋볼에서 유래했다. 1870년대 옥스포드 대학교 학생들은 “association”을 줄이고 “-er”을 합쳐 “어사커(assoccer, 영국식 발음은 어소커)”를 만들었고, 같은 방식으로 럭비 풋볼은 “러거(rugger)”로 칭했다. 2차 세계대전 무렵 어사커는 더 축약되어 현재의 사커가 됐다.그저 그런 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명문 클럽으로 만든 버스비의 자서전 제목에 사커와 풋볼이 동시에 쓰였다. 월드 사커는 1960년에 개간해 현재까지 발행되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잡지인데, 잡지명이 풋볼이 아닌 사커다. 이외에도 1959년 데일리 미러 신문사가 발행한 기사에도 축구를 사커로 표시했다. 1964년에 첫 방송을 한 BBC의 유명 축구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Match of the Day)’도 1970년대 후반까지는 사커를 즐겨 썼다. 이렇게 오랫동안 널리 쓰였던 사커라는 단어가 1980년대 이후 영국에서 점차 모습을 감춘다. 미국의 프로축구리그인 ‘NASL(North American Soccer League)’이 70년대 후반부터 축구 스타 펠레, 베켄바워, 크루이프, 유세비오, 조지 베스트 등을 영입하며 큰 인기를 끌자, 미국인들이 사커라는 단어를 본격적으로 썼기 때문이다. 즉 미국에서 일시적으로 사커가 인기를 얻게 되자, 이 단어는 영국에서 불결한 것이 됐다. 아일랜드의 한 신문사는 이를 가리켜 영국인의 ‘집단적 언어 기억상실증(collective linguistic amnesia)’이라고 비꼰 적도 있다. 따라서 사커라는 호칭은 축구에 대한 배신이 절대 아니다. 잉글랜드의 축구팬들이 사커라는 단어에 보이는 ‘짜증’도 무지의 산물이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3.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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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영국 축구장에서 새우 샌드위치를 먹으면 안되는 이유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플라스틱 팬(Plastic Fan)’은 잉글랜드에서 가짜 축구 팬을 의미한다. 1960년대 좋은 성적을 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쫓아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플라스틱 팬이 등장했다. 맨유에 이어 리버풀FC가 1970~80년대 자국리그와 유럽대항전에서 황금기를 보내자, 가짜 팬은 더 늘어났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플라스틱 팬의 절대적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1992년 프리미어리그(EPL)가 출범했고, 몇 년 후 플라스틱 팬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다시 한번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클럽은 맨유였다. 맨유는 90년대 EPL의 절대 강자였다. 아울러 에릭 칸토나, 라이언 긱스, 데이비드 베컴 등이 가진 카리스마, 압도적인 실력과 멋진 외모로 인해 영국 전역에서 맨유를 응원하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났다. 이렇게 맨유가 전국구 팀이 되면서 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되자, 이에 따른 부작용도 등장했다. 새로 유입된 팬 중에 상당수가 플라스틱이었던 것이다. 1999년 퍼거슨 감독은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의 분위기에 실망했다고 밝히며, 홈 관중들이 더 큰 소리로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2000년 11월 맨유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우크라이나의 명문 클럽 디나모 키이우와 만났다.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해서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a must-win game).” 경기는 팽팽히 진행된 끝에 셰링엄의 골로 맨유가 1-0으로 이겼다.하지만 경기 후 주장 로이 킨은 화가 단단히 났다. 그는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홈구장의 일부 팬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킨은 “맨유가 어웨이 경기를 가질 때, 원정 응원 온 팬들은 환상적이다. 하지만 홈에서 경기를 할 때 일부 관중은 경기에 관심도 없고, 응원도 안 한다. 단지 그들은 새우 샌드위치를 먹느라 바쁠 뿐이다”라고 밝혔다. 킨의 유명한 ‘새우 샌드위치’ 발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킨은 이렇게 새우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eaters)’과의 전쟁을 선언했고, 잉글랜드 언론은 이들을 ‘새우 샌드위치 여단(prawn sandwich brigade)’이라 칭했다. 다시 말해 새우 샌드위치 여단이란 축구에는 별 관심이 없으나, 경기장의 스카이 박스(sky box)에 앉아 접대를 즐기기 위해 경기장을 방문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따라서 이들은 플라스틱 팬이다. 스카이 박스를 이용하려면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환대)’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일반 입장권보다 훨씬 비싼 이 티켓을 가진 관중은 여러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축구를 보기에 최고의 좌석이 제공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기 중 다양한 음료와 고급 음식도 맛볼 수 있다. 기념품 판매대와 라운지 등을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은 일반 티켓을 가진 팬보다 구장에 훨씬 오래 머물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구단 입장에서는 새우 샌드위치 여단이 축구에 특별한 관심을 안 보여도, 일반 티켓 소지자들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안겨주기에 이들을 환영한다.로이 킨의 새우 샌드위치 발언이 나온 지 23년이 지났다. 그 사이 EPL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축구리그가 되었고, 맨유, 리버풀 같은 빅 클럽들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EPL 경기장은 더욱더 커지고, 현대화됐으며 입장료는 더 이상 잉글랜드의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축구장의 원래 주인이었던 노동자들이 쫓겨난 자리는 중산층과 호스피탈리티 패키지를 구입한 이들로 대체됐다. 해외에서 건너온 부자 관광객들도 이에 가세했다.EPL에는 더 이상 로이 킨 같이 진정한 축구 선수나 팬이 지켜야 할 덕목을 저버렸을 때 직설적으로 이를 비판하는 선수가 없다. 킨의 다혈질 적인 성격은 때때로 그를 곤경에 빠트렸지만, 그는 주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다 짊어지는 진정한 리더였다. 더 이상 현대 축구에 킨 같은 선수가 나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올드 팬들은 예전의 순수했던 축구를 더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3.10.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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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맨유-리버풀 130년 라이벌의 시작은 축구가 아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리버풀 FC간의 치열한 라이벌 전은 국내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맨유와 리버풀은 1992년 출범한 프리미어리그(EPL)를 포함해 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리그에서 각각 20번, 19번 우승했다. 맨유와 리버풀이 리그 2위를 차지한 적은 각각 17번, 15번이다. 맨유가 국내 성적에서 리버풀을 근소하게 앞서지만, 유럽대항전에서의 성적은 리버풀이 더 좋다. 리버풀은 유러피언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6번 우승한 데 반해, 맨유는 유럽 정상에 3번 올랐다. 맨유와 리버풀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성공한 클럽이다. 3번째로 성적이 좋은 팀은 아스날(우승 13번, 2위 10번)이다. 하지만 아스날은 기록에서 두 팀과 차이가 있고, 유럽챔피언에 오른 적도 없다. 게다가 아스날의 연고지는 지리적으로 꽤 먼 런던이다. 그에 반해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불과 35마일(약 56㎞) 떨어져 있다. 맨유와 리버풀이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 혹은 리버풀 시의 서북부에 위치한 에버튼과 맨유의 관계는 어떨까? 그들도 서로를 미워할까? 라이벌 관계는 맨유와 리버풀에만 해당하는지 의문을 가진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필자와 함께 2회에 걸쳐 잉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도시인 맨체스터와 리버풀에 관해 알아보자.영국 북서부에 위치한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18세기의 산업혁명 이후 경제와 산업분야에서 오랫동안 경쟁했던 라이벌 도시다.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을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라고 칭하는데, 두 도시는 이 시기에 급격한 산업화를 겪었다. 1830년 세계 최초의 도시 간 철도가 완공돼 두 도시를 연결했다. 이 철도는 맨체스터 지역의 공장에서 생산한 완제품과 원자재를 리버풀 항구로 신속하게 운송할 목적으로 건설됐다. 경제적으로도 흑자였던 이 노선으로 인해 영국의 철도 개발은 탄력을 받게 된다.18세기까지 맨체스터는 영국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였다. 18세기 후반 리버풀은 북부 면직물 공장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구 도시로 우뚝 선다. 리버풀은 19세기에 성장을 거듭해 맨체스터를 앞질렀고,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는 대영제국 제2의 도시로 성장한다.한편 19세기 후반 오랜 불황을 겪던 맨체스터 상인들은 상품을 수출입할 때, 리버풀 항구가 부과하는 높은 관세와 두 도시를 잇는 철도 요금에 불만이 많았다. 이에 내륙도시 맨체스터가 물자를 직접 조달할 수 있게 운하를 건설하자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리버풀은 '멘붕'에 빠졌다. 리버풀의 정치인들은 운하 건설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공사는 이어졌다. 두 도시의 관계도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6년의 공사 끝에 1894년 58㎞ 길이의 ‘맨체스터 선박 운하(Manchester Ship Canal)’가 완공된다.맨체스터가 내륙 항구 역할까지 하게 되자, 통관료 등의 수입이 사라진 리버풀 경제는 불황에 휩싸인다. 항만에서 일했던 부두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없어졌다. 이에 리버풀의 부두 노동자들과 맨체스터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맨유의 전신은 1878년 창단한 뉴턴 히스(Newton Heath) LYR FC다. LYR은 ‘랭카셔 & 요크셔 철도회사(Lancashire and Yorkshire Railway)’의 약자다. 뉴턴 히스는 풋볼 얼라이언스를 거친 후 1892~93시즌부터 풋볼 리그의 1부리그에 합류했다. 이때 철도회사로부터 독립하면서 클럽 이름에서 LYR이 삭제됐고, 190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클럽 명이 바뀐다.에버튼은 1888년 설립한 세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인 풋볼 리그의 창단 멤버다. 에버튼을 공동으로 창단한 존 하울딩은 안필드 구장의 소유자였고, 당시 안필드는 에버튼의 홈구장이었다. 하지만 구장의 높은 임대료에 불만을 품은 에버튼이 구디슨 파크로 보금자리를 옮기자, 하울딩은 비어있는 안필드를 위해 1892년 축구팀을 창단한다. 이 클럽이 바로 리버풀이다. 공교롭게도 뉴턴 히스와 리버풀의 첫 만남은 맨체스터 선박 운하가 완공된 지 3개월 만에 성사된다. 당시 뉴턴 히스는 1부리그 꼴찌인 16등을 기록했고, 리버풀은 2부리그에서 1위를 한 상태였다. 당시에는 자동 승격이나 강등이 없었기에, 두 팀은 단판 승부인 ‘테스트 매치(test match)’를 해야 했다. 운하 건설로 가뜩이나 사이가 나빠진 두 도시의 뉴턴 히스와 리버풀이 승격과 강등을 놓고 운명의 한판 대결을 벌인 것이다. 결과는 리버풀의 2-0 승. 이로써 리버풀은 1부리그로 승격했고, 뉴턴 히스는 2부리그로 강등당한다. 맨유와 리버풀에 입단하는 선수들은 두 도시의 경쟁 관계와 운하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고 한다. 맨유의 센터백이었던 네마냐 비디치는 2019년 인디펜던트 신문사와의 인터뷰 때 선수들에게 때로는 그런 설명이 필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두 클럽이 맞붙는 경기의 관중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만으로도, 그들에게 이 경기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현재까지 두 클럽은 211번 만났다. 맨유와 리버풀이 각각 82승, 71승을 거뒀고, 무승부는 58번 있었다. 최다 출전 선수는 맨유의 라이언 긱스(48번)이고, 최다 득점자는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12골)다. 필자는 맨체스터와 리버풀을 여러 번 방문했으나, 끝내 두 클럽의 경기를 직관하지 못했다. 표를 구하기 굉장히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잉글랜드 축구의 최대 라이벌 전을 직관할 수 있는 행운이 독자 여러분에게 있길 바란다.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3.08.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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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유벤투스와 5부리그 노츠 카운티의 120년 우정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180㎞ 떨어진 곳에는 전설적인 의적 로빈 후드의 도시 노팅엄이 있다. 노팅엄의 인구는 32만 명에 불과하나, 이 도시에는 유서 깊은 프로축구팀이 2개나 있다. 노츠 카운티(Notts County)와 노팅엄 포레스트가 바로 그들이다. 노츠 카운티의 홈구장인 메도우 레인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시티 그라운드는 트렌트 강을 사이에 두고 겨우 270m 떨어져 있다. 잉글랜드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두 클럽의 경기를 '노팅엄 더비'라고 부른다. 하지만 두 클럽이 같은 리그에서 더비 경기를 가진 것은 1994년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노팅엄은 노츠보다 최소한 한 단계 높은 리그에 속했기 때문이다. 노팅엄은 리버풀과 함께 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을 2연패한 잉글랜드 클럽이다. 그에 반해 노츠 카운티는 1부리그에서 1992년 강등당한 이후 계속 추락해 현재는 5부리그에 속해 있다. 눈에 띄지 않는 성적으로 인해 노츠 카운티는 국내 축구팬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클럽은 세계축구사에 2개의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노츠 카운티 로고: 클럽의 상징과도 같은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 셔츠로 인해, 노츠 카운티는 ‘The Magpies(까치들)’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필자가 많이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은 어느 팀인가?”이다. 많은 팬들이 궁금해하는 이 질문의 정확한 답을 알아보자. 사우스요크셔 주에 위치한 셰필드는 잉글랜드의 ‘스포츠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스포츠와 연관이 많은 도시다. 이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클럽 셰필드 FC가 1857년 창단됐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1885년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을 축구에 도입 하나, 셰필드 FC는 그들의 아마추어 원칙과 뿌리를 고수하며 프로 전환을 강하게 거부했다. 따라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클럽인 셰필드 FC는 아마추어 팀이고 현재 8부리그에 속해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프로축구팀은 누구일까? 1862년 창단된 노츠 카운티다. FA보다도 1년 먼저 설립된 노츠 카운티는 세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인 ‘풋볼 리그’가 1888년 출범할 때, 이에 참여한 12개 팀 중 하나였다. 노츠 카운티가 남긴 또 하나의 위대한 유산은 그들의 셔츠와 관계 있다. 이들은 1890년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 셔츠를 도입한 이후, 구단 역사의 대부분을 이 색상과 함께했다.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 셔츠를 입은 클럽은 여럿 있으나, 이 중 대표주자는 이탈리아의 최고 명문 클럽 유벤투스이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흑백 줄무늬 셔츠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1897년 토리노에서 창단한 유벤투스는 원래 핑크색 셔츠를 입었다. 그러나 계속된 세탁으로 인해 셔츠의 색이 퇴색되자, 1903년 클럽은 새로운 색상의 셔츠를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유벤투스 선수단에는 잉글랜드 출신의 존 새비지가 있었다. 클럽은 새비지에게 세탁을 해도 색이 변형되지 않는 셔츠를 잉글랜드에서 구입하는 것이 가능한지 물어본다. 이에 새비지는 자신의 고향 팀 노츠 카운티에 도움을 청했고, 이를 흔쾌히 허락한 클럽은 자신들의 셔츠를 토리노에 보냈다. 유벤투스는 흑백 줄무늬의 뚜렷한 대조와 강력한 느낌의 디자인을 가진 노츠의 셔츠에 한 눈에 반했다고 한다. 유벤투스의 상징이 된 ‘비안코네리(Bianconeri, 흰색과 검은색을 의미)’는 이렇게 탄생했다. 같은 색상과 디자인의 셔츠를 입었지만 두 클럽의 성적은 극명하게 갈린다. 유벤투스는 흑백 줄무늬 셔츠를 입은 지 2년만인 1905년 이탈리아 챔피언에 처음으로 등극한다. 또한 유벤투스는 미셸 플라티니, 지네딘 지단, 잔루이지 부폰 등과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을 이끌고 세리에A의 최다 우승팀(36회)이 된다. 그에 반해 잉글랜드의 작은 클럽 노츠 카운티는 160년의 역사 동안 1부리그에서 보낸 시즌은 30번에 불과하다. 최고 성적도 FA컵 우승(1894년) 한번이 전부다. 2011년 9월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이끄는 유벤투스가 4만 1000석 규모의 최신식 구장을 오픈할 때, 이들의 개장식 경기 상대는 빅 클럽이 아니었다. 초청 상대는 당시 3부리그에 속해 있던 노츠 카운티였다. 유벤투스는 유럽 축구의 거인으로 성장했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인 비안코네리를 전해준 노츠 카운티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2019년 5부리그로 강등된 노츠 카운티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에 유벤투스는 116년 전의 빛을 갚기 위해 노츠에 셔츠를 보내주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유벤투스의 셔츠 제조사가 아디다스인 관계로, 이미 퓨마와 계약이 되어있던 노츠는 이 제안을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돈이 축구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는 시대에 빅 클럽인 유벤투스가 작은 클럽인 노츠 카운티를 상대로 보여준 끈끈한 우정은 동화 같은 스토리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3.03.2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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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축구 에이전트, 올 여름 이적시장서 6855억원 벌어”

스포츠 에이전트는 미래 유망직업 중 하나다.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스포츠 시장이 커지면서 선수의 이적을 둘러싸고 각 구단이 치열한 영입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스포츠 에이전트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에이전트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활동하며 ‘악마’로 불린 스캇 보라스다. 그는 박찬호와 추신수, 류현진 등의 에이전트로도 유명했다. 축구에서는 미노라이올라가 굵직한 계약을 여러 차례 성공하며 명성을 얻었다. 시즌이 끝난 후 FA(자유계약선수)를 통해 대형 계약이 이뤄지는 야구와 달리 축구는 한 해에 두 번(겨울, 여름)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계약이 성사된다. 얼마가 오갈까. 국제축구연맹(FIFA)는 9일(한국시간) 올여름이적 시장(6월 1일~9월 1일) 동안 발생한 이적료를 발표했다. FIFA에 따르면 올여름이적 시장에서 남자 축구선수의 이적료는 50억 달러(6조 9325억원)가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서 발생한 이적료(38억 5000만 달러) 대비 29.7% 증가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52억 6000만 달러) 2019년(58억 달러) 수준으로 올라왔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여름 이적 사업의 대부분은 잉글랜드 축구에서 이뤄졌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만 약 19억 파운드(3조 205억원)의 이적료가 발생했으며, 2017~18시즌에 기록한 18억 6000만 파운드(2조 9569억원)를 넘은 신기록이다. FIFA의 보고서를 살펴봐도 유럽축구연맹(UEFA) 소속 프로축구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적료가 발생했다. 잉글랜드 리그가 18억 950만 달러(2조 5088억원)를 기록했다. 이탈리아(5억 498만 달러) 스페인(4억 499만 달러) 프랑스(4억 700만 달러) 독일(4억 600만 달러)이 뒤를 이었다. 선수 이적 수는 남녀 모두 올여름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남자 선수는 총 9717건의 이적이 발생해 작년(8346명) 대비 16.2% 증가했다. 여자 선수 이적 역시 올해 684명 발생해 지난해 598명보다 14.4% 올랐다. 이적 시장이 활발해진 덕분에 선수 에이전트들은 4억 9440만 달러(6855억원)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FIFA는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 2012년 6.1%였던 에이전트 수수료 비율이 10년이 지난 후 2022년에는 9.9%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김영서 기자 zerostop@edaily.co.kr 2022.09.0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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