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6건
스포츠일반

시력 약해도 실력 최강, 세계선수권 3관왕 김우진

김우진(29·청주시청)이 한국 양궁 대표팀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3관왕에 올랐다.김우진은 27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양크턴에서 열린 대회 리커브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마르쿠스 다우메이다(브라질)를 7-3(29-26, 29-28, 27-30, 28-28, 29-27)으로 이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1년 토리노 대회, 2015년 코펜하겐 대회에 이어 통산 세 번째 개인전 우승이다. 이로써 김우진은 미국 양궁의 전설 리처드 매켄지(1977·83·85년 우승)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김우진은 안산(20·광주여대)과 짝을 이룬 혼성 단체전(혼성전)과 오진혁(40·현대제철)·김제덕(17·경북일고)과 나선 남자 단체전에서도 우승하면서 금메달 3개를 따냈다. 세계선수권에서 한 선수가 금메달을 싹쓸이한 건 남녀 통틀어 김우진이 처음이다. 김우진이 2관왕에 올랐던 2011년, 2015년 대회 혼성전에는 다른 남자 선수(2011년 임동현·2015년 구본찬)가 출전했다.충북 이원초 3학년 때 활을 잡기 시작한 김우진은 천재 궁사였다.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신궁’의 자질을 보였다. 15세였던 2007년 전국소년체전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양궁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다.충북체고 3학년 때인 2010년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된 김우진은 그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과 개인전을 석권하며 2관왕에 올랐다. 이듬해 토리노 세계선수권에서도 2관왕을 차지하면서 양궁계에선 ‘한양미(한국 양궁의 미래)’란 별명도 붙여줬다.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4위)한 뒤에는 방황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2016년 리우올림픽, 올해 도쿄올림픽에서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김우진은 대표팀 남자 선수 중 유일하게 안경을 썼다. 양쪽 시력이 0.3~0.4인 근시다. 안구건조증에 복합난시 진단도 받았다. 그래서 심할 때는 과녁이 4개로 겹쳐 보인다고 한다. 순간 집중력이 필수인 양궁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하지만 김우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만 빼고 온종일 활만 쏘면서 약점을 보완했다.시력이 약해도 실력은 뛰어났다. 많은 훈련량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올림픽에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심박 수가 측정돼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김우진은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양궁을 하고 있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계속 노력하며 내 양궁 커리어를 쌓아가겠다”고 말했다.장민희(22·인천대)는 여자 개인전, 강채영(25·현대모비스)·안산과 함께 나선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하면서 2관왕에 올랐다. 도쿄올림픽 3관왕 안산은 여자 개인전 준결승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3~4위 결정전에서 알레한드라 발렌시아(멕시코)를 6-4(26-28, 29-29, 30-29, 28-28, 30-29)로 누르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이로써 한국 양궁은 이번 대회 리커브에 걸린 금메달 5개를 모두 휩쓸었고, 동메달 1개도 추가했다. 혼성전이 도입돼 금메달 수가 4개에서 5개로 늘어난 2011년 토리노 대회 이후 사상 첫 전 종목 석권이다. 한국은 지난 2009년 울산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싹쓸이했는데, 당시에는 혼성전이 없었다.이번 대회 컴파운드에서는 혼성전 동메달 1개를 따내는 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 컴파운드가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수확하지 못한 것은 2013년 벨레크 대회 이후 8년 만이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2021.09.28 08:14
스포츠일반

자카르타 눈물을 도쿄 환희로, 양궁 이우석의 다짐

“자카르타에서 고개 숙였지만, 도쿄에선 환호로 바꾸겠습니다.” 양궁 남자 국가대표 이우석(23·코오롱)은 한때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운 선수로 꼽혔다. 그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개인전 결승에서 선배 김우진(28·청주시청)에게 져 은메달을 받았다. 당시 그는 국군체육부대 소속 이등병이었다. 금메달이면 병역 혜택으로 조기 전역할 수 있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은 김우진은 후배에 대한 미안함에 세리머니도 하지 않았다. 이우석은 지난해 10월 말 전역했다. 진천선수촌에서 최근 만난 그는 “당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진이 형이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것도 몰랐다. 금메달 생각 때문에 경기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이우석은 오히려 그때 은메달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고 여긴다. 그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래서 2018년 초 입대를 결심했다. 만약 조기 전역했다면 슬럼프는 반복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안게임 은메달 이후 더욱 마음을 다잡았다. 그 덕분일까. 지난해 6월 세계선수권에서 강채영(24·현대모비스)과 혼성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세계선수권 첫 금메달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활을 잡은 이우석은 ‘소년 신궁’으로 이름을 날렸다. 고교 1학년이던 2013년 전국체육대회 남자 고등부에서 5관왕에 올랐다. 한국 양궁을 이끌 차세대 선두 주자로 꼽혔다. 하지만 2014년 국가대표 최종평가전에서 5위에 그쳤다. 인천 아시안게임 출전권(4장)을 놓쳤다. 2016년에는 4위로 리우 올림픽 출전권(3장)을 또 놓쳤다. 그는 “진짜 신궁이었다면, 고등학생 때 큰 무대에 나갔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 선수들은 워낙 대단해서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가전은 언제나 필사적으로 임한다”고 말했다. 남자 양궁 대표팀에는 올림픽 경험자인 김우진, 오진혁(39·현대제철) 등이 있다. 둘 다 키는 1m80㎝가 넘고 몸무게도 90㎏ 후반대의 듬직한 체격이다. 반면 이우석은 키 1m76㎝에 체중 72㎏으로 이들에 비해 왜소하다. 그는 “양궁이 정적인 운동이지만 실외에서 활을 쏠 때 몸이 흔들릴 수 있어 체격을 키우는 게 좋다. 많이 먹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진, 오진혁보다 체격은 작지만, 이우석에게는 ‘긴 팔’이 있다. 팔이 길어 학창 시절 복싱 입문 권유도 받았다. 그는 한쪽 팔의 길이가 약 62㎝다. 그 키의 표준 한쪽 팔 길이가 58~59㎝다. 그는 “주차장 차단기에서 차를 떨어져 세워도 내리지 않고 팔을 뻗어 요금을 정산한다”며 웃었다. 그는 “키는 작아도 팔이 길어 체격이 큰 선수들이 쓰는 활과 화살을 쓴다. 또 활을 좀 더 당길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올여름 도쿄에 가려면 이우석으로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3월 열리는 3차 선발전과 이후 두 차례 평가전 등 총 세 번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3차 선발전에서 8명이 살아남고, 이후 평가전을 통해 남녀 3명씩 도쿄 올림픽 출전자가 확정된다. 현재까지는 남자에선 이우석이 가장 앞서고 있다. 하지만 오진혁, 김우진 등이 맹렬하게 추격 중이다. 이우석은 “올해 목표는 하나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거다. 메달만 생각하다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또 점수를 자꾸 생각하면 헷갈린다. 그저 활을 쏘는 나에게 집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진천=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2020.01.15 08:37
연예

[리뷰IS] "그러는 거 아녀"... '아는형님' B1A4 신우가 다 했다

B1A4 신우가 충청도 사투리로 '아는 형님'을 접수했다.B1A4는 16일 방송된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해 숨겨둔 예능감을 방출했다. 특히 맏형인 신우는 여유 있으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충청도 사투리로 지역 대통합을 실현하며 매력을 발산했다.이날 B1A4의 등장에 형님들은 역대급 시큰둥한 리액션으로 멤버들을 반겼다. 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회사 빌딩 세웠高에서 왔다"며 꿋꿋이 자기소개를 이어나가 웃음을 안겼다.비교적 개인 인지도가 있는 타 멤버들과 달리 공찬과 신우는 이름표를 가린 채 등장했다. 신우는 민경훈을 콕 집어 "경훈이가 맞혀줬으면 좋겠다"면서 "궁을 잘 쏴 신궁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힌트를 줬다. 바로가 소를 흉내 내며 동작 힌트를 더했다. 이에 민경훈은 '신소' '신메' 등의 오답에 이어 '신음'이라고 외쳐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신우는 "가끔 그 이름으로도 활동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이어 신우는 "어떤 상황에서든 뮤지컬을 할 수 있다"며 강호동과 함께 뮤지컬 장면을 재연했다. 신우는 강호동에게 시체 역할을 제안했고, 이내 몰입해 진지하게 오열 연기를 펼쳤다. 신우와 강호동을 제외한 모든 이가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았다.또한 신우는 집에 있을 때는 옷을 모두 벗고 있다고 밝히기도. 신우가 "베란다에 수건을 가지러 갔다가 팬들에게 들킨 적도 있다. 그 후로 커튼을 달았다"고 하자, 이수근은 "커튼이 아니라 그냥 옷을 입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충청도 출신의 신우는 평소 "그러는 거 아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도 했다. 연습생 시절 동생들을 많이 혼냈다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신우는 "동생들에게 나쁜 물이 들까 봐 일부러 더 엄하게 했다. 나도 어렸고, 동생들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심한 말도 하고 욕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즉석 상황극도 진행했다. 바로가 투정을 부리는 귀여운 동생으로 분했고, 신우는 "그러는 거 아녀" "그런 말 하는 거 아녀" "형 말 들어" 등의 찰진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폭소를 유발했다.정여진 기자 jeong.yeojin@jtbc.co.kr 2017.09.17 06:55
연예

"입덕주의보 발령"…'아는형님' B1A4, 숨겨둔 예능감 폭발[종합]

'아는형님' B1A4가 숨겨둔 예능감을 터뜨렸다.B1A4는 16일 방송된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해 입담을 자랑했다.이날 B1A4는 "우리 힘으로 회사 빌딩 세웠高에서 왔다"며 특유의 서글한 매력으로 형님들을 사로잡았다. 먼저 진영은 앞서 자신을 국내 3대 작곡돌로 꼽은 이상민에 "방송 봤다. 너무 좋았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에 이상민은 "진영이는 국내 아이돌 중 단독 작곡 수가 가장 많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신우의 '이름을 맞혀봐'가 이어졌다. 신우는 "궁을 잘 쏴서 신궁이란 별명이 있다"고 힌트를 줬다. 민경훈은 '신소', '신메'에 이어 '신음'이라고 답을 외쳐 주위를 폭소케 했다. 신우는 "어떤 상황에서든 뮤지컬을 할 수 있다"며 강호동과 함께 뮤지컬 속 장면을 재연했다.그런가 하면 진영은 박보검에게 '아는 형님' 출연을 권유해본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진영은 "안 그래도 오늘 '구르미 그린 달빛' 1주년 파티가 있어서 다 같이 보기로 했다. 박보검에게 '아는 형님' 출연을 얘기해보겠다"고 해 눈길을 끌기도.이어 공찬은 "아이돌 중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있다"면서 "팬들에게 특별한 이벤트를 많이 해준다"고 밝혔다. 공찬은 "폴라로이드 셀카에 편지를 써서 직접 팬의 집으로 보내준다. 콘서트 티켓을 직접 티켓팅해서 팬에 선물한 적도 있다"면서 "SNS 답글도 많이 달아준다"고 덧붙였다.진영과 산들은 음악방송 대기실에서 5번 연속으로 가위를 눌렸다고 해 스튜디오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진영은 "산들이하고 머리를 맞대고 자기 시작했는데, 둘이 동시에 가위에 눌린 거다. 혹시나 서로가 다시 가위에 물리면 같이 깨워주기로 한 뒤 다시 잠에 들었다. 내가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어 산들이가 날 깨우려고 했는데 순간 덩달아 또 가위에 눌린 거다. 그렇게 5번 연속 교대로 가위에 눌렸다"고 했다. 이에 산들 역시 "소름이 끼쳤다. 그 후로 귀신이라고 함부로 말을 하지 않고 귀신님이라고 부른다"고 해 웃음을 안겼다.신우는 연습생 시절 동생들을 많이 혼냈다고도. 신우는 "동생들에게 나쁜 물이 들까봐 일부러 더 엄하게 한 경향이 있다. 그렇게 했던 게 미안하다. 나도 어렸고, 동생들이 잘 나갔으면 싶어 심한 말도 하고 욕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에 공찬과 바로, 산들은 눈물을 보인 적도 있다고 했다.끝으로 산들은 대기 시간에 '노래 끝말잇기' 게임을 한다며 형님들과 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1:2로 형님들의 승리. 형님들은 잔꾀와 팀워크로 B1A4에 승리를 거뒀다.정여진 기자 jeong.yeojin@jtbc.co.kr 2017.09.16 22:44
스포츠일반

日 매체 “안도 미키 아이 아버지는 난리 야스하루”

한 일본 매체가 안도 미키(26)의 아이 아버지가 난리 야스하루(28)라고 주장했다.일본 매체 포스트 세븐은 4일 관계자의 말을 빌어 “안도 미키의 아이 아버지는 난리 야스하루”라며 “두 사람은 2년 전부터 교제했다”고 전했다.이 매체는 2년 전 늦여름 도쿄 메이지 신궁에서 데이트하는 두 사람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포스트 세븐은 “당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하라주쿠를 향해 걸었다. 윈도우 쇼핑도 즐겼다”며 “데이트 도중 휴대폰을 꺼내들고 얼굴을 맞대고 촬영하고 안도가 난리에 가벼운 키스를 하는 등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를 두고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데이트 현장”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늦 여름이면 안도가 연인 관계였던 자신의 코치 모로조프(러시아)와 헤어진 직후다. 포스트 세븐은 난리에 대해 "당시 소속팀이 후쿠오카 현에 있는 명란젓 제조 업체였기 때문에 ‘명태 왕자’라는 별명을 가진 꽃미남"이었다고 밝혔다. 또 “엄마가 된 안도가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근력 트레이닝을 시작하는 등 소치 올림픽을 향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고 안도의 근황을 전했다. 포스트 세븐은 오는 18일 발매되는 자매지 여성 세븐을 통해 2년전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을 공개할 예정이다.한편 안도 미키는 지난 1일 아사히TV의 '보도 스테이션'에 출연해 "지난해 10월 임신 사실을 알았으며 올 해 4월 딸 아이를 출산했다"고 고백했다. 아이 아버지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이후 "일본 출신의 전 스케이터"라고 밝혔다.J스포츠팀 2013.07.05 09:07
스포츠일반

[박수성의 How are you] ‘돌주먹’ 복서 문성길

그를 만난 곳은 강동구 성내동 둔촌역 근처 한 건물 4층의 당구장이었다. 당구대 8대를 갖춘 당구장을 그는 6개월전에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오후 3시께라 인터뷰 하는 내내 손님이 없었다.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에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쉰이 되는 그의 손은 아직도 굳은 살이 군데군데 박히고 억셌다.그의 별명은 '돌주먹'이었다. 경량급에서는 보기 드문 강펀치 한 방으로 현란한 풋워크와 잔재주를 앞세운 아웃복서들을 보내버리곤 했다.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던 라이벌 허영모와 대결에서도 세 번 붙어 모두 이겼다. 그 중 두 번의 경기는 박빙이었다. 문성길(48). 호적이 2년 늦은 63년으로 돼있어 나이 때문에 곡절도 많았다는 그는 어느덧 지천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강촌에 살고 싶다'그의 애창곡은 '강촌에 살고 싶어…가 들어가는 노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주먹 하나로 돈 벌어 '먹는 것 걱정 안하고 산다' 할 정도의 경제력을 일궈낸 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이제는 아무런 욕심도 없다. 그냥 쉬지 않고 열심히 움직여서 가족들과 웃으며 사는 것이 행복하다.6개월전 당구장을 인수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단다. 물론 당구장이 전부가 아니다. 중계동, 구리, 서산 등 4곳의 롯데마트에 철판볶음밥 가게를 내 운영하고 있다. 벌이가 먹고 살 정도는 된다. 아내가 주로 운영하고 자신도 일손이 딸리면 틈틈히 도와준다. 아들은 중국에 유학가있고 딸도 대학생이다. 강동 쪽에 널찍한 아파트도 장만했다. 돈을 많이 모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 까지 다 얘기해야 혀?"하며 웃는다.역시 쉽지 않았던 은퇴 후그는 WBA 밴텀급에 이어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한 90년부터 당시 모 제약회사의 스폰서십을 받아 활동했다. 트렁크에는 제약회사의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혔었다. 은퇴 후 평생 이사직을 보장한다던 그 회사는 그러나 정작 93년 은퇴 후 말을 바꿨다. 대리 옆에 옹색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일도 주지 않았다. 가끔 입금표나 몇장 써보라는 게 전부였다. "사회 생활도 배울 겸 3년만 꾹 참고 있자"고 마음 먹었고 꼭 3년 후 사표를 쓰고 나왔다. 세상이 녹록하지 않다는 걸 이 때 뼈저리게 느꼈다.이후 모 언론사 광고지사에서 3개월을 근무하다 내 일이 아니다 싶어 나왔고 그 후 몇년을 방황하다 90년대 후반 철판볶음밥이 한참 유행하던 때 지인의 소개로 체인점을 알게 됐다. 잠실 롯데마트에서 첫번째 체인점을 내 일을 배웠고 장사가 잘돼 체인점을 4개로 늘렸다. 그 와중에 사업 제의도 여러번 받고 몇번 소소한 돈을 떼이는 일도 있었지만 그는 "내 힘으로 버는 일 아니면 믿지 말자"는 소신을 지키며 그런대로 돈 관리를 잘 해왔다. 마지막 두차례 방어전의 대전료 1억여원을 소속 프로모션으로부터 받지 못한 일, 병역특례 혜택 의무 기한을 지키지 못해 현역 입대한 것 등 주변과 국가에 대한 서운함과 불신이 '돌 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한 생활을 하게 했다. 2000년에 강동구 성내동에 '문성길 복싱클럽'을 내 5년 동안 운영하며 키웠지만 그는 2005년 자신을 도와줬던 후배에게 넘겼다. 수원, 부산 등지에 자신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복싱클럽이 몇 군데 있지만 직접 운영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권투 쪽은 그만 할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진한 회한이 묻어났다. 올림픽과 10차 방어전 실패가 한으로 남아 프로와 아마에서 모두 정상에 섰던 그가 지금도 가장 아쉬워 하는 것은 올림픽 메달을 못 딴 것과 10차 방어전 실패다.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세계선수권(86년) 금메달을 따고 아시안게임 메달 2개까지 딴 그였지만 84년 서울올림픽에서는 8강전에서 무너졌다. 확실한 금메달감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1회에 의외의 카운터펀치를 맞은 뒤 경기가 안 풀렸다.WBC 10차 방어전은 더 아쉽다. 호세 루이스 부에노에게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 홈어드밴티지까지 있었지만 일본세의 입김에 눌려 이긴 경기가 판정패로 돌변하고 말았다. 10차 방어전을 성공하면 통합 타이틀전을 열기로 약속이 된 터라 억울함이 더했다. 문성길은 "당시 대전료를 확실히 주겠다는 약속만 있으면 체급을 올려 3관왕에 도전할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이젠 큰 욕심없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권투하고싶어 6개월간 학교 안 가고 버텨문성길이 권투를 시작하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중학교 시절 육상을 했던 문성길이 전남체고(현 광주체고)를 떨어지고 재수를 하던 때였다. 후배로부터 덕인고에서 육상과 권투 특기생을 함께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면접에서 "권투를 하고 싶다"고 했으나 "육상을 하지 않으면 장학금 혜택을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끝에 입학을 결정했다. 중장거리가 주종목이었던 문성길은 고1 시절에는 3000m, 5000m 등 종목에서는 목포권에서 1위를 휩쓸었다.고2때 까지는 육상이 끝난 후 몰래 체육관을 다니면서 권투 연습을 했으나 더 미룰 수는 없었다. 고2때 말에 권투에 전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퇴짜를 맞은 후 6개월 학교를 안나가며 버틴 끝에 간신히 허락을 받았다. 이후 전국대회 3위 성적을 6번 내며 목포대에 진학한 후 대학 1학년때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뜻밖의 금메달을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 그를 빛나게 해준 결승전 상대가 태국의 '완차이 풍수리'였다.86 아시안게임 직후 문성길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7000만원대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로 전향한다. 빨리 돈을 벌고도 싶었고 껄끄러웠던 상대인 허영모의 존재도 프로행 선택의 한 이유가 됐다. ■ 문성길은? 생년월일: 1961년 7월 20일(호적엔 2년 늦은 63년) 출생지: 전남 영암 체격: 166㎝, 66㎏ 학력: 도신초-도포중-덕인고-목포대-동국대 경영학과 수료 경력: 82년 아시안게임 금  85년 월드컵 금   86년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 금   87년 프로 데뷔  88년 WBA 챔피언(밴텀급·2차방어 성공)   90년 WBC 챔피언(슈퍼플라이급·9차방어 성공)  93년 은퇴 가족: 김명자(48)씨와 1남(재광) 1녀(가은) 취미: 골프, 볼링 박수성 기자 ▷ 체조 은메달리스트, 여홍철▷ 96년 유도 금메달 리스트, 전기영▷ 금메달 6개 여자 ‘신궁’, 김수녕▷ 실업배구 원조 스타, 장윤창▷ 경량급 복싱 신화, 장정구 2009.09.03 09:31
브랜드미디어
모아보기
이코노미스트
이데일리
마켓in
팜이데일리
행사&비즈니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