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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선규의 다른 생각] 제2 홈구장은 프로야구 저변 확대 필수 아이템

지난달 18일 충청북도 청주시가 들썩였다. 2019년 9월 이후 약 5년 만에 한화 이글스의 홈 경기가 청주구장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많은 관심 속에 3경기 모두 매진(9000석)으로 치러졌고 한화는 8월20~22일 NC 다이노스와의 3연전까지 올 시즌 총 6경기를 청주구장에서 소화할 계획이다.1980~1990년대 KBO리그는 지역의 거점이 되는 대도시 한 곳을 중심으로 지역권 전체가 연고 지역으로 인정되는 광역 연고제를 채택했다. 자연스럽게 제2 홈구장도 연고지 안에 포함됐다. 인천·경기·강원 연고 구단인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의 춘천과 수원, 대전·충남북도 연고 구단인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의 청주, 호남 연고 구단인 해태 타이거즈의 전주, 전북 연고 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의 군산, 부산·경남 연고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의 마산이 제2 홈구장에 속했다.그러나 리그 확장과 신규 구단 창설을 위해 2000년부터 연고지 제도를 도시 연고제로 변경, 기존 제2 홈구장으로 활용한 장소가 연고지가 아닌 곳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연고지와 인접한 지방 도시에선 제2 홈구장 경기가 계속 열리고 있다. 이번 한화의 청주 경기나 롯데의 울산 경기, 삼성의 포항 경기가 여기에 속한다. 2026년 전주시 신축 야구장이 완공되면 KIA 타이거즈가 제2 홈구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구단 입장에서 보면 제2 홈구장은 단점투성이다.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 제2 홈구장은 지방 중소도시에 위치해 원정 숙소가 마땅치 않고 가끔 1군 경기가 열리다 보니 그라운드 상태도 좋지 않다. 까다로운 건 홈 팀도 마찬가지다. 말이 홈 경기지 사실상 원정 경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제2 홈구장 경기가 늘어날수록 제1 홈구장의 광고나 매점 수입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선수단 이동에 따른 부대 비용까지 발생하니 구단으로선 적자를 피하기 어렵다.반면 한국야구위원회(KBO) 입장에선 제2 홈구장은 프로야구 저변 확대를 위한 최고의 아이템이다.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은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한국, 멕시코, 영국, 일본 등에서 공식 경기를 개최한다. KBO리그 역시 국내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불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2016년부터 퓨처스(2군)리그가 강원도 춘천시 소재 의암야구장(2004년 완공)에서 열리고 있는데 이 역시 야구 저변 확대가 가장 큰 이유다.프로축구·프로농구·프로배구가 중소도시 포항·김천(이상 K리그1) 고양·안양·원주(이상 프로농구) 안산·의정부·천안(이상 남자 프로배구)을 연고로 하는 것과 비교하면 프로야구는 대도시 중심이다. 현재는 지방의 일부 구단들만 제2 홈구장 경기를 치르는데 전 구단이 같은 경기 수를 제2 홈구장에서 치르는 방안은 어떨까. 수도권 5개 구단이 강원도나 제주도에서 제2 홈경기를 6경기씩을 치른다면 1년에 30경기가 열리는데 이 정도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시설에 투자할 수 있다. 연간 홈 72경기 가운데 6경기면 8.3%. 이 정도는 야구 저변 확대 차원에서 투자할 가치가 있다. 잘 나갈 때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KBO리그는 그런 때이다.전 SSG 랜더스 단장정리=배중현 기자 2024.07.0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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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노메달' 도쿄 올림픽부터 마법사의 첫 우승까지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해 왔다. 2021년 모멘트를 다룬 이번 시리즈로 긴 여정을 마친다. ①SSG로 간판 바꾼 인천야구 신세계그룹 이마트가 SK텔레콤이 운영하던 SK를 1352억 8000만원에 인수했다. 새 구단명은 SSG 랜더스로 정했다. 인천야구의 간판은 5번이나 바뀌게 됐다. 인천 프로야구단은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를 시작으로 청보, 태평양, 현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2000년 현대가 수원으로 떠났고, SK가 자금난을 겪던 쌍방울 선수단만 인수, 인천에서 신생팀을 창단했다. SK는 인천에서 네 차례 우승을 이뤘지만, SSG의 인수 제의를 수용하면서 21년 만에 프로야구를 떠났다. ②‘추추 트레인’ 한국 상륙 MLB에서 통산 16시즌 218홈런 782타점으로 활약했던 추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했다. SK를 인수한 SSG는 2007년 해외진출 선수 특별지명에서 SK가 지명했던 추신수가 텍사스와 계약이 끝나자 연봉 27억원에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2021시즌 137경기에 출전한 그는 타율 0.265 21홈런 25도루 103볼넷으로 역대 최고령 20홈런-20도루(39세 2개월 22일)와 100볼넷 기록(39세 3개월 13일)을 새로 썼다. ③리그 흔든 방역수칙 위반 논란 7월 5일 NC 권희동·박민우·박석민·이명기 등 4인이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숙소에서 외부인 2명과 술자리를 가져 논란을 빚었다. 키움 한현희·안우진과 한화 윤대경·주현상도 수칙 위반이 확인됐다.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리그가 중단됐다. 황순현 대표 등 NC 수뇌부 3명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KBO는 위반 선수 8명에게 출장정지 징계와 제재금을 부과했다. ④‘디펜딩 챔피언’ 한국, 올림픽 노메달 김경문 감독이 이끈 올림픽 야구대표팀이 도쿄 올림픽에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야구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후 12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부활했다. 12년 전 우승팀 한국은 2연패를 노렸으나 3승 4패로 본선 진출국 6개국 중 4위로 마감했다.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이 불참한 데다 선발진이 평균 4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흔들렸다. 결국 한국은 미국·일본 등 강호들을 상대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메달 없이 대회를 마무리했다. ⑤오승환, 역대 최초 300세이브 삼성 오승환이 4월 25일 KIA전에서 1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 역대 최초로 통산 300세이브 고지에 올랐다. 2013년까지 277세이브를 기록한 후 해외로 진출했던 오승환은 2020시즌 복귀해 18세이브를 거뒀다. 2005년 프로 데뷔 이래 16년 497경기 만에 300세이브 고지에 오른 그는 10월 13일 KIA전에서 시즌 40세이브도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령 40세이브 기록(39세 2개월 28일)도 남겼다. ⑥최정, 대기록 잔치 SSG 최정이 프로 17번째 시즌에서 대기록을 여럿 작성했다. 그는 5월 18일 KIA전에서 솔로홈런을 쳐 시즌 10호 포를 기록했다. KBO리그 최초의 16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홈런. 15시즌 연속 10홈런 이상을 기록한 장종훈과 양준혁의 기록을 넘었다. 또 최정은 8월 18일 NC전에서는 6회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다. 개인 통산 288번째 사구로 메이저리그 휴이 제닝스가 세웠던 287개를 넘어섰다. 10월 19일 KIA전에서는 좌월 솔로 홈런으로 시즌 32호로이자 통산 400호 홈런을 달성했다. 이승엽(467홈런)에 이은 리그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⑦손아섭, 최소 경기·최연소 2000안타 롯데 손아섭은 8월 14일 LG전에서 리그 역대 최소 경기(1636경기) 및 최연소(33세 4개월 27일) 2000안타 기록을 세웠다. 기록이 수정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손아섭은 앞서 6월 27일 두산전에서 1안타를 쳤으나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돼 집계가 보류됐다. 해당 경기는 10월 7일 재개됐고, 정산이 6월 27일로 되면서 손아섭의 기록 달성 시점은 이후 1632경기와 33세 3개월 22일에 해당하는 7월 10일 삼성전으로 조정됐다. ⑧KT, 창단 첫 통합 우승 KT는 정규시즌 76승 9무 59패로 삼성과 동률을 기록, 타이브레이커 끝에 1위를 확정했다. KT는 한국시리즈에서 두산과 만났다. 두산은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세 시리즈에서 승리해 7년 연속 KS에 올랐다. KT는 4명의 선발 투수들이 모두 5이닝 이상 책임지며 4연속 선발승을 거뒀다. 4전 전승은 역대 9번째, 4연속 선발 스윕승은 역대 최초 기록이다. 시리즈 MVP는 박경수가 수상했다. LG와 KT에서 뛰었던 그는 데뷔 19년 만에 처음 오른 KS에서 호수비와 결정적 홈런포를 선보이며 시리즈의 주인공이 됐다. ⑨최동원 넘은 ‘225K’ 미란다는 MVP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 225탈삼진을 기록한 두산 아리엘 미란다가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2관왕을 차지했는데, 특히 고(故) 최동원 한화 2군 감독이 1984년 롯데에서 세운 단일 시즌 탈삼진 기록(223개)을 37년 만에 경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과 대만 프로야구를 경험했던 미란다는 시즌 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주 무기 포크볼을 더 공격적으로 던지면서 전혀 다른 투수로 변신했다. ⑩이의리, 36년 만에 타이거즈 신인왕 KIA 이의리가 2021년 신인왕을 차지했다. 1차 지명을 받고 KIA에 입단한 이의리는 시즌 초부터 선발 기회를 잡았다. 19경기에 나서 4승 5패 평균자책점 3.61 93탈삼진을 기록했다. 도쿄 올림픽 대표팀에도 승선, 10이닝 18탈삼진을 기록했다. 2017년 키움 이정후 이후 5년 연속 고졸 순수 신인 수상자이자 1985년 해태 이순철 이후 36년 만에 타이거즈 신인왕 수상자로도 이름을 남겼다. 차승윤 기자 사진=IS 포토·SSG 랜더스·연합뉴스 2022.12.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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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포커스] 쌍방울 이후 멈춘 전주, 프로야구 바람 다시 불까

전라북도 전주시가 멈춰있던 프로야구 시계를 돌릴 수 있을까. 전주시는 '2025년까지 8000석 규모의 야구장을 건설하겠다'고 지난 27일 발표했다. 연고 프로야구단이 없는 전주시가 신축구장 건설을 확정하자 향후 프로야구 경기를 유치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전주시 종합경기장개발과 관계자는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관람석 숫자가 조금 부족할 수 있는데 그라운드를 비롯한 시설은 프로야구장 기준을 맞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2000년 1월 쌍방울 레이더스 해체 후 전주시에선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쌍방울이 홈구장으로 사용한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전주야구장)은 사회인 야구 동호회원들 공간으로 명맥을 이어갔지만, 1963년 개장한 시설인 만큼 노후화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시설물 안전등급이 D등급으로 분류돼 본부석과 관람석 사용이 폐쇄되기도 했다. 전주시는 전주야구장과 인근 육상경기장(안전등급 C등급)을 철거하고 전주월드컵경기장 주변에 국제경기가 가능한 복합스포츠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전주월드컵경기장 인근은 2013년 1월 전라북도(전주·군산·익산·완주)와 부영건설이 프로야구 제10 구단 신축구장 예정지로 내세웠던 곳이다. 하지만 수원시와 KT에 밀려 프로야구단 유치에 실패하면서 전주시의 신축구장 건설 계획은 무산됐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내용이 다시 떠오른 건 지난 7월 민선 8기 우범기 전주시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우범기 시장은 "종합경기장 개발은 전주 경제의 성장과 대변혁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인 만큼 사업이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전주시의 신축구장이 완공되면 프로야구 경기를 열 수 있을까. KIA 타이거즈가 제2구장으로 활용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광주광역시 연고 구단인 KIA는 해태 시절인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전주를 제2 구장으로 사용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매년 최대 9경기를 군산월명야구장에서 치렀다. 하지만 선수단 숙박과 이동 거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2014년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가 개장하면서 제2 구장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 전주시와 군산시가 NC 다이노스의 신인 1차 지명 연고 지역으로 묶이면서 KIA 경기를 유치하는 게 더욱 어려웠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올해부터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돼 (1차 지명 연고 지역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졌다. 프로야구는 도시 연고제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해당 도시만 연고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며 "청주(한화 이글스) 울산(롯데 자이언츠) 포항(삼성 라이온즈)은 이전부터 (3개 구단의) 제2 구장으로 인정돼 경기할 수 있도록 허용된 상태다. 전주는 다른 구단의 연고지였던 만큼 바로 '할 수 있다'고 하기 어렵다. (KIA가 전주를) 제2 구장으로 사용하려면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주시의 신축구장은 지하 1층~지상 2층, 연면적 7066㎡ 규모다. 연면적 기준 군산월명야구장(1만3176㎡)의 53.6% 수준에 그친다. 완공 후 프로야구 시설에 부합할지 지켜봐야 한다. 전주시 종합경기장개발과 관계자는 "전주는 프로야구단이 유치되지 않은 지자체여서 연면적을 넓게 하면 사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발생, 예산이 과다하게 들어갈 수 있다. 타당성 조사에서 8000석 정도가 가장 알맞다는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복합스포츠타운 조성에 1421억원(국비 117억원, 시비 939억원, 지방채 365억원)을 투입한다. 최근 전주야구장 해체 공사 업체를 선정했고 건축위원회 심의 등의 행정절차를 마무리하는 등 속도를 높이고 있다. 내년 상반기 본격적인 건립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KIA 구단 고위 관계자는 "(경기장 신축기사를) 보긴 했는데 아직 지자체하고 얘기된 게 없어서 여러 상황을 돌아봐야 할 거 같다"고 말을 아꼈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2.12.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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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막 올린 SK 왕조, 최고의 KS 명승부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SK 왕조의 서막 SK(현 SSG)는 정규시즌 73승 5무 48패를 기록,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2차전을 모두 내줘 통합 우승 도전에 암운이 드리웠다. 하지만 3차전 마이크 로마노의 호투와 상대 실책을 묶어 반격했다. 4차전은 정규시즌 내내 기대를 밑돌았던 신인 김광현의 7과 3분의 1이닝 무실점 호투를 발판 삼아 4-0으로 이겼다. 이어 5~6차전까지 모두 이긴 SK는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1~2차전을 내주고도 우승하는 팀으로 우뚝 섰다. SK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라, 세 차례(2007, 2008, 2010) 우승으로 왕조를 건설했다. ②김성근 감독 첫 우승 2006시즌 종료 후 SK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은 낮에는 강훈련, 밤에는 정신교육을 통해 선수들에게 근성을 심어줬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도자를 맡았던 그는 OB-태평양-쌍방울-LG 등 중하위권 팀을 상위권으로 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정작 우승을 경험하진 못했으나, 2007년 SK에서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달성, 뒤늦은 전성기를 열었다. ③왕조의 라이벌 두산 김경문 감독이 이끈 두산은 빠르고 끈끈한 팀이었다. 2007년 최초로 한 팀에서 30도루 이상 선수를 세 명(이종욱-고영민-민병헌)이나 배출했다. 리오스가 정규시즌 MVP, 임태훈이 신인상을 차지했다. 2004년 두산 사령탑에 부임한 김경문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두 번째 고배를 마셨지만, 4시즌 동안 3차례나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아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두산은 SK와 여러 차례 명승부를 펼쳤다. 현대는 11년간 지휘봉을 잡은 김재박 감독이 LG로 떠난 뒤 김시진 감독과 계약했다. 하지만 모기업의 재정난 덕에 정상 운영이 어려웠다. 결국 KBO의 야구발전기금을 지원받아 간신히 시즌을 치렀다. 2007년 1월 농협의 인수 추진이 불발됐고, 시즌 막판에는 STX 인수설이 퍼졌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는 2007시즌을 끝으로 간판을 내렸다. 네이밍 스폰서를 내세운 우리 히어로즈가 해체된 현대 선수단과 프런트를 승계해 재창단했다. ⑤양준혁 최초 2000안타 6월 9일 잠실 두산전 9회, 삼성 양준혁이 우완 이승학으로부터 중전 안타를 뽑아 KBO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2000안타를 기록했다. 이 순간,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양준혁은 통산 2318안타를 기록한 뒤 2010년 은퇴했다. 2022년 정규시즌까지 통산 2000안타를 고지를 밟은 선수는 총 16명이다. ⑥리오스 20승, MVP, 진기록까지 2002년 KIA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입성한 리오스는 2007년 두산 소속으로 22승 5패 평균자책점 2.07을 기록했다. 1999년 정민태(1구원승 포함) 이후 8년 만의 20승 투수이자 1995년 이상훈 이후 12년 만에 선발 20승을 달성했다. 6월 16일 인천 SK전 8회에는 정확히 9개의 공으로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 역대 최초로 1이닝 9구 3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정규시즌 MVP와 골든글러브까지 휩쓸었다. ⑦이만수 팬티 퍼포먼스 이만수 SK 수석코치는 "문학구장에 만원 관중이 들어차면 팬티만 입고 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2007년 5월 26일 문학구장에는 2년 만에 만원 관중이 입장했다. 이 수석코치는 클리닝타임 때 뒷부분이 벌거벗은 엉덩이 모양으로 제작된 팬티를 입고 팬·구단 직원 22명과 함께 팬티 퍼포먼스를 펼쳤다. ⑧해외파 복귀 지명 2007년 1월 단장 회의와 이사회를 거쳐 해외파 선수의 국내 복귀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특별규정을 만들었다. 미국 무대에 진출한 선수는 현지 팀의 엔트리에서 제외된 후 2년 동안 국내 프로야구에 복귀할 수 없다는 규정에 예외를 둔 것이다. KIA 최희섭, 롯데 송승준, LG 류제국, 삼성 채태인, 두산 이승학, 현대 김병헌 등을 지명했다. 당시 SK의 지명을 받은 추신수는 2021년 SSG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데뷔했다. ⑨이현곤 타격왕, 송진우 최고령 출장 KIA 이현곤이 타격왕(0.338)과 최다안타(153개) 2관왕을 차지했다. 이현곤은 프로 통산 12시즌 통산 타율은 0.272다. 한화 송진우는 5월 26일 대전 두산전에서 역대 투수 최고령 출장 기록(41세 3개월 10일)을 세웠다. 2009년 은퇴한 송진우의 최고령 출장 기록(43세 7개월 7일)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⑩베이징 올림픽 예선 대만에서 열린 제24회 아시아선수권이 열렸는데,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 직행 티켓 한 장이 걸려있었다.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에 박찬호가 합류했지만 서재응, 김병헌, 구대성, 이승엽 등이 빠져 최상의 전력은 아니었다. 한국(2승 1패)은 결승 리그에서 일본(3승)에 패해 직행 티켓 확보에 실패했다. 2008년 3월 대륙별 플레이오프를 통과한 한국은, 결국 그해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서 금메달 신화를 이뤘다. 이형석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연합뉴스 2022.12.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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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잠자리채 열풍 만든 국민타자 신드롬, 국보 투수는 은퇴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이승엽 홈런쇼, 잠자리채 물결 이승엽의 홈런에 전국이 달아올랐다. 5월 한 달간 15홈런을 몰아친 이승엽은 전반기에만 36홈런을 기록했다. 8월 2일 대구 롯데전에서 시즌 43호 홈런을 날려, 1998년 타이론 우즈가 작성한 한 시즌 최다 홈런(42개)을 뛰어넘었다. 9월 2일 LG전에서는 KBO 최초로 한 시즌 50홈런을 달성했다. 아시아 홈런 신기록(당시 55개) 가능성이 생기자, 전국 모든 야구장에는 이승엽의 홈런볼을 잡기 위핸 잠자리채가 등장했다. 9월 30일 해태전에서 54호 홈런을 쏘아 올린 후 남은 3경기에서 홈런을 추가하지 못해 신기록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한국 야구의 홈런 역사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②국보급 투수의 은퇴 선동열은 한일 슈퍼게임 뒤인 11월 22일 은퇴를 발표했다. 해태 시절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한 뒤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간 선동열은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4년 동안 10승 4패 98세이브를 올리며 '국보'다운 피칭을 보여줬다. 그는 메이저리그(MLB) 보스턴 레드삭스의 러브콜도 뒤로했다. 반면 주니치에서 선동열과 함께 뛴 이상훈이 12월 24일 보스턴과 계약,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 MLB에 입성한 첫 선수가 됐다. ③한화 4전 5기 첫 우승 한화는 1988년과 89년, 91년 해태에 막혀 준우승에 머물렀다. 92년에는 승률 0.651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고서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에 무릎을 꿇었다. 우승이 간절했던 한화는 이남헌 사장 이하 대리까지 사표까지 미리 쓰는 배수진을 쳤다. 감독대행에서 정식 사령탑으로 승격한 이희수 감독은 5월 말 심판 폭행으로 12경기 출전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매직리그 2위에 오른 한화는 드림리그 1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4연승을 거뒀고, 롯데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1패를 거둬 감격적인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 5경기에 모두 등판해 1승 3세이브를 올린 구대성이 MVP(최우수선수)에 뽑혔다. ④양대 리그 시행 1999년 전년도 성적을 바탕으로 드림리그(해태, 현대, 두산, 롯데)와 매직리그(삼성, 쌍방울, LG, 한화)로 나뉘었다. 포스트시즌은 드림리그 1위-매직리그 2위, 드림리그 2위-매직리그 1위가 대결, 승리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도록 했다. 매직리그 승률 2위이자 전체 4위(0.554)였던 한화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양대 리그 제도는 흥행을 위해 도입된 취지와 달리 리그 간 전력 차가 커 2년 만에 폐지됐다. ⑤FA 제도 도입 1999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선수) 제도가 처음 시행됐다. 총 5명이 계약에 성공했다. 한화 송진우가 11월 26일 3년 7억원에 처음으로 FA 계약서에 사인했다. FA 이적 1호는 해태에서 뛰었던 이강철이었다. 11월 29일 삼성과 3년 총 8억원의 조건에 계약했다. 나흘 뒤엔 LG 포수 김동수가 삼성과 3년 총 8억원에 사인했다. FA 시장의 큰손이었던 삼성은 보상선수로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박충식(해태)과 김상엽(LG)에 내줬다. 송유석은 1년 7500만원, 김정수는 1년 5000만원의 조건에 각각 원 소속팀 LG와 해태에 잔류하면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드러났다. ⑥호세 방망이 투척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가 1999년 10월 20일 대구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7차전 6회 초 1-2로 따라붙는 솔로 홈런을 쳤다. 그가 더그아웃으로 향하자 1루측 일부 팬이 물병과 오물을 던졌다. 이에 흥분한 호세는 배트를 관중석으로 집어 던졌다. 이후 일부 롯데 선수와 팬들이 그물망을 사이에 두고 발길질을 주고받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벌어졌다. 김명성 롯데 감독이 선수단을 철수시켰고, 중단 23분 만에 경기는 재개됐다. 호세는 이후 KBO 징계위원회에서 10경기 출장 정지에 300만원 벌금을 부과받았다. 롯데는 1승 3패의 열세를 딛고 7차전 승리로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⑦드림팀Ⅱ 구성, 올림픽 진출권 획득 한국은 이승엽, 정민철, 정민태 등 최고 선수들로 드림팀Ⅱ를 구성, 서울 잠실구장에서 제12회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 겸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예선전에 나섰다. 이로 인해 9월 9일부터 17일까지 정규시즌이 중단됐다. 프로야구 출범 후 리그 중단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대회 결승리그에서 한국은 대만(5-4)과 일본(5-3)을 누르고 올림픽 진출권을 획득,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⑧마지막 한일 슈퍼게임 한국은 최고 스타들이 총출동했고, 일본도 앞선 두 대회 때와 달리 우에하라 고지, 마쓰자카 다이스케 등 올스타 멤버가 대거 출전했다. 나고야, 기후, 후쿠오카, 도쿄에서 열린 4경기에서 한국은 1승 1무 2패를 기록했다. 주니치 소속의 이종범은 1, 2차전에서 일본 선발로 출전했다. 1991년 시작한 한일 슈퍼게임은 1999년 3회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⑨철인 탄생 쌍방울 2루수 최태원이 9월 18일 대구 삼성전에서 선발 2루수로 출장, 623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달성했다. 종전 김형석의 최다 622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뛰어넘었다. 최태원은 1995년 4월 23일 OB전부터 2002년 8월 8일 현대전까지 1009경기 연속 출장했다. 아직도 최다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의 주인공이다. 이형석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연합뉴스 2022.12.2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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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선동열·김성한 없는 해태의 V8...현대 왕조 서막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리틀 쿠바' 박재홍 등장 현대 신인 박재홍이 프로야구를 뒤흔들었다. 데뷔 시즌 126경기에 출전, 타율 0.295 30홈런 108타점 36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9월 3일 LG전에서 김용수를 상대로 좌월 홈런을 때려내며 역대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그해 홈런왕과 타점왕에 올랐다. 박재홍이 데뷔 시즌 최다 홈런과 타점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만장일치(유효 30표)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②김성근의 쌍방울, 반전 2위 쌍방울은 정규시즌 2위(70승 2무 54패)에 오르며 1군 진입 6시즌 만에 가을야구에 나섰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은 김현욱·조규제·오봉옥을 앞세워 중간 계투진을 강화, 1점을 짜내고 지키는 야구로 쌍방울의 상위권 도약을 이끌었다. 간판타자 김기태의 성적은 이전 시즌보다 떨어졌지만, 김광림(타율 0.303)이 분전했다. 연고지 전주엔 야구 열풍이 불었고, 쌍방울은 창단 뒤 가장 많은 홈 관중(26만 5918명)을 기록했다. ③현대, 창단 첫 시즌 'KS 진출' 현대는 창단 첫 시즌 돌풍을 일으켰다. 1995시즌 7위였던 태평양을 인수한 만큼 기대가 크지 않았으나, 정규시즌 4위에 올랐다. 포스트시즌에선 한화와 쌍방울을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KS)까지 진출했다. 정민태·정명원·위재영이 지키는 현대 마운드는 꽤 높았다. 김경기·이숭용·박재홍이 이끄는 타선의 짜임새, 신인 박진만이 지키는 내야도 탄탄했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렸던 김재박 감독은 현대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④'이빨 빠진 호랑이'의 우승 개막 전 해태를 향한 전망은 밝지 않았다. 선동열이 일본 무대로 진출했고, 김성한이 은퇴했기 때문이다. 시범경기에서 해태는 1승 1무 4패에 그쳤다. 그러나 이종범과 이대진, 투·타 핵심 선수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6월 이후 상승세를 탔다. 7월에는 15승(1무 5패)을 챙기며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선두를 내주지 않고 1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조계현은 시즌 최다 완투(11번)를 해냈다. 해태는 현대와 맞붙은 KS에서도 4승(2패)을 먼저 거두며 통산 8번째 KS 우승을 차지했다. KS 진출 시 우승 확률 100% 기록도 이어갔다. ⑤정명원, 최초 KS 노히트노런 현대 정명원은 10월 20일 열린 해태와의 KS 4차전에 선발 등판, 9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2볼넷 1사구 9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노히트노런을 해냈다. 앞선 15시즌(1982~1996) 동안 노히트노런 8번은 모두 정규시즌 경기에서 나왔다. 이후에도 포스트시즌에서 노히트노런을 해낸 투수는 없었다. 마무리 투수였던 정명원을 선발로 내세운 김재박 당시 현대 감독의 '변칙' 용병술도 빛났다. ⑥투수 4관왕 구대성, MVP 한화 구대성은 1996년 정규시즌에서 18승 3패 24세이브(40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에는 마무리 투수를 맡았지만, 5월 11일 삼성전을 기점으로 선발 투수로도 나섰다. 다승과 구원, 평균자책점과 승률(0.857) 1위에 오른 그는 신인 박재홍의 돌풍을 잠재우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⑦이강철, KS MVP 수상 해태 이강철은 데뷔 첫 시즌(1989년)부터 15승을 거뒀지만, 팀 선배 선동열과 조계현에 가려 있었다. 그는 1996년 KS에서 완봉승을 포함해 2승 1세이브 13탈삼진 평균자책점 0.56을 기록하며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강철은 1996년을 돌아보며 "당시 KS MVP는 정규시즌 MVP만큼 영광스러운 타이틀이었다. 서로 등판하고 싶어서 경쟁했다. 의미가 큰 수상"이라고 돌아봤다. ⑧'불사조' 박철순 은퇴 프로야구 원년 흥행을 이끌었던 스타 박철순이 10월 4일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1982년 24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를 기록하며 MVP에 올랐다. 지난 시즌까지 깨지지 않은 '단일 시즌 최다 연승' 기록(22연승)도 그해 세웠다. 그는 허리, 아킬레스건 등 끊임없이 이어진 부상 속에 신음하면서도 우리 나이로 마흔한 살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통산 성적은 231경기 76승 53패 20세이브 평균자책점 2.95. 야구팬은 그에게 '불사조'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안희수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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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잠실 라이벌 시대 열리다...국보는 일본으로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잠실 라이벌의 숨 막히는 우승 다툼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팀 LG는 시즌 종반이던 8월 27일까지 2위 OB에 6경기 앞선 선두를 질주했다. 이때부터 OB의 기적이 일어났다. 8월 27일 더블헤더 2차전을 시작으로 9월 10일까지 12승 2패를 거둬 LG를 끌어내리고 선두를 뺏었다. 두 팀의 피 말리는 승부는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이어졌다. OB는 태평양을 3-2로 이겨 승률 0.607(74승47패5무)로 정규시즌 우승으로 확정했다. LG는 74승 48패 4무를 올렸으나 반 경기 차로 고개를 떨궜다. '미러클 두산'의 서막을 올린 시즌이다. ②13년 만에 정상 복귀한 OB 1994년 말 항명 파동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한 OB는 중·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이 부임해 빠르게 팀을 정비했고, 깜짝 통합 우승까지 차지했다. 정규시즌 LG의 막판 추격을 따돌린 OB는 롯데와의 한국시리즈에서 5차전까지 2승 3패로 뒤졌으나 6~7차전 진필중·김상진의 역투 속에 모두 이겨 프로 원년 이후 13년 만에 우승했다. 김상호, 김형석, 박철순 등 베테랑과 정수근, 심정수, 이도형, 진필중 등 신예의 깜짝 활약이 어우러졌다. ③해태 10년 만에 PS 진출 좌절 해태는 64승 58패 4무(승률 0.524)로 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3위 팀과의 승차가 3.5경 차 이내여야 준플레이오프가 성사되는 규정이 있었다. 3위 롯데와 4위 해태는 4.5경기 차였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만 6차례 차지한 해태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10년 만에 무산됐다. 해태는 팀 평균자책점은 3.06으로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종범이 방위 복무로 원정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일부 베테랑이 노쇠화를 보여 공격력(팀 타율 7위)이 약화한 영향이 컸다. ④김상호 서울팀 최초 홈런왕 1988년 MBC 청룡(LG 전신)에 입단한 김상호는 1990시즌을 앞두고 최일언과 1대1 트레이드를 통해 OB로 이적했다. 1995년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25홈런(126경기)을 기록, 서울 연고 팀 최초의 홈런왕에 올랐다. 그해 타점왕(101개)까지 거머쥔 그는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까지 휩쓸었다. 김상호 이후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토종 홈런왕이 재탄생하기까지 무려 33년이 걸렸다. 김재환(두산)이 2018년 44홈런으로 타이틀을 획득했다. ⑤이동수, 타자 최초 중고 신인왕 1995년 계약금 1억원 이상을 받은 대형 신인이 대거 입단했다. 이동수가 이승엽과 마해영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신인왕에 등극했다. 1992년 입단해 1994년 6경기 출장이 전부였던 그는 1995년 125경기에서 타율 0.288 22홈런 81타점을 기록했다. 1988년 태평양 언더핸드 투수 박정현이 최초로 중고 신인왕에 올랐지만, 타자로는 이동수가 처음이었다. ⑥최초 500만 관중 돌파 이해 총관중은 540만 6374명을 기록했다. 1982년 프로 출범 후 처음으로 시즌 5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OB와 LG가 막판까지 우승 다툼을 했고, 인기 구단 롯데와 해태도 정규시즌 3~4위에 오르며 인기몰이를 주도했다. 다시 500만 관중을 돌파하기까지 13년이 걸렸다. KBO리그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2008년 총관중 525만6332명을 불러 모았다. ⑦한일 슈퍼게임 2승 2무 2패 1991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일 슈퍼게임이 열렸다. 일본 도쿄돔과 나고야 등에서 열린 대회에서 한국은 2승 2무 2패를 기록했다. 한 수 위로 평가받은 일본을 상대로 자신감을 갖는 계기였다. 1995년 타격왕 김광림(쌍방울)의 상승세는 한일 슈퍼게임까지 이어졌다. 2차전과 3차전 연속 결승타를 날렸다. 총 16타수 9안타(타율 0.563) 4타점을 올려 한국 MVP로 선정됐다. 기자단 투표 총 27표 중 25표를 얻을 만큼 압도적인 지지였다. ⑧선동열 일본 진출 '국보' 선동열은 평균자책점 0.49를 기록하며 2년 만에 구원왕에 올랐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한일 슈퍼게임에서도 활약한 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와 계약했다. 1995년 1억 3000만원으로 리그에서 유일한 억대 연봉자였던 그는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3억엔(당시 기준 22억 5000만원)의 조건에 사인했다. 그의 해외 진출에 반대한 해태 구단이 직접 의뢰해 여론조사까지 이뤄졌을 만큼 큰 관심을 모았는데, 여론은 선동열의 편이었다. ⑨인천 야구, 네 번째 주인은 현대 1994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태평양은 1년 만에 고꾸라졌다. 가까스로 승률 4할(0.401, 48승 73패 5무)을 넘겼다. 모그룹은 시즌 중반부터 현대와 매각 협상을 벌이는 등 야구단 운영에 미련이 없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현대그룹에 구단을 470억원에 매각했다. 1988년 청보 핀토스 인수 금액(50억원)에 비하면 매각 대금이 껑충 뛰어올랐다. 인천 야구는 삼미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에 이어 현대 유니콘스로 이어지는 네 번째 주인을 맞았다. 이형석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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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LG의 마지막 KS 신바람, MVP 종범신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LG 신바람 KS 우승 1994년 KBO리그에는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가 가득했다. 이광환 감독이 이끄는 LG는 4월 26일 한화 이글스전에 승리하며 리그 1위로 올라선 뒤 정규시즌 일정을 모두 마칠 때까지 선두를 지켜냈다. 한국시리즈(KS)에선 '돌풍의 팀' 태평양 돌핀스를 4전 전승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KS 최우수선수(MVP)는 시리즈 1승 2세이브를 거둔 '노송' 김용수의 몫이었다. 공교롭게도 LG의 KS 우승 시계는 1994년을 끝으로 멈춰 있다. ②4할에 근접했던 '바람의 아들' 해태 타이거즈 이종범은 1994년 타율과 도루, 최다안타 등 공격 5개 부문 타이틀을 휩쓸며 데뷔 첫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그해 이종범은 104경기까지 4할 타율을 유지, 프로야구 원년이던 1982년 MBC 청룡 백인천(당시 0.412) 이후 처음이자 역대 두 번째 '정규시즌 4할 타율'에 도전했다. 아쉽게 0.393로 시즌을 마쳐 목표 달성엔 실패했지만, 그의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③한화 이글스 시작 빙그레 이글스가 아닌 한화 이글스라는 팀 명으로 첫 시즌을 소화했다. 롯데 자이언츠를 이끌던 강병철 감독이 사령탑에 올라 정규시즌을 공동 3위(65승 2무 59패)로 마쳤다. 16승을 따낸 에이스 한용덕을 필두로 정민철(14승 10패 평균자책점 2.15) 송진우(9승 10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92)가 버틴 마운드의 힘이 대단했다. 한화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2전 전승으로 꺾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선 태평양에 3전 전패로 패해 탈락했다. ④LG 김선진 깜짝 홈런 LG와 태평양의 한국시리즈 1차전은 팽팽했다. 9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해 1-1 상태로 연장에 돌입했다. LG가 선발 이상훈에 이어 차동철, 김용수를 차례로 등판시킨 것과 달리 태평양은 선발 김홍집이 연장 11회까지 마운드를 홀로 지켰다. 해결사는 LG 대타 김선진이었다. 김선진은 연장 11회 말 1사 후 김홍집의 141구째를 공략해 왼쪽 펜스를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때려냈다. 김선진은 그해 정규시즌 안타가 20개, 홈런은 단 1개에 불과한 대타 요원이었다. ⑤LG 신인 3인방 LG가 1994년 신바람을 낼 수 있었던 건 '신인 3인방' 류지현(유격수) 서용빈(1루수) 김재현(좌익수)의 역할이 컸다. 류지현이 타율 0.305 15홈런 51타점 51도루, 서용빈이 타율 0.318 4홈런 72타점을 기록했다. 김재현은 당시 고졸 선수로는 사상 첫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 깜짝 놀랄 만한 활약을 보여줬다. 셋 중 마지막에 웃은 선수는 류지현이었다. 쟁쟁한 동료들을 제치고 신인왕을 차지했다. LG 선수가 신인왕에 오른 건 1990년 포수 김동수 이후 4년 만이었다. ⑥OB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 17명 1994년는 OB 베어스에겐 최악의 시즌이었다. 성적도 좋지 않았고 팀 내부 갈등도 극에 달했다. 9월 4일 윤동균 감독에 불만을 품은 17명이 집단으로 항명, 숙소를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OB는 잔여 경기를 2군 선수들로 치러야 했고 팀 성적은 계속 악화(정규시즌 7위)했다. 결국 박철순을 비롯한 항명 주동자에 대해 연봉 지급 정지와 출장 정지 처분이 내려졌고 윤동균 감독이 자진해서 사퇴한 뒤에야 사건이 일단락됐다. 윤동균 감독의 뒤를 이어 1995년 OB 사령탑에 오른 건 '국민 감독' 김인식이다. ⑦'원 히트 원더' 김홍집 1994년 김홍집은 정규시즌 12승을 따내며 태평양의 돌풍을 이끌었다. 방위병으로 복무, 그 당시 인천에서 열리는 홈 경기 등판만 가능했지만, 프로 두 번째 시즌 '대박'을 일으켰다. 김선진의 끝내기 홈런으로 기억되는 그해 한국시리즈(KS) 1차전에서도 141구 역투로 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KS 1차전의 후유증 때문일까. 2003년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시즌 100이닝'을 다시 소화하지 못했다. ⑧첫 왼손 타자 홈런왕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간판 김기태는 1994년 홈런 25개를 때려내 김경기(태평양·23개) 김재현(LG·21개) 등을 제치고 홈런왕에 올랐다.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후 왼손 타자가 홈런왕에 오른 건 역사상 김기태가 처음. 쌍방울은 김기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김기태의 배턴을 이어받아 역대 두 번째 '왼손 타자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 건 1997년 '라이언 킹' 이승엽(당시 삼성 라이온즈)이다. ⑨사자구단의 몰락 부상자가 속출한 삼성 라이온즈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두 번째로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허리 부상으로 빠진 에이스 김상엽을 비롯해 강기웅·정경배·류중일·김성래 등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마운드와 타선을 가리지 않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우용득 감독과 백인천 타격 인스트럭터의 미묘한 긴장 관계가 팀 성적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갖은 노력 끝에 영입한 재미교포 투수 최용희의 활약(1승 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48)도 미미했다. ⑩40세이브 신기원을 연 정명원 태평양의 뒷문을 지킨 정명원은 정규시즌 사상 첫 40세이브 고지를 정복했다. 50경기에 등판해 105와 3분의 2이닝을 소화했고 평균자책점까지 1.36으로 안정적이었다. 올스타전에선 3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KBO리그는 1984년 윤석환(당시 OB·25세이브)이 20세이브, 1993년 선동열(당시 해태·31세이브)이 30세이브를 각각 처음으로 돌파한 바 있다. 배중현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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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코칭스태프 개편...'전 롯데 감독' 조원우 코치가 수석

통합 우승팀 SSG 랜더스가 코칭스태프 개편을 단행했다. SSG는 15일 2023 시즌을 대비해 코칭스태프를 개편했다고 전했다. 1군은 조원우 수석코치, 김민재 3루 주루/작전 및 벤치코치, 조웅천·이승호 투수코치, 이진영 타격코치, 정경배 퀄리티컨트롤(Quality Control) 코치, 손지환 내야 수비코치, 조동화 1루 주루 및 외야 수비코치, 정상호 배터리코치, 곽현희 트레이닝코치, 박창민·고윤형·김상용·김기태·길강남 컨디셔닝코치로 구성됐다. 1군은 올시즌 통합우승에 기여한 기존 코치들의 보직을 최대한 유지했다. 가장 주목받는 건 수석 코치로 보직 변경한 조원우 코치다. 선수로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뛰던 시절 만난 김원형 감독과 조원우 코치는 가까운 사이로 유명하다. 이후 SK 와이번스에서도 함께 했고, 은퇴 후에는 SK는 물론 조 코치가 감독으로 재임하던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감독과 코치로 동행했다. 이후 김원형 감독이 SSG 감독으로 부임하자 조원우 코치가 이번에는 코치가 돼 조력하고 있다. 올 시즌 역시 벤치 코치로 김원형 감독과 선수단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통합 우승에 힘을 보탰다. 지난 시즌 수석 코치를 맡았고 역시 김 감독과 절친한 김민재 코치는 벤치코치 및 3루 주루작전 코치를 병행함으로써 전문성을 강화했다. 또한 정경배 퀄리티컨트롤(QC) 코치는 데이터파트에서 분석한 공격, 수비 분석 자료를 감독이 경기 운영 전략을 세우고 경기중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조언자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퓨처스팀(2군)은 이대수 총괄코치 겸 수비코치를 중심으로 박주언·채병용 투수코치, 박정권 타격 코치, 임재현 주루코치, 정진식 배터리코치, 이형삼·류재준·송재환·윤인득 컨디셔닝코치가 담당한다. SSG는 지난 2년간 스캇 플레처 전(前) 퓨처스팀 총괄코치와 호흡을 맞추며 선수 육성과 소통에 강점을 보인 이대수 총괄코치 선임을 통해 미국 마이너리그 육성 시스템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잔류군은 윤재국 잔류책임 겸 야수코치, 김동호 투수코치, 이윤재 재활코치가 담당한다. 신규코치는 박주언(前 인상고 코치), 윤재국(前 롯데 코치), 정진식(前 SSG스카우트), 이윤재(前 상무 코치), 윤인득(前 KIA 코치), 김동호(前 삼성) 등 총 6명이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12.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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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피플] 왕자(王子)에서 왕자(王者)로…정상 오른 김원형 리더십

김원형(50) SSG 랜더스 감독은 선수 시절 '어린 왕자(王子)'로 불렸다. 곱상한 외모로 마운드를 지킨 쌍방울 레이더스의 스타 중 한 명이었다. 데뷔 첫해인 1991년 당대 최고의 에이스 선동열(해태 타이거즈)을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고, 1993년 최연소 노히트 노런(만 20세 9개월 25일)도 기록한 에이스였다. 그래서 감독이 된 지금도 팬들은 그를 '왕동(왕자+감독의 합성어)님'이라고 부른다. 외모와 달리 커리어는 험난했다. 통산 20시즌 134승 144패를 기록했다. 통산 110승 이상을 거둔 투수 중 패전이 더 많은 이는 그뿐이다. 재정이 어려운 쌍방울과 신생팀 SK 와이번스(SSG의 전신)에서 울퉁불퉁한 커리어를 이어갔다. 커리어 후반부인 2007년에야 첫 우승을 경험했다. 마운드를 떠난 왕자는 지도자로 변신했다. 친정 팀 SK의 코치로 시작해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에서도 투수 코치와 수석 코치로 경험을 쌓았다. 2021시즌에는 감독으로 친정팀에 복귀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한국시리즈(KS) 패권을 차지했다. 정규시즌 개막전부터 최종전까지 1위를 지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이어 12년 만의 팀 통합 우승까지 이뤄냈다. 우승의 과정에서 김원형 감독의 존재감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모기업 SSG의 역대급 투자 덕분이라는 평가가 따랐고, 김원형 감독 스스로도 몸을 낮췄다. 그는 “선수 때는 마운드에 올라가면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이 강했다. 감독으로서도 선수들에게 그렇게 다가갔다. 더 성숙한 어른이 돼야 했는데, (그걸 받아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수차례 꺼냈다. KS 중에는 “이판사판이라 생각하고 (흔들리던) 박종훈을 믿었다”, “김강민의 대타 기용을 깜빡하고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팬들은 김원형 감독을 ‘운장(運將)’이라고 불렀다. 김원형 감독은 SK-SSG로 이어지는 23시즌의 역사를 통틀어 나온 첫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이다. SSG 선수단에는 십여 년 전 '왕조' 시절 김 감독의 후배로 함께했던 스타들이 많았고, 그는 그 장점을 잘 살려냈다. KS MVP(최우수선수) 김강민은 “올 시즌을 앞두고 목표가 세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감독님의 재계약이었다. 감독님과 개인적인 인연도 길었고, 베테랑과 소통을 잘해주셨던 분이다. 감독님은 '나도 감독이 처음이다 보니 생각대로 잘 안 될 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떠올렸다. 이어 "우리는 감독님과 선수단이 잘 어우러져서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이 목표였고, 그게 잘 되어서 우승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단기전에서 승부사 기질도 뛰어났다. '134승 투수'다운 과감한 투수 기용으로 기세등등했던 키움 히어로즈 타선을 잠재웠다. 커리어가 더 뛰어난 박종훈보다 현재 컨디션이 좋았던 오원석을 진작부터 선발 투수로 낙점했다. 오원석은 3차전에서 호투(5와 3분의 2이닝 1실점)했고, 박종훈도 불펜으로 3경기 무실점을 기록했다. 실패로 끝났지만 1차전부터 숀 모리만도를 불펜 기용하는 강수도 주저하지 않았다. 필승조 김택형의 구위가 불펜 투수 중 가장 좋은 걸 확인하자 6경기 중 5경기에 등판시켰다. 김택형은 위기 상황 등판과 멀티 이닝 소화에도 무실점 철벽투를 펼쳤다. 우승을 결정한 6차전에서도 초반 실점에도 폰트의 구위를 믿고 7과 3분의 2이닝 동안 투구하게 했고, 남은 이닝을 네 개를 김택형-박종훈-김광현에게 나눠 던지게 했다. 왕자(王子)는 이제 왕자(王者)에 걸맞은 사령탑이 됐다. '왕동님' 체제는 계속된다. SSG 구단은 시리즈를 마치기도 전인 지난 7일 김원형 감독과 재계약을 결정하고 발표했다. 그가 '명장'으로 향하는 길의 첫걸음을 확실하게 내디뎠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11.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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